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편
<-- 제작발표회 -->
며칠 후.
나는 등 뒤에 쭈욱 늘어선 키메라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무려 키메라 30구. 거의 일주일간 매달려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마력이 부족하면 즉각즉각 명상으로 채워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작한 키메라들.
중간에 디펜스까지 하느라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나마 제작하면서 점점 손에 익숙해져 속도가 붙어 이만큼 제작을 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가볼까."
30구의 키메라들을 전부 역소환시키자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가방에 계약의 물이 담긴 병 30여개를 꽉꽉 채워넣자, 일라이네가 사제복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어딜 나가는 것 같은..
"어디가?"
"네?"
"아니 옷을 보고 있길래."
이리저리 옷을 보며 먼지가 묻은 걸 털어내기도 하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기도 하는 게 영락없이 외출 준비를 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설마?"
"저도 가고 싶어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런거였나.
"정말로?"
"네!"
아침부터 시작된 준비는 모두 '현실'로 외출 나가기 위함이었다.
내가 현실로 갈 때면 보통 일라이네는 성에 남아 기도를 드리거나 훈련을 한다. 식사야 이것저것 내가 챙겨간 것들이 있고, 텐트와 침낭까지 준비되어 있다. 어차피 내가 현실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결국 집에서 같이 자긴 한다만. 그래도 혹시 홀로 오래 있게 될 상황에 대비해 잠 잘곳, 먹을 것 전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혼자 있다보니 꽤나 외로웠나 보다.
하기사, 떠들 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데, 내가 가버리면 아무리 기도와 훈련을 한다고 해도 외로웠겠지. 처음부터 혼자였던 나라면 모를까, 처음부터 둘이었던 일라이네에게는 충분히 외로울만 했다.
"그래 같이 가자."
"정말요?"
"못 갈거 있나. 같이 가면 되지."
"감사합니다!"
가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던터라, 나는 쿨하게 그녀를 데려가기로 했다.
"나가자."
"네!"
내심 내가 안 된다고 할까봐 걱정이라도 했었는지, 눈에띄게 밝아진 모습을 보며 공간의 틈을 열었다.
이틀 전에 치렀던 디펜스 후 귀환을 선택해두었기에 문을 열자마자 현대의 건물로 가득한 골목길이 보였다.
"와아.."
"신기해?"
"네.."
일라이네는 처음 접해보는 현대 문명을 마주하며 연신 감탄했다.
높게 솟은 건물들과 거리를 이리저리 내달리는 차들. 수많은 거리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예."
[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
"네."
간단한 통화가 끝난 후.
일라이네를 불렀다.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가자."
"네!"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골목길을 빠져나와 익숙하게 길을 걸었다.
방향은 김우석의 집이었다. 우리가 빠져나온 골목길에서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으리으리한 대문이 나왔다.
삑-
"오랜만입니다. 하하"
도착한 뒤 인터폰을 누르자마자 곧바로 대문이 열리며 누군가 다가온다.
꽤나 여유로워진 모습의 김우석이었다. 그러더니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일라이네에게도 손을 내민다.
"김우석입니다."
"아... 일라이네라고 합니다."
둘은 간단하게 악수를 나눴다.
웃기게도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름에도 둘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플레이어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인사를 마치고 김우석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저번에 보았던 이들이 가볍게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군요."
"안녕하세요."
그 주에는 정다빈과 최철희도 있었다. 다들 마침 퀘스트가 없는 날인지 전부 집 안에 모여있었다.
정다빈은 인사가 끝나자 과일이라도 가져온다며 주방으로 향했고, 거실에는 나와 일라이네, 최철희와 김우석만이 남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딱히 자리를 함께할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참.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예?"
"특수 범죄자들 말입니다."
"특수 범죄자?"
정다빈이 간단하게 과일과 마실 것을 준비하는 사이, 거실에 둘러앉아 있으니 김우석이 익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러면서 말을 시작했는데, 그 주제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챌린저들 중에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놈들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저쪽.."
"괜찮습니다."
"하하 저쪽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기서 풀어대는거죠."
중간에 말을 하다가 잠시 일라이네를 쳐다보는게 이에 대한 얘기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웃으면서 얘기를 다시 시작하는데 생각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기본적으로 직업을 얻으면 마력이 생기다보니, 뭐 여기서는 자기 세상인 것 처럼 뛰노는겁니다. 경찰이 와봐야 잡을 수 도 없으니 범죄를 저질러도 막을 사람이 없죠. 그러다보니 요즘은 꽤 심각한 범죄도 자주 일어나는 추세입니다."
