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편
<-- 전장의 네크로맨서 -->
"저게 사람인가…?"
"저게 말이 돼?"
"미친…. 도대체 저 사람 뭔데…."
"혹시 이 세계 사람인가?"
"뭔 소립니까. 플레이어일리가 없잖아요."
연쇄폭발의 폭풍이 몰아치고 난 뒤.
플레이어들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이 전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싸웠던 괴물들을 일순간에 지워버린다.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직 아직 1차 전직조차 하지 못한 이가 있을 만큼 그 차이가 너무도 컸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생각했다. 지금 눈앞의 저 사람은 팔콘 성과 관련된 이세계 사람이라고.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능력이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났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상상이었다. 심지어 1차 전직을 끝낸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철이나 한슬기 같은 사람들조차도 정말 같은 플레이어가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으니까.
"지금이다…."
"예?"
"지금이란 말이다."
"그게 무슨..."
한편 켈트 성주는 주먹을 강하게 쥐며 말했다.
지금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켈트 성주의 잎에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기사들은 전원 기마를 준비하라!! 성문을 열고 나간다!!"
켈트는 생각했다.
폭발로 인해 거의 천여 마리가 넘는 괴물들이 단숨에 사라졌고, 위험해 보이던 특정 괴물들 역시 전부 죽어버렸다.
그렇다면 더 이상 몸을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성문을 열고 싸우는 게 더 효과적이다. 수성이란 결국 성벽이란 한정적인 공간을 제외하면 공격 방법이 없는 방어 전술이다. 방어 전술은 피해를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나, 적을 물리치고 패퇴시키는 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성을 선택했던 이유는 괴물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괴물들의 숫자가 반의반 이하로 떨어진 지금이라면 굳이 방어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뛰어난 기사들이 있고, 지금의 이 상황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말을 가져와라! 성문을 열고 공격을 준비하라!!"
"예!"
기사들도 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급히 말을 데려오고 성문을 열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달리 일반 병사들은 성을 벗어난다는 소리에 머뭇거렸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수도에서 지원군이 왔다!! 국왕 폐하께서 팔콘을 지원하신다!! 눈앞을 지켜보라!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 짧은 순간에 펼쳐진 기지.
켈트 성주의 외침이었다. 통신용으로 데려왔던 마법사에게 급히 음성 증폭 마법을 펼치게 한 후 터져 나온 그의 외침에 병사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뼈로 된 지팡이를 쥐고 서 있는 한 사내와 그를 지키듯 검을 빼 든 여인이 보였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무너진 성벽을 밟고 서서 전장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위대한 영웅 같았다.
뼈로 된 지팡이와 그의 명령을 따르는 언데드는 분명 악의 무리에 가까웠으나, 모두가 알고 있다. 저 언데드들이 아군임을. 팔콘을 돕기 위해 찾아온 아군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켈트 성주의 외침은 더욱 효과적으로 병사들의 심장을 울렸다.
플레이어들 역시 같았다.
"그래. 설마 아무것도 없이 1만 마리를 막으라고 하진 않았겠지."
"와 진심 타이밍 개쩔었네. 어떻게 이 타이밍에 지원군이 오냐."
"뭔 상관이에요. 일단 지원군이 왔으니 이 퀘스트도 성공할 것 같은데요?"
켈트 성주의 말로 플레이어들 역시 왕국에서 적절한 지원군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개인의 생존으로 바뀌던 목적이 다시금 전체의 승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저렇게 강한 존재가 있다면 그만큼 생존확률이 올라가게 되니 굳이 개인의 생존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때마침 준비된 기사단이 기마에 올라 성 밖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굳게 닫혀있었던 성문이 열리고, 쇠창살이 하늘로 올라가 고정된 순간. 켈트 성주의 포효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국왕 폐하께서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신다!! 용맹한 팔콘의 영웅들이여! 나를 따르라!!"
뒤가 아닌 선두에 서서 외치는 그의 말에 모두가 감동했고, 그 감동이 병사들을 움직였다.
"가자!"
"승리할 수 있다!!"
