160편
<-- 진실의 눈 -->
답답하게 꼬여버린 상황과 다르게, 퀘스트 완료 보상은 착실하게 떨어진다.
[ 보상으로 `사냥꾼의 훈장`이 지급됩니다. ]
툭-
내 손바닥 위로 떨어진 자그마한 메달.
언뜻 보기에는 애들 장난감처럼 생긴 훈장이었다.
[ 사냥꾼의 훈장 ]
: 위대한 사냥꾼에게는 그에 합당하는 보상이 지급되어야 한다.
( 옵션 : 사용 시 랜덤하게 일부 능력치 상승 )
"...?"
시장 구멍가게에서 500원이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장난감인데, 옵션이 장난이 아니다.
`능력치 증가`옵션이라니. 몇이나 오르는지, 어떤 능력이 오르는지. 랜덤이라는 조건이 달려있긴 해도. 지배력이나 마력이 증가하기라도 하면 대박인 물건이었다. 꼭 두 능력이 아니더라도 능력치의 상승은 웬만하면 무조건 좋다.
이런 보상을 지급할 줄이야.
"그만큼 적대한다는 건가."
퀘스트의 난이도를 따졌을 때.
이번 퀘스트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 이런저런 문제가 겹친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난이도는 상당히 쉬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보상을 지급한다는 건.
최소한 디펜스 챌린지 주최측, 혹은 퀘스트를 지급하는 존재와 렙틸리언이 내 생각보다 더 적대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
하긴. 살해 퀘스트를 괜히 내줄리가 없지.
"대체 뭘까."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 시점에서 렙틸리언이란 종족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그것에 대한 퀘스트를 내준 것도 그렇고.
-으아..아아..
그래서 더욱 저놈과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 건데.
"어쩔 수 없나."
아무리 봐도 정신이 되돌아올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그나마 적어도 렙틸리언이 다수 존재한다는 건 알아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저 녀석은 분명 죽기 전 `우리`와 `공생`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수의 렙틸리언이 지구 어딘가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 두 놈 존재한다고 `우리`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언젠가 또 마주치게 될 것이다. 하이네스가 있으니 가까이만 있다면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마음 같아선 하나하나 찾아다니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다. 다음 퀘스트는 물론 던전 탐사 및 각종 연구까지. 그렇다고 한참 훈련 중인 하이네스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인력 낭비였다.
"그래도 집은 전부 수색한다."
[ 알겠습니다. ]
위스퍼를 비롯한 수색부대를 전부 소환해 집안 곳곳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얻어가야만 했다.
첫째. 예상대로 렙틸리언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
둘째. 주기적으로 피를 마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
셋째.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현대 사회에 굉장히 밀접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는 것.
"겨우 이것뿐인가."
덕분에 새벽녘이 가까워질 즈음.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거나, 엄청난 비밀은 아니다. 그저 예상했던 것을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었을 뿐.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서 가져온 공책 위에 요약한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아쉽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녀석을 바라본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 빙의 ]
[ 백화(白火) ]
화르르륵-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하얀 화염이 흉가를 휘감는다.
삽시간에 일어난 불길은 단숨에 집을 태우고, 그 안에 잠들어있던 모든 걸 지워버렸다. 죽어있던 사람들은 물론, 녀석의 시체마저도 불길에 사라지고 남은 건 검은 잿더미뿐이었다.
"돌아가자."
"네."
아쉬움 가득한 발길로 현장을 벗어나 적당한 곳에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우리가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는지.
하이네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에서 걸어 나왔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가볍게 하이네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모든 게 의문으로 가득한 밤이라. 잠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애써 잡념을 털어내 본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잔뜩이었으니까.
[ 사냥꾼의 훈장을 사용합니다. ]
우웅-
잠이 들기 전.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냥꾼의 훈장`을 꺼내 사용했다. 찝찝함을 날려버릴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였다.
