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편
<-- 눈높이 교육 -->
[ `악마를 봉인한 구슬`이 `봉인`을 시작합니다. ]
휘몰아치는 황금빛이 쓰러진 벨카서스의 전신을 휘감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빛으로 물든 벨카서스의 몸이 조금씩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묘한 광경이었다. 진녹색이던 구슬의 색이 조금씩 황금색으로 변하며 빛을 뿌리더니 허공에 뜬 채로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다.
"과연.."
과연 벨카서스는 이 구슬 안에 봉인이 될 것인가.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구슬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술에 침이 마른다.
긴장된다.
그러나 긴장한 것과 다르게 봉인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났다.
[ 악마 벨카서스를 봉인했습니다. ]
좌우로 흔들리던 구슬이 멈춘 순간.
봉인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구슬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간단하잖아?"
긴장했던 이상할 정도로 허무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 막 봉인에서 풀려났던 상태라 힘이 약하기도 했고, 2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지. 거기에 마지막으로 상극의 속성인 신성 주문까지 맡았으니 봉인을 피해 가는 게 어쩌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 악마 벨카서스를 `악마를 봉인한 구슬`에 봉인했으므로 특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던전 - 악마의 늪`의 승리 조건이 달성됩니다. ]
[ 봉인까지 남은 시간 : 0분 0초 ]
벨카서스의 봉인이 끝나자, 남은 시간이 `0`으로 줄어들더니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
본래의 목적과는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악마를 봉인한 것은 맞으니 이것도 승리로 인정되는 것 같았다. 다만 원래 던전 클리어 보상이 없는 건지, 아니면 특이한 방법으로 클리어한 탓에 보상이 없는 것인지.
저번과 다르게 딱히 얻어가는 보상은 없었다.
"아니지. 이놈을 얻었으니 그게 보상인 건가?"
[ 악마를 봉인한 구슬 ]
: 악마를 봉인할 수 있는 구슬이다. 현재 `악마 - 벨카서스`가 봉인되어있다.
( 옵션 : 기술 소환/역소환 +1 )
- 벨카서스의 현재 상태 : 18% / 100%
- 특수한 제약이 걸려있습니다.
봉인에 성공한 구슬은 설명이 확 줄어들더니 이렇게 변했다.
"특수 제약이라."
짧아진 설명과 그 아래로 표기되는 벨카서스의 현 상태.
중요한 건 그 아래에 출력된 `특수한 제약`인데 아마도 힘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상태가 회복된다고 해도 힘은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걸 의미한다.
"흐음."
봉인에 성공한 건 좋지만, 만약 특수 제약이 계속해서 유지가 된다면 봉인에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분명히 이 구슬은 굳이 벨카서스가 아니더라도 얼마도지 활용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그런데도 벨카서스를 봉인한 건, 벨카서스의 상태가 `불완전`했기 때문이었다. 불완전 상태에서도 3차 개체들과 싸울 수 있었다는 건 완전해진다면 그 이상의 능력치를 가졌다는 뜻과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벨카서스를 봉인한 것인데.
"방법을 찾아야겠네."
특수한 제약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왜 그러세요?"
"그게."
내가 봉인을 끝내고도 구슬을 바라보며 고심에 빠져있자, 일라이네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게좋게 끝난 것 같은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야."
"흐음."
일라이네는 가만히 서서 내 설명을 듣더니 같이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하고 웃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라이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팔을 올리다가 손에 쥐어진 구슬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아."
"네?"
내 탄성에 일라이네가 반응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이미 내 시선이 동굴 안쪽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네."
동굴 안을 바라보던 나는 곧장 안쪽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이 해결 방안은 상당히 간단했다. 아니 간단하다 못해 단순하기까지 했다.
"배틀 마스터."
[ 예. ]
"제단을 부숴."
[ 알겠습니다. ]
한걸음에 동굴 안쪽. 제단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 나는 제단이 보이자마자 배틀 마스터를 불렀다.
한쪽 어깨에 거대한 도끼를 걸치고 있던 배틀 마스터는 내 명령에 짧게 고개를 숙이더니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제단 앞에 선다. 그러더니 단번에 도끼를 내리찍었다.
후우우웅-
콰아앙!!
거칠게 타오르는 마력까지 더해져 단숨에 제단을 파고들어 가는 도끼.
거대했던 제단은 고작 한 번의 도끼질에 두 쪽이 나버렸다.
[ `봉인의 제단`이 완벽하게 파괴되었습니다. ]
[ `봉인`의 효력이 사라집니다. ]
"됐나?"
