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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 챌린지-90화 (90/304)

90편

<-- 전장의 네크로맨서 -->

이브라엘의 담담한 대꾸에 결국 켈트 성주의 화가 폭발했다.

"개소리 멈추고 중지하라고 말했다! 네놈들의 독단적인 결과 무고한 병사들이 휩쓸리는 것은 물론, 성벽에 충격이 가고 있음이 안 보이는가!!"

무차별적인 폭발.

아무리 악의 무리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그런 행동을 하려면 최소한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 때 돌아올 반작용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성기사들과 사제들에게 그런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투철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책임지지도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죽은 병사가 수십이 넘고, 성벽이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폭발의 위력이 대단하다? 그딴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런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빛의 신전은 알고 있었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알고도 저렇게 행동했다면…. 정말 말이 안 되는 행동이었으니까.

"대체 왜 그러십니까. 성주님. 형제자매 분들은 악을 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욕보이려 하시다니요."

"닥쳐라. 네놈들의 멍청한 행동으로 죽은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눈이 있다면 봐라. 성벽 위에서 행해진 폭발로 성벽 전체에 무리가 갔고 심지어 일부가 무너져내린 곳도 생겼다. 네놈들의 잘난 신앙심으로 성벽이 무너질 수도 있단 말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악을 징벌하기 위해 생기는 시련은 감내해야 하는.."

켈트 성주의 열변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이브라엘을 보며 더 이상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는 건 헛짓거리라고 판단한 켈트가 호위를 위해 서 있던 기사에게 외쳤다.

"뭣들 하나! 당장 가서 멈추라 전하지 않고!"

"예!"

그의 호통에 기사가 급히 경례 후 뛰어나갔고,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것 같은 이브라엘이 켈트 성주를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쾅!

후두두둑-

결국, 일이 터졌다.

"성벽이 갈라진다!!"

"좌우로 갈라져라!!"

"살려줘!!!"

.

.

.

.

달려나간 기사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사제가 성벽 위로 올라온 괴물들을 막아내고자 자기 희생 주문을 외웠고, 연이은 폭발에 견디지 못했던 성벽 한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번에 성벽 전체가 주저앉아버린 건 아니었으나, 문제는 심각했다. 성벽이 무너져내린 만큼 성벽의 높이는 낮아진다. 성벽의 높이가 낮아진다는 건 안 그래도 힘든 성벽 방어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아아아아!!"

"키에에엑!"

"사아아아아아"

.

.

무너진 성벽을 향해 달리는 괴물들.

특히나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무려 열이 넘었다. 1만 마리에 속해 있는 네임드 몬스터 전부가 무너진 성벽으로 향한 것이다.

"미친!"

"지원! 지원이 필요해!!"

"네임드가 전부 몰려온다!!"

"아.. 안돼..

플레이어들은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열 마리가 넘는 네임드 몬스터라니. 이건 숫제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저놈들을 막지 못하면 전부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야말로 눈앞이 아찔한 순간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감돈다. 막을 수는 있겠지. 분명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사이에 입을 피해와 그 중간에 끼어있는 자신의 목숨이 문제였다. 저놈들을 막기라도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아니 다치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저놈들을 막다가 죽는다면.

아무리 승리한들 죽는다면 결국 끝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암담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번만큼은 플레이어들이 선뜻 나서질 못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던 플레이어들이 뒤로 물러선 것이다.

누군가 먼저 나서주길. 누군가 나서기만 하면 도와줄 터이니, 제발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주길 바라는 것이다.

전체의 승리와 개인의 생존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순간이었다.

탁-

"아. 늦진 않았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현대적인 복장이 섞여있는 것이 분명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한 손에는 뼈로 된 지팡이를 쥐고 검은 로브를 두른 플레이어는 두렵지도 않은지 매우 담담하게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물론 팔콘의 기사와 병사들마저도 놀랄 정도로 매우 담담한 얼굴이었다.

"뒤로 물러나 주세요."

