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편
<-- 이제 제대로 시작하는 거였냐 -->
보스 몬스터.
사실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튜토리얼에서도 보스 몬스터가 나왔지만, 마지막에 불에 타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터라 이번에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저번처럼 숲을 태워버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블랙 포인트는 없어졌지만 늘 괴수들이 숲을 지나쳐 등장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숲을 태운다면 뭔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다고 보스 몬스터가 잡혀줄 것 같진 않았다. 시도 자체는 할 수 있지만, 왠지 헛수고가 될 것 같은 감이 온다. 그냥 감이다. 그래도 정말 혹시 모르니 약간의 여지를 위해 성벽 위 한 켠에 모닥불을 피워두었다. 가능하다면 위스퍼를 이용해 불을 붙이면 되니까. 위스퍼는 약간이지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숯을 들고 갈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소울 번을 이용해도 되니까.
"150마리에…. 보스 몬스터라."
과연 어떤 놈일까.
보스 몬스터라는 건.
[ 남은 시간 : 4분 13초 ]
칼쿠르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위험하겠지? 아니면 그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지.
그나마 칼쿠르 덕분에 적들도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 있다. 경험은 그 어떤 재산보다도 귀한 것 중 하나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어떤 능력인지만 파악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칼쿠르처럼 제압기 일 수도 있고, 악의 근원처럼 소환 형식일 수도 있고, 아예 처음 보는 공격 계열이나 방어 계열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위스퍼를 통해 최대한 빠르게 알아내 볼 생각이다.
"너희는 가서 보고와라. 위험해지면 사방으로 퍼져서 도망치고."
망령과 위스퍼를 먼저 숲 너머로 보냈다.
확실히 네크로맨서란 직업이 가지는 메리트는 대단한 것 같다. 정찰부터 공격과 방어까지. 모든 게 가능하니까.
나는 마지막 점검을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어느덧 정찰을 보냈던 망령 중 하나가 되돌아와 숲 너머의 상황을 내게 알렸다.
"...뭐야 이게."
망령의 기억을 훑어보던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굳어버린다.
기억 속 선명하게 남아있는 형체.
그것은 바로.
"..오크잖아?"
미친.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그리고 망령이 확인한 게 거짓이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 오크다.
흔히 말하는 돼지머리에 툭 튀어나온 송곳니. 초록색 피부에 근육질의 덩치까지.
그 수가 무려 150.
"게다가…. 복장이 미묘하게 다른 걸 보니."
숫자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니 딱히 놀랄만한 건 아니다. 다만 걸리는 건 복장이다. 150마리의 오크 중 복장이 유달리 튀는 녀석들이 있다. 그 숫자는 대략 30여 마리.
녀석들은 복장뿐 아니라 다른 오크보다는 머리 하나가 더 크고 몸집도 크다. 쥐고 있는 무기는 대체로 글레이브 혹은 언월도 형태의 커다란 도. 머리 하나 큰놈들은 정말 무식해 보이는 태도(太刀)를 어깨에 이고 다녔다. 자세히 보니 목에 뼈로 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도 보였다.
느끼기엔 전체 150마리의 오크를 이끄는 건 저 30마리의 오크들 같았다.
그리고 그 끝에.
이번 디펜스의 중심이 될. 거대한 양날 도끼를 쥐고 있는 오크가 보였다. 이놈은 앞선 30마리의 오크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커서 거의 2.5m를 넘어가는 것 같았다. 온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로 가득하고 눈빛은 매섭다 못해 위협적이다.
그 위엄 넘치던 칼쿠르 마저도 녀석과 마주친다면 고개를 처박을 것 같은 느낌.
더 놀라운 건, 녀석이 망령을 정확히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젠장할.."
딱 봐도 미친놈이다.
보스 몬스터니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뭐 어쩌겠어. 죽기 살기로 막아야지."
설마 디펜스 대상이 오크라는 사실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결코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막고, 살아남아 물리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까.
이윽고 서서히 오크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연의 일치인지 녀석들은 숲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숲을 돌아서 왔다. 설마 내가 숲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로 지능이 높다는 소리였다.
이 와중에 다행이라면 오크들의 편제가 전사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
"크워어어어어어!!"
오크들이 성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춘다.
그리고 `녀석`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거대한 몸은 원근감을 씹어먹는다.
[ 오크 전사장 헥타르 ]
"@*^*[email protected]#*^"
"...언어도 있나?"
헥타르란 이름의 보스 몬스터가 앞으로 나와서 한 것은 다름 아닌 말이었다.
단순 괴성이나 포효가 아니라, 말. 언어였다.
