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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 챌린지-101화 (101/304)

1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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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20단계 인가."

성벽 위에 앉아 명상을 끝내고 나자 어느덧 20단계가 목전에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보상도 정리하고, 정령과의 계약도 하느라 바쁘게 지낸 탓에 잠시 잊고 있었다. 5단계를 기점으로 보스 몹 혹은 네임드 몬스터가 다수 등장한다는 것을.

그러나 20단계가 눈앞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서 전처럼 두렵다거나 불안해해 하진 않았다. 오히려 아주 담담했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할 뿐. 오히려 자신 있다. 또 어떤 녀석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나온다고 해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이다. 상급 네크로맨서의 힘과 정령의 힘. 그리고 가진 장비의 힘이라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만일의 상황은 있을 수 있으니 대비는 해야겠지만, 예감 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윤님!"

"응?"

잠깐의 상념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일라이네가 다급히 달려오더니 빈 장바구니를 들어 보인다.

장바구니를 들어 보일 때는 딱 한 가지 이유뿐이다.

"마트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다 떨어졌나?"

"네. 제가 연습을 하느라…. 헤헤"

"그러지 뭐."

역시나.

요즘 저녁만 되면 요리 연습을 하느라 사놓은 재료가 금세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짧으면 사나흘에 한 번 정도는 현실에 나가야 했다. 설마 내가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만 일라이네는 요리를 하는 것도,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는 것도 상당히 즐기는 눈치다.

특히나 날 위해, 내게 더 맛있는 요리를 먹여주기 위해 하는 노력이니 나도 만족하고 있다.

"가자."

"네!"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귀환을 누르자 빛과 함께 현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퀘스트 중이 아니라 습관처럼 재시도하고 있던 중이라 현실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익숙한 골목길. 이제는 거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이용하는 곳이라 일라이네도 앞장서서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장바구니를 손에 꽉 쥐고 있는 모습이 신이 난 것 같았다.

"어서 가요!"

"천천히 가. 넘어진다."

오랜만에 일상을 즐기는 듯한 느낌으로 마트로 들어간 나는 일라이네의 뒤를 따라다니며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일라이네는 언제 가져왔는지, 요리책을 이리저리 살피며 재료를 골랐다. 저 요리책을 본다고 한글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다. 요리 책이야 당연히 한글 혹은 지구의 언어로 적혀있으니 일라이네가 보려면 지구의 글자를 익혀야 했다. 그래서 요리 공부와 더불어 한글 공부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언어 습득에 재능이 있는지, 여기서도 발휘되는 한글의 우수성 덕분인지 요즘은 내 도움 없이도 알아서 척척 읽어나간다.

"이거랑.. 이거랑.."

물론 그렇다곤 해도 지금은 그림을 동반해야만 가능하다.

"다 됐다!"

얼추 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장바구니 안에 한가득 요리 재료가 담겼다.

슬쩍 보니 처음 보는 재료도 상당했다.

"갈까?"

"네!"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일라이네.

카드를 건네주니 직접 계산대로 달려가 익숙하게 계산을 끝낸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손짓 발짓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우웅-

"응?"

멀리서 흐뭇한 표정으로 일라이네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마력이다."

기묘한 감각의 정체는 마력의 유동이 분명하다.

현대에서 마력의 흐름이라니. 마력이라고는 마력이라고는 1도 모르는 사람이 90%가 넘는 지구에서 마력이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 마력을 유동시킨 이는 플레이어란 말과 같다.

그런데…. 어째서? 디펜스가 아니면 굳이 마력을 움직일 일은 없을 텐데.

"꺄아아악!!"

마력 흐름에 의문을 갖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뭐야?"

"갑자기 무슨 소리지?"

"가보자!"

"저쪽이야!"

.

.

.

마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움직였다.

일라이네역시 기분 좋게 장바구니를 들고 오다말고 멈춰 서서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은 나 역시 바라보고 있는 곳이었다.

"뭐야. 플레이어였나?"

일라이네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

그곳은 비명이 들린 곳과는 정반대인 입구였다. 정확히는 입구 문앞.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를 쓴 남자는 나와 일라이네를 보더니 씨익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가볍게 단검을 꺼내 들고는 손가락 사이로 검을 돌렸다.

