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편
<-- 명예를 잃어버린 귀족 -->
이런 미친놈은 처음 봤다.
럼블턴의 성주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성주가 성을 지켜낸 병사들을 죽이질 않나 기사를 찌르질 않나. 그래놓고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퀘스트 메시지를 통해 무슨 짓을 벌이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기다리긴 했다.
성주가 무슨 짓을 벌이든 간에 그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다짜고짜 돌아온 성주를 쳐 죽여봐야 오히려 나만 악의 무리 취급을 받게 될 테니까. 그래서 무슨 짓을 하든 기다렸더니만 아주 성대한 파티를 열려고 하고 있었다.
"별 미친놈을 다 보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싶었는데.
이 미친놈 덕분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곧장 성벽에서 내려왔다. 뼈 지팡이를 손에 쥐고 터덜터덜 내려오니 말 위에 타고 있는 루돌프 성주가 보였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핏물을 보며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
"설마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그러자 루돌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도 노 기사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은 채로 황당하다는 듯 질문하는 그의 물음에 되려 내가 황당해졌다.
"여기 미친놈이 너 말고 또 있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이놈은 진짜다. 진짜 미친놈이 분명했다. 황당한 눈빛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서..성.."
마지막 힘을 다해 심장에 박힌 검을 붙잡아가는 노 기사의 발악 아닌 발악에 대응하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음? 아직 안 죽었나?"
평생 럼블턴을 위해 목숨을 바쳐온 노 기사의 간절한 눈빛을 가볍게 무시해버리며 손가락 끝에 더욱 힘을 주는 루돌프 성주.
마치 길을 걸어가다 마주친 개미를 밟아 죽이 듯,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노 기사의 눈에서 붉은 핏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나..나는…. 그리고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 한 자, 한 자 씹듯이 내뱉는 노 기사.
"다..당신을..저..ㅈ.."
그러나 그 힘이 다했는지 끝을 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나는 그 끝에서 볼 수 있었다. 노 기사의 눈에 담긴 `원망`과 `한`을.
"늙을수록 곱게 가야 하는 법이네. 알카레스 단장. 과거의 찌꺼기 따윈 그렇기 지워지는 것이네."
그런 노 기사의 원망과 한을 비웃듯 말하는 루돌프 성주.
그 순간.
눈앞을 가득 채우는 메시지.
[ 특수한 조건이 성립되었습니다. ]
[ 〈 마법 - 타락한 기사 〉 습득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 장비 - 마인의 심장 〉 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 Y/N ]
[ 남은 시간 : 30초 ]
"응?"
이 순간에 메시지라니.
게다가 시간제한 까지 걸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파악한다거나, 사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저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게 전부였다.
"일단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짧은 고민 끝에 Y를 눌렀다.
마법 습득이 가능한 상황이니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 〈 장비 - 마인의 심장 〉이 소모됩니다. ]
마인의 심장은 20단계에서 보스 몬스터인 `마인 글레이프`를 사냥하고 얻은 조합 재료다
[ 마인의 심장 ]
: 소유자의 마력을 오염시키는 마석(魔石). 오염된 마력의 특성으로 마력 사용 시의 위력이 증가하나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심각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속성석의 일종으로 `조합 재료`로 사용된다.
( 옵션 : 마력 속성 `오염된 마력`으로 변환 / 마력 소모 기술(마법)의 위력 1.5배 증가 )
글레이프 사살 당시 이걸 얻었지만, 딱히 사용할 생각이 없었기에 상자에 넣어 보관 중이던 물건이었다.
위력 증가 옵션은 상당히 좋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위험성 때문에 사용할 생각을 접었던 물건이다. 차후에 상점에 판매하고 포인트로 전환할 계획이었는데, 이게 이런 상황에서 쓰일 줄 몰랐다.
[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 마법 - 타락한 기사 〉를 습득합니다. ]
[ 마법 - 타락한 기사(특수) ]
: 기사란 확고한 신념과 명예, 충과 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들을 말한다. 가진 바 뛰어난 실력에도 고개를 숙일 줄 알고, 옳은 일을 위해 살아가려 항시 심신의 단련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곧은 정신과 직결된다. 하여 기사들의 정신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 신념이 무너지고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 무너진 신념과 오염된 마력이 하나가 되어 탄생하는 것이 바로 `타락한 기사`들이다.