그리고 그 옆으로 이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 보였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의 여인은 다가오는 병사들을 뒤로 밀어내며 검을 들어 올렸다. 같이 막아도 모자랄 판에 뒤로 물러나라니. 이 여자가 지금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상황에 순간 병사들이 벙찐 표정을 짓는다.

"크아아아아아!!"

그리고 드디어 열 댓머리의 네임드 몬스터들이 성벽 위를 오르기 위해 뛰어든 순간.

반전은 시작되었다.

*

"시간이…."

전신을 휘몰아치고 간 고통을 뒤로하고 급히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 남은 시간 : 0초 ]

"벌써 시작했나."

`지식 전이`를 끝으로 전직 과정을 마무리 짓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추가되는 마법의 숫자도 다양했고, 늘어난 마력양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작업을 하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였다.

"이윤님."

"금방 부를게. 기다리고 있어."

"네!"

시간이 없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케디악을 기습하고 시간에 맞춰 돌아간 뒤, 성주를 보호하며 수성전을 치르는 것이었는데. 케디악이 죽으면서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물론 전직을 한 만큼 꼭 나쁘게 꼬여버린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지만, 만약 전직하는 동안 성주가 죽기라도 했으면 전직을 안 한 것만 못한 결과였으니까.

그나마 아직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살아있는 것 같으니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서 상황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음...아."

[ 팬텀 스티드 소환 ]

다행인 것은 성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단이 생겼다는 점.

상급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며 새롭게 얻은 마법 중의 하나인 `팬텀스티드 소환`이 그것이다. 일명 유령마(幽靈馬)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히이이잉

일반적인 언데드 소환과 다르게 팬텀스티드는 시체가 필요 없는 마법이다.

"가자."

승마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전에 늑대 좀비를 타고 달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안장에 올라타자 유령마가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니 허공을 날고 있으니 비행기를 타고 있다고 해야겠지. 그래서인지 어젯밤에는 상당히 힘겹게 걸어왔던 숲길을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크아아아아!!

빠르게 날아가고 있으니 점점 괴물들 특유의 괴성이 들려왔다.

"응?"

서서히 드러나는 전장.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후방에서 지팡이를 부여잡고 있는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이었다.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는지, 바닥에 앉아있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무덤지기 ]

"죽여."

전장에서 태평하게 휴식이나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아니 휴식을 취할 수 있으나, 적어도 경계는 하고 있었어야지. 사주 경계 없이 휴식이라니. 죽고 싶어 안날 난 놈들이다.

순식간에 공간을 비집고 쏟아져 내린 언데드들이 그대로 흑마법사들을 덮쳤고, 십여 명의 흑마법사들은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나갔다.

"전부 챙겨."

의외의 장소에서 좋은 재료를 얻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러고 놀고 있을 시간이 없지.

쿠웅-

쿵-

게다가 아까부터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폭발음은 특히 거슬렸다.

"가자."

말 배를 차자 유령마가 다시금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은 생각보다 심각하진 않았다. 성벽 여기저기가 부서지거나 무너진 탓에 죽기 살기로 발악하는 괴물들 때문에 조금씩 밀리고 있긴 하지만 비교적 잘 막고 있었다.

[ 현재 파괴도 : 18% ]

나쁘지 않다.

더욱이 보스 몬스터도 없는 상황이니 이렇게만 가면 어찌어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것`만 없었다면.

후우우웅

콰앙!

"...미친"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던 폭음이 저것이었나.

갑작스레 성벽 한 켠에서 마력이 꿈틀거린다 싶은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새하얀 빛은 단숨에 이십여 마리가 넘는 괴물을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그 폭발은 성벽마저 집어삼켰다.

새하얀 빛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은 분명 신성 주문의 일종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군까지 공격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진 않지만, 폭발로 인해 성벽 한 켠이 무너져버렸고 그곳을 향해 네임드 몬스터들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괴물들을 막기위해 발현된 폭발이 도리어 아군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떤 놈인지 제대로 미친놈이네."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말 배를 힘차게 찼다.

갑작스럽게 급박해진 상황 때문에 안 그래도 빠르게 하늘을 달리던 유령마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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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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