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편
<-- 속전속결 -->
"본 월!"
[ 본 월 ]
후두두둑-
콰직!
콰직!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을 막아내기 위해 본 월을 두 겹으로 세우자, 순식간에 떨어진 화살들이 뼈로 된 벽을 뚫을 기세로 박힌다. 다행히 한 발의 화살도 본 월을 넘지 못했다.
"콥스 익스플로전."
우웅-
뼈 지팡이를 높게 세우며 마력을 쏟아내자 순식간에 대지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마력을 머금은 사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웅!
쿵!
뼛조각이 튀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폭발에 죽어가는 괴물들.
그러나 재빨리 방패를 들어 올리며 폭발을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확실히 지능이 올라갔어."
20단계 이후.
이틀 만에 24단계에 진입했다. 생각보다 `늦은` 진행 속도였다. 최대한 속전속결로 디펜스를 끝내고 넘어가려 했건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괴물들의 지능이 올라갔다는 것. 이전까지는 그저 `공격`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던 괴물들이 이제는 `공격 방법`에 대해 고찰이라도 했는지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병과 구분이 있기도 했다.
진화하는 건 플레이어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10단계에서 11단계로 넘어올 때는 공격 대상이 `괴수`에서 `괴물`로 진화했었지. 그리고 이젠 20단계에서 21단계로 넘어오면서 괴물의 `지능`이 올라갔다. 이렇다는 건 30단계에서 31단계로 넘어갈 때 역시 또 다른 진화가 있을 거란 소리였다. 확실히 내 능력이 상승했다고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충분히 내가 우위에 있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갖춘 능력이 더 강하다.
지능 문제를 커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화살을 날려라!!"
"마법을 쓰란 말이다!!"
"크와우우우아아아!!"
.
.
"광란의 저주. 혼란의 저주. 카오."
[ 혼란 증폭 ]
게다가 지능이 높아진 만큼 의외의 이득도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주의 효율이 올라갔다는 점.
지능이 높아진 만큼 감정의 폭도 커진 것인지, 저주에 걸리면 이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일반 저주도 그러할진대 카오의 능력까지 더해진 저주가 발동하기라도 하면 완전히 미쳐 날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금처럼.
"끄아아악!! 나를 공격하지 마라!!"
"나는 살고 싶을 뿐이다!!"
"공격해라!!"
"물러나지 마라!!"
.
.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혼란은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잊게 하고, 오직 자신 하나만의 생존을 위해 정신을 흔들어놓는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간 혼란은 이내 초조함과 불안, 공포와 긴장으로 사람의 정신을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애니메이트 데드."
그리고 그 순간이 최악의 절망을 선사해줄 때다.
죽었던 동료가 일어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보다 더한 절망과 공포는 없을 것이다.
"캬아아아악!!"
"죽어! 죽어라!!"
"난,, 난 잘못 없다!"
,.
.
.
"하아.마력이 지랄 맞게 떨어져 가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퀘스트다 보니 마력 떨어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 지휘관 켈커타 ]
"크아아아!! 전부 내 주변으로 모여라!!"
"델. 저놈좀 흔들어줘."
[ 알겠다. ]
사라져 가는 마력을 느끼며 전장으로 눈을 돌리자, 네임드 몬스터 하나가 아군을 살려보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게 보였다.
21단계로 넘어오면서 생긴 변화 중에는 이것도 있었다. 최소한 한 마리 이상의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한다는 것. 기본이 한 마리. 많으면 세 마리에서 네 마리도 등장한다. 20단계까지 돌파한 이상 한 두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가 무엇이 걱정이겠느냐마는 그래도 지능까지 올라간 만큼 더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예전과 달리 정비를 위해 부하들을 뒤로 물리려고 하지 않는가.
이전이었다면 더 빨리 달려가라고 소리나 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직접 칼부림을 하고 있었을 테지.
확실히 지능이 올라가니 저런 놈들도 나타난다.
[ 어둠의 상급 정령(델)이 하위 정령을 소환합니다. ]
[ 계약자 `이윤`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
"후우우.."
지휘관 켈커타를 붙잡아두기 위해 델이 어둠의 중급 정령들을 소환하면서 다시 한 번 마력이 빠져나갔다.
이제 저쪽은 맡겨놓아도 좋으리라.
"검은 벼락!"
콰지직-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일라이네도 충분히 잘 해주고 있었다.
20단계에서 마인 글레이프를 죽임으로써 전직에 성공한 일라이네는 중급 어둠의 사제가 되었다. 들어보니 중급 사제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던 것 같다. 덕분에 여러 가지 보조 마법이 생겼고, 공격 마법도 추가되었다.
