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30화 (30/304)

30편

<-- 파티 디펜스 -->

칼쿠르를 처리한 뒤로 사흘 정도 흘렀다.

그동안 새로운 디펜스도 나오지 않아 잠깐의 휴식을 가졌고, 새롭게 얻은 재시도 기능과 새로 얻은 것들을 확인할 겸 해서 4단계 디펜스를 다시 하고 왔다.

그리고 느꼈다.

확실히 달라졌다.

장비야 그렇다 치더라도 늘어난 마력양과 진화한 마법은 정말로 완벽했다.

4단계에서 40마리의 늑대형 괴수가 나타났는데, 고작해야 30분 만에 디펜스가 끝났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덕분에 도축하는 것만 힘들어 죽을 뻔했다.

칼쿠르의 눈으러 얻은 기술들도 사용해봤는데, 이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가장 아쉬운 건 위압. 본래 칼쿠르의 위압이 한 대상에게만 집중되는 기술인지, 아니면 팔찌에 내장된 기술이라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위압은 여러 대상이 아닌 지정한 대상 하나에만 발동됐다.

지속시간도 대략 10초 정도.

아마도 장비에 내장된 기술이라 효과가 본래의 기술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다.

그 대신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칼쿠르와 검치호들을 도축해서 얻은 포인트가 300 Dp 였고, 또 하나. 칼쿠르의 눈 때문인지 일반 괴수들이 나를 보면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잘못 보았나 싶었는데, 재시도를 몇 번 거치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실제 옵션으로 적용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팔찌를 착용하고 있을 때와 착용하지 않았을 때에 괴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이제 남은 건…. 또 그놈의 마력인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칼쿠르의 눈처럼 새로 얻은 장비도 상당히 마음에 들고, 마법이 진화한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래서인 걸까. 소환에 드는 마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일반 스켈레톤이나 좀비는 20구씩 소환해도 전혀 무리가 없지만, 진화한 개체를 소환할 때는 그 배 이상 마력을 잡아먹는다. 물론 진화를 했으니 그에 걸맞은 마력을 소모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거의 두 배 이상을 잡아먹을 줄이야.

문제는 또 있다.

지배력. 이게 마력만 많다고 무작정 소환할 수도 없는 것이. 내 지배력 안에 닿지 않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움직여버린다. 진화한 개체들을 10여 구 정도만 부릴 수 있는 것도 이에 해당했다.

정확히는 진화한 개체만으로 최대 27구.

이걸 통해 대충 계산해보니 내가 가진 지배력은 대략 14 정도.

일반 개체는 지배력 1 당 5구 정도까지 버티는 것 같고, 진화한 개체는 지배력 1당 2구. 이런 식으로 가능한 것 같다. 칭호로 10이 추가되었고, 기본 지배력은 4 정도,

이거 아무래도 강화 알약을 마력에만 투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력, 지배력, 감응력을 계속해서 키워주려면….

"결국 돈이지. 썅."

돈이다.

후우...

뭘 하든 포인트가 필요해.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명상을 시작했다. 그간 생긴 습관이다. 아주 잠깐만 시간이 남아도 명상에 빠지는 것. 마력 회복이나 마력 증가의 효능만 있는 게 아니라 의외로 피로 회복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특히 정신적인 피로에. 그래서 틈만 나면 명상을 시전하곤 한다.

한참을 명상에 빠져있다가 저녁 즈음이 돼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흐음... 이제 거의 다 먹긴 했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반쯤 비어있었다.

딱히 현실에서 돈벌이 같은 게 없다 보니 냉장고가 비어가도 채워 넣을 수단이 없다. 부모님께서 간간이 생활비에 보태쓰라며 얼마 정도 돈을 보내주고 있긴 하다만….

"뭐라도 돈 벌 수단이 필요하겠다."

확실히 이 부분은 신경을 쓰지 못했던 터라 이제부터라도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은 대충 남은 것들로 식사를 마무리 짓고, 운동하기 위해 옷을 입으려 했다.

[ 에픽 퀘스트 - 막아라 & 생존하라 ]

[ 퀘스트를 위해 `이동`을 시작합니다.]

[ 현재 소유 라이프 ]

[ 5 / 5 ]

[ 이동까지 남은 시간 : 10초 ]

"지금이니? 언제 나오나 했다."

막 옷을 입고 있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올라온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여유롭게 옷을 입었다.

