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튜토리얼 -->
〈 튜토리얼 1. 막아라 & 생존하라 〉
: 거점을 빼앗기 위해 괴수가 공격해오고 있다! 괴수를 막아내자!
[ 남은 시간 : 5분 ]
( 1/1 )
-완료!
[ 튜토리얼 보상이 주어집니다. ]
"하아.."
얼마나 내리찍었을까.
괴물 쥐의 머리가 반쯤 박살이 났다. 한쪽 눈은 터졌고, 소름 끼치던 이빨은 전부 부러졌으며, 입에는 녹슨 철검이 박혀있었다.
"아 제길..우욱.."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메스꺼웠다.
죽기 직전까지 `키에엑` 거리며 괴성을 질러대던 놈.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능이 낮은 편이라 그런지, 죽기 일보 직전까지도 괴성을 지르며 성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 덕분에 놈을 사냥하는 건 솔직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약 조금만 지능이 있었어도 진입이 아니라 후퇴를 생각했을 것이고, 잠시 물러났다가 몇 번 성문을 들이박았으면 아마도…. 성문은 아작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놈을 상대할 방법은 전혀 없었겠지.
내가 뭐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닌데. 대형견만한 괴물 쥐를 상대로 싸울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아니 싸울 수는 있을 테지만 아무런 피해가 없을 리가 없겠지.
여차하면..
"죽었겠지."
확실하다.
죽었을지 모른다. 이런 외딴곳에서. 그렇다 보니 더 미친 듯이 철검을 휘둘렀었던 것 같다. 괴물 쥐가 죽은 후에도 내리쳤으니까.
그래도 철검이라고, 수십 번 내리찍다 보니 가죽이 찢어지긴 했다. 옷과 손에 잔뜩 튄 핏물이 그 증거였다.
"..."
찐득거리는 느낌이 찝찝하다 못해 꺼림칙할 정도.
나는 대충 옷에 비벼 손을 닦아냈다. 손에 묻은 피가 꽤 많아서 옷이 더러워지긴 했지만, 손에 묻은 것보다는 낫다.
"그 저나 저나.. 뭔 보상이 있다고 했는데."
얼추 정리가 끝나고 나니, 이제야 새로운 메시지에 시선이 갔다.
[ 튜토리얼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보상으로 `장비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
"장비 선택권?"
장비 선택권이란 단어에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손위로 황금빛 기류가 머물더니 뭔가를 만들어낸다.
[ 장비 선택권 ]
: 원하는 장비를 1개 선택할 수 있다. 선택권은 일회용이며 한 번 선택한 장비는 되돌릴 수 없다.
( 사용방법 : 선택권을 반으로 찢는다. )
"아.."
장비라니.
내 입에서 감탄과 탄식이 함께 튀어나온다.
괴물 쥐 같은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무기에 대한 감탄이며, 이 전투에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탄식이었다. 장비까지 쥐여줬는데 이대로 끝내진 않을 테니까.
그나마 장비라도 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씨바알..."
이딴 것 말고 집에 돌려보내 주기나 하지.
한숨이 가득 묻어나오는 욕을 해대며 `장비 선택권`을 그대로 반으로 찢었다.
화악-
그러자 마치 불이라도 붙인 것처럼 종이가 순식간에 타오르더니 눈앞에 메뉴판 같은 카테고리가 나타났다.
[ 장비 선택 목록 ]
[ 1. 검 ]
[ 2. 도 ]
[ 3. 창 ]
[ 4. 활 ]
[ 5. 도끼 ]
[ 6. 단검 ]
.
.
.
.
"많은데?"
생각보다 많다.
무기뿐 아니라 목록을 아래로 내려보면 방어구도 존재했다. 다만 1개만 선택할 수 있는 탓에 방어구보다는 무기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무기가 있는 상태로 방어구를 고른다면 모를까. 무기 없이 방어구만 입는 건 진퉁 고기 방패가 되는 셈이었다.
괴물 지의 입에 박혀 있는 녹슨 철검은 무기로 칠 수 없으니까.
[ 1. 검 ]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싶어 첫 번째 `검`을 누르자 그 아래로 다시 새로운 목록이 나왔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종류는 20개 정도였는데, 작달막한 숏소드의 형태부터 사람만 한 대검까지 있었다.
[ 철검 ]
: 적당한 무게감과 잘 벼린 칼날을 가진 양산형 철검
[ 철검 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 Y/N ]
"이런 식이구나."
방식은 간단하다.
원하는 무기를 누르면 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선택할지 말지를 고르는 메시지가 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N`을 눌렀다.
검이 좋고,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더불어 활 같은 특수 병기 역시. 활은 몇 번 양궁 경기를 본 게 전부다. 저런 걸 들고 괴물을 맞힐 수 있을 리가 없지. 단검은 더더욱 싫다.
저 짧은 단검을 들고 괴물을 상대해? 개소리다.
[ 3, 창 ]
처음부터 내가 고를만한 건 정해져 있었다.
[ 장창 ]
: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제작된 양산형 창.
[ 장창 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 Y/N ]
"당연히."
`Y`를 누르자 잠깐 반짝거림이 일더니 어느샌가 내 손바닥 위로 기다린 창이 생겼다.
