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편
<-- 전직 -->
아주 갑작스러웠다.
퀘스트가 완료된 것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나는 괴수와의 전투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었고, 그저 남들이 하는 말에 따라 열심히 싸우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 당신의 성적을 수치화합니다. ]
[ 임무 수행에 열심히 노력한 당신에게 〈 B rank 〉 보상이 주어집니다. ]
"응?"
[ 정산이 끝났습니다. ]
[ 귀환을 시작합니다. ]
한참 성벽 위의 전투에서 괴수들에게 밀리고 있어서 귀환을 한다는 게 반가운 사실이긴 했지만 어쩐지 찜찜한 마무리였다. 도대체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마무리였기에 나는 너무나도 당황했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싸우던 동료들 역시 다들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완료는 되었고, 괴수들은 더 이상 공격해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파티 디펜스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 처음으로 파티 디펜스에 참가했던 어느 챌린저(challenger)의 소감 중....
성벽 위의 교전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김우석, 정다빈, 최철희같은 실력자들이 버텨주고 있음에도 숫자에서 밀리는 탓에 점점 틈이 벌어지고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본 스피어. 본 쉴드"
[ 본 스피어 ]
[ 본 쉴드 ]
나는 급히 창을 날리고 방패를 생성해 괴수를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오는거냐..!`
아직도 위스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종료되면 바로 달려오도록 명령했는데…. 아직도 전투 중인 건가? 설마 악의 근원이 소환 능력 외에도 다른 전투 능력이 있어서 시간이 걸리는 건가.
"일단 뒤로 물러납시다!!"
"아까 말한 대로 인장 주위까지 물러나야 합니다!!"
점점 괴수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결국 성벽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차라리 물러나서 인장 주위에 쌓아둔 벽을 지지대 삼아 버티는 것이다. 이는 김우석이 디펜스 시작 전에 미리 계획한 플랜으로 최철희의 도움을 받아 만든 벽이다.
최철희나 홀로 떨어져서 디펜스에 참가하던 이들도 지금에 와서는 전부 힘을 합쳐야 하는 탓에 누구 하나 뒤로 빠져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이 정도나 됐는데 굳이 혼자 싸운다는 건 되려 더 위험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나둘씩 성벽에서 내려오고 있던 시점이었다.
"크아아아악!!"
"안 돼에에에에!!"
쿠웅!
막 뒤로 물러나려던 남자를 괴수가 덮치면서 그대로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성벽을 그대로 밟고 아예 넘어버린 녀석은 원숭이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성벽을 쉽게 넘어온 것 같았다. 크기는 대략 3m.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놈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크기가 크기다 보니 원숭이라기보단 영화에서 봤던 킹콩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녀석의 거대한 주먹이 바닥을 내리찍으니 흙바닥이 그대로 갈라지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나마 첫 공격은 피했다.
"뭐해! 도망쳐 병신아!!"
공격은 피했으나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괴수의 거체 때문인지 도망치는 게 불편해 보였다.
옆에서 욕을 해대면서까지 도망치라며 소리를 질러보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크워어어어어!!!"
후우우우웅-
원숭이형 괴수가 그대로 팔을 하늘로 올렸다가 내리찍는다.
엄청난 크기의 주먹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진다.
첫 사망자가 나오는 걸까.
모두가 도망가던 것도 잊은 채로 숨죽이며 원숭이 괴수의 공격을 지켜본다. 누구도 구해줄 수 없고, 누구도 막아줄 수 없다. 그저 지켜만 보는 게 우리의 전부였다.
그렇게 주먹이 떨어져 내렸다.
후우우웅-
콰앙!
"어?"
"뭐지..?"
"뭐야?"
"살았...어?"
.
.
..
.
.
.
"...?"
원숭이형 괴수의 주먹이 정확히 쓰러진 남자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막아 세운 것 같은 상황.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파티 디펜스 - 악의 근원 (3) 〉
: 악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지독한 마력(魔力)이 괴수들의 정신을 조종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앞으로 다가올 괴수들을 상대로 막아내고 인장을 보호하라!
[ 남은 시간 : 5분 ]
( 555/555 )
-완료!
〈 파티 디펜스 - 악의 근원 (4) 〉
: 악의 근원이 분노하여 변종 괴수를 소환해냅니다. 더욱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진 이곳에서 인장을 보호하라!
[ 남은 시간 : 5분 ]
( 0/33 )
-완료!