왜?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내 모든 물건은 무덤지기의 공간에 있고, 여긴 디펜스 챌린지 세계 안에서도 오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은 시간이 10초든 10분이든 별 차이가 없었다. 어차피 급하면 다시 들어갔다 나오면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일어서니 빛이 번쩍였어.

*

"모두 이곳으로 모여 주십시오!"

"여기예요!"

"이쪽입니다!"

.

.

.

"...응?"

빛과 함께 눈을 뜬 나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사람의 언어다. 그것도 한글이다. 즉. 저렇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소리였다.

"아. 이게 파티 디펜스…. 인건가?"

솔로 디펜스라면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아마도 이번 디펜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하는 파티 디펜스인 것 같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으로 사람이 모이고 있었는데, 대략 10여 명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훤칠한 키와 꽤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있었는데, 검사 계열인지 등에 커다란 대검이 보였다.

"흐음.."

나는 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파티 디펜스. 전에 설명에 따르면 2인 이상이 함께하는 디펜스라고 했지.

그러나 나는 이 제도에 살짝 부정적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다고 과연 그만한 효율이 나올까? 오히려 처음 보는 사이에 마음이 맞지 않을 텐데. 제대로 싸우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되려 뭔가 작은 실수를 하기만 해도 정치를 당하지 않을까.

차라리 혼자서 싸우면 `그래 내가 잘못했지`라고 넘길 수 있지만, 여럿이서 일방적으로 `당신이 잘못했다고!` 하며 소리치기라도 하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검이나 창 같은 무기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괜히 휩쓸리고 싶지 않았기에 저 사람들 사이로 합류하진 않았다.

그리고,

"혼자가 위험한 거지. 난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말만 하면 달려 나올 진화한 언데드 들이 묘지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25구를 채워놓았다. 더불어 위스퍼 역시 2마리를 소환해두었고.

마력은 빵빵하니. 여차하면 죽어도 다시 소환하면 된다.

그러니 굳이 합류해서 불편하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저 남자야 사람 모으고 중심에 서는 걸 좋아하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더는 오지 오지 않는 것 같으니 우선 저희끼리-"

"그러죠!"

"그럽시다."

.

.

.

한참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무리는 몇몇을 제외하고 얼추 다 합류하자 자기들끼리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대충 바위에 걸터앉아 앞으로 나오게 될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소환된 지 대략 20분 정도가 흘렀을 때. 드디어 퀘스트 메시지가 올라왔다.

〈 파티 디펜스 - 악의 근원 (1) 〉

: 악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지독한 마력(魔力)이 괴수들의 정신을 조종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앞으로 다가올 괴수들을 상대로 막아내고 인장을 보호하라!

[ 남은 시간 : 5분 ]

( 0/333 )

[ 현재 소유 라이프 ]

[ 30/30 ]

(파티 디펜스 한정 )

"허. 3백 마리? 미쳤구먼."

나는 퀘스트를 읽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퀘스트 제목을 보면 `악의 근원`이라고 적혀 있고 그 옆에 ` 1 `이라고 쓰여 있다. 1단계에서 3백 마리라면 이 시나리오가 끝날 때 쯤엔 과연 얼마나 많은 괴수가 공격해올까.

어쩌면 이번에 천 단위의 괴수를 보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절로 미쳤다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저쪽 무리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연신 `이건 말이 안 되네요.`, `어떻게 해야 하죠?` 등등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자.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나는 그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인장을 보호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나가서 싸우는 게 좋을까. 저 무리를 보니 아마도 성안 쪽에서 싸우며 인장을 보호하는 데 주력할 것 같다. 군데군데 모이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우선 저 무리만큼은 보호 쪽에 치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인장 보호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다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기에는 조금 마음에 걸린다.

이게 참으로 미묘한 관계다. 만약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나가서 싸운다고 해도, 뒤에서 인장이 뚫리면 같이 패배하게 되니. 정말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하긴 어차피 내가 나가서 싸우나. 나는 지키고 애들만 보내면 되지."

그래.

어차피 내가 싸울 방식은 정해져 있었지.

나는 죽어도 괴수와 일대일을 펼칠 생각이 없다.

파티 디펜스든 솔로 디펜스든 내가 할 건 하나다. 성벽 위에 올라가서 내 부하들이 잘 싸우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 그런 사람이 어떻게 싸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웃긴지 성벽 위로 올라가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