지능이 높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설마 언어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물론 오크 놈들의 언어를 내가 알 리가 없으니 전혀 이해하진 못했으나 적어도 흔히 아는 `취익`이나 `꾸익`같은 돼지 소리는 아니라는 거다.
"#*!^*@#"
녀석은 한 차례 혼자 떠들어대더니 들고 있던 양날 도끼를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순간적으로 도끼를 환하게 물들인 환한 빛이 떨어지자 굉음이 들렸다.
후우우웅-
콰앙!
"...미친?"
도끼에 찍힌 바닥이 그대로 갈라져 거대한 틈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전투의 신호탄이었다.
"크워어어어어!!"
"크어어어!!"
"크어어!!"
.
.
.
*
"본 월. 본 월."
[ 본 월 ]
[ 본 월 ]
순식간에 바닥이 갈라지며 뼈로 된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개의 벽 중 하나는 오크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하나는 성문 앞을 가려버린다. 높이와 길이에 따라 소모되는 마력 양이 증가하지만 섬멸자의 칭호도 있고 장비의 효율도 있으므로 이 정도는 가볍게 써도 문제없다.
"포이즌 스트라이크. 소울 번."
[ 포이즌 스트라이크 ]
[ 소울 번 ]
이어 독으로 된 폭탄을 던지고 위스퍼 둘을 날려 보내며 터트린다.
예상한 대로 망령으로 펼치는 소울 번과 위스퍼로 펼치는 소울 번은 그 위력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마치 수류탄을 터트리는 것 같을 정도의 위력.
쿠웅!
쿠웅!
"크아아아악!!"
"크아악!!"
소울 번의 폭발 위력이 상당했는지, 달려오던 오크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콰직!
"!&([email protected]&*&!#^"
뒤로 물러서려던 오크의 머리통이 하늘 위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앞으로 30마리의 오크 중 하나가 뭐라고 소리치니 뒤로 물러나려던 오크들이 재차 앞으로 돌격을 시작했다. 철저한 공포 위주의 전쟁. 이것이 오크들의 특성인가.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과 공포로 잊게 하는 것.
"나이스. 숫자 하나 줄었다."
물론 나는 별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멀쩡한 오크 하나가 죽은 게 더 좋다.
어차피 막아야 하는 놈들인데, 뭐 어떤 타입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 본 스피어 ]
[ 본 스피어 ]
후우우웅-
콰득!
콰직!
뼈로 된 백색의 창이 하늘을 날아가고, 드디어 나의 병사들도 행동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역시나 구울과 좀비들. 몸으로 부딪치는 만큼 녀석들은 항상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꼭 부딪쳐 이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움직임을 저지하기만 해도 상관없다.
서걱-
[ 명령대로 ]
아주 잠깐이라도 움직임이 멈추기만 한다면, 차가운 칼날이 그 목을 잘라낼 테니까.
전투는 상당히 치열했다.
숫자도 비슷했고, 가진 힘도 비슷했다. 전체적인 힘은 오크들이 우세했지만 언데드의 특성 덕분에 적어도 6대4 정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거기에 스켈레톤 아쳐와 내 보조가 있으니 절묘한 밸런스가 유지되고 있었다.
"크워어어어!!"
"크워어!!"
그래서일까.
일반 오크들과 다른…. 편의상 오크 전사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야 느꼈다.
이녀석들 아직 아지 제대로 싸운 게 아니라는 걸.
콰직!
콰직!
단숨에 전장에 뛰어든 오크 전사들이 내지른 글레이브가 좀비 하나를 짓이기며 갈라낸다.
이어 달려든 일반 스켈레톤 역시 단박에 몸이 터져나가며 한 줌 뼛조각이 되어버린다.
"...더럽게 세네."
부서져 가는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도 아직 모든 걸 보여준 건 아니다.
"그래 아주 뒤져보자고."
[ 애니메이트 데드 ]
콰득-
콰득-
한 곳에 모아 두었던 괴수들이 강제로 몸을 일으킨다.
애니메이드 데드로 되살린 언데드 역시 지배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난 이미 지배력을 풀로 채워 소환을 끝낸 상태.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저 괴수들은 당연히 내 지배를 벗어난 상태가 된다.
하지만 내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왜?
당연하지.
설마 내가 미쳤다고 우리가 위험하게 마법을 썼을까.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괴수들의 시체는 당연히 침략군 좌측에 배치해두었다. 애니메이트 데드를 사용하더라도 우리가 아닌 침략자들을 먼저 발견할 수 있도록.
적의 적은 아군이다.
오크들은 이제부터 양옆으로 적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뒤져봐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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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라.. 사실 생각해둔 사람은 있습니다만.
흠흠 언제 출연을 시켜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