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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59화 (159/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59)

루메이 후작가의 가신이자, 루메이 제 2기사단을 이끄는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휘하의 기사들과 영지군에서도 선별된 1천의 정예들로 편성된 군대를 이끌고 ‘절명의 숲’에서도 위험하다고 평가받는 중심부 지역으로 진입했다.

그들의 역할은 ‘절명의 숲’ 중심부 지역에 집결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블러드 서클’의 군대 규모를 파악하고, 그들이 외곽부로 진군하는 걸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할리드 벨로인 남작이 지휘하는 군대가 ‘절명의 숲’ 중심부에 진입하고 이틀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그들은 ‘블러드 서클’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블러드 서클의 단장 직속 돌격대 지휘관 중 하나이자 A+랭크 경지에 있는 중급 마족, 파이크가 직접 300여 명의 정예 마족들을 이끌고 야밤에 할리드 벨로인 남작의 군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야영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야습이다!”

“적의 공격이다!”

“대, 대응하라!”

어두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려진 붉은색의 신호탄이 사방에 환한 빛을 흩뿌리는 것과 동시에 루메이 영지군의 야영지 전체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전열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방어 진형을 갖춰라!”

“진형을 갖추고 응전해!”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병사들이 방어 진형을 형성하기 위해 무기를 집어 든 채 다급하게 뛰어다녔고, 힘겹게 만들어지고 있는 전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휘관들의 독려와 고함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이 사악한 암흑의 불꽃으로 더욱 검게 물들었다. 블러드 서클의 마족 마도사들은 뛰어난 실력과 풍부한 실전 경험을 보유한 전투원들이었다.

마족들의 집단에서는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최하급’조차 평균적으로 B랭크에 해당되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들의 군대는 다소 적은 인원에 비해 전체적인 전투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광역 공격 마법이 루메이 영지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암흑의 불길에 휩쓸린 병사들은 고통을 토해 내며 죽음을 맞이했다.

루메이 영지군이 힘겹게 완성한 방어 진형은 블러드 서클의 마족 마도사들의 강력한 광역 공격 마법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 방어 진형이 무너지자, 야영지 측면에서 진영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고, 어둠 속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마족 기사단이 웅장한 뿔 나팔을 불며 돌격을 감행했다. 그들은 중급 마족, 파이크가 직접 지휘하는 기사단이었다.

“적의 기사단이다!”

루메이 영지군 진영에서 누군가 목이 터져라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뒤늦게 지휘부 천막에서 할리드 벨로인 남작이 뛰어나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한 자루의 장검을 들고 있을 뿐,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워낙 갑작스러운 야습이라, 벨로인 남작 외에도 불침번과 야간 경계를 맡은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들이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지 못한 채로 적들과 맞서야 했다.

“제 2기사단! 나를 따르라!”

벨로인 남작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마족 기사단의 앞을 막아섰다. 그가 검을 뽑아 들자 휘하의 기사들 또한 용기를 내서 합류했다. 말에 올라탈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기사들은 창과 방패에 의지한 채, 적들과 맞섰다.

그 모습을 본 마족 기사들은 말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돌격 속도를 더욱 높였다. 매서운 기세였다. 순식간에 두 진형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고 이내 거센 충돌이 일어났다.

“크하아악!”

“버, 버텨!”

고통스러운 비명이 난무하고 마족들의 기병 창에 기사들의 몸이 꿰뚫렸다. 단 한 번의 돌격으로 30여 명이 넘는 수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50여 명에 불과했다.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뺨에 잔뜩 묻은 피를 닦아 내고서 전열의 재정비를 명령했다.

기사들은 그럭저럭 진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병사들은 하나둘씩 패주하기 시작했다. 아군의 피해가 늘어나면서 사기가 바닥을 치자 살기 위해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걸 선택한 것이다.

“어리석은 놈들.”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분노의 감정을 집어삼키며, 탈영병들을 욕했다. 실로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곳은 ‘절명의 숲’이다. 당장 전장에서 살아서 빠져나간다고 해도 몬스터들로 가득한 ‘절명의 숲’에서 평범한 일개 병사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탈영하면 당장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지만, 죽음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벨로인 남작님!”

다급한 음성과 함께 누군가 달려왔다. 그는 루메이 영지군의 보병대를 지휘하는 백인 대장 중 한 명이었다.

“후퇴해야 합니다! 벌써 절반 이상의 병사들을 잃었습니다! 더는 못 버팁니다!”

백인 대장이 다급한 음성으로 진언했다. 그의 말대로 벌써 절반 이상의 병력을 상실했다. 적의 야습은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루메이 영지군의 피해는 빠른 속도로 누적되고 있었다.

“후, 후퇴한다!”

