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편
<-- 성장 -->
이 엄청난 변화를 눈으로 지켜봤지만, 아직 보상 정리가 끝난 건 아니었다.
`강화 알약 - 마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신발과 `칼쿠르의 눈`이라는 팔찌도 성능을 확인해봐야 한다. 적어도 네임드 몬스터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니 꽤나 대단한 녀석이지 않을까 싶어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더불어 내가 필요했던, 그러나 포인트 때문에 투자하지 못했던 갑옷까지 나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죽을 고생을 하니 살 맛이 나는구나."
방금까지만 해도 죽음의 고비가 왔다 갔다 했던 것치고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죽 갑옷이었다.
[ 하급 가죽 갑옷 ]
: 특수한 소재로 제작한 가죽 갑옷. 통기성이 좋고 보온 효과가 있다. 가볍고 착용이 간편하다.
( 옵션 : 물리 저항 +1 )
"오!"
좋다.
설명대로 그저 옷 위에 걸쳐 입기만 하면 되는 구조에 그리 무겁지 않아 착용하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다.
게다가 더 눈에 띄는 것은 옵션에 붙은 `물리 저항`. 정확한 능력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이름에서부터 물리 저항이라고 나와 있으니 물리 공격에 한해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은 미소가 나오는 걸 감추지 못한 채 갑옷을 옆에 두고 신발을 잡았다.
[ 하급 민첩의 신발 ]
: 바람의 정령이 장난을 치던 신발. 이 신발에는 바람의 가호가 따라온다고 한다.
( 옵션 : 순발력 +1 / 바람 친화력 +1 )
"이것도 좋은데?"
옵션이 무려 두 개.
완전히 나한테 필요한 옵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다. 다만 나는 신발은 일단 챙겨 놓기만 했다. 지금 신고 있는 피로 회복이 붙은 신발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 굳이 바꿔 신고 싶지는 않았다.
마력과 관련된 옵션이라면 모를까. 바람 계열 마법사도 아니라서 딱히 막 필요한 타입은 아니다. 그래도 일단 챙겨놓으면 언제가 써먹을 곳이 있겠지.
"그럼..."
자연스레 시선이 팔찌로 향한다.
새하얀 눈을 닮은 순백의 팔찌. 사실 갑옷이나 신발도 좋지만…. 아까부터 내 신경을 잡아끄는 건 이것이었다. 네임드 몬스터를 잡고 나온, 심지어 네임드 몬스터의 이름이 박혀 있는 물건.
절로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흐흡. 후우. 확인해보자."
기대와 긴장으로 가득한 마음을 잠시 풀어준 뒤.
팔찌를 들어 올린다.
그러자 일반 장비와 다르게 반짝거리는 이름의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칼쿠르의 눈 ]
: 하얀 송곳니 칼쿠르의 눈을 닮은 팔찌. 하얀 송곳니 칼쿠르는 예로부터 신성시 되는 신수로 여겨졌다. 그 이유는 온몸을 뒤덮은 백색의 털 때문이기도 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한 번 마주치면 절로 물러나고 엎드리게 하는 칼쿠르의 눈. 이것은 그러한 칼쿠르의 눈을 직접 마주한 어느 대장장이가 그날을 잊지 못하며 백 일간 공들여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 옵션 : 순발력 +2 / 기술 - 위압 +1 / 기술 - 강타 +1 )
"..미친."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런 옵션이 붙어있을 줄이야.
"순발력 +2는 둘째치고, 기술이 두 개나 붙어있다고?"
위압과 강타.
아마도 칼쿠르가 사용하던 두 개의 기술일 것이다. 포효소리를 듣는 순간 몸을 굳어버리게 하는 위압과 본 쉴드를 종잇장처럼 찢어 넘기던 하얀 빛무리.
대박을 넘어 초대박의 수준이다.
강타야 나는 마법 계열이니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만, 위압은 분명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언데드처럼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경우에는 통하지 않는 제한적인 기술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앞으로 나타날 괴수들은 모두 생명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위압의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내가 그토록 바라는 생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래서.. 레이드 레이드 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찌를 내 팔에 찾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묘한 기분과 함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마 순발력 +2의 효과이리라. 나는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마지막 남은 보상으로 손을 움직였다.
