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49)
“쳐라!”
흑발에 창백한 얼굴을 가진 하급 마족이 고함을 내지르자 또 다른 하급 마족이 휘하의 최하급 마족들과 함께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최하급 아홉에 하급 둘.’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유진은 차갑게 식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족 놈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파악이 끝난 순간 유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커헉!”
예리한 칼날이 정면에서 달려오던 마족의 복부를 깊게 베었다. 비명 소리와 함께 피가 튀고 마족이 거대한 대검과 함께 힘없이 쓰러졌다. B랭크의 경지에 있는 최하급 마족이었다.
뺨에 묻은 마족의 피를 닦아 낸 유진은 이어서 좌측을 노리고 달려오는 최하급 마족 넷을 향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에 연쇄적인 검격이 마족들을 덮쳤다.
고작해야 B랭크의 전투력을 지닌 최하급 마족들은 A+랭크의 경지에 근접한 유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일검에 쓰러졌다.
―빠르다! 정확하다! 치명적이다!
―역시 방장님이 최고임!
―전투 장면이 가장 재밌는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임.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단숨에 마족들을 처치하면서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유진의 활약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소수의 시청자들은 포인트를 후원하기도 했다.
포인트가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유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최하급 마족들의 몸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마, 망할!”
부하들의 틈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A랭크의 하급 마족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부하들이 너무 무력하게 쓰러지는 바람에 유진의 빈틈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일격에 처치하고 다음 마족을 친다.’
유진의 눈동자가 바로 앞에 하급 마족에게 향했다. 그는 오러를 머금은 창을 들고 있었고 견고한 방어 태세를 갖춘 채 유진이 먼저 접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조건 일격으로 끝낸다.’
유진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마나를 끌어 모아 정령기사의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오러 블레이드에 화염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바람 속성의 정령으로 공격할까 하고 잠시 고민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화염 속성의 정령검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마족에게는 바람보다 화염 속성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정령검’의 스킬을 사용하기 무섭게 화염의 정령이 오러 블레이드에 깃들었다. 화염 속성의 정령에 대한 친화력은 이제 보정까지 더하면 220을 넘는 수치다. 그래서 그런지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된 화염 정령은 하급 마족을 압도하는 매서운 기세를 발산했다.
“무, 무슨 놈의 정령이 이토록 매섭다는 말인가!”
유진에 대해 잘 모르는 하급 마족은 생전 처음 보는 매서운 기세의 정령검에 경악했다. 아주 오래전, 정령기사의 명맥이 희미해지면서 제대로 된 정령검을 다루는 이들은 현저하게 줄었다.
정령을 다루는 이들 중에서도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정령사는 여전히 굳건하게 이어지고 있었으나 정령기사의 전승은 미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작금에 이르러서는 정령사와 정령기사의 경계가 희미해지기도 해서 구별을 잘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족들 대부분은 제 1차 마왕 전쟁에서 인간 측 진영에서 활약했던 정령기사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제 2차 마왕 전쟁 때 정령기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1차 마왕 전쟁 때 활약했던 영웅들 중에서는 정령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오! 방장님이 정령검을 사용하셨다!
―죽겠군, 저 녀석(중2병스러운 목소리 톤으로).
―처형 브금 아무거나 틀어 주세요.
―대충 칼춤 추는 이모티콘.
―다 쓸어버립시다!
―방장님의 검술 실력은 대륙 제이이이일!
정령검의 발동과 함께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가고 유진은 이어서 하급 마족 따위는 단번에 반으로 갈라 버릴 만한 일격을 위해 다음 스킬을 준비했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이 ‘단공참’로 승격됩니다.]
안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일검필살’을 자주 사용한 덕분에 ‘단공참’으로 승격되었다. 승격 조건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급 마족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강력한 공격 스킬을 확보해서 좋았다.
단공참은 공간을 자른다는 이름에 걸맞은 강력한 검격을 휘두르는 스킬이다. 최대 출력으로 사용한다면 마나 소모는 크지만, 공간조차 참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A랭크 스킬이다.
잠깐 딜레이가 발생했지만, 유진은 침착하게 ‘일검필살’ 대신에 ‘단공참’으로 부드럽게 사용을 전환했다.
[액티브 스킬, ‘단공참’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낮습니다.]
[승격에 대한 보정으로 숙련도 부족을 극복합니다. 출력을 조정합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5%입니다.]
‘단공참’은 ‘일검필살’보다 마나 소모가 크다. 때문에 유진은 정교하게 출력을 조절하여 최대의 5%로 설정하여 스킬을 발동했다.
“커, 커헉?”
공간조차 참하는 일격이다. 5%의 출력이라고는 하지만 정령검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하급 마족이 받아 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다. 화염 속성의 오러 블레이드는 하급 마족의 창끝에서 일렁이는 오러를 베는 것과 동시에 나아가, 하급 마족을 반으로 갈라 죽였다.
―반갈죽!
―새로운 스킬이네요!
―오! 이 스킬 멋짐!
―일검필살을 꽤 많이 사용해야 단공참으로 승격될 텐데, 방장님 대단하시네요.
