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 재진입 -->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무덤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흑이 잔뜩 묻어있는 손은 거칠게 무덤을 열고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으음.."
반쯤 썩어있는 육체와 풍겨오는 악취.
처음 마주하는 좀비는 흔히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 똑 닮아있었다. 이어 스켈레톤과 망령도 소환해보니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켈레톤은 좀비처럼 무덤을 열고 나온 해골 형태였고, 망령은 희뿌연 영혼이 무덤에서 빠져나왔는데 크기는 내 머리만 했다.
좀비나 스켈레톤과 다르게 망령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고, 물리력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저 저렇게 떠다니다가 다른 마법으로 연계를 하거나, 아니면 정찰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어 본 스피어나 본 쉴드, 티스 같은 마법을 사용해보기도 하며 네크로맨시 마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끝낼 즈음.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메시지가 보였다.
[ 에픽 퀘스트 - 막아라 & 생존하라 ]
[ 퀘스트를 위해 `이동`을 시작합니다.]
[ 현재 소유 라이프 ]
[ 5 / 5 ]
[ 이동까지 남은 시간 : 10초 ]
순식간에 일어난 이동.
빛이 번쩍거리고 난 뒤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허름한 성이었다.
*
[ 디펜스 챌린지 모드를 적용 중입니다. ]
[ `상점` 기능이 추가 되었습니다. ]
[ `성 관리`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
[ `인장`을 설정해 주십시오. ]
"시작부터 요란하네."
성이 눈에 보인다 싶은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온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상점`이란 두 글자였다.
"상점?"
[ 상점 ]
: 디펜스 챌린지 내에서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성 관리 ]
: 각 플레이어에게 배정된 성을 관리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 인장 ]
: 디팬스 챌린지 내에서 각 플레이어를 나타내는 표식이며, 심장부입니다. 인장에 괴수가 닿을 시 라이프 차감이 일어납니다. 만일 소유 라이프 이상 괴수가 인장에 접촉할 시 인장은 파괴되며 플레이어는 `사망`합니다. 또한, 디펜스 챌린지에 참가하는 플레이어가 `사망`할 시에도 인장은 `파괴`됩니다.
디펜스 챌린지 내 가장 중요한 사항.
3가지.
상점과 성 관리, 그리고 인장.
특히 이 중 인장은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그래서인지 상점과 성 관리를 표시하는 메시지가 잠시 뒤로 사라지고, 인장이 앞으로 나온다.
[ `인장`을 설정해 주십시오. ]
[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 후 `저장` 키워드를 사용하면 플레이어 이윤의 `인장`으로 설정됩니다. ]
튜토리얼은 말 그대로 초보자들을 위한 도움 단계다.
그렇기에 튜토리얼 때에는 인장이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튜토리얼은 오직 플레이어의 생존과 사망. 두 가지 시스템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인장을 지정하는 것은 본 디펜스 챌린지에 참가하고 난 이후부터다.
즉. 튜토리얼 때는 플레이어 본인의 목숨만 챙기면 되는 게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플레이어 뿐 아니라 인장 역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흐음.."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튜토리얼을 진행하면서 디펜스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하긴 했다. 디펜스라고 하면 분명 뭔가를 지켜야 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때는 내 목숨을 제외하고는 뭔가를 지킬 대상이 없었으니까.
"인장이라.."
이제야 진정한 디펜스의 시작인가.
"모양은 대충 이렇게 하면 되나."
인장의 모양은 내가 원하는 그 어떤 모양이든 가능하다.
용을 떠올리면 용을, 방패를 떠올리면 방패를. 두 가지를 합치면 그 모양대로. 그래서 어떤 식으로 인장을 구성할까 하다가 그냥 심플하게 하기로 했다.
[ 이 모양으로 `인장`을 설정하시겠습니까? ]
[ Y/N ]
"이 정도면 충분하지."
[ `인장`이 설정되었습니다. ]
설정이 끝나자마자 성 중앙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땅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땅 위로 올라온다.
그 모습은 마치..
"심장?"
그렇다.
심장이었다.
쿵-
쿵-
그것도 실제로 뛰고 있는 붉은색의 심장.
".."
대략 1m 정도의 크기인 심장이 지상으로 완전히 올라오자 갈라졌던 땅이 순식간에 붙어 흔적을 지운다.
그리고 난 뒤 심장 중앙에 내가 설정한 인장이 새겨졌다.
카이드 쉴드라 부르는 방패가 먼저 새겨지고 그 위로 날카롭게 생긴 검 한 자루가 합쳐진 평범한 모양.
그러나 박동 중인 심장 중앙에 새겨지니 의외로 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저걸 지켜야 한다는 건가."
[ 플레이어 이윤의 인장 ]
[ 현재 보유 라이프 : 5/5 ]
인장까지 모두 설치되자, 그 위로 자그마한 메시지가 보였다.
보통 출력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메시지와 다르게 저 메시지는 인장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출력되는 것 같다.
"인장은 됐고, 나머지는 상점하고 성 관리네."
인장과 달리 두 기능은 대충 이해가 간다.
"상점"
가볍게 상점을 부르자 잠깐 빛이 번쩍하더니 어느새 나는 새로운 공간에 서 있었다.
"안녕하신가."
