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편
<-- 파발꾼 -->
이동은 순조로웠다.
여전히 엉덩이는 아팠지만, 그것도 슬슬 적응되는 것 같고, 후방에서도 2번의 추격대를 더 사냥하고 마을로 진입하고 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착실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앞으로 반나절 정도면 칼트가 나올 겁니다."
"그런가요."
요새 도시 칼트도 곧 눈앞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앞차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던 늑대들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한다. 다들 갑자기 늑대가 멈추자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리죠."
"예?"
내 말에 안이 당황하며 되묻는다.
지금까지 잘 타고 왔던 늑대에서 갑자기 내리라니. 다들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 하지만 우선은 내가 내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나둘 늑대의 등에서 내려왔다.
"어째서..?"
안도 몹시 궁금한지, 아니면 한시가 급한데 왜 그러냐는 건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나를 향해 묻는다.
나는 안을 향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가까이에 있던 늑대를 가리켰다.
"이걸 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우리가 악의 무리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
"하긴.."
내 말에 그제야 다들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반쯤 시체가 된 늑대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악의 무리라고 할 만한 상태다. 그러니 이걸 타고 요새 도시 칼트까지 갔다가는 당장 화살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니 늑대는 이쯤에서 내리는 게 가장 좋았다.
`가서 잘 사용하라고 전해줘.`
나는 망령 하나를 불러 늑대들을 후방으로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몇 마리는 빼서 무덤지기의 공간 안에 넣어두었다. 내가 타고 다니기엔 무리지만, 내 병사들이라면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을 테니 그때를 위해서였다.
"출발합시다."
지금부터 꽤 오래 걸어야 하니 앞이 막막했지만,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행군을 시작하고, 요새 도시 칼트를 보게 된 건 그로부터 다시 하루가 흐른 뒤였다. 아무래도 걸어서 이동하다 보니 중간중간 휴식도 취하면서 시간이 조금 더 늦어졌다. 그래도 총 3일 거리를 이틀 만에 왔으니 전체적인 시간으로 보면 하루를 아낀 셈이었다.
"저기입니다!"
칼트의 성벽이 보인 순간.
안이 크게 소리쳤다. 그에게 듣기론 복수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칼트로 소식을 전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고여있었다.
"갑시다."
칼트는 그야말로 요새라는 말이 딱 나올 만큼 위풍당당했다.
내 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랄까. 딱 봐도 높이 7m 이상에 문은 철문에 쇠창살을 덮어 공성무기가 통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성벽 중간중간에 구멍이 있는데 아마도 중간에 기름을 부어버리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적들을 공격하기 위한 틈 같았다.
성벽 위에는 수십이 넘는 병사들이 서 있었는데, 멀리서 보더라도 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누구 하나 떠드는 이 없고, 오직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훈련이 잘된 군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지!"
칼트의 성문이 가까워지자 그쪽에서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성문은 열려있었지만, 그 앞은 병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기에 아마도 검문을 통과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실제로 보게 될지는 몰랐네.`
칼트와 더불어 보초 서는 병사들을 보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은 성이라고 해봐야 나 하나 들어가 있는 게 고작이었고, 괴수 아니면 몬스터를 본게 전부였다. 이 세계에도 지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안도 그렇고 저 병사들도 그렇고 이 세계에도 분명 누군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대체 여긴 어딜까. 다른 차원? 아니면 다른 행성? 괜한 의문거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사이 완전히 성에 가까워지자 병사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칼트 소속 외성수비대 십인장. 로메인이라고 한다."
"저는 로안 마을의 안이라고 합니다."
로메인이라는 십인장이 걸어 나오자 안이 앞으로 나서며 뭔가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저희 마을 촌장님의 인장입니다."
"로안?"
"그렇습니다."
"지금 악의 무리가 저희 마을을 공격했고, 이곳으로 진격해오는 중입니다. 저는 촌장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 이 사실을 칼트에 전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촌장님께선 끝까지 마을을 지키셔야 한다며 제가 이것을 맡겼습니다."
안은 로에인이 인장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확인하는 동안 그간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로메인은 안의 말을 듣고 있다가 `악의 무리`라는 부분에서 매우 놀라며 인상을 썼다.
"악의 무리?"
"그렇습니다! 그놈들은 정말로 잔인했습니다! 마을의 갓난아이조차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었고, 거대한 늑대를 타고 다녔습니다. 저희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망쳐보려고 했지만, 놈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저 하나만이 간신히 살아남아서 도망쳤고, 그 와중에 저분들의 도움을 받아 추격대를 뿌리치고 이곳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으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며 말을 쏟아내자 로메인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우선은 출입을 허가하겠다. 너의 얘기는 성주님께 전달될 것이고, 곧 수색대가 파견될 것이다. 그전에 인장에 대해 검문이 있을 것이니 내가 지정해준 곳으로 이동하여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
로메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우리였다.
"저들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저들의 복장 역시 처음 보는 형태다. 그러니 저들에게는 출입을 불허한다."
"예? 저분들은 저를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이곳을 지키기 위한 사람일 뿐.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도시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다."
곰 같은 그의 눈빛이 강렬하게 파고들어 온다.