[ 능력치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
[ 4%...29%...59%...100% ]
[ `사냥꾼의 훈장`으로 능력치 `화염 친화력`이 상승합니다. ]
분위기 반전을 위해 사용한 `사냥꾼의 훈장`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바랬던 `지배력`이나 `마력` 상승 옵션은 아니었지만, 화염 친화력으로 내게 이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화염 계열 마법의 위력이 올라가는 건 둘째치고, 불의 정령의 능력도 상승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급 정령인 만큼 아주 엄청나게 상승한다, 눈에 띌 정도로 상승한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뚱딴지같은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보다는 마음에 드는 옵션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불의 정령 계약 조건이 상승합니다. ]
[ 〈 불의 하급 정령 소환 마법 〉이 〈 불의 중급 정령 소환 마법 〉으로 〈 성장 〉 합니다. ]
[ 이미 계약되어있던 〈 불의 하급 정령 〉이 〈 불의 중급 정령 〉으로 〈 성장 〉 합니다. ]
[ 불의 중급 정령 계약의 효과로 `불` 속성과 관련된 모든 행동에 10%의 위력 상승효과를 적용합니다. ]
"호?"
이건 예상외였다.
예전에 어둠 친화력 일정 조건 충족으로 `키메라 제조`를 배웠던 것처럼, 화염 친화력 일정 조건 충족으로 이번에는 정령 마법이 상승했다. 그것도 내가 바라던 쪽으로.
정령 계약은 친화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절대 상위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이 스킵되었으니 좋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한달 텀도 지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정령계를 한 번 갔다 오려고 했다.
새로운 정령과 계약할 수 있다면 그만큼 전력 상승이 되기 때문. 특히 이번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일라이네와 하이네스가 정령과 계약을 했으면 해서 갈 생각이었다.
둘 다 마법 계열인 만큼, 정령을 소환하고 부리는데 들어가는 마력에 문제는 없다.
근접 계열처럼 마력이 간당간당한 게 아니라면, 정령은 있으면 무조건 좋다. 아니 근접 계열이라 마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정령은 있으면 좋다.
"되도록이면 바로 출발해야겠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 날이 밝는 데로 계획을 잡고 정말 눈을 감았다.
*
"여기가.."
"와아.."
생각했던 대로.
아침 일찍. 식사를 끝내자마자 정령의 문을 열고 정령계로 넘어왔다.
여전히 난잡한 세계. 처음 경험하는 하이네스나 일라이네는 주변 풍경이 굉장히 신기한지, 연신 주위를 돌아보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각자 내가 말한 대로 자리 잡고."
"네!"
"네."
나는 정령계에 빠져있는 두 사람을 적당히 떨어뜨려 놓고 그대로 앉았다.
뼈 지팡이와 사념의 서를 꺼내 무릎 위에 올리고 가볍게 손을 모은다. 그러자 떨어져서 어색하게 자리를 잡은 두 사람도 나를 따라 각자 장비를 꺼내고 자세를 잡았다.
정령 계약에 장비까지 가져오는 건, 장비에 붙은 옵션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다. 마력 추가 옵션이라든가, 친화력 추가 옵션이라든가. 혹은 장비 설명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라도.
그리고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낸다.
"하아압."
"흐음."
세 방향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정령계 전체를 향해 퍼져나간다.
그러자 하나둘 정령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하급 정령 위주였지만, 언뜻언뜻 중급 정령들도 눈에 들어왔다. 다만 내 쪽에는 이미 계약을 맺었던 정령들 뿐이다. 어둠의 정령 다수와 불의 정령. 그 이외의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친화력이 부족한 것인지.
"어둠의 정령이야? 너는 번개의 정령?"
일라이네는 예상한 대로 어둠의 정령들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처음보는 정령도 있었다.
비록 하급 정령이라 큰 도움은 없겠지만, 카사를 통해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큰 불만은 없다.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할 뿐. 정말 특이하고 놀랐던 건 하이네스였다.
마녀(魔女)인 하이네스에게는 과연 어떤 정령들이 다가올까 이게 제일 궁금했는데, 확실히 대단했다.
"그..그래?"
하이네스의 전신을 뒤덮을 듯.
거칠게 기운을 내뿜고 있는 한 정령. 중급 정령으로 보이는데 느껴지는 기운은 굉장히 파괴적인 느낌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일반적인 정령은 아닌 것 같았다.
"나도 분발해야겠네."
일라이네와 하이네스가 생각보다 더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라.
나도 최선을 다해야할 것 같았다. 지금 내 정령들의 수준이 낮은 건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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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편은 15분 전에 올라옵니다.
오탈자 수정도 그때 같이 진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