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128화 (128/304)

128편

<-- 첫 번째 왕 -->

퀘스트 메시지를 확인한 건 아침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이른 새벽이었다.

〈 솔로 디펜스 30. The First King 〉

: `첫 번째 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그동안 이루었던 업적과 명성을 전해들은 `첫 번째 왕`은 당신의 목숨을 취하고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 하고 있다. `첫 번째 왕`은 고독하며 중후하다. 오직 홀로 서길 원하며 명예를 위해 살아간다. `첫 번째 왕`과의 전투에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와 겨뤄 승리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터!

[ 남은 시간 : 24시간 00분 5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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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이 하루?"

남은 시간이 무려 하루나 되는 퀘스트.

팔콘 수성전 당시만 해도 하루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솔로 디펜스에서는 처음이라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대기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는 건 그만큼 앞으로 공격해올 적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었기에 더 당황했던 것 같다.

적이 위험하니 그만큼 좋은 대응법을 찾아내라고 대기 시간을 주는 것이니까.

"흐음.."

더군다나 일반 몬스터나 네임드 몬스터도 끌고 다니지 않는 타입이다.

보통 보스 몬스터 하면 아래에 일반 몬스터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마리씩, 네임드 몬스터도 서너 마리씩 끌고 다니는 게 기본인데 반해 이놈은 단신으로 쳐들어오는 걸 보니 확실히 기존의 보스 몬스터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준비해야겠지."

잘 됐다.

여기저기 신경 쓰는 것보다 한 놈에게 집중하는 게 낫다. 괜히 여기저기 신경 쓰다 보면 머리만 더 아프기 마련.

"좋아. 준비하자."

대기 시간도 하루나 되니 충분하다.

24시간이면 없던 준비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가자."

나는 곧장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밀어내며 공간을 열고 성으로 향했다.

성으로 돌아가자 침대 위에 늘어지게 자는 벨카서스와 조용히 성벽 위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우선.."

나는 성으로 오기 전에 챙긴 공책을 펴고 연필을 들었다.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보다 이렇게 쓰면서 정리하는 게 훨씬 좋다.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어디에 어떤 부대를 배치할지, 부대의 규모는 어떤 식으로 조정해야 할지, 어디에 어떤 함정을 놓아야 할지 등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보니 책과 연필 없이는 전술을 짜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진 천여 구의 병력을 움직이는 지휘관이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인 만큼 더욱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우선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 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며 공책 위로 무수한 전술을 새겨나갔다.

*

[ 남은 시간 : 1시간 17분 22초 ]

"이제 1시간."

어느덧 하루라는 대기 시간이 1시간으로 확 줄어들었다.

정말 어제는 하루 종일 준비에 매달리느라 꽤 바쁘게 뛰어다녔던 것 같다.

"전 준비 다 됐어요!"

"나도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밝은 표정의 일라이네와 담담한 얼굴의 벨카서스가 보인다.

나는 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검토를 시작했다.

"시체는."

[ 성문에서부터 5m 간격으로 심어두었으며 50m 거리에는 2백여 구 이상 묻어두었습니다. ]

"좋아. 부대는?"

[ 할당된 사체와 함께 지정된 곳에 있는 상태입니다. 전투가 시작되고 신호가 울리면 전투 지역으로 합류하며 주변에 사체를 늘어뜨릴 것입니다. ]

"알겠어."

검토와 함께 질문을 던지자, 내 옆에 서 있던 스켈레톤 데드 매지션이 종이 위로 그려놓은 지도를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한다.

나는 데드 매지션의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내가 계획한 대로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실제 전투가 일어났을 때 `예상과 현실이 얼마나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기.` 이것 하나뿐이다.

검토까지 끝내고 나니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긴장되는 시간 속. 모래 시계 안 모래가 끊임없이 떨어지며 조금씩 전쟁 시간을 끌어당긴다.

[ 남은 시간 : 00시 7분 13초 ]

하염없이 가대리다 보니 어느새 10분 아래로 떨어졌다.

드디어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정찰 시작해."

