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6화 (6/304)

6편

<-- 귀환 -->

"멧돼지?"

이번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멧돼지의 형상을 갖춘 괴수였다. 덩치가 상당한 것이 저놈에게 들이박히면 그대로 사망일 것 같은 기세다. 놈은 성벽 위에 나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콧김을 뿜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멧돼지는 다른 놈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는데, 놈이 먼저 달리니 나머지 네 마리의 멧돼지들 역시 미친 듯이 달려온다. 가히 전차 5대가 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젠...장."

놈들이 저대로 성문을 들이받으면..생각 할 것도 없이 단번에 부서진다.

아니 부서진다고 표현하는 게 차라리 아름다울 거다. 부서지다 못해 박살이 날 테니까. 그래서인지 나도 상당히 다급해졌다. 저대로 성문을 공격하게 둘 수는 없다.

"제발..!"

쿠웅-

도마뱀 사체가 성 밖으로 떨어지며 흙먼지가 인다.

시체를 굳이 성벽 위로 가져온 이유는 세 가지 효과를 얻어내고자 함이었다. 다음 괴수가 육식하는 놈이라면 먹이로 방심을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하나, 꼭 이놈을 먹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진로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둘. 마지막으로 성문을 공격하기 직전에 이걸 떨구면 시야라도 가리지 않을까 하는 게 셋.

이렇게 세 가지 효과를 노려보기 위해 굳이 시체를 끌고 올라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멧돼지라니. 물론 멧돼지가 아니라 멧돼지형 괴수니 육식을 할지도 모르겠다만. 우선은 진로 방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먼저 던져버렸다. 시야 방해를 하기에는 저 돌진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시체와 성문이 동시에 박살이 날 것 같았다.

"꾸이이이익!!"

"퀴이익!"

콰직!

콰직!

"아.."

그런 내 기도가 간절했을까.

정말 운이 좋게도 멧돼지들이 성문이 아닌 도마뱀 사체를 머리로 들이박았다. 순전히 운이었다. 일부러 사체를 세로로 떨어뜨려 성문을 조금이라도 더 가려보려고 했는데, 그 덕분에 한 놈은 괴물 쥐의 남은 시체에, 다른 하나는 도마뱀 사체를 치고 성문을 쳤다.

그래서인지 성문에 커다란 틈이 벌어지긴 했어도 당장 뚫리진 않았다.

"제발!!"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창을 쥐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단숨에 세 번을 찌르고 나서 피워두었던 화로(火爐) 1개를 던졌다. 숯불을 중간중간 섞어둔 덕분에 불은 충분히 붙은 상태.

화르르륵!

화륵-

불붙은 나무가 쏟아져 내리자 멧돼지들이 놀라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물은 동물이라고. 불을 무서워하긴 한다. 게다가 괴물 쥐를 들이박았던 놈의 등에 창을 몇 번 찔러넣은 터라 등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남은 화로(火爐) 역시 전부 던졌다. 화로(火爐)라고 하기엔 민망한 모닥불이지만, 가져온 장작을 전부 털어 넣은 것들이라 그런지 불이 제법 크다. 이 일을 위해 미리 성문 쪽에도 잔가지나 마른풀을 뿌려둔 상태였기에 불은 금세 번지며 아예 불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됐나..?"

그래서일까.

잠시 물러났던 멧돼지들은 성벽 위에 선 나를 향해 살기를 쏘아 보내면서도 쉽사리 공격해오진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 주면 정말로 좋을 테지만, 돌아갈 생각은 아닌 것 같고 그저 불이 꺼지면 재차 돌격해올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준비했던 계획은 모두 사용했다.

남은 거라곤 저놈들이 도마뱀 사체를 먹으며 방심을 하는 것인데…. 사실 지금 와서는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성문을 부수고 들어와 나를 공격하는 게 더 쉬울 테지. 튜토리얼의 실패 조건이 단순히 저놈들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성안으로 들어와 나를 죽이는 것인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있다가는 분명 튜토리얼은 물론 내 목숨도 안전하지 않다.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저놈들을 해치울 방법을.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저 숲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음...`

고민하는 사이 불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멧돼지들은 다시금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등을 찔린 놈은 당장에라도 달려올 것처럼 콧김을 뿜어냈다. 아마도 등을 찔린 것이 되려 놈의 화를 돋운 것 같았다. 우두머리 멧돼지 역시 발로 땅을 긁어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플랜 B로 이동할 수밖에.."

끝내 고민을 하던 나는 성벽에서 내려와 성안에 피워두었던 모닥불로 향했다.

상 안쪽에도 모닥불은 2개나 존재했는데. 나는 개중 하나를 성문으로 옮겼다. 정확히는 아침부터 파놓았던 성문 앞 구덩이였다. 성문이 뚫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아마도 저 우두머리가 한 번 들이박으면 성문이 박살 날 테지.

"한 번이야. 한 번.."

제발

우두머리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무조건 첫 번째는 우두머리여야 한다.

이윽고 성 밖에서 거친 괴성과 함께 땅이 쿵쿵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꾸이이이이익!!!"

.

.

.

.

콰앙!!

"퀴이이익!!"

그리고 보였다.

아름답게 박살 나는 성문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우두머리 멧돼지의 대가리가.

녀석은 부서지는 성문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다.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뛰어들어오는 놈을 보며 나는 창을 강하게 쥐었다.

"됐다!"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리고 놈의 얼굴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꾸이이이익!!"

화르르르륵!!

화르륵!