"가서 전부 쳐 죽이자!!"
.
.
.
.
중간중간 고참 병사들이 적절하게 호응하자 머뭇거리던 신참 병사들마저도 창칼을 손에 들고 성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플레이어들조차 달려나갈 정도였다.
군중심리를 자극한 켈트 성주의 기지가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이었고, 승리를 갈망하는 자들의 울부짖음이었다.
*
"이윤님!"
"하아..죽겠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성벽 위에 섰다.
진심으로 죽을 것 같았다. 6클래스급 마력을 완전히 밀어 넣은 결과물.
마력이 텅텅 비는 걸 넘어 아예 바닥을 보이는 중이었다. 심장이 저릿하다 못해 쪼그라든 것 같은 기분. 마력 소모를 정확히 체크 하지 못하고 마법을 남발한 폐해였다. 이전에 10단계에서 보스 몬스터를 죽이려 스켈레톤 로열 나이트를 소환하면서 기절했던 때에 절대 이러지 말자고 단단히 다짐했었음에도 또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후우.."
"괜찮으세요?"
"고마워."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간신히 몸만 서 있는 나를 위해 일라이네가 직접 검을 뽑아들고 사방을 주시하며 물어본다.
그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다. 그나마 섬멸자와 블러드 필드의 효과로 점점 회복이 되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이러한 능력도 없었다면 이미 전장 한복판에서 기절해 세상 모르게 잠들었을 것이다.
"두 번까진 실수다. 세 번은 하지 말자."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짐했다.
정말 다신 이런 멍청한 짓 하지 말자고.
"그나저나…. 갑자기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야?"
한숨과 함께 다짐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본 순간.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성주 켈트였던가. 그자의 외침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성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기사들과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까지. 특히나 가장 이상한 건 나를 지칭하며 `국왕 폐하가 직접 보내준 지원군`이란 문장을 사용할 때였다.
국왕 폐하의 지원군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고무된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있자니 상황이 좋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긴 했다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인 사기를 당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 덕분에 확실히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후우.."
나의 병사들 역시 착실하게 괴물들을 베어 가고 있었고, 더 이상 살아남은 네임드 몬스터도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괴물들이 발악하듯 싸워가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30분 안에는 모든 정리가 끝날 것 같았다. 내 생각처럼 팔콘의 기사단의 활약으로 소탕하듯 괴물들이 죽어 나갔고 끝내 마지막 한 마리의 괴물이 켈트 성주에 의해 목이 잘리며 악의 무리 전체가 죽음을 맞이했다.
"와아아아아!!"
승리를 알리는 환호성이 대기를 가른다.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회군하는 사람들. 플레이어들의 표정에도 드디어 디펜스가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깃들어있었다. 꽤나 힘들고 위험했던 디펜스였으니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성안으로 돌아오고 있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아니 되오!"
모두가 행복해했지만, 특이하게도 행복해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 때문인지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전쟁도 승리했고, 죽지 않고 생존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많은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분노한 표정들. 그들은 단체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뼈로 된 지팡이를 쥐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망자들을 강제로 불러일으키다니!!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란 말이오!!"
"하아…. 그래. 니놈들이 남아있었구나."
나는 타오르는 불처럼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곳에는 `저들`이 있었지. 그것을 잊고 있었다.
"어서 회개해야만 하오! 악의 물든 마력을 버리고! 기도하시오! 회개하시오! 신들께서 벌하실 것입니다!!"
"무슨 소란인가!"
승리를 외치며 성안으로 들어오던 켈트 성주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진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 순간에 호통과 윽박이라니. 죽음을 감내하고 싸운 모든 이들에게 수고했고 고생했음을 축하해줘도 모자랄 판인데,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말을 몰고 가니 한 곳에 우르르 뭉쳐있는 빛의 신전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보였다.
그들은 어딘가를 가리키며 `회개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어둠에 물든 마력을 당장 지워내야 한다`라며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이 가리키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검게 물든 뼈로 만든 지팡이를 쥐고 검은 로브를 입고 서 있는 남자. 저들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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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광신도들을 죽여볼 차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