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편
<-- 하이네스 -->
"우선."
[ 무덤지기 ]
상황이 이해가 가는 건 아니지만.
[ 전부 사살한다. ]
일단은 주변부터 정리해야겠다.
장소가 협소한 터라 무덤지기 공간 안에 도열해있던 2차, 3차 개체들만 소환해 하이네스 주변으로 떨어뜨린다.
스켈레톤 로열 나이트, 스켈레톤 배틀 워리어, 스켈레톤 로열 랜서.
근접 전투에 특화된 돌격부대를 소환하고, 그 지휘관들을 부른다. 여기에 망국의 기사단과 이블 나이트, 리빙 아머를 소환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고 방패로 델을 붙였다.
콰득-
콰직-
"뭐..뭐야?"
"언데드?"
"갑자기 웬 언데드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무기를 휘두르며 죽음을 기다리던 용병들과 알터는 갑작스러운 언데드들의 난입으로 어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통상 언데드라 함은 산자를 증오하기에 몬스터로 분류한다.
헌데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들이 되려 괴물들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니 이걸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때다. 싶어 괴물들을 같이 공격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만 어느 순간 살아남은 이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이거.."
"그?"
"며칠 전이랑 똑같은데…."
"네크로맨서..!"
특히나 열흘 가까이 동행했던 알터는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분명 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주장했던 이들과 같이 말이다.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언데드들이 도와주는 사이 자세를 바로잡고 하이네스를 향해 이동했다.
짓이겨진 팔에서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검을 왼손으로 쥐자, 하이네스가 급히 고개를 돌려 알타를 바라봤다.
"알터 단장님!"
방금전까지 울고 있었던 듯, 아직도 한줄기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얼굴.
그런데 특이하게도 전체적인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분이 왔어요…. 그분이!"
"예..?"
이제 다 되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외치는 하이네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하이네스의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빛?"
알터의 시선이 자연스레 손등의 인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보았다.
"인장이…. 없다?"
손등에 각인되어있던 인장이 사라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뿐이다.
`성녀가 성녀가 아니게 되는 것`. 다른 말로 바꿔말하면 `성녀의 기도를 발동시켰다는 것`. 이것이다.
"설마!"
알터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해진다.
팔의 통증?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그만큼 이 상황이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분이 오셨어요! 저희 모두 살았어요! 더 이상 죽음을 보지 않아도 돼요!"
"...."
하이네스의 밝은 표정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떠오르는 건 하이네스가 더 이상 성녀가 아니란 점이었다. 아니 성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성녀의 존재 목적인 `성녀의 기도`는 더 이상 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성녀의 기도`. 오직 성녀만이 할 수 있고, 성녀의 피로만이 가능한 최강의 소환 마법. 신(神)을 강림시키는 최고위 신성 주문. 발동조건은 딱 하나. 성녀의 목숨이며, 오직 단 한 번만 발동 가능한 마법이다. 역사상, 그리고 문헌을 봐도 여지까지 한 성녀가 `성녀의 기도`를 두 번 이상 발동했다는 기록은 없다. 아니 `성녀의 기도`를 발동하고도 살아남은 성녀가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해서 각 교단은 성녀 후보를 확보하면, 그때부터 교육에 들어간다.
교단의 신에 대한 간절함을 가질 수 있도록, 신앙심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을 말이다. 성녀의 기도를 통해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무한정하다. 그 어떤 존재든 간절함만 있다면 단 한 번에 한에 불러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혹시라도 잘못된 존재를 불러낼까 하여, 교육하는 것이다. 교단의 신을 제대로 소환할 수 있도록, 혹은 적어도 교단의 천사 정도는 소환할 수 있게끔.
"그렇다는 건…."
그런데.
여기서 성녀의 기도가 발동되었다는 건. 머릿속으로 떠올랐던 `그`가 성녀의 기도로 소환되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더 이상 하이네스는 성녀 후보가 아니라 그저 조금 특별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성녀의 피에 대한 잠재력은 여전히 대단할지언정, 성녀로는 쓸모가 없다.
어찌하여 성녀의 기도를 발동시킨 하이네스가 죽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추측한다면 신 혹은 천사 정도의 절대적 존재가 아닌 인간을 소환하는 데에서 그쳤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허..."
알터는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깨닫고 나서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어졌다.
