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편
<-- 빛의 신전 -->
"그래도 우리가 제일 먼저다."
"으으…. 빨리 자고 싶어요."
이덕수와 유영은 어깨를 두드리며 대화를 나누다가 불침번을 서기 위해 무기를 들고 동과 북으로 향했다.
동과 북이라고 해봐야 사실 그렇게 떨어진 거리는 아니다. 대략 20m 정도? 횃불을 밝혀두었으니 고개만 돌려도 상대방이 뭘 하고 있는지 훤히 볼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큰 불안감 없이 경계를 설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구름에 가렸던 별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후우.. 왜 이렇게 어둡냐."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에 뜬 별을 감상하던 이덕수는 다시금 구름이 밀려오며 달과 별이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자, 주변이 어둑해지는 느낌에 침을 삼켰다.
당장 뒤만 돌아도 동료들이 있으니 무슨 일이 터져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어두운 밤에 혼자 서 있으려니 약간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인지, 괜히 소변이 마려워지려고 한다. 경계를 선지 이제 막 30분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볼일을 보려면 최소한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데 말이다.
"꼭 이럴 때만 마렵더라. 씨댕."
아무렇지 않은 듯, 참을 수 있다며 스스로에게 속삭이고 다시 창을 바짝 잡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점점 더 소변이 마려워졌다.
"아오 진짜.. 왜 이렇게 마려운 거야."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유영을 불렀다.
"어이. 영아!"
"응? 덕수 형 왜요?"
이덕수의 부름에 곧장 고개를 돌리는 유영.
이덕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슬쩍 자리를 옮겼다.
"형. 아직 시간 안 됐는데요?"
"알아. 아는데 갑자기 소변이 너무 마려워서 말이야. 나 잠깐만 볼일 좀 보고 올게."
"아휴. 형 그런 건 미리미리 해결했어야죠. 큭큭."
"아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내 자리도 좀 봐줘."
"알겠어요. 형."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함께 전투를 치르다 보니 제법 친해진 듯 장난을 주고받는 두 사람.
유영의 농담에 이덕수가 장난으로 화를 내곤 그대로 숲으로 달려간다.
찌이익-
쏴아아아아..
"아...흐..후아. 시원하다."
이덕수는 주변을 살핀 후 적당히 시야가 가려질 만한 곳에서 바지를 내리고 물을 쏟아냈다.
부스럭-
"응?"
참았던 물을 쏟아내느라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일을 보던 이덕수는 순간 풀 흔들리는 소리에 움찔했다.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달마저 가려진터라 안 그래도 어두운 숲 안은 완전히 칠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니 머릿속이 괜한 상상으로 가득해진다.
"으으…. 빨리 돌아가자."
이덕수는 급히 바지를 올리며 몸을 돌렸다.
다행히 바스락 거린 소리의 정체는 별것 아니었는지, 그가 돌아가는 동안 상상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형. 빨리 와요. 큭큭큭"
야영지로 돌아가니 유영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킥킥거리며 그에게 손을 흔든다.
경계 중인 상황이라 농담은 물론 장난을 친다는 게 말이 안 되었지만, 아까 습격부대를 끝으로 더는 악의 무리가 나타나지 않은데 데가 연속된 승리로 상당히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아으 따숩다."
"형. 자리 안 가세요?"
"볼 좀만 쬐다 가자. 지금 안 간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큭큭 그러다가 형 쪽에서 뭐라도 나타나면 어찌하시려고요."
"그때는 뭐. 그냥 다 썰어버리지 뭐. 아까 못 봤어? 형이 이래 봬도 하급 장비를 세 개나 끼고 있는 사람이야."
"이열. 이거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죠? 큭큭큭"
"..."
두 사람이 떠들며 장난을 치자, 같이 경계를 서던 정혜연이 잠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봤지만, 둘은 개의치 않은 듯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어려웠던 탓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반쯤 졸고 있었고 말이다.
"아으..이제 돌아가야겠다."
"그러세요. 안 그래도 자리 너무 비웠으니까요. 아까 저 여자가 우리 쳐다보더라고요."
"응? 누가. 저 여자?"
"네. 빨리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아요."
"쩝. 자기가 뭐라고 나한테 오라 가라야."
유영의 말에 이덕수가 잠시 정혜연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래도 경계 근무 중이니, 이제라도 돌아갈 생각이었다.
"어? 형. 저거 뭐에요?"
"응 뭐가?"
몸을 돌리는 순간.
유영이 뭔가를 발견하고 놀란 듯 이덕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급히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저거 몬스터 아니에요?"
"몬스터? 몬스터가 어딨어?"
몬스터란 소리를 연발하며 사시나무 떨듯 떠는 유영의 모습에 놀란 이덕수가 급히 몸을 돌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내려 했다.
"앗. 실수. 나방이었네요."
"이런..썅."
"큭큭큭 그냥 잠도 오길래 장난 좀 쳐봤어요."
