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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 챌린지-5화 (5/304)

5편

<-- 튜토리얼 -->

잠시 땅바닥을 노려보던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뭔가 떠오를 듯 말 듯한 느낌이었지만, 점점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고 성안에 있는 모닥불도 언제 꺼질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은 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따닥-

딱-

"어휴. 불 꺼질 뻔 했다."

예상대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모닥불로 향하자 불길이 처음보다 반 이상 줄어 있었다. 애초부터 작은 모닥불이었지만, 장작이 없던 상태다 보니 더 빨리 죽어가는 것 같았다.

급히 장작 더미를 풀어 괜찮은 나뭇가지 몇 개를 모닥불 안에 던져넣은 뒤. 불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슬그머니 시선이 도마뱀 사체로 향했다.

"..."

대가리 쪽에 수십 개가 넘는 구멍이 뚫려있어 눈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너덜너덜해진 사체.

"이걸 어떻게 먹지?"

한숨이 먼저 튀어나온다.

나는 비위가 강한 편이다.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없고, 대체적으로 잘 먹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머리가 걸레가 된 사체를 먹어야 한다고 하니 거부감이 먼저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하라면 해야지.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을 가져왔다.

저대로 구울 수는 없으니 해체를 해야 한다. 잠시 사체를 내려다보다가 배 부분에 창날을 박아넣은 뒤, 그대로 잡아당겼다. 칼이 있다면 가죽을 벗기는 게 좀 더 쉬웠겠지만, 창도 생각외로 날카로운 덕분에 가죽을 벗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뱃가죽을 벗겨내고 그대로 잡아당기면 질긴 가죽이 뜯기듯이 벗겨진다. 그렇게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부 벗겨내고 난 뒤, 배 부분을 완전히 가르면 그 안에 들어있던 내장이 쏟아진다.

내장을 완전히 비운 뒤, 물이 있다면 그 안을 한 번 씻으면 좋지만, 물이 없으니 그대로 적당량의 살점을 잘라내서 불에 굽는다. 누린내나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지만 당장 향신료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밖에 먹을 방법이 없었다.

치이이익-

"...음"

그렇게 뾰족한 나뭇가지에 고기를 꽂아 불 옆에 세워두니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구운 고기 특유의 향이 조금씩 펴진다. 그걸 보고 있으니 어느새 조용했던 배가 다시 요동쳤다. 분명 누린내가 가득한데도 당장 씹어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이것도 날 이곳으로 부른 놈의 농간인가 싶을 정도.

"괜찮겠는데?"

그렇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길 10분여.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속까지 익을 수 있도록 하며 구워내니 나름대로 괜찮은 고기가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실제로 먹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도마뱀 고기는 처음 먹어보지만, 조리만 제대로 한다면 조금 더 괜찮은 요리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맛은 구운 닭고기하고 조금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누린내도 심하지 않고 충분히 먹을 만했다.

그래서일까. 기름기 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그렇게 소리 지르던 배 속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아쉬운 게 있다면 여기에 탄산음료가 있었다면 환상이었을 텐데 하는 정도.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아. 잘 먹었네."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새 살점 한 덩이를 더 잘라다가 구워서 먹고 나서야 식사가 끝났다.

모닥불 안에 장작을 더 넣고 화력을 좀 높여주니 조금씩 몸이 노곤해진다.

"으으…. 자고 싶다.."

자고싶다.

배도 부르겠다 몸도 따듯하겠다 이대로 누우면 땅바닥이긴 해도 참 잠이 잘 올 것 같다.

다만…. 함부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게 함정이다. 자는 동안 또 튜토리얼이 진행이라도 되면 어쩌나. 이번에는 몇 마리가 몰려올지도 모르는데, 당장 괴물 쥐 한 마리만 다시 와도 자는 중이라면 위험했다.

잠들어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빨라도 대처가 늦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불안했다. 이대로 잠을 자도 될지. 아니면 밤을 새워야 할지.

"..."

모닥불 앞에 앉아 창을 쥐고 있으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더니만. 아무리 뜨려고 해도 어느새 눈이 감겨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다 꺼져가는 모닥불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보였다.

*

"읏차!"

아침 일찍.

죽어가던 모닥불에 급히 장작을 넣고 불을 살려낸 나는 아침부터 성문 앞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후아.. 삽이 없으니까 더럽게 어렵네."

다행히 자는 동안 튜토리얼은 진행되지 않았고, 지금도 상황은 같다.

그래서 나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른바 `함정 설치`를 위해서였다.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전까지, 언제 시작될지는 모르겠다면 나름대로 준비 & 대비를 하는 중이다.

함정이라고 해봐야 구덩이를 파고 그 안으로 떨어지는 놈을 공격하는 게 전부일 테지만, 적어도 그냥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분명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성문 바로 앞쪽 땅을 파는 중인데. 이게 쉽지 않았다.

