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편
<-- 본 게임 시작 -->
쿠웅-
"끼잉.."
끝내 우두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등에는 두 개의 하얀 창이 박혀 있는 채로 붉디붉은 핏물을 바닥에 흩뿌리고 있었다.
콰득-
그 위로 보이는 건, 아직까지 살아남아 움직이고 있는 좀비였다.
스켈레톤들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 난 상태고, 좀비 한 구 역시 머리가 반쯤 부서졌다. 그나마 저 한 구가 살아남아 끊임없이 우두머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저것 역시 온전하진 않았다.
다리 두 짝은 어디 갔는지 없고, 팔은 너덜너덜해져서 들어 올리지도 못한다.
가슴 한켠은 움푹 패어 있어 만약 사람이었다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상태.
그러나 놈은 언데드.
역시 네크로맨서를 선택한 건…. 위대한 선택이었다.
"후아...그래도 중간에 창 삐끗한 것 때문에 죽을 뻔했네."
나는 우두머리 늑대가 죽어가는 걸 보며 그대로 성벽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법을 난사한 탓인지 숨도 거칠어졌고, 머리가 띵하다.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페널티였다. 언데드와 연계해서 잘 상대하다가 기분에 취해서 마법을 잘못 날린 것을 만회하려고 급하게 마법을 준비하다가 완전히 꼬여버려서 하마터면 마법 두고 창으로 싸워야 할 뻔했다.
"그래도 잡긴 잡았네…. 후아.."
운이 좋았다.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으니까.
〈 솔로 디펜스 1. 막아라 & 생존하라 〉
: 괴수들이 몰려오고 있다. 괴수를 막아내고 인장을 보호하라.
[ 남은 시간 : 5분 ]
( 11/11 )
-완료!
(Hidden)모든 괴수를 섬멸하라
-완료!
마침내 우두머리 늑대가 쓰러지고 퀘스트 창이 올라왔다. 처음 받았던 퀘스트와 생각한 대로 히든 퀘스트 하나가 클리어되었다.
이어진 보상 메시지.
[ 당신의 활약을 계산 중입니다. ]
"튜토리얼 같은 방식이 아니네?"
정산 방식이 달라졌다.
튜토리얼 때에는 여러 번의 퀘스트를 시행하고 그것을 종합해 정산했다면, 지금은 아예 단계별로 정산을 하는 것 같다.
[ 정산이 끝났습니다. ]
[ 당신의 성적을 수치화합니다. ]
[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당신에게 〈 A rank 〉 보상이 주어집니다. ]
[ 〈 A rank 〉 보상으로 ` 하급 장비 선택권 ` 이 주어집니다. ]
[ 〈 Hidden & Sub 〉 의 보상을 정산합니다. ]
[ 〈 Hidden & Sub 〉의 정산 결과. 1 개의 〈 Hidden Quest 〉 달성이 확인되었습니다. ]
[ 보상으로 `장비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
[ 귀환 하시겠습니까? ]
[ Y/N ]
( 솔로 디펜스는 최대 10회까지 연속 진행이 가능하며, 매 단계 클리어시 귀환이 가능해집니다. 만약 10단계까지 수행하였다면 그 이후 강제 귀환 됩니다. 단. 디펜스 진행 중간에는 귀환이 불가능하니 이점 유의하십시오. )
"오호?"
정산 방식만 달라진 게 아니라 아예 진행 시스템 자체가 달라졌다.
확실히 튜토리얼은 튜토리얼이다.
파티 디펜스의 경우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만, 솔로 디펜스는 확실히 시스템을 알겠다.
정리해서 요약하자면, 솔로 디펜스는 단계별로 구분해서 정산을 한다. 정산이 끝난 후 귀환이 가능하며 다음 단계 진행을 해도 된다. 1회 참가 시 최대 10단계까지 연속 진행이 되며 귀환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1단계 클리어 후 돌아가도 되고, 10단계까지 하고 돌아가도 된다는 소리.
"이러니까 진짜 디펜스 게임이라도 되는 것 같네."
현실판 디펜스 게임.
딱 그런 기분이다.
"일단 보상 수령부터 하고 봐야지."
달라진 건 시스템뿐이 아니다.
내 손에 쥐어진 두 장의 선택권.
하나는 전에 보았던 장비 선택권이고 다른 하나는 `하급 장비 선택권`이다.
[ 하급 장비 선택권 ]
: 마력이 깃든 하급 장비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선택권은 일회용이며 한 번 선택한 장비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런 건가."
즉. 하급 장비는 일반 장비에 비해 한 단계 높다는 뜻. 이른바 `하급 장비`란 매직급 아이템 이 정도라는 건가.
재밌는 설정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일반 장비 선택권이라고 해놓던가.
어쨌든 이번에 받은 물품은 훨씬 성능이 좋은 장비라는 것.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장비 선택권을 주머니에 넣으며 가볍게 `하급 장비 선택권`을 찢었다.
[ 하급 장비 선택 목록 ]
[ 1. 검 ]
[ 2. 도 ]
[ 3. 창 ]
[ 4. 활 ]
[ 5. 도끼 ]
[ 6. 단검 ]
.
