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편
<-- 일라이네와 칼레나 -->
"그렇습니다. 어둠의 사제들은 필수적으로 무투(武鬪)를 배웁니다. 저 역시 4살 때부터 무투를 배워왔으며 검과 창, 활, 박투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
당황스럽다.
그러나 일라이네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다.
그렇단다. 어둠의 사제는 신앙심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어릴 적부터 무투를 깊이 있게 배운다고 한다. 기본 박투술은 물론 검과 창, 활은 무조건 다룰 줄 알아야 한단다. 아니 기본적인 무술이 되어야 사제로 임명받을 수 있다고 한다.
`구원보다는 투쟁을 원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어둠 사제에 대한 설명문.
"전투에 특화된 사제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미친.
그나마 사제는 사제라고 힐링 마법은 또 쓸 줄 안다. 나 참. 아까 어둠으로 만든 창을 `직접` 던졌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래도 근접, 원거리, 보조까지 다 할 줄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소환수와 다르게 장비의 효과도 발동하니. 장비만 잘 입혀주면 충분히 클 수 있을 것 같다.
전투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키워는 봐야겠지.
"그래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목숨을 바쳐서라도."
"..."
좀 과격한 것도 문제다.
*
후우우웅-
서걱!
"힐링!"
서걱-
"힐링!"
"..."
"캬아아아아악!!"
"어둠은 도망치지 않는다. 스스로 물러날 뿐."
서걱!
콰직!
".."
( 33/33 )
-완료!
일라이네가 기사의 맹세를 늑대형 괴수의 머리 위로 박아 넣으며 중얼거린다.
그녀의 공격 방식은 굉장히 다양했다. 검을 휘두르다가도 마법으로 창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멀리서 화살을 날려 보내다가 다치면 스스로 치유까지 한다. 완전한 잡캐. 사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잡캐다.
게다가 사제가 마법보다 검을 들고 바닥을 구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안다. 원거리 공격으로 숫자를 최대한 줄여놓은 뒤, 힐링 마법을 사용할 소량의 마력만 남겨두고 검을 들어 올린다. 마력이 넘치는데 무작정 돌격을 외치는 멍청이는 아니다.
"하아.."
[ 그래도 확실히 기본기는 좋습니다. ]
안전을 위해 준비된 스켈레톤 로열 나이트가 나를 보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사실 위로받을 수준까지는 아니다. 분명 일라 이네는 뛰어난 실력자였으니까. 적어도 처음의 나보다는 훨씬 낫다. 나는 벌벌 떨면서 창을 내지른 게 전부였지. 언데드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생각으로 싸워대던 게 나다. 그런 나에 비해 일라 이네는 스스로 싸울 줄 아는 여자였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일 뿐. 만약 그날 숲에 불이 나지 않았으면 튜토리얼도 못 깼을지 모른다.
그러니 일라 이네는 충분히 뛰어난 인재에 속한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래.
실력과는 별개로 걱정된다는 거다.
힐링 마법은 결코 만능이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 일라 이네는 〈 성장 〉을 위한 훈련을 하는 중이다. 본래라면 차근차근히 단계를 격파하며 차근차근 쌓아가야 했을 경험치를 재시도를 통해 당기는 것이다.
지속적인 훈련만으로 성장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나는 그 경험을 일라이네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어차피 10단계 이하의 어떤 디펜스도 지금의 내겐 어렵지 않다.
그러니 안전은 내가 책임지고 일라 이네는 안전하면서도 극한의 훈련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도망쳤을 훈련이나, 기사의 맹세로 충성도가 90으로 올라간 일라 이네는 나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훈련에 달려들었다.
"후우.."
"휴식이다."
"예!"
마지막 괴수를 처리한 후.
다시 순둥순둥한 그녀로 돌아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는 일라이네.
방금까지 검을 들고 굴러다니던 사람과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다. 벌써 몇 번이나 본 모습이라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워낙 순둥한 일라이네와 파격적인 일라이네의 괴리감이 크다 보니 쉽게 적응이 되진 않았다.
잠깐 상점에 갔다 올테니까. 쉬고 있어."
"예!"
검을 멋들어지게 허리에 차고 내게 고개를 숙인 일라 이네는 바로 뒤를 돌아 성벽 위로 뛰어가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절레절레.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며 로우를 찾았다.
"로우."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방어구가 필요해. 음…. 비교적 가벼운 쪽으로."
"가벼운 쪽이라.. `하급`인가?"
"어. 하급으로."
"잠시 기다리게."
이번에 상점을 찾은 이유는 일라이네의 장비 때문이다.
현재 일라이네의 장비라고는 내가 준 기사의 맹세와 처음부터 입고 있었던 검은 사제복이 전부다. 방어력이라고는 전무. 자신의 몸놀림으로 회피하거나 다치면 스스로 치유를 하며 싸우는 게 그녀의 주특기라지만, 저런 전투 방식은 너무 위험했다. 어쩄든 앞으로 나와 같이 싸워야 할 존재니 최소한의 방어구 셋팅은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사제를 위한 갑옷이라니.
