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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 챌린지-118화 (118/304)

118편

<-- 응징 -->

내 질문에 막 욕을 끝내던 남자가 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위아래로 흔들어댄다.

"아아아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압니다!"

그러더니 제발 자신에게 물어봐 달라는 듯 더듬거리는 말투로 울부짖는다. 아니 내가 묻기도 전에 위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입니다! 제..제가 연락처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당장 연락도 가능합니다!"

김유라의 집 주소부터 연락처까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술술 풀어놓는다. 나를 붙잡아 어디로 데려가려 했는지, 언제 만나려고 했는지 등등 가진 정보는 전부 설명했다. 그리고는 마치 `저 잘했죠?` 하고 선생님께 칭찬받기를 원하는 유치원생 같은 눈빛으로 나를 간절하게 쳐다본다.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절대 죽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 좀 잘라줘."

[ 알겠습니다. ]

나는 남자의 설명을 들으며 발아 채워져 있던 족쇄를 잘라냈다.

[ 마력 봉인 족쇄가 강제로 해제됩니다. ]

[ 마력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

멈췄던 마력이 흐르기 시작하니 마치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어디 있는지 위치도 알았겠다. 남은 건 하나뿐이다.

"전부 죽여."

그전에 귀찮은 건 치우고 간다.

일반인도 아닌 플레이어인 이상 괜히 살려줘 봐야 언제, 어떻게 되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그냥 깔끔하게 죽이고 간다. 살려줬다가 앙심을 품고 파티 디펜스 같은 곳에서 만나 뒤통수라도 친다면 어쩌겠는가. 그러니 철저히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자..잠깐! 살려준다면서요! 살려준다며!! 이 개 같으-"

콰직-

내 말에 지금까지 정보를 퍼주던 남자가 당황한 듯 소리치다가 억울한 눈빛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공간을 열고 나왔다.

"되살려줄게."

*

김유라는 약간은 초조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일이 잘 끝나면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도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니 답답했다.

"아니. `족쇄`까지 넘겨줬는데도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거데?"

디펜스 챌린지의 플레이어가 되면서 급하고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 더 심해진 데다가 오늘은 생리까지 겹쳐서 그런지 더더욱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이잉-

그렇게 기다리길 10여 분.

드디어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지?"

[ 가고 있다. ]

김유라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대답.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폭급해진 성격만큼이나 감정변화가 극과 극이다.

"족쇄는? 족쇄는 제대로 채웠어?"

다만 그 와중에도 꼭 필요한 것들은 확실하게 확인했다. 뛰어난 장비와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만큼, 그리고 김유라 본인이 확인했던 그 날의 능력을 아는 만큼 `족쇄`의 유무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거를 위해 직접 플레이어들에게 일을 맡긴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능력으론 죽었다 깨어나도 족쇄를 채우지 못하지만, 이번에 일을 맡은 플레이어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 채웠다. ]

"좋아!"

시원시원한 대답이 들린다.

족쇄가 채워졌다면 모든 게 성공이다. 마력이 봉인되었으니 그 대단한 능력도 이젠 아무 소용이 없다. 게다가 그런 상태로 퀘스트에 끌려가 죽고 싶진 않을 테니 요구하는 모든 걸 들어줄 것이다.

적당히 구슬려서 장비를 바치게 한 뒤, 죽여버리면 후환도 두렵지 않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 같은 기분에 김유라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그래. ]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서로 요구하는 것만 들어주면 되니까.

"좋아.. 어디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뻗대고 다녔는지 보자."

김유라는 벌써부터 잠시 후에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인터폰을 받는소리가 들렸다. 원래 접선 장소는 XX호텔이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면 집에서 보기로 했던 터라 아마도 그들이 찾아온 것 같았다.

"아가씨. 손님이."

"들여보내!"

"아..알겠습니다."

방 안에서 빽 하고 소리를 지르자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유라는 누군가 집으로 들어온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문을 열고 1층 거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을.

"뭐..뭐야."

왜 남자가 하나뿐이지? 처음 일을 맡은 사람들은 분명 여러 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거실엔 남자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그 얼굴이 상당히 익숙하다. 이전 팔콘 성 수성전 당시 보았던 얼굴이자 지금까지 기다렸던 그 얼굴이었다.

"이..윤?"

빛의 신전 사제들을 보호하는 임무부터 같이 시작했던 터라 그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팔콘 성 수성전 당시 보여주었던 능력 또한 알고 있다. 당시 많은 플레이어가 그를 같은 플레이어가 아닌 그 세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김유라를 비롯한 몇 명은 그가 플레이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빛의 신전 호위 임무부터 같이 했던 플레이어들은 더더욱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떡하니 있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게 없었다.

"족..쇄가."

족쇄가 없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분명 조금 전 통화 때는 족쇄를 채웠다고 했는데.

나는 멍하니 서 있는 김유라를 향해 잘라 낸 족쇄를 던졌다. 스켈레톤 나이트 마스터가 검에 마력을 주입하고 나서야 잘릴 만큼 단단한 소재였던 터라 족쇄가 계단에 부딪히자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나무 바닥이 퍽 하고 부서졌다.