.
.
.
"지팡이...지팡이.."
역시나 엄청난 가짓수.
나는 빠르게 목록을 아래로 내리며 `지팡이`를 찾았다.
[ 18. 지팡이 ]
`지식`으로 알게 된 마법계열 직업군의 무기.
흔히 게임에서 마법사들이 착용하는 이이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록을 누르니 형형색색의 지팡이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가장 기본적인 갈색의 나무 지팡이부터 빨갛거나 노란 지팡이들.
[ 하급 나무 지팡이 ]
: 소량의 마력이 깃든 나무에 특별한 기술로 제작된 지팡이
( 옵션 : 마력 + 1 )
[ 나무 지팡이 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 Y/N ]
"흐음.. 이런 거구나."
설명을 보니까 완전히 이해가 간다.
[ 하급 화염 지팡이 ]
: 소량이 마력이 깃든 나무에 특별한 기술로 제작된 지팡이
( 옵션 : 화염 친화력 + 1 )
[ 하급 물 지팡이 ]
: 소량이 마력이 깃든 나무에 특별한 기술로 제작된 지팡이
( 옵션 : 물 친화력 + 1 )
고를 수 있는 지팡이는 총 6개.
하급 목록이라 가짓수가 없는 것인지. 차례로 나무지팡이와 불, 물, 바람, 대지, 번개로 이루어진 지팡이였다.
나는 개중 고민하다가 나무 지팡이를 선택했다.
친화력 옵션이 붙어있는 나머지 지팡이는 아마도 불 마법사 같은 원소 계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네크로맨서. 저 다섯 속성과는 특별한 연계점이 없었다.
해서 딱히 고를 만한 게 나무 지팡이뿐이었다.
혹시 장신구 아이템도 있나 싶어 목록을 찾아봤는데, 하급 장비에 포함된 건 무기와 방어구가 전부였다.
하급 목록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예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이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파앗-
"호오."
나무 지팡이를 누르자 잠시 빛이 번쩍거리더니 이내 1m 정도 되는 길이의 나무 지팡이가 내 손에 들렸다.
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자 알 수 없는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마치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랄까. 왜 다른 사람이나 기계에 손이 부딪쳤을 때 전기가 튀는 것처럼, 나무 지팡이를 잡으니 그런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아쉽네. 아쉬워. S 랭크였으면 더 좋은 아이템을 얻었을지도 모를 텐데.."
정산이 끝나고 나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A 랭크.
이왕이면 튜토리얼처럼 S 랭크를 받았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A 랭크였다. S 랭크를 받기 위한 조건이 따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부족해서 받지 못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아쉽다.
"참…. 언제는 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며칠 만에..큭"
랭크에 대한 아쉬운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튜토리얼이 끝난 지 고작해야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랭크 보상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우습다. 물론 S 랭크가 나왔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벌써부터 `생존`에 대한 안도감보다 `보상`에 대한 아쉬움이 커질 줄이야.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기사. 살았으니까, 그것도 안전하게 살았으니까 이런 생각도 하는 거겠지?"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귀환 안내 메시지에 Y를 눌렀다.
더 진행할까 싶었지만 소모된 마력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굳이 의무 진행이 아니라면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게 더 크기도 했고.
[ 귀환을 시작합니다. ]
[ 소요 시간 : 10초 ]
이윽고 빛과 함께 익숙한 세상이 보였다.
*
[ 무덤지기의 공간 ]
"응?"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자취방이 아니라 무덤지기의 집.
"아. 그러고 보니까 여기서 이동했었지."
아무래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그런지 영 어색하다.
게다가 집 안도 아니고, 집 밖. 무덤으로 가득한 곳으로 귀환을 했다 보니 더더욱 어색한 느낌이다. 평소에 공동묘지라고는 거의 가지도 않았으니까.
"하아.. 일단 쉬자."
계속 있다 보면 익숙해질 거란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은 무덤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오면 꽤나 안락한 집이다.
마치 별장이라도 온 것 같은 기분. 오히려 좁은 자취방보다 넓기도 해서 이 집 하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먹을 게 없어서 좀 그렇긴 한.... 아 가져오면 되는구나."
집으로 들어와 잠시 쉬다가 배가 고파져서 먹을 걸 찾다 보니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이 집 안에 있는 것이라곤 간단한 집기와 커다란 침대 하나가 끝이다.
그래서 `휴식을 위한 공간` 정도로만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자취방에 있는 것들을 이쪽으로 가져오면 `휴식`이 아니라 충분히 `주거`가 가능한 공간이 된다.
이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참으로 멍청한 것 같다.
"쩝…. 아예 자취방을 빼버릴까."
생각해보면 굳이 자취방이 없어도 될 것 같다. 부모님에게는 다른 이유를 말씀드려야겠지만.
어차피 이제는 일상생활 따위는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수도 없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등. 여가 생활도 어려워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다고 해야겠지.
언제, 어디서 이곳으로 넘어오게 될지 모르니까.
"후우…. 한숨만 나오는구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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