요즘 현실엑 거의 오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실종자다 귀환자다 해서 나라 전체가 시끄럽더니, 이제는 범죄때문에 완전히 난리가 났습니다. 정부에서는 최대한 숨기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걸 무슨 수로 숨기겠습니까. 해서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범죄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특히 성범죄가 대부분이라네요.."
탁-
어느새 쟁반 위에 과일과 음료를 가져온 정다빈이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푸념 비슷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그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귀환자들을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정부쪽에도 인맥이 조금 있다보니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법을 만들어서 규제를 하려는 것 같더군요."
귀환자, 그러니까 챌린저들이 연루된 특수 범죄가 늘어가면서 정부도 더 이상 숨기만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애초에 국민이 알아버렸으니 어떻게 숨기겠는가.
하여 그럴듯한 법이라도 제정해서 챌린저들의 규제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만.
"쓸데없는 짓."
"그렇죠."
전혀 쓸데 없는 짓이었다.
우리를 규제한다고? 어떻게.
"사실 규제라고 해봐야 그냥 신상 조사가 전부죠. 어디에 가둬둘 수 도 없고, 그렇다고 강제로 뭘 할 수 도 없죠. 그러다가 챌린저들이 화라도 내면 당장 나라가 뒤집어질 판이니. 아마도 그냥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말 뿐인 정책이라도 꺼내는 것이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질테니까."
김우석의 말대로다.
규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걸어다니는 병기인 사람들을 어떻게 일반인들이 규제를 할까. 문득 그 옛날 마주쳤었던 한건우가 떠올랐다. 특전팀이었던가, 특전반이었던가. 실종자들을 확인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던 그 남자.
"하여간 꼭 몇몇 미친놈들이 전체 물을 흐리는 법이죠. 하아.. 그놈들 때문에 괜히 저희 같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었으니."
"그러니까요! 성범죄자들은 하나같이 다 목을 베야 하는 건데."
"그 점은 동의."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난리라고 한다.
계속되는 실종과 귀환만으로도 골머리를 썩을텐데, 특수 범죄자들까지 나타났으니 관련 종사자들은 정말 죽어나갈 것이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다.
그것보다는 이제 슬슬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대화를 나눌 차례였다.
"이번에도 장비를 몇 개 구했습니다. 다행히 슬슬 장비 풀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배력 관련 장비는 아직도 몇 개 없지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니 이대로라면 시장도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죠."
김우석도 슬슬 본론을 꺼낼 생각이었는지, 상자 하나를 가져와 내게 건네며 말했다.
"지배력 관련 장비는 두 개 입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팔찌 하나와 반지였다.
각기 지배력이 1씩 붙어이었다.
"좋군요."
다행히 두 장비 전부 장신구였다. 특히 여러개를 착용해도 딱히 불편하지 않은 팔찌와 반지. 무기나 방어구보다 상대적으로 휴대하기도 편하고 이미 착용중인 장비와 겹칠일도 없다.
"그리고 이건.. 마력이 붙은 장갑입니다."
아쉽게도 지배력이 붙은 장비는 2개가 전부였다. 대신 마력 +1이 옵션으로 붙은 장갑이 있었는데, 이건 일라이네에게 주면 될 것 같았다. 마력이 붙은 장비는 대체적으로 모두가 원하는 장비지만 장신구가 아니라서 그런지 김우석과 그의 팀원 중에는 딱히 장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장갑쯤은 이미 구해서 착용중이리라.
이번에도 좋은 거래가 되었다. 어디서 이런 물건을 계속해서 구해오는 건지. 확실히 김우석과 알게 된 것은 내게도 행운이었다. 그렇게 김우석과 나의 거래가 끝나자, 슬그머니 방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는 나와 김우석 '둘만의 거래'였기에 다들 빠져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모두에게 공평한 거래'의 시작이었기에 어색하든 초면이든 간에 개의치 않고 모두 나온 것이다.
김우석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팀원들이 전부 나온 것을 확인하자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드디어 때가 왔다.
10일간의 연구와 실험으로 얻은 결과를 보여줄 시간이.
이른바 키메라 연구 성과를 자랑할 '제작 발표회'였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쿠폰 선작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2편이니 전편 안 보셨다면 보시고 오시는 걸 추천!
오시면서 추천 누르는 것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