콰득-

"날 그렇게 찾았다면서."

아마 내가 족쇄 없이 찾아올 거란 생각은 없었나 보다.

저렇게까지 당황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예 보내줄 생각이 없지.

"신이라도 찾아봐. 어떤 놈들은 그렇게 빌더라고."

[ 무덤지기 ]

가볍게 공간을 열자 썩어가던 손이 튀어나와 김유라의 갑옷을 잡아당긴다.

플레이어답게 언제라도 퀘스트에 반응할 수 있도록 장비를 챙겨입은 모습이었는데 들고 있던 지팡이가 허무하게 바닥을 구른다.

"금고가 있나 찾아봐."

김유라를 무덤지기 공간 안에 밀어 넣은 후.

스펙터들을 불러냈다. 기왕 오게 된 거. 거마비도 받아가야지. 가져갈 만한 건 전부 챙겨갈 생각이다.

"저주 - 수면."

그 사이 이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재워서 바깥으로 내보냈다.

[ 전부 챙겼습니다. ]

정리가 끝나자 스펙터 하나가 다가왔다.

스펙터들이 귀중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전부 챙겨오자 나는 천천히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뒤끝이다."

잘못 건드렸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해주기 위해 그냥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집 전체를 채워."

[ 망령 소환 ]

가장 기본적인 소환 마법이자 아무런 공격력도 물리력도 없는 망령들이 무덤지기의 공간을 열고 수십 마리가 쏟아져나와 집 곳곳으로 향한다.

백여 구에 가까운 망령이 집 곳곳을 채우자 마력을 끌어올렸다.

[ 소울 번 ]

사라지는 마력과 비례하게 타오르는 불길.

돌아올 일도 없지만, 돌아올 곳도 없애버린다. 경고다. 더 하지 말라는 주의가 아니라, 이 일에 관계된 놈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똑같이 만들어버리겠다는 협박이자 위협이다.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다가 적당히 자리를 잡고 무덤지기의 공간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그림이 보였다.

"뭐..뭐야!! 뭘 하려고 데려온 거야!!"

집 안에 있을 때는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더니, 이렇게 되고 나서야 현실감각이 돌아온 건가.

입에 물렸던 손을 빼주니 거칠게 소리부터 질러댄다.

"빨리 풀어! 안 풀어!! 풀라고 이 새끼야!!"

현실 감각은 돌아왔는데 아직 상황 판단력은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

굳이 김유라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다. 저런 욕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나와 일라이네의 휴식을 방해하려 했던 불청객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함이다.

콰득-

"끄으으으으!"

가장 먼저 거칠게 떠들어대던 입안으로 새하얀 뼈를 박아넣었다.

너무 고통스러운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자신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겠지. 오히려 이 상황이 반대가 돼야 했을 거다. 족쇄가 채워져 마력이 봉인된 나는 다음 퀘스트를 피하려고 살려달라고 빌었을 것이고, 김유라는 그것을 빌미로..뭐 장비를 빼앗아갔겠지.

듣지 않아도 뻔하다. 조금 전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를 잘 아는 눈치였던걸 보면 파티 디펜스에서 본 적이 있고, 그래서 내 장비가 탐났었나 보다. 그러다 마침 마력 봉인 족쇄라는 장비도 얻고 현실에서도 플레이어들을 부릴 수 있는 돈이 있으니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은데.

"헛짓거리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 영혼의 상처 ]

바들바들 떨고 있는 김유라의 영혼을 뽑아내 두 다리와 팔 부분의 영혼을 잘라내고 다시 빙의 시킨 뒤.

[ 좀비 소환 ]

여섯 구의 좀비를 일으켰다.

특이점이 있다면 여섯구의 좀비가 전부 다리가 없다는 것.

"잘 도망가봐. 붙잡히면 죽어."

이것으로 끝이다.

잘 도망친다면 붙잡히지 않을 것이고, 붙잡히지 않는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붙잡히지 않는다면 말이지. 끝이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과연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으으..으으으."

팔과 다리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김유라는 내 말에 좀비들을 보더니 기겁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래도 살고 싶은지 미친 듯이 바닥을 기어간다. 그리고 그 뒤로 다리 없는 여섯 구의 좀비들이 뒤따르자 속도 없는 레이스의 시작이었다

"잘 지켜보다가 살 것 같으면 죽여."

[ 알겠습니다. ]

나는 저 멀리 기어가는 김유라를 보며 마지막으로 스펙터에게 명령을 내리고 집으로 향했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 김유라가 살아나게 된다면 그때에 가질 희망보다 더한 절망이 느껴질것이다.

이렇게 휴식이 끝날 줄이야.

"하아.. 그래. 나한테 휴식이 어디있냐. 실험이나 하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이상 제대로 된 휴식이란 없다. 그러니 그걸 위한 실험이나 해야지.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합니다.

가볍게 후기를 적자면.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노렸던 소녀는 거위의 발싸대기를 맞고 기어다니게됩니다.

p.s 늘 최선의, 최고의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제 능력이 아직 못따라주는 게 늘 힘들네요. 으헝. 오늘도 더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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