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65)
40장. 답답한 대치
2,000여 명 규모의 지벨 영지군이 란테르고 백작이 지휘하는 토벌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지벨 영지군의 합류로 인해 토벌군의 군세는 고용된 용병들을 포함하여 3천이 넘게 되었고, 란테르고 백작은 군의 재정비가 끝나기 무섭게 적의 방어선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명했다.
지속적인 정찰로 맹약 기사단의 방어선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모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때 망설임은 없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란테르고 백작은 총공세를 명할 때 패배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맹약 기사단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고는 하지만, 지벨 영지군의 합류로 토벌군 군세가 우세를 점할 정도로 막강해졌기 때문이었다.
방어선에 대한 정보 수집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적을 모조리 격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패배는 없을 것이다, 란테르고 백작은 그리 생각했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야영지의 본군을 전진 배치했다. 그동안 ‘절명의 숲’에서 계속된 전투로 인해 피로도가 높은 왕국 중앙군을 대신하여 로웨스 자작의 지벨 영지군이 최전방에 배치됐다.
로웨스 자작은 지벨 영지군의 선봉대 지휘를 자처했다. 다수의 군사들이 전선에 넓게 전개되었다. 당장이라도 명령이 하달되면 즉시 공격에 나설 기세였다. 그동안 계속된 전투로 지친 왕국 중앙군과는 달리 이제 막 합류한 지벨 영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유진과 다이크가 지휘하는 용병대는 2선에 배치됐다. 그들의 역할은 예비대로 유사시에 선봉의 지벨 영지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지벨 영지군이 토벌군에 합류하고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공세 계획을 세운 란테르고 백작은 정오를 넘긴 시각에 적 방어선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명령을 내렸다.
붉은 신호탄이 하늘로 솟구치고 로웨스 자작이 지벨 영지군 선봉을 이끌고 적 방어선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총공격 명령이다! 전군! 전진하라!”
로웨스 자작이 선봉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군을 이끌고 돌격을 시작했다. 2천의 지벨 영지군에서도 선봉대의 숫자는 500여 명이었다. 선봉대는 적의 기세를 제압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벨 영지군 안에서도 정예로 분류할 수 있는 군사들로 편성되었다.
선봉대 전력의 절반은 중무장한 기사들이었다. 500여 명 규모라고는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정예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로웨스 자작은 개전과 동시에 어렵지 않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방어선에 배치된 맹약 기사들 또한 공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맹약 기사단의 간부이자 방어선의 지휘관인 베켄은 토벌군이 공세를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기 무섭게 자신의 대검을 챙겨 들고 전장으로 향했다.
로웨스 자작의 선봉대가 베켄의 직속 부대와 전투를 시작했다. 베켄의 직속 부하들은 로웨스 자작의 선봉대를 방어선 깊숙한 지점으로 유인하는 것과 동시에 후속 병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전투 부대를 투입했다.
사소한 승리에 취해 베켄의 직속 부대를 추격하던 로웨스 자작은 너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걸 인지하고 선봉대를 정지시켰지만, 이미 퇴로는 차단된 상태였다.
“자작님! 퇴로를 잃었습니다! 저희 선봉대는 지금 적진에 고립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신속하게 퇴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추격은 무리입니다! 방어 진형을 갖추고 아군 후속 전투 부대의 지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견고한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선봉대 소속의 백인 대장들이 로웨스 자작에게 진언했다. 다행히 로웨스 자작은 어리석고 멍청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인정이 빨랐다. 그는 백인 대장들의 조언을 적극 수용했다.
추격을 완전히 포기하고 전진을 멈췄다. 그리고 방어 태세를 갖춘 채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후방의 적들과 교전하는 동시에 부대 내의 마도사에게 본대로 지원을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 다행히 로웨스와 교전 중이거나 인근의 적들 중에서는 수준 높은 마도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통신 마법 방해는 없었다.
토벌군 본대를 지휘하던 총사령관, 란테르고 백작은 로웨스 자작과 선봉대의 지원 요청을 확인했다.
“정규군 주력 부대는 모두 적 세력과 전투 중입니다. 현재 선봉대가 고립된 위치와 가장 가깝고 즉응 지원이 가능한 무장 집단은 유진 경의 용병군이 유일합니다.”
부관이 란테르고 백작에게 보고했다. 당장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부대는 유진의 용병군이 유일하다는 말에 란테르고 백작은 고민 끝에 유진과 400여 명의 용병군에 선봉대 지원을 명령했다.
예비대 역할로서 1.5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진은 고립된 선봉대를 지원해 달라는 란테르고 백작의 지시에 서둘러 다이크와 용병들을 소집했다.