〈 파티 디펜스 - 악의 근원 (5) 〉
: 끝없이 버텨내는 인간들에게 분노한 악의 근원이 마지막 소환을 시작합니다. 위험과 공포에 대비하십시오/
[ 남은 시간 : 10분 ]
( 0/3 )
-완료!
〈 파티 디펜스 - 악의 근원 (End) 〉
: 검은 마력으로 괴수를 홀려 인간을 공격하는 악의 근원을 찾아 처치하고 성을 구원하라!
[ 남은 시간 : 3분 ]
( 1/1 )
-완료!
"...?!"
아.
설마..
그런 거였나.
순식간에 완료된 퀘스트 목록이 주르륵 올라오고 마지막으로 악의 근원을 처치하는 퀘스트 마저 완료 목록으로 올라온다.
그렇다. 나의 병사들이 드디어 악의 근원을 처리한 것이다. 그것을 알리듯 때마침 허공을 날아온 위스퍼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디펜스 완료 메시지 아래로 각자 정산이 되는지 서서히 빛무리가 모이며 귀환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나직도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Hidden)악의 근원이 만들어낸 소환진을 파괴하라
-완료!
(Hidden)악의 근원을 처치하라
-완료!
(Hidden)단 한 사람의 사망자 없이 디펜스를 마무리하라
-완료!
(Hidden)가장 많은 괴수를 섬멸하라
-완료!
[ 당신의 활약을 계산 중입니다. ]
[ 당신의 성적을 수치화합니다. ]
[ 엄청난 능력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당신에게 〈 S rank 〉 보상이 주어집니다. ]
[ 〈 Hidden & Sub 〉 의 보상을 정산합니다. ]
[ 〈 Hidden & Sub 〉의 정산 결과. 4 개의 〈 Hidden Quest 〉 달성이 확인되었습니다. ]
[ 파티 디펜스 공헌도를 측정해 별도의 디펜스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
메시지가 올라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정산이 끝났는지 모두 귀환한 상태였고, 마지막으로 나 하나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괴수들은 디펜스가 끝나서인지 모두 움직임을 정지한 상태였다. 원래 디펜스가 이런 식인 것인지 이것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며 성벽 위로 올라가니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나의 병사들이 보였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중심으로 걸어오는 녀석들은 거의 피해가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플랜 C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척-
멈춰있는 괴수들을 지나쳐 성으로 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은 나를 바라보며 섰고 가장 앞에 있던 스켈레톤 나이트가 자신의 검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 충성을 ]
[ 정산이 끝났습니다. ]
[ 귀환을 시작합니다. ]
[ 남은 시간 : 10초 ]
녀석의 말이 끝난 순간.
나도 빛무리에 휩싸였다.
-번쩍
*
"설마 그렇게 끝날 줄이야."
무덤지기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차하면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올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래도 같이 싸웠던 사람들인데 누군가 다치거나 죽었다면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괴수와 매일같이 싸우며 삶과 죽음을 오가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이 여리다.
누군가 죽는다는 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정말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었다.
"후우.."
그럼 이제 보상을 받아볼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워낙 많은 메시지가 출력되었던 터라 일단은 귀환을 먼저 했다. 파티 디펜스는 솔로 디펜스와 다르게 디펜스가 마무리되면 그대로 귀환이 된다. 더 진행하고 싶어도 진행할 수가 없다.
하긴 디펜스 내내 몇 단계에 걸쳐 진행하니 사실상 별반 다를 게 없긴 하다.
"자..그럼.."
우선은 S 랭크 보상부터.
[ 당신의 성적을 수치화합니다. ]
[ 엄청난 능력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당신에게 〈 S rank 〉 보상이 주어집니다. ]
[ 〈 S rank 〉 보상으로 `직업 전직` 이 주어집니다. ]
[ 〈 S rank 〉 보상으로 `하급 장비 선택권(x2)`이 주어집니다. ]
"...전직?"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보상이 무려 `전직`에 하급 장비 선택권이 2장이나 있다.
미친. 역시 S 랭크 보상이라 그런 건가. 언젠가는 초급을 벗어나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빨리 벗어나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과연 어떤 마법들이 날 기다릴까. 어떤 병사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될까? 얼마나 생존 확률이 올라가게 될까? 또 진화할 수 있어질까? 별의별 생각과 상상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전직 보상 메시지를 누르자 튜토리얼을 마치고 보았던 그 날처럼 직업 설명 메시지가 쭉 올라왔다.
[ 전직 ]
[ 1. 중급 네크로맨서 ]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괴수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하
이제부터 나올 녀석들이 중요합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