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편
<-- 의뢰 -->
[ 최철희씨에게 들었습니다. 전에 파티 퀘스트에서 이윤씨가 뛰어난 정찰 능력을 보이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이번 사건에도 도움이 될까 하여 연락 드렸습니다. ]
"아."
그런 건가.
왜 내게 전화를 걸었나 했더니만, 최철희가 추천을 했나 보다.
이전 안의 파발꾼 퀘스트 당시 그와 잠깐 동행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 정찰 능력으로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나 보다.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쨌거나 지금은 델이 쫓는 중인 그 남자를 잡는 게 우선이라 의뢰를 받을 생각이 없다.
해서 나는 김우석의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 아. 정말로? ]
그 사이 김우석이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듯. 여자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넘어온다.
[ 응. 요 앞 OO마트에서 방금 살인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그놈 소행인 것 같데. ]
[ 완전히 미친놈이네. 이거. 일단 기다려봐. 이윤씨하고 통화 중이니까. ]
[ 아 그래? 알겠어. ]
"...?"
나는 가만히 김우석과 여인의 대화를 들고 있다가 잠시 멈칫했다.
"일라이네. 여기 마트 이름이 뭐지?"
"네? 여기.. OO 마트에요."
"..."
뭘까.
이 미묘하게 겹치는 스토리는.
"김우석씨."
[ 네? ]
기묘한 상황을 확실하게 하고자 김우석을 불렀다.
그러자 여자와 대화를 나누던 김우석이 급히 전화를 받는다.
"혹시 그 범죄자. 인상착의 알고 있습니까?"
[ 인상착의요? 음.. 아. 다행히 경찰 중에 플레이어가 있어서 어찌어찌 얼굴은 확인 한 것 같네요. 잠시만요...그러니까 20대 중반 정도의 남자고, 모자를 눌러써서 정확하진 않지만 볼 쪽에 자그마한 흉터가 있다네요. 그리고.. ]
"..."
뭐 이런 타이밍이.
어처구니없게도 김우석이 의뢰하려는 범죄자란 놈은 내가 막 쫓기 시작한 그놈 같았다. 모자를 눌러쓴 20대 초중반의 남자. 거기에 볼에 새겨진 흉터까지.
물론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만, 동일 인물일 확률도 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 것 같다.
[ 참고로 저도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중이긴 한데, 아무래도 저로서는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 누군가를 찾는 능력도 없을뿐더러 몸 쓰는 게 특기인 터라. 정부 쪽에서 직접 부탁받은 일이라 거절하기도 힘들고 해서 일단 움직이고 있긴 한데. 생각보다 어려워서요. ]
이번 의뢰의 주체는 정부라고 한다.
연이은 특수 범죄자들의 범죄 행각을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플레이어들에게 의뢰 형식으로 일을 맡긴 상황이었다. 김우석 역시 그런 플레이어였고, 그의 팀원들 또한 이번 일에 투입된 상태라고 한다.
다만 김우석의 말마따나 그나 그의 팀원중에는 추적에는 능통한 사람이 없어서인지 일이 진행되질 않았고 그러다 보니 새롭게 방법을 찾다가 최철희가 내 능력을 떠올리고 추천한 것이다. 들어보니 의뢰금도 상당히 많았다. 정부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이 상당한 의뢰금을 걸었다고 한다. 당장 범인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보니 이렇게라도 붙잡아보려는 것 같았다.
"하겠습니다."
[ 역시.. 아쉽..네? ]
"합니다. 그 의뢰. 지금부터 시작할 테니 붙잡는다면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 아..아…. 알겠습니다. 우선 최근 인상착의부터 보내드리겠습니다. ]
워래는 거절할 생각이었다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쫓는 놈과 동일 인물이라면 추가로 돈도 벌 수 있으니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 물론 아닐 경우도 염두에 둬야겠지만 아니라면 그때 가서 취소하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진척이 없어서 나까지 넘어온 의뢰이니 내가 다시 거절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다만 김우석은 내가 받아들일 줄 몰랐는지 상당히 당황한 말투였다.
그저 부탁이나 해보고 말 생각이었나 보다. 하기사 본래 내 성격이었다면, 그리고 조금 전의 일이 없었다면 거절했을 게 분명하다.
[ 감사합니다. ]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네. ]
김우석은 문자로 인상착의와 여러 가지 정보를 보내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핸드폰 너머로 `정말 의뢰를 받는다고 했어?`. `진짜라니까!` 라며 쓸데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우석 뿐 아니라 그의 팀원들도 내가 이번 의뢰를 받을 줄 몰랐던 것 같다.
