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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67화 (167/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67)

드레인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드레인은 평범한 인간에 비해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다. 그는 별도의 마법적 도움 없이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로 순식간에 가속하여 델키오를 향해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혈마법으로 완성된 4개의 블러드 스피어가 드레인을 뒤따랐다. 붉은 흔적을 남기며 날아가던 4개의 블러드 스피어는 곧 드레인의 손짓에 따라 델키오를 향해 창끝을 겨눴다. 4개의 붉은 창이 자신을 겨누자 델키오는 능숙하게 암흑 마나를 일으켰다.

검붉은 암흑의 기운이 델키오의 창끝에서 분출됐다. 짙은 어둠을 머금은 밤의 파도가 드레인을 덮친다. 드레인의 혈마법, 블러드 스피어들은 칠흑의 장막을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큭!”

4개의 블러드 스피어가 모두 가로막혔지만, 드레인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짧은 신음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검신에 깃든 붉은색의 오러 블레이드에 다량의 마나를 주입하여 일시적인 강화 효과를 만들었다.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을 최대로 강화해서 암흑 마나의 장막을 통째로 절단할 의도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암흑 마나의 방벽은 드레인의 예상보다 훨씬 견고했다. 붉은색의 오러 블레이드는 결국 칠흑의 장막을 가르지 못했다.

드레인의 힘찬 검격은 암흑 마나의 물결에 튕겨 나갔고 그로 인한 충격으로 드레인은 가속을 잃었다. 그의 매서운 돌진이 힘을 잃자 델키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드레인을 향해 흑색의 창을 내찔렀다.

“크악!”

드레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평범한 창이 아니다. 흑색 창에는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잔혹한 저주가 부여되어 있었고, 드레인은 끔찍한 통증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판단했고, 서둘러 자신의 왼쪽 어깨를 관통한 창대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너 이 자식?”

크게 당황한 음성의 주인은 당연히 델키오다. 뱀파이어의 신체 능력은 별도의 강화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수준을 상회한다. 드레인은 뱀파이어 중에서도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성기사 클래스의 강력한 전투원이다.

창대를 붙잡은 두 손은 흔들림 없다. 델키오는 자신이 경솔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찌르기가 아니라, 베기 공격으로 재빨리 치고 빠졌어야 했다. 지금에 와서 다른 스킬을 사용하여 창대를 빼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주군! 지금입니다!”

드레인이 고함을 내지르자 숨죽인 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유진이 델키오의 우측에 나타났다. 그는 성검을 휘둘렀고, 델키오는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 창을 포기하고서 황급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신속하게 뒤로 물러나며 허리에서 팔 하나만 한 길이의 단창을 빼 드는 델키오, 그를 향해 유진이 달려들며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단공참’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낮습니다.]

[승격에 대한 보정으로 숙련도 부족을 극복합니다. 출력을 조정합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10%입니다.]

매서운 검격이 델키오를 덮쳤다. 그는 부무장인 단창으로 대응했지만, 주무장에 비해 낮은 숙련도 탓에 유진의 ‘단공참’ 스킬을 완전히 방어하지 못했다.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왼쪽 어깨에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었고,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델키오 경! 엄호하겠습니다!”

A+랭크의 악마 소환사, 리베르의 외침이다. 그가 소환한 A랭크의 악마 기사 넷이 델키오가 재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유진의 앞을 막아섰다.

―악마 기사다!

―A랭크가 넷이라도 방장님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임.

―ㄹㅇㅋㅋ.

―방장님은 A+랭크에다가 성검도 있고, 용사 클래스라서 A랭크 악마 기사 넷으로는 시간 벌기도 힘들어요.

―공격!

―스킬 한 방으로 시원하게 쓸어버립시다.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유진! 엄호할게!”

후방의 바이올라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스태프를 들어 올리자 수십 개의 화염구가 생성되어 악마 기사들을 노렸다. 시야가 혼란스러워진 틈에 유진은 다시 한 번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섬멸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100포인트 이상입니다. 소환된 칼날 바람의 속도가 30% 향상됩니다.]

날카로운 칼날 바람을 여러 개 날려 보내는 스킬인 ‘섬별의 바람’은 근접한 다수의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에 적합한 스킬이다.

바람의 칼날들이 악마 기사들의 몸을 찢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A랭크의 전투력을 지닌 강자들이다. 한 번의 스킬로 제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진은 ‘섬멸의 바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신성 징벌’을 사용합니다.]

[스킬이 해제될 때까지 신성력의 징벌 속성이 강화됩니다.]

이번에는 ‘신성 징벌’이다. 악마들에게 신성력은 극독이나 다름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유진이 성검을 휘두르자 뻗어 나온 순백의 광휘가 악마 기사들의 육신을 마구 찢었다.

“크하악!”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악마 기사 넷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힘없이 쓰러진다. 유진은 그들의 시체를 넘어 델키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미 그는 재정비를 끝냈지만, 유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향해 힘차게 성검을 휘둘렀고, 신성력의 칼날 폭풍이 휘몰아치며 날카로운 예기를 발산했다.