마력 강화 알약.
이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사고는 싶었으니 더럽게 비싼 탓에, 그놈의 돈이 부족해 쳐다보지도 못했던 물건.
"바로 먹자."
더 기다릴 것도 없다.
나는 당장 알약을 삼킨 뒤 바닥에 주저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아아..`
호흡을 들이켜는 순간.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이 느껴졌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박동. 마력은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휘감아 가며 나의 갈증을 채워간다. 대략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눈이 떠졌을 때.
나는 웃고 있었다.
"2배..아니 거의 2.5배는 늘어난 것 같다."
고작해야 그 조그맣던 알약 하나로 마력양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더군다나 이건 장비처럼 반영구적으로 지속되는 힘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완벽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로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린다. 그 정도로 나는 이번 보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 내 눈앞으로 새로운 메시지들이 올라온다.
[ 솔로 디펜스 5단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
[ 인장에 변화가 생깁니다. ]
[ 플레이어와 인장의 연동을 시작합니다. ]
"응?"
파직-
새로운 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찰나.
왼쪽 손등에 하얀 빛무리가 스며들어온다. 그러더니 조금씩 손등 위로 그림을 그려가는데, 얼마 전에 인장을 새기며 만들었던 이미지와 흡사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똑같다.
방패 사이로 검이 세워져 있는.
그리고는 그 아래로 `5`라는 숫자가 새겨진다.
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
[ 앞으로 플레이어의 현재 솔로 디펜스 단계가 손등에 인장과 함께 표시됩니다. 이는 플레이어의 성적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
[ 새로운 기능이 추가됩니다.]
[ 이제 디펜스 챌린지 퀘스트가 없을 시. 플레이어의 자유에 따라 이전 단계를 재시도 할 수 있습니다. ]
[ 명령어 `재시도` ]
[ 단. 이미 섬멸한 `네임드 몬스터` 및 `보스 몬스터`는 출현하지 않습니다. ]
[ 또한. 재시도 단계에서는 최대 ` A rank ` 까지만 가능합니다. ]
뭐랄까.
특이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손등에 생긴 인장이야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크게 문제는 없다만. 새로운 기능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전 단계를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이라니.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원한다면 현재 클리어한 5단계까지는 원할 때마다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내가 5단계를 다시 한다고 해도 칼쿠르는 다시 만날 수 없다.
이게 대체 무슨 기능인 걸까. 아니 이런 기능을 왜 추가해주는 걸까?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아. 앵벌이?"
나도 모르게 게임 하던 시절 단어가 튀어나왔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노가다`라고 할까.
즉.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기초 자금이나 아이템 등이 부족해 제대로 플레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비교적 쉬운 던전이나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사냥하며 자금을 모아 아이템을 맞추는 일련의 행동을 뜻한다.
그러니까.
재시도란 기능은.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는 플레이어들이 자금이 부족해 장비가 부족한 경우를 막고자, 비교적 쉬운 단계를 재차 플레이하며 포인트를 모아 좋은 장비를 구매해 앞으로 마주해야 할 디펜스를 수월하게 클리어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대신 그렇다고 게임 밸런스가 무너질 정도가 되면 안 되기에 포인트가 가장 많이 떨어지는 S 랭크는 나오지 않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이런 기능까지 있을 줄이야."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플레이어를 위한 기능이라 반겨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재시도의 효능은 단순히 자금 확보뿐이 아니라 새로 얻은 기술이나 능력 등을 시험해볼 수련장이 될 수도 있다. 당장 1단계만 해도 디펜스 해야 할 괴수의 숫자가 적으니 어느 정도 능력만 갖춘다면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등을 연습하며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만든다.
나 같은 경우에도 칼쿠르의 눈으로 얻은 기술이나, 새로 진화한 마법들을 실험해볼 곳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말이지 어떤 놈이 이곳을 만들었을까 더 궁금해지네."
강제로 잡아와 놓고는 미안하니 이런 기능을 넣어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든 이 세계에 조금 더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어서 만든 기능인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반길만한 소식이었다.
"도움이 되긴 할 테니. 다음에 만나면 두 대 패기로 한 걸 한 대로 줄여줄게."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