[ 알겠습니다. ]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리빙 아머를 향해 말하자, 스펙터를 비롯한 유령부대가 전방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사실 전투 시간이 정해져 있고, 어디서 전투를 하는지 등 시스템으로 설정되어 있기 있기 때문에 정찰이란 행동이 솔로 디펜스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정찰을 내보내는 건 조금이라도 먼저 상대방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조그마한 정보라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건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어떤 무기를 쓰는지, 어떤 타입인지에 따라 대응법이나 전술이 달라지기도 하는 만큼 정찰은 득실(得失)을 따진다면 항상 이득(利得)이다.

"왔나?"

정찰을 시작한 지 대략 3분여.

남은 시간이 3분 안쪽으로 떨어진 순간. 저 멀리서 위스퍼들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내 곁으로 다가온 위스퍼들과 망령들의 기억을 살펴본다.

"랜스 마스터와 비슷한 타입인가."

저장된 기억을 통해 알아본 결과 놈은 2m가 훌쩍 넘는 키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창술가였다. 갑옷은 걸치지 않고, 상당히 여유롭게 성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며 마지막으로 돌아온 스펙터에 의하면 가만히 있어도 마력이 흘러나올 정도라고 한다.

"근접 계열. 속도는?"

[ 빠릅니다. 다가갔던 위스퍼 셋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가온 스펙터가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전해준다.

"빠르다..빠르다..흐음."

아무래도 갑옷이 없는 만큼 공격 속도는 보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좋아. 다시 위치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었으니 남은 건 전투뿐.

[ 남은 시간 : 00시 01분 21초 ]

"왔다."

남은 시간이 1분대에 들어서자 서서히 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 명예로운 왕 레비아탄 ]

녀석도 성벽 위에 나를 발견했는지 걸어오다 말고 그 자리에 서서 씩 웃는다.

"그대가 이 성의 주인이오?"

여유롭다.

곧 전투를 치러야 할 상대를 앞에 두고 웃는 건 물론, 대화를 걸어온다. 마치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보았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대답이 없군. 뭐 좋소. 나는 지금부터 나의 명예를 걸고 싸울 것이오. 그러니 그대로 그대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소."

녀석은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고개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모래시계 속 마지막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 남은 시간 : 00시 00분 00초 ]

"그럼 가겠소이다!"

후우웅-

손에 쥐고 있던 창을 그대로 들어 올리는 레비아탄.

"저 자세."

나는 순간 녀석의 자세가 상당히 눈에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누구라도 저 자세를 본다면 녀석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고 허리를 비틀며 창을 뒤로 잡아당기는 저 모습. 당연하게도 `투창(投槍)` 직전의 자세였다.

자세를 파악한 순간. 실전 감각의 발동인지 아니면 그동안 날카로워진 본능적인 움직임인지. 나도 모르게 자세를 낮췄다.

후우우우웅-

간발의 차이였다.

자세를 낮추자마자 머리 위로 창 한 자루가 스치고 지나간 건.

파앗-

시작부터 기술이라니.

화살보다도 멀리 날아오는 창이란 있을 수 없지. 100% 기술이 분명하다.

"전투는 시작되었소!"

날아온 창에 대해 생각하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언제 되돌렸는지 날린 창을 쥐고 있는 놈이 보였다.

놈은 내가 일어서서 눈을 마주치자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마치 지금의 한 방은 아주 가벼운 인사에 불과했단 것처럼. 그리고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이어간다.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

나는 그런 놈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제대로 미친놈이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도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뛰어나도 방심하는 순간 목이 날아가는 건 불변의 법칙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 여유 처참하게 부숴줄 테니까."

나는 여유롭게 성을 향해 다가오는 놈을 보며 중얼거린 뒤, 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놈이 신호탄을 쐈으니 나도 그에 상응하는 답가를 들려줘야겠지. 물론 내가 들려줄 답가는 아마 조금 시끄러울 거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매우 시끄럽지.

[ 무덤지기 ]

[ 베놈 버스트 ]

[ 베놈 버스트 ]

[ 베놈 버스트 ]

.

.

서전을 장식하는 십여 구의 베놈 버스트와 수십 구의 베놈 데드.

과연 이 전투가 끝날 때쯤 놈이 계속 여유로울 수 있을까?

"뒤져봐라."

========== 작품 후기 ==========

추촌 코멘트 쿠폰 선작

감사합니다.

다들 즐거운 설 보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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