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편
<-- 성녀 후보 -->
"온다!!!"
외마디 외침과 함께 시작된 전투.
[ 추격대장 켈커타 ]
"크아아아!!"
네임드 몬스터 켈커타를 위시한 악의 무리 대략 백 여 마리가 성녀 후보 하이네스가 가리켰던 방향에서 쏟아져 나온다. 중간중간 피를 흘리는 놈들이 보이는 것으로 봐선 스펙터들이 제대로 날뛰고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괴물들은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아마도 스펙터들에게 당한 분노를 인간들에게 풀어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켈커타와 괴물들이 달려오자 원거리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익숙하게 마법이나 기술을 사용하며 괴물들의 진로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스톤 월!"
"정조준 - 일격!"
"슬로우 필드."
.
.
워낙 나무가 빽빽한 숲 속이다 보니 안 그래도 움직임이 불편한 데다가, 완전히 길을 가로막아버리는 등의 마법까지 사용하니 괴물들의 이동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누구인지, 중간에 저주 마법처럼 광범위 둔화를 시전한 덕분에 괴물들은 완전히 기동력을 잃어버렸다. 이름이 추격대라고 뜨는 만큼 기동력이 가장 중요한 부대가 기동력을 잃어버리니 근접 계열들과 성기사들이 어렵지 않게 괴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괜찮네."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될까 싶었는데.
생각외로 괜찮은 것 같다. 아주 대단하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 덕분인지 센스도 있고 갖춘 능력들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1인분은 할 수 있을 정도랄까. 특히나 예상했던 대로 근접 계열 플레이어들의 활약이 뛰어났다.
성벽에 의지해 멀리서 쏘아대는 원거리 계열과 달리, 근접 계열은 직접 몸을 부딪쳐야 하는 처지라 상대적으로 실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더 거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거리 계열보다도 근접 계열들의 실력이 궁금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성기사들이 얹혀가는 느낌이랄까.
성기사단장인 알터나 하이네스 호위를 위한 주요 전력이 빠져있는 것 같긴 해도,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이 세계 주민들과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은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나도 슬슬 움직여야지."
[ 그림자 송곳니 ]
[ 그림자 송곳니 ]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손을 뻗었다.
오랜만에 쥐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불의 하급 정령 카사와 어둠의 중급 정령들을 부리니, 영락없는 정령사였다.
콰직-
콰직-
화르륵-
어둠의 중급 정령은 4클래스 수준의 위력을 낼 수 있다.
굳이 델이 아니더라도 이 전장에서는 충분하다는 소리다. 게다가 공격법이 상당히 특이한 터라 괴물들에게는 적격이었다. 그림자를 갑자기 끌어올려 창처럼 바닥에서부터 찔러 들어가는데, 제대로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괴물들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왜 죽어가는지 이유도 모른 체 쓰러지는 게 고작이었다.
"다른 놈은 두고 저놈부터 붙잡아."
[ 그림자 속박 ]
[ 그림자 속박 ]
[ 그림자 가르기 ]
[ 그림자 가르기 ]
나는 마력을 천천히 끌어올리며 정령들을 전부 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괴성을 지르며 성기사들을 압박 중이던 추격대장 켈커타가 있었다. 일반 몬스터를 학살하는 것도 좋지만, 추후 정산 때에 히든 퀘스트를 위해서라면 네임드 몬스터를 잡는 게 훨씬 이득이다. 포인트 이상의 장비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콰드득-
콰득-
"크아아아아아!!"
켈커타는 거대한 손톱으로 성기사 하나의 가슴을 뚫어가다 말고 무언가 자신의 발을 묶어버리자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그 위로 거세게 틀어박히는 그림자의 칼날. 네임드 몬스터를 한 번에 죽일 위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치명상은 입힐 수 있다.
[ 그림자 방패 ]
카앙-
캉!
물론 쓰러진 켈커타를 노리는 성기사들의 검을 막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쓰러뜨린 건 난데 성기사들이 목을 자르기라도 하면 공헌도야 챙기겠지만, 사살 퀘스트는 실패하는 터라 그들의 검을 막는 게 가장 중요했다. 장군을 상대하는 일이었다면 이런저런 생각할 것 없이 전부 쏟아부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고작 네임드 몬스터 하나를 처리하는 일이라 여유가 넘쳤다.
"끝내."