이건 숫제 사제가 아니라 완전히 성기사나 다름없다.
"이건 어떤가?"
[ 하급 가죽 갑옷 ]
: 가벼우면서도 질긴 가죽으로 제작된 가죽 갑옷. 서로 다른 3겹의 가죽으로 되어있어 매우 질기고 단단하다.
( 옵션 : 물리 저항 +1 )
[ 필요 포인트 : 11000 Dp ]
"음.."
물리 저항 옵션이 들어간 갑옷.
몇 번 들어보니 확실히 가볍다. 내가 입고 있는 갑옷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다. 여자인 일라이네가 입어도 충분한 무게. 더불어 물리 저항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방어에 도움이 되리라.
가격이 만 포인트나 하는 게 조금 가슴이 쓰리긴 하지만, 그래도 못 살 정도는 아니다.
의외로 내가 가진 포인트가 꽤 됐기 때문이었다.
[ 보유 포인트 : 71,220 Dp ]
저번 파티 디펜스와 서브 퀘스트 보상 포인트, 거기에 계속된 재시도 보상 포인트와 섬멸자 추가 포인트까지 더해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7만 포인트까지 쌓였다.
아마도 `섬멸자` 칭호가 정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괴수 혹은 괴물`을 죽일 때마다 10 Dp 씩 올려주는 이 효과가 작은 것 같아도 생각보다 컸다. 100마리만 잡아도 천 포인트가 쌓인다. 그런데 나는 디펜스 때마다 몰려오는 몹의 수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내 실력에 따른 난이도겠지만. 아무튼, 최소한 백 마리가 넘게 들이닥치고 많을 때는 2백 마리도 몰려온다.
그것만 처리해도 천, 이천 포인트가 쌓이는 수준이니. 확실히 섬멸자가 좋긴 좋다. 게다가 놀랍게도 `거주민`에게도 섬멸자의 칭호가 적용된다. 아마도 `플레이어 소유의 거주민`이기 때문에 동시 적용을 받는 것 같았다.
확실히 얻는 방법이 어려울 뿐이지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칭호라 나 말고도 아마 몇몇 더 얻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찾는 대로 바로바로 연락해준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 봐야겠지.
"갑옷에 바지, 장갑까지. 이렇게 해줘. 그리고 장신구도."
"알겠네. 오랜만에 엄청나게 사 가는군. 하하하하"
로우는 오랜만의 매출이 기분 좋은 듯 웃어 젖혔으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장비도 아닌 것에 포인트를 쓰려니 아까운 것이다.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니 어쩔 수 없지만. 잠시 귀환했다가 김우석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는데 `지배력`과 `마력` 옵션이 붙은 장비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배력은 장비 자체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고, 마력이 붙은 장비는 전 직업군이 전부 필요하다 보니 그래서 잘 안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성에다 전송했네."
"알겠어."
"그럼 수고하시게."
로우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성으로 돌아오니 한 켠에 놓인 상자가 보였다.
전부 물리 저항 혹은 내구력 옵션이 붙어있는 장비들. 무려 55,000 포인트를 썼다. 일반 장비는 사봐야 큰 효율을 얻지 못하니 차라리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장비를 쥐여주는 게 좋았기에 과감히 포인트를 지불했다.
"하…. 이래서 뉴비 키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날아가 버린 포인트를 생각하면 한숨이 덜컥 나오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래. 투자다. 투자. 일라이네가 잘 성장해주기만 하면 분명 굉장히 필요한 존재가 되리라. 일라이네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나 다름없다. 내게 없는 치유의 능력은 그만큼 소중했다. 분명 언젠가는 치료제로도 커버할 수 없는 심각한 상처나 상태 이상에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고위 사제의 능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와야만 했다.
"휴식 끝. 다시 시작이다."
"네!"
성벽 위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일라이네를 보며 외친다.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다. 아니 두고두고 되돌려 받아야 진정한 투자라고 할 수 있지.
쉬면 뭐 하나. 시간 있을 때 돈 벌어야지.
[ 솔로 디펜스 : 3단계 ]
[ 남은 시간 : 3분 ]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을 많이 해주셔서
한 편 더 올렸습니다!
그러니 추천 좀 더 주시죠?
p.s 다들 일라이네가 성기사 성기사 라고 하는데. 누가봐도 가녀린 사제입니다. 힐링 하는 거 안 보이시나요? 기도 드리는 거 안 보이시나요? 그녀는 누가 뭐라 해도 절대 사제입니다.
p.s2 박보영씨가 나온 영화중에 뭐더라.. 싸움 잘하는 여고생 컨셉 있었는데.. 딱 그 정도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p.s3 오늘 정오에는 2편 이상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약속 아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