현대에서라면 삽 한 자루만 있으면 몇 미터고 파고 내려갈 수 있겠지만, 여긴 아니다. 삽은커녕 삽과 비슷한 것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맨손으로 파고 내려가는 꼴인데. 그래서인지 고작 1m를 파고 내려가는 것도 더럽게 힘들었다.

"아오..진짜…. 뒤지겠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

한번 시작한 일은 끝마쳐야 하는 법. 그것도 생(生)과 사(死)가 달린 일인데. 힘들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벼운 포기가 인생과 삶의 포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죽도록 땅을 파냈다. 얼마나 파냈는지 아침을 넘어 점심쯤이 다 되어서야 원하는 깊이의 구덩이를 만들 수 있었고 나는 그대로 뻗어야 했다.

"하으…. 하…. 죽겠네. 어제 전투보다 이게 힘든 것 같으냐 왜..아흐.."

원하는 만큼 땅을 파낸 터라 만족한 얼굴로 누워서 쉬던 나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어났다.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 만들 것은 `화로(火爐)`다.

화로(火爐)라 함은 불 혹은 불씨를 담아두는 그릇이란 뜻으로, 이것을 떠올리게 된 것은 수성(守城)에 대해 떠올리면서였다. 보통 수성전 하면 화살을 날리거나 끓는 기름을 부어대며 적군을 막아낸다. 그때 그냥 화살을 날리기도 하지만 불을 붙인 불화살을 날리면 더 큰 파괴력을 보이기도 한다.

거기서 착안한 것이다. 괴수를 공격할 때 창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무기가 없다 보니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고 그 점에서 `불(火)`이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벽 여기저기에 모닥불을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 던지면 될 것 같네."

성벽에 대략 2개 정도 모닥불을 만들어 두고, 성문이 뚫리거나 성벽 위로 올라올 것 같다 싶을 때 불을 던져대면 좋은 수성 무기가 될 것이다.

대신 이 작전을 위해서는 숲을 갔다 와야 한다.

"역시 튜토리얼이 문제네."

숲을 다녀오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역시나 그사이 튜토리얼이 진행이라도 될까 봐 걱정이 된다.

"어차피 대기 시간이 있으니까. 여차하면 다 두고 돌아와야지."

그나마 튜토리얼이 바로 시작되지 않고, 3분이나 5분의 대기 시간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물론 다음 튜토리얼에 대기 시간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있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을 마치자마자 곧장 덩굴을 챙기고 창을 쥔 채 성문을 열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성문을 열고 바깥을 확인한 뒤, 그대로 숲까지 달렸다.

"빨리빨리빨리."

숲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적당해 보이는 장작을 챙겼다.

보통은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가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보니 괜찮은 게 있으면 그대로 나무를 꺾기도 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해선 안 될 행동이지만 당장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것저것 따질 수 없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양이 모이자 즉시 덩굴로 묶어 한쪽에 빼두고, 다시 장작더미를 모은다. 한 번에 다 챙겨갈 생각이었다. 무겁기야 하겠지만 여차하면 두고 도망칠 생각이라,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착착 계획이 해결되고 있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튀어나왔다.

이대로 튜토리얼만 시작되지 않는다면.

〈 튜토리얼 4. 막아라 & 생존하라 〉

: 거점을 빼앗기 위해 괴수가 공격해오고 있다! 괴수를 막아내자!

[ 남은 시간 : 3분 ]

( 0/5 )

"미친."

이놈의 튜토리얼은 내가 잘되는 꼴을 보기가 싫은 듯했다.

대기 시간은 3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나는 묶던 덩굴을 그대로 두고 이미 묶여있는 장작더미만 챙겨 성으로 뛰었다. 처음에는 둘 다 두고 갈 생각이었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더미를 다 들고 간다면 무리겠지만, 한 더미 정도는 충분히 끌고 갈 수 있다.

한 손에는 창을 쥐고, 나무 덩굴을 질질 끌며 성으로 뛰어들어가니 아슬아슬하게 1분 30초. 급히 성문을 잠그고 모닥불 안에 장작을 채워 넣었다. 이미 타고 있는 숯불은 그대로 들어 성벽 위로 올린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충분할 만큼 불을 피워놓았을 텐데.

그나마 처음 생각한 대로 모닥불을 두 개 정도 더 만들어두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장작더미를 가져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작은 모닥불을 피워내는 것으로 남은 시간이 모두 사라지고 어느새 허공에 검은빛이 떨어져 내린다.

`역시..`

나는 불을 지피다가도 고개를 돌려 검은빛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저 검은빛은. 분명 같은 곳에 떨어진다. 괴물 쥐도, 괴물 도마뱀들도, 그리고 지금 나타난 저것들도. 항상 같은 위치다.

`이번만 막으면 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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