"...누구?"
"누구냐니. 이곳의 주인장이지."
온통 황금으로 도배라도 한 듯 반짝반짝하는 공간.
그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기른 고블린.
"나는 상인 중의 상인. `황금 고블린`의 칭호를 받은 이곳 `황금 상점`의 주인. 로우라고 하지."
로우라는 고블린은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곤 손을 들어 악수를 청했다.
고블린과 악수라니. 나는 멍한 얼굴로 악수를 했다.
로우는 악수를 끝내자마자 잠시 뭔가를 보는 듯하더니 내가 말을 걸었다.
"우선..플레이어 이윤이 현재 소유한 포인트는 7000포인트네."
"7,000포인트?"
"그래. 튜토리얼 랭크 정산 보상과 히든 퀘스트 보상을 종합한 결과지."
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 작게 〈 7.000 Dp 〉라고 표시가 뜬다.
아마도 디펜스 포인트의 약자가 아닐까. 그런데 포인트를 보고 있어도 저게 많은 수치인지 적은 수치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로우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S 랭크 보상이 5천 포인트, 히든 퀘스트가 각각 5백 포인트씩이지. 다음엔 포인트 획득 표라도 준비해주지."
"고마워."
"어쨌든 포인트 설명은 이만하고. 그래서 뭘 살 텐가? 아니면 뭘 팔텐가?"
얼추 설명이 끝나자 로우는 본격적인 상인의 모습을 보였다.
"사는 건 그렇다 치고, 파는 것도 가능해?"
"당연히. 디펜스 챌린지 동안 얻은 괴수의 시체나 가죽, 뼈는 돈이 되지. 또한, 괜찮은 무기나 방어구 역시 돈이 되지. 그렇다고 아무거나 받는 건 아니니 팔 게 있다면 미리 마해두게. 간단한 감정을 해야 하니까."
`사는 건 뭐든 가능하고?"
"물론. 없는 것 따윈 없다. 이것이 나 황금 고블린 로우의 모토다. 드래곤의 심장이라도 필요하다면 구해줄 수 있지.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으니 말만 하도록."
이 자식.
포부가 상당하다.
상점은 대충 예상한 대로라 딱히 어려운 점은 없다. 포인트 산정 방식은 다음에 표를 구해준다고 하니. 더 알아볼 건 없는 것 같다.
"그럼.. 뭘 살만한 게 있으려나…."
뭘 사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 하던 나는 로우를 보며 떠오른 질문을 얘기했다.
"혹시 내가 가진 포인트로 성을 수리하는 것도 되나?"
"당연한 걸 물어보는군. 다만 성을 수리하거나 재건축하는 건 상점이 아니라 성 관리 기능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게 필요하다면 그쪽으로 가도록."
"흐음. 그렇구먼. 그럼 구매는 다음에 하겠어."
"그런가?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사고는 싶지만, 성을 수리하는데에도 포인트가 들어간다면 지금은 그쪽에 먼저 투자를 해야 했다. 안 그래도 박살 난 성문이 그대로인 터라 어떻게든 처리가 필요했다.
로우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상점을 빠져나와 바로 성 관리 기능을 열었다.
[ 성 관리 ]
[ 1. 재건축 ]
[ 2. 수리 ]
[ 3. 추가 설치 ]
[ 보유 포인트 : 7.000 Dp ]
성 관리 기능은 별것 없다. 정말 딱 성 관리에 필요한 항목만 있었다.
개중 수리를 누르자 성의 이미지가 나온다.
[ 수리할 부분을 지정해 주십시오. ]
"여길 누르면 되나?"
성의 이미지 중 성문을 누르자 빨간색이 표시와 함께 메시지가 출력된다.
[ 수리 - 성문 ]
[ 필요 포인트 : 300 Dp ]
[ 수리하시겠습니까? ]
[ Y/N ]
"이런 식이구나."
굉장히 간단하다.
가볍게 Y를 누르자 소요 시간이라는 문구가 나오고 수리가 시작된다.
[ 소요 시간 : 30초 ]
고개를 돌려 성문 쪽을 바라보니 굉장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성문터 바닥에서부터 처음에 보았던 그 나무문이 생성되고 있다. 빛으로 된 입자가 조금씩 모여 성문의 형태를 만들고 채워진다.
30초가 지나자 처음 보았던 성문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좋은데?"
내친김에 재건축을 눌러보니 두 개의 카테고리가 뜬다.
[ 재건축 ]
[ 1. 성문 ]
[ 2. 성벽 ]
다시 성문을 누르자 마치 장비 선택권을 누른 것처럼 수십가지의 성문 이미지가 뜬다.
내 성에 설치된 나무문부터 쇠로 된 철문도 있고, 그 용도가 의아한 황금 성문도 존재했다. 이미지를 옆으로 넘길수록 처음 보는 형태의 성문이 나온다.
성벽도 성문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형태로 된 이미자가 나온다. 이리저리 이미지를 넘겨보다가 [ 성벽 높이 추가 상승 ] 이란 항목을 눌렀다.
[ 성벽 높이 추가 상승 ]
[ 1m 당 1000 Dp ]
[ 성벽 높이를 추가하시겠습니까? ]
[ Y/N ]
"비싸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이따 한 편 더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