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46화 (146/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46)

“성검은 블러드 서클의 마족들이 확보했을 거예요. 마족은 여신의 힘이 구현된 성검을 사용할 수 없으니 아마 성채 중 한 곳에서 엄중하게 관리하여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제 1차 마왕 전쟁에서 탈주한 녀석들이라 결과적으로는 마왕군으로 복귀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결코 쉽게 성검을 내주지 않을 겁니다.”

유진의 설명이 끝나자 델로우와 레이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조했지만, 디레이즈는 여전히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신경 쓰지 않고 싶지만, 디레이즈의 언짢은 태도는 노골적이었다.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유진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이 분노했다.

―디레이즈, 저러다가 대형 사고 칠 것 같음.

―동감입니다.

―대형 사고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네요.

―갑자기 고구마를 집어 먹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이다! 사이다는 어디에 있습니까?

―방장님, 당장 디레이즈 골통 박살 내면 멈추지 않는 포인트 후원 세례로 혼내 드리겠습니다.

―디레이즈 박살 내고 빌런 루트 탑시다!

대놓고 유진을 견제하는 듯한 디레이즈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빌런 루트를 타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레이즈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계속 이러면 조만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네.’

시청자들의 불만이 쌓이는 걸 방치하면 결국 방송에서 하차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이런 과정이 누적되어 결국에는 포인트 후원이 줄어드는 결과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블러드 서클 놈들이라면 필히 저항할 테지.”

델로우가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옆에서 잠자코 있던 디레이즈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유진 경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블러드 서클에서 철 도끼 혈맹을 공격하여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성검을 빼앗았다는 확증은 아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날카롭다. 유진한테 기선 제압당하고 델로우한테 경고까지 먹은 탓에 험악한 기세를 풍기지는 않았지만, 칼날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미약하지만 적의도 묻어 나왔다. 유진이 중앙청 출처의 정보를 살짝 무시하기는 했지만, 설마 같은 편끼리 의견 대립을 일으키는 걸 넘어서 약한 적의까지 드러내다니 솔직히 말해서 당혹스럽다.

일전에 디레이즈의 정보 창을 확인했었는데 그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맹약 기사단의 소속 여부만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디레이즈의 설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유진은 다시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여 ‘주시자의 눈’을 발동했다. 그러자 눈앞에 디레이즈의 정보 창이 생성되었다.

[교단의 충직한 전투사제 디레이즈(A)]

―디레이즈는 어린 시절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고서 백색 교단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는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중앙청의 눈에 띄어서 전투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구원해 주고 삶의 희망을 부여해 준 중앙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청을 조금이라도 모욕한다면 같은 편이라고 해도 그의 적의를 사게 될 것입니다.

디레이즈의 정보 창이었다. A랭크의 경지에 있다고는 하지만,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에서 비중이 높은 캐릭터가 아니라서 그런지 설정 자체는 단순했다. 정보 창에서 저렇게 명시할 정도면 중앙청에 대한 디레이즈의 충성심이 매우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분간 귀찮아질 수도 있겠어.’

정보 창 정독을 끝낸 유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디레이즈가 두려운 건 아니지만,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올라온 것이다.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짧게 고민했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디레이즈의 개입으로 유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이를 관망하고 있던 델로우가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디레이즈 경.”

“네, 델로우 경.”

“경이 전하고 싶은 뜻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다만, 공격적인 언사는 최대한 자제해 주길 바랍니다. 유진 경과 우리는 적이 아니라 협력 관계에 있는 아군입니다.”

델로우가 근엄한 표정으로 질책했다. 디레이즈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디레이즈 경께서는 제 추측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유진이 말했다. 디레이즈의 연이은 공격에 짜증이 가득했지만, 다회차 플레이로 숙련된 고인물의 경지에 올라 있는 유진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숨기는 것에 능숙했다. 디레이즈는 유진이 등급은 높지만, 경험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도발을 계속하면 유진을 분노하게 만들어 유리한 이점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유진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자 당황한 쪽은 디레이즈였다. 유진을 몰아붙였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궁지에 몰린 건 디레이즈였다. 여기서 유진이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한다면 디레이즈의 입지는 많이 좁아질 것이다.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디레이즈의 물음에 유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제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말씀들을 들어 보니까 중앙청에서는 철 도끼 혈맹이 건재하며 성검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 같더군요.”