자신들이 무얼 위해 이토록 싸워왔던가. 언제가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원대한 목표가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물론 하이네스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다.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당장 상황이 매우 급하다 보니 살고자 하는 생존의 간절함이 커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다.
그저 허탈한 감정이 몸 전체를 휘감는다.
"여러분은 이제 살 수 있어요!"
그저 다행이라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하이네스만이 상황도 모르고 웃고 있을 뿐.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알터의 옆으로 낯익은 유령마 한 기가 내려선다. 그 위에는 역시나 그가 있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정말 `성녀의 기도`가 발동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어느덧 주변은 싹 정리가 되어있었다.
"사람은 살았으나. 성녀는 살리지 못했다."
알터는 이 한 마디를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단장님!"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리며 그대로 고개를 숙이는 알터.
죽은 것이다. 하이네스가 급히 달려가 그를 살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알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괴물들의 시체로 가득한 공터.
온통 피로와 살점, 시체로 범벅되어 있어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목숨을 부지한 인원이 고작 넷이 전부라는 게 상황을 전부 설명해주고 있었다.
[ 모두 처리하였습니다. ]
"수고했어."
[ 경계를 서겠습니다. ]
혹시나 살아남은 괴물이 있을까 하여 확인사살까지 끝낸 불사의 군대는 자연스레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사주 경계를 섰다.
"상황을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언데드들이 물러나고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남은 용병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개중 하나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니면 눈치껏 움직이려고 했던 것인지 급하게 주변을 돌아보더니 내게 건넨다.
[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 대륙을 위한 일이오. ]
[ 성녀의 피가 묻은 천 ]
: 성녀의 피로 글씨를 적은 천. 피에 담긴 힘으로 인해 단순한 천에서 특별한 물건으로 변화하였다. 허나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옵션 : 특수 - 악(惡)을 부르는 피 +5 )
[ 특수 - 악(惡)을 부르는 피 +5 ]
: 천에 묻은 성녀의 피로 인해 사방 5km 안 모든 악(惡)한 존재를 불러들인다.
"미친."
용병이 가져온 이 천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다만 그래서 그런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누가 봐도 대지의 신전과 펠리스라는 그 여자의 뒤통수라는 건 알 수 있다. 다만 뒤통수도 정말 제대로 쳤다. 알터의 말을 통해 성녀의 피에 담긴 위험성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이용해 살아나갈 생각을 하다니.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펠리스의 몸에 상처를 내서 피를 뽑고, 그것을 미끼처럼 던져둔 뒤 어디 숨어있다가 도망쳤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는 있었겠지만. 그런 거야 해결할 수 있으니 이런 짓을 벌였겠지.
확실히. 빛의 신전도 그렇고, 여긴 신을 믿는 종자 중에 제대로 된 놈들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한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은 이해했다.
그럼. 이제 내가 해야 할 건 무엇인가. 나도 모르게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이자, 원인.
"저..."
찐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이네스.
이전까지 보았었던 하이네스의 눈빛은 아니다. 알터가 죽었기 때문일까. 밝았던 얼굴이 가라앉다 못해 완전히 죽어버렸다.
"제발.."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를 망설이던 하이네스.
끝내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한 번만 도와주세요…."
떨어진 눈물은 매우 붉었다.
붉디붉은 눈물 한 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기이한 기류가 하이네스를 휘감았다.
[ 서브 퀘스트 - 마녀의 탄생 ]
: 누군가가 다쳐야만 했던 자신의 운명을 탓했지만, 그래도 끝끝내 참아가며 눈물을 아꼈다. 그러나 그 끝에 남은 것이 오직 `한(恨)`과 '절망(絕望)' 뿐이었다. 이에 대륙을 구하고 빛을 가져올 성녀의 피가 새로운 존재를 깨우려 하고 있다. 끝없는 절망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절망에 몸을 맡기고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인가. 하이네스는 그 답을 당신에게 구하려 한다.
[ 남은 시간 : 0분 ]
( 0/1 )
( 당신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
[ 선택 목록 ]
[ 1. 하이네스를 도와 성녀 후보 펠리스를 찾아 죽인다. ]
[ 2. 거절한다. ]
"...?"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2편인데 아직 마감을 못해서요.
하하 금방 올리겠습니다.
오탈자 수정도 2편 올리고 나서하겠습니다.
아마 12시 20분 전에 올라갈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