델키오 또한 암흑 마나를 일으켜 대항했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며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주, 주군!”

“드레인! 뒤로 물러나!”

유진은 드레인에게 물러나라 지시하고는 신성력의 출력을 높였다. 성검이 격동하며 백색의 기운을 뿜어냈고, 마침내 델키오의 암흑 마나를 압도했다.

“내, 내가 밀린다고?”

델키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더 밀리면 위험하다. 델키오는 이를 꽉 악물고서 뒤로 빠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백색의 폭풍이 휩쓸었다.

“리베르 경? 철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한데 저들을 놓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철수의 의사를 나타내는 델키오를 보며 리베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섣부른 철수로 인한 후폭풍을 우려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리베르와 달리 델키오는 당장이라도 후퇴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에게는 철수를 결정할 수 있는 지휘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쫄았네.

―ㄹㅇㅋㅋ.

―방장님이 워낙 세니까, 어쩔 수 없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 까만 창쟁이도 A+랭크 아닌가요?

―A+랭크라고 해서 다 동격은 아니죠.

―A+랭크도 초입이나 중견 같은 단어로 세부적으로 수준을 나눌 수 있습니다.

―방장님은 고인물이니까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맹약 기사단에서도 간부의 위치에 있는 리베르와 델키오가 유진을 상대하면서 두려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묘한 희열과 충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끼려고 게임 스트리밍을 감상하는 것일 테지.

“리베르 경,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는 주 무기를 잃었고, 용사의 무력은 예상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델키오 경, 그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로웨스 자작과 그의 선봉대를 전멸시키라는 게 상부의 명령입니다. 불복종은 용납되지 않을 겁니다.”

델키오는 여전히 당장 철수하기를 원했지만, 리베르는 상부의 명령을 이유로 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델키오 경, 위치를 사수하세요. 상부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철수할 수 없습니다.”

리베르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이는 리베르였기 때문에 호위역에 불과한 델키오는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지만, 델키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에서 두 자루의 단창을 뽑아서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쥐었다.

“마나는 충분합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소환 마법진을 완성할 시간이죠.”

“제가 최종 방어선이 되겠습니다.”

“좋습니다.”

리베르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준비 중이던 또 하나의 소환 마법진을 완성했고, 공간이 갈라지며 수십 명의 무장한 악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기사가 다섯에 병사가 60여 명이었다. 어두운 공간의 끝에서 달려 나온 악마들은 일사불란하게 방어 진영을 갖췄다. 이어서 30여 명의 맹약 기사들까지 합류하여 일백에 가까운 군세를 형성하게 되었다.

“저들을 뚫어야 합니다.”

유진이 다소 지친 음성으로 말했다. 쉴 틈 없이 전투가 이어질 뿐만 아니라, 부상도 누적된 상태라서 많이 지쳐 있는 것이었다. 중얼거림에 가까운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다이크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후방의 소환사로군.”

“그렇습니다. 마나 홀의 크기를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환수들이 늘어날 테고, 결국 저희가 불리해질 겁니다.”

“속전속결이 답이겠구먼.”

“로웨스 자작님의 선봉대는 고립된 상태로 장시간 전투를 벌인 탓에 다들 지쳐 있습니다. 저희 용병들이 퇴로를 열어야 합니다.”

“묘책이라도 있는가?”

“제가 소환사를 처치하겠습니다. 엄호해 주시죠.”

의견 교환이 끝나고 다이크는 용병 백인 대장들에게 작전 내용을 전파했다. 용병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포위당한 채 피해만 누적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격!”

다이크의 고함이 울려 퍼지고, 용병들이 돌격을 감행했다. 악마병들이 무기를 휘둘렀고, 그들의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마법 빛 줄기들이 교차했다.

“크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유진은 피바람이 부는 전장을 관통하여 악마 소환사, 리베르를 향해 달렸다. 그동안 리베르는 악마 기사들과 악마병들을 추가 소환했고, 다수의 군세가 견고한 방어 진형을 구축했다.

[액티브 스킬, ‘섬멸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100포인트 이상입니다. 소환된 칼날 바람의 속도가 30% 향상됩니다.]

스킬의 발동과 함께 칼바람이 뻗어갔다. 악마병들의 머리가 대지 위로 떨어져 뒹군다. 단숨에 20여 명의 악마병을 참수하고 그들의 시체를 뛰어넘은 유진의 앞에 악마 기사 셋이 나타났다.

그들은 교묘한 합동 공격을 펼쳤으나, A+랭크이자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게임의 고인물 스트리머인 유진을 저지하지 못했다.

―이제 창쟁이만 남았나요?

―ㅇㅇ 창잡이만 잡으면 됨.

―가즈아!

―기대가 됩니다.

채팅 창이 소란스러워지고, 그들의 예상대로 델키오가 유진의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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