결국 벨로인 남작은 전투를 포기하고 군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적들과 난전 상황이던 군대가 일제히 후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중급 마족, 파이크가 직접 지휘하는 100여 명 규모의 돌격 기사단이 루메이 영지군의 후미에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파이크의 돌격 기사단은 전원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보병이 대부분인 루메이 영지군에 비해 기동력이 우수했다.

“신속하게 후퇴하라!”

벨로인 남작이 거친 음성으로 소리쳤다. 루메이 영지군은 서둘러 전장을 이탈하려고 했지만, 파이크의 돌격 기사단이 후미를 붙잡고 늘어져서 부대 전체가 이탈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저희 부대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남작님께서는 본대와 함께 후퇴하십시오.”

용기 있는 백인 대장 한 명이 자신의 부대와 함께 남아서 시간을 벌겠다고 선언했다.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본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특단의 결정 없이 어중간하게 후퇴하다가는 전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모두 전멸할 것이다. 파이크의 돌격 기사단이 집요하게 추격하고 있으니, 소수의 병력에게 지연전을 명령하고 그들이 추격대의 발목을 붙잡는 동안에 본대는 신속하게 전장을 이탈하는 게 오히려 냉정하지만 현명한 판단이 될 것이다.

“그대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피눈물을 흘리며, 수십 명의 부하들을 남겨 둔 채 말머리를 돌렸다. 부하들의 희생 덕분에 벨로인 남작이 지휘하는 본대는 무사히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다.

전장을 이탈한 그들은 곧바로 ‘절명의 숲’ 외곽에 위치한 전진 기지로 물러나 루메이 영지군의 1천 5백 병력과 합류했다. 본래 블러드 서클 소유의 요새였던 토벌군 전진 기지에는 1천 5백의 루메이 영지군 외에도 1천의 왕국 중앙군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1천의 루벤 왕국 중앙군을 지휘하는 인물은 아셀 로데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작 작위의 ‘중앙 귀족’이었다. 그는 B랭크의 경지에 오른 기사로 무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전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우수한 지휘관이었다.

1천의 보병과 50여 명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왕국 중앙군 21부대는 그렇게 아셀 로데크 남작의 지휘 하에 ‘절명의 숲’ 외곽부에 위치한 1번 전진 기지를 향해 이동 중에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1번 전진 기지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늦은 시각이라 야영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경계 근무 배치를 위해 각 백인대의 지휘관들과 논의 중이던 로데크 남작은 문득,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마도병단장.”

“네, 남작님.”

“결계 마법은 제대로 작동 중인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계 마법은 현 시간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로데크 남작의 물음에 중앙군 21부대의 마도병단장은 별문제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

“다시 점검해 보겠습니다.”

마도병단장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중앙군 21부대의 마도병단은 고작해야 20여 명 규모였기 때문에 1천여 명 규모의 야영지 일대에 결계 마법을 유지하는 데에만 대부분의 인적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중앙군 21부대의 마도병단장이 다시 로데크 남작을 찾아왔다. 여유로웠던 처음의 모습은 사라지고 돌처럼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건가?”

“네, 아무래도 결계 마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히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오늘 밤은 결계 마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좋지 않군.”

마도병단장의 보고에 로데크 남작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야간 경계를 2배로 강화하게.”

로데크 남작은 야간 경계 태세의 강화를 위해 보초를 2배로 늘리라 지시했다. 야영지 곳곳에 다수의 경계 인원이 배치되었지만, 로데크 남작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득,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산책을 위해 천막을 빠져나온 그는 어두운 밤하늘을 꿰뚫고 날아오는 수백 발의 불화살을 목도했다.

“저, 적습이다!”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고, 로데크 남작은 서둘러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종을 울렸다.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방어 태세를 갖추는 동안에 휴식 중이던 이들이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도병단장!”

“저는 여기 있습니다!”

“적의 규모는?”

“마나가 혼란스러워서 탐색 마법으로 적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중앙군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적들은 기세를 가다듬고서 2차 공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불화살 세례가 아니라, 광역 마법 공격이었다. 땅을 뚫고 암흑의 화염이 솟구치고, 하늘에서는 수십 갈래의 전격이 쏟아졌다. 루벤 왕국 중앙군 부대 중에서도 마도사 전력이 약한 편에 속하는 21부대는 적들의 강력한 마법 화력를 막아 내지 못했다.

마법 전투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중앙군 21부대의 마도사 전력의 8할이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는 하급 마도사 2명과 마도병단장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마도병단장은 중상을 입고서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남작님!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퇴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군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못 버팁니다!”

절망적인 보고가 잇따랐다. 전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마법 공격으로 중앙군 21부대의 기세가 많이 꺾이자 칠흑의 갑주를 입은 검은 기사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검은 깃발을 앞세운 채 로데크 남작의 부하들을 베고 찔렀다.

핏줄기가 솟구치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로데크 남작은 전술적인 머리가 뛰어난 지휘관이었지만,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중앙군 21부대는 ‘절명의 숲’ 외곽부에서 전멸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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