“고립된 선봉대를 지원하라는 지시입니다. 정찰 보고에 의하면 맹약 기사단 진영에서 설치한 장애물과 함정이 많아서 기병 돌파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진의 설명에 백인 대장급 용병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면 보병만으로 방어선을 뚫고 적진으로 침투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애꾸눈 백인 대장이 놀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목에는 최소 A랭크의 경지를 가졌으며, 용병 길드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증표인 ‘금패’가 걸려 있었다.
“정확합니다. 저희 용병군은 도보로 적 방어선을 돌파해야 합니다.”
“유진 경, 적의 방어선은 꽤 견고합니다. 보병만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애꾸눈의 백인 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이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로 유진을 응시했다.
“놈들의 영역에 진입하는 즉시, 머리 위로 온갖 종류의 공격 마법이 쏟아질 겁니다. 우리 숫자가 1천이 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400여 명인데 기동력 없이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구체적인 설명이었다.
―나름 일리 있는 듯?
―그럼 이제 방장님의 결정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보병만으로 방어선 뚫기? 이건 진귀한 광경이죠.
―근데 기병으로 돌파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해서, 보병만으로 가야 할 걸요?
―장애물이 많으면 오히려 군마는 방해가 될 수도 있음.
―2222222.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이에 유진은 애꾸눈의 용병 백인 대장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위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진격할 때 토벌군 차원의 엄호가 있을 겁니다. 마도사 부대가 화력 지원을 할 것이고, 정예 기병대가 좌측과 우측에서 교란을 위해 전투를 유도할 예정입니다.”
유진의 설명이 끝나자 그제야 애꾸눈의 백인 대장은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그들은 맹약 기사단의 방어선을 향해 전진했다. 란테르고 백작이 사전에 약속한 대로 기병대가 교란전을 펼쳤고 후방에서 마도사 부대가 강력한 공격 마법으로 용병군의 진격을 엄호했다.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지면이 솟구친다. 연쇄적인 폭발에 적진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방어선으로 접근하는 유진과 용병들을 발견하고는 전열을 가다듬었다. 방어선의 최전선에 배치된 맹약 기사들은 대부분 C랭크 수준의 하수인들이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그들은 신속하게 견고한 방어 진형을 갖추고, 용병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용병군의 마도사들이 공격 마법을 퍼부었지만, 맹약 기사들 측에도 마도사들의 수가 적지 않아서 쉽게 전열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곤란하네.”
다이크의 말에 유진은 조용히 성검을 뽑아 들고서 앞으로 나섰다.
“바이올라! 마법 한 방 부탁해!”
“오케이!”
바이올라는 대답과 함께 적의 방어 진형을 향해 화염구를 난사했다. 연이은 화염구 세례에도 불구하고 적의 마도사들은 실드를 중첩하는 것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A랭크 마도사의 화력을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맹약 기사단의 마도사들이 지친 틈에 유진은 다량의 마나를 소모하여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오러 블레이드에 화염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정령검이 발동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액티브 스킬, ‘원소 참격’을 사용합니다.]
[‘정령검’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 오러 블레이드의 속성은 ‘화염’입니다.]
[‘화염’ 속성의 오러 블레이드의 참격을 전방에 투사합니다.]
스킬의 추가 발동과 함께 오러 블레이드의 참격이 맹약 기사들의 방어 진형을 덮쳤다. 거대한 화염이 일었고, 방어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쏴라!”
애꾸눈 백인 대장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지르자 용병들이 적들을 향해 석궁이나 활을 발사했다. 화살 세례와 함께 마도사들의 공격 마법까지 연쇄적으로 쏟아지자 견고했던 방어 진형은 완전히 박살 났다.
“길을 열게!”
적이 혼란에 빠진 틈에 바이올라가 마법으로 장애물 일부를 파괴하고 진격로를 확보했다. 기마대가 돌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수의 보병이 진격할 만한 길이 열리자 다이크가 용병들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난전이 시작되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30분간의 전투 끝에 다이크와 용병들은 200여 명의 맹약 기사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 하수인 계급이었지만, 훌륭한 성과였다.
“이겼다!”
“승리했다!”
“와아아!”
함성을 내지르는 용병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방어선의 이변을 눈치챈 적이 보낸 증원이 도착하기 전에 고립된 선봉대를 구출해야 한다.
“이동합시다.”
유진의 말에 용병들이 신속하게 전진했다. 그들은 서둘러 선봉대를 구출하고 이탈할 예정이었지만, 적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로 보이는 기병대가 달려와 용병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성가시게 했다.
“50명이 안 되는 숫자로군. 기동성을 바탕으로 지연전을 벌일 생각인 것 같네.”
“저도 다이크 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유진 경, 괜찮다면 100명만 빌려주게나. 내가 여기 남아서 놈들을 견제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유진은 다이크에게 1개 백인대를 남겨 주고 선봉대 구출을 위해 다시 적진 깊숙이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