"후.. 장난 한번 더럽게 재미없네. 나간다. 진짜로."
몬스터라길래 당장 전투 준비를 하던 이덕수는 유영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 농담을 해도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돌리자 유영이 이따 보자며 손을 흔든다. 그렇게 돌아가려던 순간.
"혀..형.."
유영이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로 이덕수를 부른다.
목소리까지 달달 떨리는 것이 정말로 실감 나는 `연기`였다.
"간다."
이미 한 번 속은 장난에 또 속을까.
제법 실감 나는 연기까지 추가했다지만, 멍청하게 또 걸릴 자신이 아니다. 이덕수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콰직-
-혀영!
`...?`
뭔가가 머리에 부딪힌다고 생각한 순간.
유영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털썩-
그것이 기습의 시작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 파티 디펜스 - 빛의 신전 (2) 〉
: 빛의 신전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만나 팔콘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라! 악의 무리는 집요하고 또 철저하다. 밤을 틈타 기습을 감행한 악의 무리를 막아야 한다!
[ 남은 시간 : 0분 ]
( 0/30 )
[ 현재 생존 인원 : 30명 ]
[ 목표 생존 인원 : 20명 ]
*
툭-
툭-
",..응?"
깊게 잠들어 있던 나는 누군가 몸을 툭툭 쳐대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위스퍼 한 구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 기습입니다. ]
"기습..?"
[ 동쪽에서 다수의 괴물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
기습이라니.
"일라이네. 일어나."
"으애..."
정신이 번쩍 들어 잠이 확 달아난 나는 바로 일라이네를 깨웠다.
그리고 그 순간. 동쪽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아!!"
〈 파티 디펜스 - 빛의 신전 (2) 〉
: 빛의 신전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만나 팔콘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라! 악의 무리는 집요하고 또 철저하다. 밤을 틈타 기습을 감행한 악의 무리를 막아야 한다!
[ 남은 시간 : 0분 ]
( 0/30 )
[ 현재 생존 인원 : 30명 ]
[ 목표 생존 인원 : 20명 ]
고개를 돌려보니, 동쪽에서 엄청난 숫자의 고블린들이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더불어 `마수조련사 길버트`란 네임드 몬스터가 보였다.
그것과 동시에 2번째 퀘스트 메시지가 올라왔다.
"불침번은 뭘 하고…."
불침번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위스퍼가 날 깨운 거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심지어 퀘스트까지 나왔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일단은 자고 있던 사람들을 깨워야 했다.
"일라이네. 전부 깨워!"
"네!"
전후 사정이야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은 급히 자고 있던 사람들을 깨웠다.
다행히 전부 중앙에 몰려있었기에 깨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불어 길버트란 녀석의 괴성이 사람들을 깨우는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기습을 하려면 최대한 조용히 오든가, 저렇게 소리부터 지르고 나면 기습의 의미가 있나.
"형제자매님들! 어서 일어나시오!"
"뭐..뭐야!"
"전원 전투 준비!!"
"준비 되는 대로 바로 움직여!!"
다급하게 일어난 사람들이 급히 장비를 챙기고 동쪽으로 뛰었다.
전투 준비가 제대로 된 게 아니었기에 전장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여기 누구 없어?!"
"이쪽부터 지원해줘!!"
"사제들은 뭐합니까!! 빨리 힐 부터 넣어요!!"
"크아아악!! 도와줘!!"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따로 없다.
제대로 방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는 건 기본이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아군과 부딪치는 등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더불어 낮과 달리 밤이다 보니 시야가 어둡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군데군데 횃불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스르릉-
"흐으읍!"
일라이네는 주문을 외우는 것보단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미 고블린들이 야영지 깊숙하게 밀려들어 온 상황이라 마법으로 하나하나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다 보니 직접 싸우려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괜한 마찰이 생길까봐 최대한 언데드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상황을 보니 더 이상 숨기는 건 곤란할 것 같다. 어쩌겠나. 저들을 구해야 퀘스트를 마무리할 수 있으니 마찰이고 뭐고 가릴 수 있나.
탁-
무덤지기의 공간에서 `어둠에 물든 뼈 지팡이`를 꺼내 손에 쥐었다.
"일라이네. 깃발을 들어."
"네? 설마.."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곤 지휘관의 깃발을 일라이네에게 건네자,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일라이네도 내가 왜 언데드를 따로 빼놓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언데드를 소환하자고 하기보다는 검을 먼저 뽑은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깃발을 붙잡았다.
그러자 미묘하지만 강렬한 기운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쿠웅-
[ 무덤지기 ]
공간의 문을 연다.
그리고 말했다.
"전부 나와. 목표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의 사살."
몸속에서 꿈틀거리던 마력이 휘몰아친 순간.
문을 넘어 순백의 기사가 걸어 나온다.
[ 명령하신대로 ]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쿠폰
정말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