놈이 땅으로 꺼지는 동시에 가져온 모닥불을 전부 성문으로 던져 나머지 놈들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불은 크지 않지만, 성문 역시 그리 크지 않은 터라 충분히 길을 막아둘 수 있다.

이거를 위해 일부러 장작을 가져온 것이기도 하니까.

곧 불이 타오르며 사라진 성문 대신 멧돼지들을 막아주는 사이. 나는 곧장 구덩이 안으로 창을 집어넣었다.

콰직!

콰직!

"꾸이이익!"

"뀌이익!!"

창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 핏물이 허공에 튀어 오른다.

나무로 된 창대가 크게 휠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내지른 창이 깊숙하게 놈의 살갗을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손끝에 느껴진다. 놈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삽조차 없이 파낸 구덩이라 깊이은 겨우 2m도 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떨어진 상태라 놈은 꽤나 당황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어진 불길과 창날에 완전히 패닉에 빠졌는지. 구덩이에서 나올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고통 가득한 비명을 질러대는 게 전부였다.

성 밖에 있는 멧돼지들을 부르는 것 같으나, 저놈들은 성문 대신 나타난 불길에 막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확실히 불은 효과가 있었다. 그 사이 수십 번도 더 넘게 난도질을 당한 우두머리 멧돼지의 주둥이에서 힘 빠진 비명이 들렸다.

"뀌이이익..뀌익!..뀍!"

콰득!

콰득!

구덩이는 작고 놈은 크다.

구덩이를 가득 채우는 놈의 덩치에 창을 아무 데나 찔러도 놈의 비명이 들린다. 물 반 고기 반처럼, 어디를 찔러도 핏물이 튀어 오른다.

나는 거침없이 창을 찔러대면서도 바깥의 눈치를 보았다.

플랜 B. 이것은 구덩이를 사용한 `우두머리 암살 계획`이다. 처음 구덩이를 파 놓을 때부터 이것을 생각했다.

도마뱀 세 마리와 겨루면서 여러 마리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그 무리에 우두머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겨우 한 번의 교전뿐이었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그에 맞춰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성문이 뚫렸을 경우를 가정하고 구덩이를 팠다.

성문이 뚫리면 분명 우두머리가 먼저 들어오지 않을까 싶었다. 우두머리는 무리를 이끌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다. 무리는 우두머리를 따라 이동하고 우두머리가 멈추면 따라서 멈춘다.

그러니 아마도 성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와 구덩이를 경험할 놈은 당연히 우두머리였다. 아닐 가능성도 컸으나 운이 따랐는지 계획대로 구덩이 안으로 우두머리가 떨어졌다.

함정에 우두머리가 걸리는 동안, 불을 통해 사이를 갈라놓는 것도 플랜 B의 계획 중 하나.

플랜 A는 실패했지만, B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남은 것은 하나다.

`이놈이 죽고, 무리가 도망치는 것..`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우두머리가 함정에 걸려 죽은 뒤. 남은 놈들이 도망치거나 물러나야만 한다. 이미 성문마저 부서진 상황이라 만약 우두머리가 죽은 뒤에도 나머지가 공격해 들어온다면..

최후의 플랜 C. 성벽을 중심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새운 총 3가지 계획이었다.

"뀌이익!"

"꾸이익!!"

성 밖의 멧돼지들이 우두머리의 비명을 듣고는 급히 울어댄다.

우두머리와 무리 사이를 갈라두었던 불길이 서서히 꺼져가고, 드디어 성 밖에서 구슬피 울어대던 놈들이 조심스럽게 성안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보았다.

우두머리의 피를 진하게 묻힌 채로 창을 쥐고 당당히 서 있는 나를.

"...."

제발.

돌아가라.

돌아가 줘라.

오연한 눈빛으로 아직까지 살아 바동거리는 우두머리를 향해 창을 내리찍는다.

콰직!

"꾸이이익..!"

우두머리는 비명을 내지를 힘조차 없는지 이제는 몸을 바르르 떠는 게 전부였다.

"뒤지기 싫으면. 다 꺼져,"

나는 우두머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이미 사라져버린 성문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무리를 향해 말했다.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세 싸움이다. 물러나지 않으면 전부 이렇게 죽여버리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아. 본디 맹수의 가장 큰 능력은 피식자를 눈빛만으로 제압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다.

제압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만, 적어도 이 상황을 통해 나와 싸우면 죽을 수 있으니 돌아가라는 뜻을 담았다.

물론 속으로는 `제발 좀 꺼져줘`라고 수십 번도 더 외치고 있었지만.

"뀌이익.."

그래도 망설이고 있는 놈들.

나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다시 한 번 창으로 우두머리의 대가리를 정확히 찔렀다.

촤악!

그 바람에 핏물이 한가득 튀어 내 몸이 바닥이고 붉게 적셨다.

우두머리는 이 공격에 완전히 숨이 끊겼는지 바들바들하다가 축 늘어져 버렸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움찔-

그런 내 모습에 멧돼지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뒤로 몸을 돌린다.

`됐다!`

됐다.

기세 싸움에서 이겼다.

우두머리를 잃은 무리는 공황에 빠지고 도망친다. 플랜 B는 이것을 중심으로 계획했고 완전히,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허공에 새로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튜토리얼 4. 막아라 & 생존하라 〉

: 거점을 빼앗기 위해 괴수가 공격해오고 있다! 괴수를 막아내자!

[ 남은 시간 : 3분 ]

( 5/5 )

-완료!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힘을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