경계심으로 가득한 눈빛. 안이 계속해서 자신을 도와준, 악의 무리를 막아준 사람들이라며 말을 해봤지만, 로메인은 단호했다. 아무래도 그는 우릴 이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이 1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요?"
"흐음.."
그 반응에 최철희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사실 나도 딱히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 퀘스트는 안을 칼트까지 보호하는 게 아니었나.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안이 다가와 몇 번이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나는 별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이제 슬슬 디펜스 완료 메시지가 올라올 테니 그걸 확인하고 귀환을 하면 끝날 테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예."
결국, 안은 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 도시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올라왔다.
〈 파티 디펜스 - 파발꾼 (2) 〉
: 숲에 나타난 악의 무리가 마을을 공격했고,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도망쳤다. 악의 무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한 그를 살려두지 않으려 한다. 악의 무리로부터 그를 보호하라!
[ 남은 시간 : 1분 ]
( 1/1 )
-완료!
"된 건가?"
생각대로였다.
안은 안전하게 칼트에 도착했으니 이대로 허무하긴 하지만 끝난 것이다. 다들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거냐며 서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사실 원래대로였다면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추격대는 계속해서 쫓아왔을 테고 우린 힘든 전투를 이어가야 했을 것이다. 더욱이 늑대를 타고 다니니 조금 멀어졌고 금세 쫓아오겠지. 그러면서 적의 본대가 서서히 진군했을 것이고 계속된 전투에 지친 우린 정말 힘겹게 칼트까지 도착했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시나리오가 흘러갔어야 했을 텐데. 여긴 `나`라는 변수가 있었다.
네크로맨시로 불러낸 병사들이 추격대를 막아주고, 적들이 타고 온 늑대는 도리어 우리의 탈 것이 되었다.
적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우린 예정보다 빠르게 칼트까지 도착했다. 중간에 있었어야 할 전투들이 생략 된 것이다. 허무하다면 허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 상황을 두고 `아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투를 치르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할 테니 차라리 이렇게 끝난 걸 반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네.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쉽게 끝난 거 같은데?"
"와 대박이다."
"제대로 줄 탔네."
"어쨌든 우리 살아서 가는 거지?"
"당연하죠. 후우…. 진짜 하루하루가 심장 쫄려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가네요."
"진짜 다행이지. 상처 하나 없이 돌아가는 게 얼마 만인지."
"으으…. 빨리 가서 씻고 쉬고 싶다.."
.
.
내 생각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새로운 퀘스트와 완료 퀘스트가 동시에 올라왔다.
〈 파티 디펜스 - 파발꾼 (3) 〉
: 잡히지 않는 도망자를 사살하기 위해 더 많은 추격대가 쫓아오기 시작합니다. 로안 마을의 안을 안전하게 보호하시오!
[ 남은 시간 : 1분 ]
( 1/1 )
-완료!
〈 파티 디펜스 - 파발꾼 (4) 〉
: 추격대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악의 무리가 본대를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위험하고 강력합니다. 안을 악의 무리에게서 보호하여 요새 도시 칼트로 이동하십시오.
[ 남은 시간 : 5분 ]
( 1/1 )
-완료!
〈 파티 디펜스 - 파발꾼 (End) 〉
: 드디어 요새 도시 칼트가 눈앞에 보입니다. 그러나 악의 무리는 집요한 추격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악의 무리의 마지막 공격에 대비하십시오!
[ 남은 시간 : 10분 ]
( 1/1 )
-완료!
연달아 나타나는 메시지.
저번처럼 완료 항목이 주르륵 올라오더니 곧 정산 메시지가 뜨며 하나둘 귀환을 하기 시작했다. 정산이 빨리 끝나면 귀환도 빨리 이루어진다. 정산 항목이 많으면 그에 따라 시간이 약간 느려지므로 다들 나보다 먼저 이동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철희까지 이동이 끝나고 이제는 나 혼자 남은 상황.
그런데.
"...음?"
뭘까.
다들 이동이 끝났는데도…. 나는 왜 그대로인 거지?
귀환은커녕 아예 정산 메시지조차 뜨지 않는다. 디펜스 완료 메시지는 여전히 올라와 있었지만, 그다음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 파티 디펜스 - 파발꾼 - 안의 복수 (Sub) 〉
: 악의 무리의 공격을 요새 도시 칼트에 알렸으나, 칼트의 성주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허무맹랑한 소식을 알렸다며 로안 마을 출신의 안에게 벌을 내리고 내쫓았습니다. 안은 피눈물을 흘렸으나 성주는 오히려 그에게 도시에서 나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끝내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 남은 시간 : 3분 ]
( 0/1 )
"...어?"
========== 작품 후기 ==========
선착 추천 코멘트 원고료 쿠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추천과 코멘트들..
아주 칭찬해!
p.s 드디어 서브 퀘스트. 남들은 모르는 꿀 찾기 시작?
p.s 2. 정말 코멘트 감사합니다. 두 번 감사합니다. 세 번 - 네 번.. 추천도 많이많이 눌러주시면 작가가 좋아한답니다. 하하하하
p.s 3 사실 파발꾼 챕터는 이걸 위한 떡밥이죠.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까? 이게 바로 능력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