길이는 대략 2m 정도. 날 부분은 30cm 정도에 나머지는 나무로 되어있는 평범하고 흔하게 생긴 장창이다. 보통 전쟁 때에 일반 병사들에게 쥐여주는 그저 그런 정도의 창.
검과 다르게 창은 그 종류가 몇 개 없어서 딱히 고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후욱-
훙-
"좋은데?"
녹슨 철검 따위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날카로운 창날이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굉장히 어중간하고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장비 선택이 끝나자 목록은 사라졌고, 새로운 메시지가 나왔다.
〈 튜토리얼 2. 막아라 & 생존하라 〉
: 거점을 빼앗기 위해 괴수가 공격해오고 있다! 괴수를 막아내자!
[ 남은 시간 : 3분 ]
( 0/3 )
"...쉴 틈을 안 주네."
무기 선택이 끝난 지 고작 10초가 지났을 뿐인데.
그새 새로운 튜토리얼 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다. 저런 괴물 쥐가 세 놈이나 온다면….
"끔찍하네…."
그래도 한 놈을 잡아서 그런지, 처음보다 공포는 덜 했지만 그렇다고 편한 건 절대 아닌 터라 일단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참. 저것도 챙기긴 해야지."
성벽으로 올라가려다 말고 성문에 틀어박힌 괴물 쥐의 사체에서 녹슨 철검을 뽑았다.
콰득-
"아오.."
생각보다 깊숙하게 박혀있었는지, 놈의 입에서 철검을 빼낼 때마다 이질적인 감각이 검을 타고 손으로 전해졌다. 이미 죽은 터라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오르진 않았지만, 마치 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목구멍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하아.."
눈을 질끈 감고 철검을 뽑아내 몇 번 허공에 털어낸 뒤, 내려두었던 창을 쥐며 성벽으로 향했다.
이 녹슨 철검은 최후의 보루다. 성벽 위에서 창으로 공격해대다가 혹시라도 근접전에 들어가게 된다면 저 철검이라도 써야 한다. 창을 배워본 건 아니지만 들은 건 있다.
거리가 좁혀지면 창을 쓰는 게 굉장히 힘들다. 창의 달인이라면 적과 거리가 가까울 때는 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게 그런 실력 따윈 없으니 가까워지면 철검으로 후려치고, 창대를 부러뜨려 단창 형식으로 써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홀로 중얼중얼하며 기다리는 사이,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지고 저 멀리 검은빛이 보였다.
"후우…. 해보자..해보자.."
순차적으로 떨어지는 검은빛을 보며 손을 강하게 쥐었다.
저걸 보고 있으니 또다시 공포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분명 처음과는 다르다. 잘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케엑!"
이번에 나타난 것은 1m에 가까운 도마뱀이었다.
어릴 적엔 몇 번 키워보기도 했던 도마뱀이라 쥐보다는 친숙하…. 지 않다.
"..저걸 보고 친숙하다고 할 수 가.."
나름대로 친숙하다면 친숙한 생물이었는데….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친숙함이란 게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언젠가 TV로 보았던 코모도 왕 도마뱀 같은 형상이라. 친숙은커녕 끔찍해 보인다. 입을 벌릴 때마다 보이는 날름거리는 혓바닥에 수십 개의 이빨. 뚝뚝 떨어지는 침까지.
저 이빨에 물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괴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지. 하고 생각해두었던 게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아..하아..하.."
억지로 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려본다.
다행히 괴물 도마뱀들은 그리 빠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천천히 움직이려는 건지 느긋해 보였다. 성벽 위에 나를 발견하고도 저리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 대체적으로 느긋한 편인 것 같았다.
"키에에에엑!!"
성벽 근처까지 다가온 도마뱀들은 잠시 나를 향해 괴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개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콰득!
"응?"
성문에 반쯤 박혀있는 괴물 쥐의 몸통을 씹었다.
....?
놈은 나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괴물 쥐의 몸통을 강하게 물어뜯었다. 그 바람에 핏물이 진하게 튀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괴물 쥐의 살점을 뜯어내고는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우두머리의 처음 물어뜯기를 기다렸던 나머지 두 놈이 역시나 괴물 쥐의 사체에 머리를 처박는다.
양쪽 다리를 붙잡고 힘을 주며 머리를 반대로 꺾자 두툼하던 다리가 그대로 뜯겨나가며 피를 뿌린다. 제각기 원하는 양만큼 뜯어낸 놈들은 그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
식사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어떻게 싸워야 할까 하고 긴장했던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놈들은 나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끊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장했던 내가 다 멍청해 보일 정도.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공격을 해야 하나? 아니면 기다려?`
본래 계획은 놈들이 성문을 공격하려 할 때 창으로 찔러 상처를 주려 했다.
그래서 일부러 공격 거리가 먼 창을 선택했고, 성벽이 그리 높지 않아서 다른 무기를 선택했더라도 충분히 공격 가능한 거리이긴 했다만. 최대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싶어서 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성문이 뚫리면 성벽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해볼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단.."
잠시 고민을 해보던 나는 철검을 내려놓고 창을 두 손으로 쥐었다.
`선수필승(先手必勝)`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다.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게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이니만큼 방심하고 있을 때 먼저 공격해서 한 놈이라도 숫자를 줄여놓아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먹이를 뜯는 순간..!`
괴물 쥐의 사체를 뜯는 순간.
그때가 내 공격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