남자의 손 위에서 흔들리는 단검의 날엔 붉은 핏물이 묻어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오른쪽 볼의 흉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뭘 봐? 아아 괜한 짓 할 생각마. 여차하면 죽여버릴 거니까."

"..."

남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듯 웃던 표정을 지우고 인상을 찡그린다.

뭘까. 저 남자.

"잡아야 하나."

여전히 아무 말 없는 내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던 남자가 몸을 홱 돌려 마트를 빠져나갔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잡을까 말까 하는 순간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리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도망에는 자신이 있어 보이는 만큼 처음부터 잡으려고 했다면 모를까, 이미 도망치기 시작한 상대를 붙잡을 방법은 없다.

아니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귀찮다.

그렇기에 추격은 포기하려 했다.

"경찰입니다! 물러서세요!!"

"전부 뒤로 물러나세요!!"

.

.

.

그사이 누군가 신고를 한 듯 경찰들이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다급히 들어서며 사람들을 밀어내고 현장을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일라이네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누가 죽은 걸까요?"

"아마도."

일라이네 역시 그 남자가 들고 있던 단검 끝에 묻은 피를 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약간 우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휴가였는데 사람이 죽게 되었으니 좋았던 마음이 다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돌아가자."

"네.."

풀이 죽은 일라이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며 마트를 빠져나가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후후훙-

탁-

"음?"

그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다 말고 일라이네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에?"

"단검?"

허공에서 붙잡힌 그것은 붉은 핏물이 묻은 단검이었다.

바로 도망친 게 아니라 자신을 발견한 사람마저 죽이려고 했던 걸까.

[ 찾을까. ]

"찾아줘."

[ 알겠네. ]

"스펙터. 너도 찾아봐."

[ 알겠습니다. ]

만약 델이 없었다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라이네의 머리를 정확히 노린 단검에.. 불상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지. 다행히 델이 내 그림자에 스며들어있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델과 계약하기 이전이었다면, 그리고 델이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는 어둠의 정령이 아니었다면.

"도망가게 둘때 도망이나 갈 것이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가만히 지나갔으면 모를까, 이렇게까지 했는데 놓아줄 수는 없겠지.

지이잉-

"김우석?"

막 남자를 붙잡기 위해 델과 스펙터들을 내보낸 순간.

핸드폰이 울리더니 김우석에게 연락이 왔다. 이 상황에 연력이라. 장비 매매라면 잠깐 미룰 생각이다만 우선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 저 김우석입니다. 다행히 통화가 되었네요. ]

평소라면 무덤지기의 공간에 있는지라 연락이 잘되지 않는 편이다.

해서 보통은 문자를 보고 내가 전화를 거는 형식인데, 오늘은 오랜만에 전화가 바로 연결되었다 보니 김우석도 놀란 듯했지만, 곧 연락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게 다름 아니라. 한 가지 `의뢰`를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

"의뢰요?"

[ 네. ]

의뢰라.

평소처럼 거래 제안 때문에 연락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이유였다.

의뢰라 한다면 뭔가를 부탁하기 위함일 터. 장비 거래 혹은 키메라 거래를 제외하면 딱히 내게 부탁할만한 게 없을 텐데. 현실 일이야 오히려 나보다 그가 더 잘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무슨 의뢰입니까?"

[ 별 건 아닙니다. 그저 시간 되실 때 `범죄자`를 하나 잡아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

"음?"

의뢰 내용도 특이하다.

범죄자를 잡아달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니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진다.

[ 일반 범죄는 아니고, 특수 범죄입니다. 그것도 연쇄 살인범. ]

"그런데 그걸 왜 제게?"

아니 이유는 둘째치고 어째서 내게 이런 의뢰를 하는 걸까.

특수 범죄라 함은 플레이어가 저지른 범죄를 말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의를 찾는 경찰이 아니다. 범죄라면 경찰을 찾아야지, 그리고 애초에 김우석 역시 플레이어가 아닌가.

========== 작품 후기 ==========

쬐끔 늦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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