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70화 (170/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70)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은 멀지 않았다. 문득,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지배한 탓에 유진은 파티원들을 재촉해서 이동 속도를 올렸다. 곧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이다. 가까워질수록 근원을 알 수 없는 불길함은 더욱 선명해졌다. 이윽고, 유진은 불길한 느낌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시체들이 입고 있는 거 왕립 기사단 제복인 것 같은데?

―ㄹㅇㅋㅋ.

―숫자 9가 적혀 있는 걸 보면 왕립 기사단에서도 9번대 소속인 것 같네요.

―왕립 기사단 9번대는 지금 란테르고 백작 호위 담당 아님? 쟤들이 왜 시체로 굴러다니지?

―지휘부가 공격당한 거 아님?

―아까 주둔지 구조 못 봄? 지휘부는 본진에서도 정중앙에 가까운 구역에 있어요.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데, 벌써 여기까지 뚫렸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죠.

―그렇다면 주둔지 공격은 양동이나 교란일 테고, 혼란을 틈타서 지휘부로 암살자들이 침투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청자들의 의견이었다.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의 호위역을 맡은 기사들의 시체가 주변에 가득했다. 기사들뿐 아니라 쓰러져 피를 흘리는 병사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기습 공격으로 인해 주둔지가 혼란스러운 틈을 노리고 지휘부에 다수의 암살자들이 침투한 상황인 것 같았다.

“주군,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드레인이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 주위에 가득한 적대적인 기척을 감지한 상태였고 이를 유진에게 알렸다. 유진은 말없이 수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파티원들에게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을 재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 바로 앞에 도달했다.

칠흑의 가죽 갑옷을 입은 이들이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을 포위한 채 기사들과 치열한 전투 중에 있었다. 심지어 천막은 거센 불길에 휩싸인 채 검붉은 연기를 토해 내고 있다. 왕립 기사단 9번대의 부대장, 다리크 벨키아 자작과 소수 기사들의 모습은 찾을 수 있었지만, 란테르고 백작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저 불타는 천막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진은 다급해졌다.

“드레인! 바이올라!”

“즉시 개입하겠습니다!”

“내가 견제할게!”

유진의 외침에 드레인이 혈마법으로 4개의 블러드 스피어를 소환하여 투척하고, 바이올라의 마나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화염구가 검은 옷의 암살자들을 덮쳤다.

“으아아악!”

“지, 지원군이다!”

갑작스러운 집중 공격에 당한 암살자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고, 왕실 기사들은 유진 파티라는 강력한 지원군의 등장에 격렬한 환호를 보냈다.

“바이올라! 계속 엄호 부탁해! 드레인, 너는 나와 함께 간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은 암살자들을 향해 달려가자 드레인이 뒤따랐다. 레이나는 신성 마법으로 유진을 보조했고 성기사이자 수습 성녀의 호위역에 있는 엘란은 레이나와 바이올라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검을 들고서 주위를 경계했다.

“막아라!”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암살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벨키아 자작과 왕실 기사들을 상대하는 이들을 제외한 10여 명의 여유 인원이 유진과 드레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날카로운 살기를 분출했다.

유진은 자신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며 무기를 겨누는 암살자들을 향해 매서운 시선과 함께 마나를 일으켜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섬멸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150포인트 이상입니다. 소환된 칼날 바람의 속도가 40% 향상됩니다.]

스킬이 완성됐다. 전쟁 중에도 ‘정령군주의 호흡’을 꾸준히 사용하여 마나와 속성 친화력을 부지런하게 올린 덕분에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는 150포인트 이상이었고 추가 특수 효과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바람의 칼날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암살자들의 몸에서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한 번의 스킬 사용으로 정예 암살자 6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면서 란테르고 백작의 천막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주군!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드레인이 나섰다. 그는 유진의 앞을 막아서는 암살자들을 향해 붉은 빛의 오러 블레이드를 마구 휘둘렀다. 그가 암살자들을 상대하는 동안, 유진은 불타는 천막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뿌연 연기로 가득한 천막 안의 상황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쓰러진 란테르고 백작의 목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의 끝을 밀어 넣으려 시도하고 있었다.

―란테르고 백작이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님?

―잘못하면 죽을 듯합니다.

―안 돼! 란테르고 백작 지켜요!

―사, 살려!

시청자들의 다급한 채팅이 올라오고, 그들보다 먼저 내부 상황 파악을 끝낸 유진은 신속하게 마나를 운용하여 공격 스킬을 펼쳤다.

[액티브 스킬, ‘성스러운 징벌’을 사용합니다.]

[빛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빛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250포인트 이상입니다. 징벌 신성력의 공격력이 25% 증가합니다.]

[전방에 징벌 속성의 신성력을 투사합니다.]