노 기사의 무너진 신념과 마인의 심장이 가지고 있었던 오염된 마력이 하나가 되어 타락한 기사가 된다.
운동을 멈춘 노 기사의 심장이 찢겨 나가고 새로운 심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말라가는 혈액 대신 오염된 마력이 그 자리를 채워간다. 마침내 허망하게 죽어야만 했던 노 기사의 육신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
우득-
힘없이 떨어진 노 기사의 손이 다시금 들려 올라간다.
"음?"
그리고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을 붙잡고 그대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루돌프는 이제 눈앞에 남은 이 애송이의 목을 베고 대대적인 공사를 마무리할까 싶어 고개를 돌려다가 순간 검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멈칫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분명 검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알카레스의 심장에 박혀있던 검이 뽑혀 나오는 중이었다.
"알카레스 단장?"
분명 고개를 떨궜고 죽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대체 이 광경은 뭘까? 루돌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멍하니 검이 빠져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어찌."
의문 가득한 물음에 대답한 것은 눈앞의 애송이었다.
"죽여."
애송이의 짧은 한마디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알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였다. 검푸른 불에 휩싸인 눈을. 원망과 한으로 가득 찬 눈빛을.
[ 충. ]
검푸른 불길로 타오르는 눈과 달리 차가운 한기(寒氣)가 뚝뚝 묻어나오는 알카레스는 애송이를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루돌프 성주를 바라봤다.
"어찌."
여전히 루돌프 성주는 당황한 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하기사 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죽은 기사가 다시 살아나고, 더불어 그 모습이 달라지는 걸 보고 있다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상황은 충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
차갑게 내뱉은 알카레스, 아니 타락한 기사는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루돌프가 타고 있는 말의 머리를 갈랐다.
루돌프는 말의 머리가 잘리며 바닥을 구르게 되고 나서야 이 상황이 현실임을 깨달았으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콰직-
"끄아아아악!!"
말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모를까.
도망조차 칠 수 없는 그은 이 공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개미를 밟아 죽이듯 병사의 목을 자르고 알카레스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던 상황이 그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검날이 스치고 지나간 다리에서 피가 솟구친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가시 박힌 신발이 먼저 다가와 상처 난 다리를 그대로 밟아 뼈를 박살 낸다.
[ 이제 시작일 뿐. ]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고통이란 자신이 누군가에게 전해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장난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리고 지금의 성주가 되기까지 절대로 변치 않았던 사실이었고 절대로 변하지 않아야만 하는 법칙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철저하게 깨져버렸다.
뼈가 부러지고 상처가 찢어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루돌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콰드득-
"끄아아아아악!!!"
이번엔 반대쪽 다리 정강이뼈가 부서졌다.
힘을 주어 부러트린 탓인지,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와버렸다. 마른 대지 위로 붉은 핏물이 쏟아진다.
"ㅈ..제발..사..살려.."
루돌프 성주는 더 이상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입을 강제로 열어 살려달라고 비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건 새로운 고통뿐이었다.
팔뼈가 부러지고 손목이 잘린다. 복부를 가르고 내장이 튀어나온다. 타락한 기사는 생전에 가졌던 원망과 한을 모두 풀어냈다. 철저하게 고통을 느끼면서도 죽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걸레처럼 변해버린 육신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루돌프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검 끝에서 타오르는 검푸른 불길은 신기하게도 `열기`가 아닌 `한기`로 가득했다.
[ 죽어서도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리. ]
"으어으아..어어어.."
눈물, 콧물, 침과 피를 흘리며 끝까지 살려달라고 중얼거리는 루돌프 성주를 차갑게 바라보던 타락한 기사의 검이 짧게 휘둘러진 순간.
툭-
과거를 지우려 괴랄한 계획을 떠올렸던 성주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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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펠퍼스 단장 〉 알카레스 단장 오기 정정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