제단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순간.
메시지가 보였고,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구슬의 정보를 열었다.
[ 악마를 봉인한 구슬 ]
: 악마를 봉인할 수 있는 구슬이다. 현재 `악마 - 벨카서스`가 봉인되어있다.
( 옵션 : 기술 소환/역소환 +1 )
- 벨카서스의 현재 상태 : 19% / 100%
- 특수한 제약이 해제되었습니다.
"됐다."
변했다.
역시 답은 제단이었다. 애초부터 이 모든 상황의 접점이 되는 건 제단이었다. 구슬도 악마도 봉인도. 그렇다면 그 중심점이 되는 제단이 사라지면 될 일.
봉인의 효력이 남아있는 제단만 사라진다면 벨카서스의 힘이 완전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가자."
"네?"
내 말에 부리나케 내 뒤를 따라오던 일라이네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그녀에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이해시켜줄 시간이 없다. 제약까지 풀어낸 이상, 계획을 마무리 지어야 했으니까.
[ 무덤지기 ]
쉴 틈 없이 공간을 열어 묘지로 들어간 뒤.
집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3차 개체부터 일반 개체까지 전원 소집했다.
"놈이 나타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패."
[ 알겠습니다. ]
"일라이네. 너도 걱정 말고 벼락 날려."
"네? 네."
망국의 기사단과 정령들까지 불러낸 후.
모두에게 명령을 내린 뒤 구슬을 꺼냈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소환."
[ `악마 - 벨카서스`를 소환합니다. ]
우웅-
명령어를 발동시키자, 검은 구슬이 살짝 빛나더니 황금빛 기류가 빠르게 흘러나오며 하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
"크으윽..허억.."
황금빛 기류가 사라지고 난 뒤 나타난 것은 아직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벨카서스였다.
봉인의 제약은 완전히 풀렸지만, 그게 회복까지 시켜주는 건 아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소환되자마자 신음을 토하며 쓰러져있는 벨카서스를 향해 수백의 병사들이 달려든다.
"하아..하..대체...?"
벨카서스는 두통으로 가득한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키다 말고 자신이 늪지대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질척거리던 바닥이 딱딱해졌고, 늪지대 특유의 습하고 무거웠던 공기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언데드?"
사방을 가득 채우는 언데드가 보였다.
"죽기 전까지만 패."
더불어 짤막한 인간의 목소리도 들린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아주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었다.
후우웅-
퍼억!
"크아악!"
가장 먼저 달려온 백색의 기사가 발등으로 턱을 올려 찬다.
3m에 달하는 벨카서스의 육체가 들릴 만큼 강력한 올려 차기였다. 깔끔한 올려 차기 뒤에 이어진 건 거대한 주먹의 내려찍기였다. 올려 차고 내려찍고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 뒤?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던 것 같았다.
- 벨카서스의 현재 상태 : 7% / 100%
"그만."
"커헉..헉..하으..하.."
거칠게 퍼붓던 공격이 인간의 목소리를 끝으로 한순간 멈춰버렸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지팡이를 쥔 인간이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인다.
"하아..하.."
자꾸만 감기는 눈 때문에 인간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탁-
겁도 없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인간이 그대로 앉더니 뭔가를 입에 흘려 넣는다.
과연 뭘까.
차가우면서도 비릿한 맛이 나는 물이었다.
"크으윽..인..간..대체.."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이런 인간 따위. 힘만 돌아오면 단숨에 쳐 죽일 수 있는 인간이데. 벨카서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인간을 바라보려 했다. 그런 벨카서스의 귓가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크윽..."
주인?
이 인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너의 주인이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 들 힘 없는 자신을 상대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건가? 인간 따위가? 참으로 간이 큰 인간이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다 못해 아예 간이 없는 놈인 것 같았다.
감히 악마인 자신을 상대로. 그것도 투쟁의 종족인 위대한 발록 벨카서스님을 상대로 농담 따먹기라니.
벨카서스는 당장 이 간 큰 인간을 죽여버리려 손을 뻗었으나 끝내 정신을 잃어야만 했다. 그래서 듣지 못했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던 말을.
"좋아. 이제부터 눈높이 교육 시작이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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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마 다들 선물함이나 쪽지 보시면 제가 보낸 선물이 있을겁니다!
100분만 드리기 뭐해서 121화 코멘트 달아주신분들 전부 드렸습니다 하하
거진 1000장 정도? 썻네요.
다음에는 더 크게 해볼테니까 앞으로도 더 추천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