[ 그림자 송곳니 ]
[ 어둠의 창 ]
콰직-
콰드득-
"끼에에에에엑!!"
십여마리의 정령들이 전부 달라붙어 기술을 쏟아내자 켈커타의 육체가 순식간에 걸레로 변했다. 켈커타는 마지막까지 괴성을 지르며 발악을 하려 했으나 그저 발버둥에 불과한 발악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되어가는 듯했다.
투웅-
"음?"
그 순간.
바닥으로 쓰러지던 켈커타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무언가 쏘아졌다.
단순히 검붉은 핏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었으나,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 건 검붉은 액체가 알터의 뒤로 숨어있던 하이네스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고, 켈커타가 죽어가는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방심 아닌 방심을 하던 순간이었다.
다만 그것을 목격하고도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 그림자 방패 ]
"꺄악!"
촤악-
"후우."
하이네스의 그림자 속엔 어둠의 상급 정령 델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끝내."
다른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과 하이네스의 비명에 당황했지만 큰일이 없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 분노를 괴물들을 향해 되돌렸다.
켈커타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분노를 풀 대상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우두머리가 죽었다!"
"가자!"
"용기의 신이 우리를 지켜주신다!!"
.
.
성기사들은 켈커타가 죽지 기합을 지르며 마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대장인 켈커타가 죽으니 백 여 마리의 괴물들을 쓸어버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준 차이가 나는 데다가 우두머리까지 없으니 전력 차가 상당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스펙터들의 기습을 받고 시작했던 터라 풀 컨디션이 아닌 탓도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첫 전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나버렸다.
〈 파티 디펜스 - 성녀 후보 (1) 〉
: 악의 무리가 출현하고, 그들이 대륙 전체를 위협한다는 소식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에 신전 연합은 악의 무리를 막아내고자 대륙 전역에서 성녀 후보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악의 무리 역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성녀 후보들을 찾아내 죽이기를 반복하며 쫓고 쫓기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신전 연합은 이곳 아갈타 산맥 어느…. (중략)
[ 남은 시간 : 0분 ]
( 1/1 )
-완료!
전투가 생각보다 쉽게 끝난 터라 부상자는 적었다.
그나마 있는 부상자들도 성기사들이 직접 나서서 치료를 도와준 덕분에 금세 회복될 수 있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꽤 좋았다. 승리를 쉽게 얻어낸 것도 있지만 확실하게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서 성기사들이 플레이어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게 컸다.
특히나 성기사단의 단장인 알터가 직접 치료를 나설 정도였다.
그간 하이네스의 호위는 물론 전투에서 지휘까지 해야 했던 알터는 플레이어들의 유입으로 자신이 호위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감사를 느끼는 듯했다.
"악의 무리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용기를 보여준 그대들에게 팔라틴의 가호가 있기를!"
그래서인지. 다음 퀘스트를 받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토록 집요하게 악의 무리들이 하이네스님을 노리고 있어, 당장 총단으로 이동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해서 저희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벨베루스로 가려 합니다."
〈 파티 디펜스 - 성녀 후보 (2) 〉
: 악의 무리의 지속적인 공격에, 성녀 후보 하이네스를 호위하는 용기의 신전 성기사단 단장 알터는 가장 가까운 도시에 들러 충분한 전력 증강을 하려고 한다. 특히 신전 연합에서 파견했다는 용병들이 도시 벨베루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만큼 그곳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알터와 성기사들을 도와 도시 벨베루스까지 성녀 후보 하이네스를 안전하게 호위하라!
[ 남은 시간 : 0분 ]
( 0/1 )
"저희 역시 하이네스님을 위해 악의 무리와 싸울 것입니다!"
"걱정 마시죠!"
말하기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나서서 대화를 나누고 진형을 잡았다.
다만 슬슬 밤이 찾아오고 있기도 했고, 숲의 밤은 특이 위험한 터라 야영을 한 뒤, 새벽이 밝으면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서 움직인다!"
"최대한 흔적을 지워라!"
"저희도 갑시다!"
"으아. 오늘은 별거 없는데?"
피 냄새가 가득했던 전장을 벗어나는 이들의 얼굴은 다분히 편안했다.
싱거운 전투의 승리가 가져다준 여유였다. 위기가 어주 없던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난 건 아니었던 터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이전처럼 야간 기습이 이루어지진 않을까 싶기도 했으나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은 건 아니라서 딱히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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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