"뭐. 적당히 살려서 보내주기면 하면 되겠지."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마트를 빠져나왔다.
일라이네는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기에,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 있게 했다.
"저 이윤님."
"음?"
"그놈 붙잡으면 데려가기 전에 저도 잠시만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일라이네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왜일까. 이브라엘의 턱을 날리던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는 이유가.
그 사이 녀석을 쫓아갔던 델이 어느새 내 그림자 위로 솟아오르며 모습을 드러낸다.
"찾았나?"
[ 여기서 날아간다면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좋아. 안내해줘."
[ 알겠다. ]
다행히 델은 놈의 뒤를 잡았다.
하긴 어둠의 상급 정령이 따르는데 도망갈 만한 놈이 있을까. 이 일대의 그림자를 전부 다룰 수 있는 만큼 그림자가 전혀 없는 곳만으로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절대 도망칠 수 없다.
게다가 그런다 해도 스펙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내게서 벗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것을 증명하듯, 스펙터들도 슬그머니 다가와 길 안내를 시작했다.
*
15평 남짓한 원룸.
약간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곧장 소파 위로 향한다.
"후아. 역시 여자의 살결은 기분이 좋다니까?"
이운택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몸을 실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는 단검 한 자루가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그놈은 뭐였지? 분명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소파 위에 누워 단검을 돌리며 장난을 쳐다보니 문득 마트에서 보았던 남녀가 떠올랐다.
살인을 벌이도 빠져나오던 와중에 마주친 놈들. 아무런 말조차 없이 바라보고 있기에 그대로 빠져나오려다가 기분이 상해서 단검을 던지긴 했는데 생각한 대로 여자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단검이 허공에서 정확히 멈춰버렸지.
쫓아올 능력은 없는지 뒤를 따라오진 않았지만, 뭔가 꺼림칙한 놈들이었다.
"요 근처에 사는 놈들 같으니 다음에 만난다면 꼭 죽여줘야지."
벌써 사람을 죽인 것도 십여 명이 넘어가다 보니 이젠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살인 직전에 느끼는 쾌감에 익숙해졌을 뿐. 플레이어가 되고 마력을 얻으며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게다가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이동 능력을 얻은 것 역시 운명이었지.
"힘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거지. 하고 싶은 건 해야 행복한 것 아니겠어?"
여전히 꺼림칙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남녀를 떠올리던 이운택은 고개를 흔들며 냉장고에서 시원한 팩 하나를 꺼냈다. 투명한 팩 안에 가득 들어있는 건 붉디붉은 액체였다.
"하. 역시 퇴근 후 마시는 한 잔이란."
붉은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시원함과 비릿함은 온몸의 피로를 날려준다. 마력 과다 소모로 거칠어졌던 숨이 진정되고 사라졌던 마력이 조금씩 채워진다.
"생각해 보면 이 능력을 얻은 것도 정말 운명이었지. 역시 신은 내가 이렇게 살아가길 바란 게 틀림없어. 그를 만난 것도 그렇고 역시 난 행운아였어!"
혼자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붉은 액체를 들이켜며 웃어 재끼는 이운택.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 마신 팩을 쓰레기통에 던져놓고 다시 소파 위에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띵동-
"음?"
그렇게 누워있다 보니 조금씩 눈꺼풀이 내려앉을 즈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누가 찾아올만한 일은 없을 텐데.
택배를 시킨 적도 없고, 배달 음식을 시킨 적도 없는데 누가 초인종을 누른 걸까. 일단은 익숙하게 냉장고를 벽 안에 제작해둔 공간 사이로 밀어넣고 빠르게 뒤처리를 끝낸 후 현관으로 향했다.
가끔 원룸 주인이 찾아오기도 하니, 오늘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누구세요?"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경찰이 찾아오진 않을까 싶기도 했으나, 사실 거의 그렇지 않았다. 일반 경찰이 무슨 수로 플레이어를 쫓아올까. 최근에 경찰 쪽에도 플레이어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사람도 추적 능력자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이 찾아올 것이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경찰이 찾아왔다면 더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줘야 했다. 괜히 어색하게 행동했다가는 꼬리를 밟힐 수도 있었으니까.
해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고작 도망친다는 게 여기였나?"
이것이 얼굴을 마주한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였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선작 쿠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참 100회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ㅎ
아 그리고 월간 베스트 10위권 안에도 올라왔네요...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