어둠 교단 사제의 영향인지 보조마법보다 공격마법이 더 많이 추가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전보다도 더 격렬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 273/318 )
"얼마 안 남았다."
1차 목표인 25단계까지 고작 3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틀 동안 매섭게 달려왔음에도 아직 25단계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이대로 멈출 생각은 없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다."
[ 명령하신 대로 ]
이틀간의 피로가 전신을 무겁게 만들고 있지만, 한 번 귀환하면 다음 퀘스트를 받는 게 며칠씩 걸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이놈의 세상. 빨리 때려치우기 위해서라도 조금 무리하는 건 넘어가야지.
"크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것들아!!"
"일라이네. 뒤로 물러서."
"네!"
끝나가는 전투의 막바지.
사방으로 조여오는 언데드 군대의 공세에 켈커타가 버티지 못하고 마지막 발악을 하듯 기술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광역 기술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 일라이네를 내 곁으로 불러놓고, 3차 개체들로만 공격을 퍼부었다. 중간중간 콥스 골렘들이 아예 몸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탱킹을 해주고 있는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끼면서 클리어해야한다.
피해 복구하려면 들어가는 마력이 장난이 아니다.
명상으로 채우면서 하면 된다지만, 갑자기 퀘스트가 진행될 수도 있는 만큼,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껴가면서 진행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 301/318 )
"앞으로 열 마리."
"후우.."
"먼저 쉬고 있어라."
"네!"
사살 수가 300대로 들어가자 일라이네는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마력 회복 속도가 느린 만큼 일라이네는 더욱 빡빡하게 시간을 잡고 마력을 회복해야 하기에, 굳이 전투 끝까지 참여시키지 않았다. 이것도 이틀 정도 하다 보니 깨달았다.
"검은 늪지대 부족의 전사들이여!!"
그사이 갖은 기술에도 밀리기 시작한 켈커타가 아군의 지원을 부르짖었다.
도마뱀 형상의 괴물. 흔히 리자드맨이라고 불리는 종족처럼 생긴 녀석들은 동족애가 제법 뛰어난지 고작 열댓 마리 뿐이지만 그래도 지휘관을 살리겠다고 직접 몸을 내던졌다. 웃긴 것은, 동족들은 몸을 던져 자신을 살려주는 데 반해 켈커타는 도망을 치려 하고 있었다. 지능이 높아지니 이젠 전투 중에 도망치려는 놈들도 종종 발생했다. 이 부분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끼어있는 히든 퀘스트 `모든 적 섬멸`을 위해서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도망치려고 하다 보니 그것들을 잡아내는 게 일이었다.
"델."
[ 그림자 감옥 ]
땅에서 솟아오른 검은 감옥이 도망치려던 켈커타를 가둔다.
"끝내."
콰직!
감옥에 갇힌 켈커타를 향해 덜어지는 백색의 창과 도끼가 그대로 상반신을 부수고 들어가며 붉은 피가 쏟아졌다.
〈 솔로 디펜스 24. 막아라 & 생존하라 〉
: 오염된 마력에 심취한 괴물들이 당신의 성을 빼앗고자 다가오는 중입니다.
[ 남은 시간 : 0분 ]
( 318/318 )
-완료!
"후우..끝났나."
드디어 끝났다.
아침, 저녁으로 치러진 전투에 피로가 상당했지만, 또 클리어 메시지를 보고 있으니 한 발 목표에 다가간 것 같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수고하셨어요."
"너도 수고했어."
"쉬고 계세요. 마실 거라도 가져다 드릴게요."
완료 메시지를 읽으며 그대로 성벽에 주저앉자, 일라이네가 일어나 간단한 다과라도 가져올 겸 성안 쪽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가다 보니 웬만한 음식이나 음료는 성에 가져다 놓았다. 무덤지기의 공간을 열고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진 탓이었다. 물론 잠은 가서 자긴 하지만, 식사나 간단한 먹거리 정도는 아예 가져다 놓고 먹는 중이다.
[ 귀환하시겠습니까? ]
[ Y/N ]
그사이 정산이 끝나고 귀환 메시지가 올라왔다.
물론 나는 당연히 N 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소모된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눈을 감기도 전에 출력된 메시지에 눈을 더욱 크게 떠야만 했다.
[ `용병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
[ 의뢰명 : 성 럼블턴 수성전 ]
[ 대기 시간 : 1분 ]
( 〈 성 럼블턴 수성전 〉 성공 시 〈 솔로 디펜스 25단계 〉를 성공으로 처리함 )
"응?"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쿠폰 선작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시간의 괴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ㅎ
그리고 언젠가 한국인만 나오냐는 질문이 있었죠? ( 아 또 스포 했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