징벌 신성력이 암살자를 덮쳤다. 그는 신성력에 취약한 마족이었기 때문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노리던 암살자를 일격에 처치한 유진은 쓰러진 란테르고 백작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이내 화염과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어떤 기척을 감지하고서 말없이 성검을 꽉 쥐었다.

―방장님 뭐 하심?

―란테르고 백작 데리고 빨리 탈출해야 하는 거 아님?

―주변을 경계하는 걸 보면 적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ㅇㅇ 암살자가 더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지켜봅시다.

―신중한 게 좋지요.

채팅 창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유진은 기척이 이어지는 방향을 읽어 냈고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성검을 휘둘러 신성력을 쏟아냈다.

“큭!”

화염 속에서 마족 암살자가 튀어 나왔다. 조금 전에 상대했던 이들과는 다르게 그의 경지가 높다는 사실을 유진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기운을 숨기고 있어서 경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A+랭크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최대 전력으로 간다.’

유진은 결단을 내렸다. 그의 몸에서 투기와 함께 진한 마나가 꿈틀거린다.

[액티브 스킬, ‘단공참’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낮습니다.]

[승격에 대한 보정으로 숙련도 부족을 극복합니다. 출력을 조정합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20%입니다.]

최대 전력의 20%를 사용한 ‘단공참’이다. 눈앞의 마족 암살자가 이변을 눈치챘을 땐 이미 푸른 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상체를 깊숙이 베어 들어가고 있었다.

“크, 크윽!”

고통의 신음과 함께 마족 암살자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기습에 당했다고는 하지만 빠른 대응 덕분에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는 화염 너머로 모습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유진을 향해 수백 개의 독침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펼쳐진 기습 공격이다. 예측하지도 못했고, 독침에는 맹독이 발라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마족들이 즐겨 사용하는 온갖 종류의 사악한 저주와 예리한 오러가 깃들어 있었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방어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유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도구의 방어 기능을 발동시켰다.

[아티팩트, ‘보호의 약속’을 사용합니다.]

실드가 독침을 막아 냈다. 오러와 맹독 그리고 저주가 담긴 수백 개의 독침을 모두 방어하는 건 불가능했고 ‘보호의 약속’이 만들어 낸 실드는 곧 무너졌지만 유진이 란테르고 백작을 데리고 천막을 빠져나올 시간 정도는 벌어 줄 수 있었다.

란테르고 백작과 유진을 눈앞에서 놓친 A+랭크의 마족 암살자는 분한 마음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불타는 천막을 빠져나온 유진은 란테르고 백작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독에 중독된 것으로 보였고 출혈도 심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다. 지금 이곳에는 정식 성녀에 가장 가까운 수습 성녀, 레이나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벨키아 자작이 왕실 기사들과 함께 암살자 잔당들을 처치하는 동안 레이나는 란테르고 백작의 체내에 침투한 독을 해독하고 신성력을 사용하여 그의 부상을 치료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그런데, 왜 깨어나지 못하는 겁니까?”

유진의 물음에 레이나는 지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맹독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언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지 쉽게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레이나의 한숨 섞인 대답에 유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많이 피곤한 일들이 발생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 * *

란테르고 백작이 의식을 잃고 난 직후, 유진은 그의 신변을 호위 담당자인 벨키아 자작에게 인도하고서 주둔지를 공격 중인 블러드 서클의 군대를 격퇴하기 위해 용병들과 합류했다. 그는 200여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주둔지 북쪽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했다.

주둔지 북쪽을 공격 중인 블러드 서클의 전투 부대는 정예였고,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해당 구역의 방어 부대를 신속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주둔지 북쪽의 방어는 성전군이 담당하고 있었고, 전장에 도착했을 땐 백색 교단의 충직한 검이라 불리는 성기사, 델로우 빌크론이 블러드 서클의 최정예 전투 부대를 상대로 힘겹게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진은 망설임 없이 용병들과 함께 전장으로 난입했다. 세부 지휘는 애꾸눈의 백인 대장에게 맡기고 유진은 최정예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맹공을 버텨 내고 있는 델로우를 돕기 위해 달려갔다.

[액티브 스킬, ‘신성 징벌’을 사용합니다.]

[스킬이 해제될 때까지 신성력의 징벌 속성이 강화됩니다.]

[빛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빛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250포인트 이상입니다. 징벌 신성력의 공격력이 25% 증가합니다.]신성 징벌을 사용하여 전투력을 강화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징벌’ 스킬을 사용하여 대량의 징벌 신성력을 투사하자 델로우를 포위한 블러드 서클 최정예 마족들의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마나를 성검에 주입하고 신성력으로 변환하여 또 그걸 대량으로 사용하는 귀찮은 과정과 지독한 비효율의 소모였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포위에서 벗어난 델로우가 크게 포효하며 대검을 휘두르자 최정예 마족들의 몸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유진 경! 고맙습니다!”

델로우의 감사에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눈앞의 마족들을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