유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델로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일종의 확인 절차였다. 다행히 델로우는 유진의 의도를 눈치채고서 곧바로 동조해 주었다.

“정확하게 파악하셨습니다.”

정확한 파악이라 역시 예상대로다. 현시점에서 백색 교단의 중앙청이 절명의 숲에 대해 입수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분명하다. 루베니아 연대기 게임에서도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다회차 플레이어라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론 생략하고 바로 직설하겠습니다. 지금 철 도끼 혈맹의 세력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철 도끼 혈맹의 세력이 온전치 못하다. 그 말에 델로우가 반응했다. 유진의 발언은 중앙청이 수집한 정보 대부분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델로우는 중앙청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엄연히 여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백색 교단의 성기사였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델로우는 유진을 향해 말없이 설명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다시 한 번 설명 드리지만, 처음에 성검을 발견한 이들은 철 도끼 혈맹이 맞습니다. 애초에 백색 교단의 군대가 성검을 유실한 장소가 철 도끼 혈맹에 소속된 오크 부족의 영토였기 때문이죠.”

유진은 잠시 설명을 멈추고 다른 이들을 살폈다. 디레이즈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고 레이나는 호기심을 드러냈으며 델로우는 일단은 더 들어 보겠다는 신중한 표정이었다.

“이후 성검의 존재를 알게 된 블러드 서클이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블러드 서클이 철 도끼 혈맹을 공격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유진의 질문에 반응한 이는 다름 아닌 레이나였다. 상호 협의하지는 않았지만, 레이나는 유진이 설계한 흐름에 일조했다.

“정확합니다. 제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미 철 도끼 혈맹은 블러드 서클의 공격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성검까지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럴 리가, 그래도 철 도끼 혈맹은 절명의 숲에서도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세력인데.”

디레이즈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레이나와 델로우는 물론이고 유진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 어렵지 않다.

“여기서 경계를 넘으면 철 도끼 혈맹의 요새 하나가 보일 겁니다. 그곳을 방문해 보면, 지금 절명의 숲에서 철 도끼 혈맹의 위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백색 교단이 유실한 성검을 철 도끼 혈맹의 오크들이 줍고 보관하게 되는 루트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게 스토리가 진행될 경우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전개에서 철 도끼 혈맹은 블러드 서클의 맹공을 받고 멸망하거나 혹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크게 위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가까운 철 도끼 혈맹의 요새도 마족들의 공격을 받아서 폐허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내일 바로 출발하시죠. 어차피 가는 길에 있으니 굳이 경로를 크게 수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유진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단언했다. 논의가 끝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유진은 자신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철 도끼 혈맹의 요새 인근을 지나가는 방향으로 이동 경로의 미세한 수정을 요청했고 델로우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동 경로가 미세하게 수정되었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이틀간의 여정이 이어졌고 델로우가 이끄는 백색 교단의 군대는 유진이 지정한 가까운 철 도끼 혈맹의 요새 인근에 도달했다.

“먼저 정찰대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곤한 표정의 엘란이 제안했다. 요새가 건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철 도끼 혈맹의 오크들이 패주했다고 해도 절명의 숲에 있는 다른 세력이 요새를 점거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정찰대가 선행하는 게 옳은 판단이다.

“제가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드레인이 자원했다. 반대는 없었다.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몸을 은신하는 능력이 뛰어난 뱀파이어는 척후의 역할을 맡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혹여 교전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드레인은 신호탄과 작은 깃발을 챙기고는 가벼운 경무장 상태로 오크 요새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시간이 흐른 후 그가 돌아왔다.

“안전합니다. 요새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주변에서 몬스터들의 흔적도 없으니 직접 가서 확인해도 될 것 같습니다.”

드레인의 설명에 델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단의 군대를 이끌고 요새에 입성했다. 드레인의 말대로 요새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 여러 장소에 남아 있었고 가장 높은 망루에는 부러진 깃대가 꽂혀 있었다.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병장기와 찢어진 깃발을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여기는 철 도끼 혈맹에 소속된 오크 부족 중 하나인 검은 해골 부족의 요새입니다.”

유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해골 부족은 혈맹에 속한 오크 부족 중에서도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걸로 유명하죠. 이들의 요새가 공격당하고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줄곧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철 도끼 혈맹의 현 상태가 어떤지 조금은 감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유진은 요새의 폐허 곳곳에서 블러드 서클의 흔적을 찾아내어 델로우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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