―설명 요정 등장! 단공참은 A랭크 스킬 중에서도 단일 대상 공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래서 보스전이나 중간 보스급 레이드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나 소모가 큰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고마워요! 설명 요정!
‘단공참’은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스킬이지만, ‘일검필살’을 승격시켜서 습득하는 게 이점이 더 많다. 다만, 승격 조건이 까다로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감탄한 것이다.
“큭!”
남은 한 명의 하급 마족은 동료가 처참하게 반으로 갈라져 죽는 모습을 두 눈에 담기 무섭게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유진은 끝까지 쫓아가서 그의 목을 쳤다.
“끄, 끄르르르륵!”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하급 마족의 숨이 끊어졌다.
“유진 경이 길을 열었다! 돌격하라!”
델로우의 외침에 백색 교단의 성기사들이 전진했다. 두꺼운 철 방패와 장검 혹은 둔기를 든 성기사들의 돌격에 마족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적의 전열이 무너졌다!”
“뚫고 들어가!”
“사악한 마족들을 전부 벌하라!”
성기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장검과 둔기를 휘둘렀다. 마족들의 목을 베고 머리를 박살 냈다. 이미 전열이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마족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성채의 내성까지 성기사단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망할! 백색 교단의 사냥개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마족들의 지휘관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내성의 성벽 위로 마족들이 올라섰다. 마족 마도사들이 공격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빛이여!”
“여신님의 이름으로!”
빛이 모여 마법의 불꽃과 얼음 송곳의 소나기를 막아 냈다. 성기사들은 생각보다 잘 싸웠다. 하지만 백색 교단 측이 잡은 승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성기사들이 내성의 성문을 넘은 순간, 성채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급 마족으로 이 성채의 성주인 웨이하른이었다.
“어딜 감히 백색 교단의 하수인 놈들이 위대한 블러드 서클의 영지를 침범하느냐!”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붉은 핏물의 파도가 성기사들을 덮쳤다. 신성 마법으로 보호막을 전개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서른이 넘는 성기사들이 강력한 산성을 뒤집어쓴 것처럼 끔찍한 비명을 토해 내며 녹아내렸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크하악!”
“전열을 유지하라!”
성기사들은 무너진 전열을 가다듬었다. 철 방패를 앞세우고 다시 나아가려 했지만 이제 웨이하른이 나섰으니 전진은 결코 쉽지 않았다.
디레이즈는 부상을 입은 탓에 웨이하른을 상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A+랭크의 경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1차 마왕 전쟁과 2차 마왕 전쟁에서 살아남았을 정도로 숙련된 베테랑인 웨이하른을 상대하기 위해 유진 파티와 델로우 그리고 레이나와 엘란이 앞으로 나섰다. 성기사단의 지휘는 후방에서 디레이즈가 맡았다.
―웨이하른에 대해 아시는 분?
―블러드 서클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캐릭터에요.
―일단 A+랭크에서 좀 센 편임.
―결코 약한 캐릭터는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설명 요정님들!
웨이하른은 블러드 서클에서도 나름 유명한 캐릭터다. 네임드나 주연 수준의 인지도는 아니었지만, 절명의 숲에서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메인 이벤트를 진행하다 보면 높은 확률로 마주치게 되는 캐릭터였다. 당연히 유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주의하세요. 웨이하른은 광역 혈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족입니다.”
유진이 경고했다. ‘그걸 어찌 압니까?’라는 질문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기에 그런 의문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침묵과 긴장을 먼저 깬 쪽은 웨이하른이었다. 그는 다른 악역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혓바닥이 길지 않았다. 대화 대신 선공을 선택한 웨이하른, 그는 검을 휘둘러 혈마법을 발휘했다. 지면을 뚫고서 예리한 기운을 머금은 피 보라가 솟구쳤다.
“빛이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레이나와 엘란이 힘을 합쳐서 신성 마법으로 보호막을 만들었지만, 허무하게 찢기고 말았다. 하지만 델로우가 대검으로 신성력의 폭풍을 일으켜 웨이하른의 혈마법을 상쇄했다.
“유진! 내가 엄호할게!”
바이올라의 외침이 들여왔다. 그녀는 강력한 화염 마법을 캐스팅했다. 웨이하른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불덩이가 쏟아졌다. A랭크 마법이다. 하지만 웨이하른은 혈마법으로 방패를 만들어서 바이올라의 마법을 방어했다.
“고작 이 정도냐! 마도사!”
웨이하른이 이죽거린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짜 공격은 따로 있었으니 유진과 드레인이 좌우에서 웨이하른을 압박했다. 드레인이 검이 웨이하른의 좌측을 노렸고, 유진은 거의 동시에 10% 출력의 ‘단공참’으로 웨이하른의 우측 방향에서 목을 노렸다.
“어림없다!”
외침과 함께 충격파가 일었다. 드레인과 유진의 몸이 강한 반발력에 튕겨 나갔다.
―웨이하른 꽤 세네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방장님도 쉽게 못 이기실 듯.
―그러게요.
―역시 고인물 절단기다운 모습이다.
시청자들의 차가운 반응 속에서 유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