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45)
35장. 다시 절명의 숲으로
델로우가 지휘하는 백색 교단의 군대가 절명의 숲으로 진입했다. 그들의 목적은 성검을 찾는 것이었고, 유진 일행은 고용된 용병 자격으로 동행했다.
외곽부에서 500여 명의 전투원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행군을 막아서는 이들은 없었다. 백색 교단 병력은 중심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진군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외곽부와 중심부의 경계선에 도달했다. 델로우는 중심부 경계선을 넘기 전에 최대한의 체력 비축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부하들에게 야영을 준비하라 일렀다.
숲의 중심부로 넘어가는 경계 바로 앞에 야영지가 세워졌다. 그날 밤, 성검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는 델로우와 유진 그리고 레이나와 디레이즈였다. 엘란은 간부 자격을 갖췄고, 성검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야간 경계 지휘 때문에 불참했다.
“저희 백색 교단의 중앙청에서는 성검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루벤 왕국의 왕실 정보대는 물론이고, 대륙의 여러 정보 길드들과 협력했죠.”
무거운 침묵 속에서 델로우가 말문을 열었다. 유진과 레이나 그리고 디레이즈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델로우의 말을 경청했다. 이목이 쏠린 걸 느낀 델로우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 가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검이 유실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만, 유력한 정보 몇 개를 입수하는 데 결국 성공했습니다.”
델로우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유력한 정보’에 대해 언급했다. 과연 그 ‘유력한 정보’라는 게 무엇일까? 두 눈을 반짝이는 레이나와는 달리 유진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왕실 정보대와 여러 정보 길드들과 협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백색 교단 중앙청의 정보 수집 및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 내릴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의 고인물인 유진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보가 무엇입니까?”
백색 교단에서도 정예들이 모인 광휘의 원탁회에 소속된 전투사제, 디레이즈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델로우와 합류하면서 중앙청 출처의 편지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본인만 읽을 수 있는 봉인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디레이즈는 읽을 수 없었다.
“중앙청의 뛰어난 두뇌들께서 수집된 정보들을 조합하고 분석한 끝에 절명의 숲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철 도끼 혈맹의 오크 성채 중 한 곳에서 성검을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델로우와 다르게 유진은 속으로 한숨을 흘렸다. 중앙청의 늙은이들이 어디서 정보를 주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크들의 세력인 철 도끼 혈맹에서 성검을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과 변수에 따라 루트가 갈라지지만, 세계관 설정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루베니아 연대기의 세계관 설정상 철 도끼 혈맹에서 성검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 리 없다. 왜냐고?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에 대해 이해도가 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진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델로우 경.”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유진은 조심스럽게 델로우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때로는 직설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델로우 같은 성격의 캐릭터한테는 돌려 말하는 게 적합하지 않았다.
―이의 있소!
―시원하게 직설합시다!
―내가 생각해도 오크가 성검을 보관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음.
―역시 중앙청의 늙은이들은 도움이 안 됨.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백색 교단 쪽은 전체적으로 고구마를 유발하는 캐릭터가 많네요.
―그래도 델로우 정도면 백색 교단 소속 캐릭터 중에서는 나름 이성적인 편이에요.
―정말 답답하다! 백! 색! 교! 단!
시청자 중에서 고인물의 경지에 오른 이들 또한 철 도끼 혈맹의 오크들이 성검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융통성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는 중앙청의 늙은 간부들과는 다르게 델로우는 열려 있는 마음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유진의 생각도 한번 들어 보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철 도끼 혈맹의 오크들에게는 성검이 없습니다.”
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한 치의 여과도 없는 직설에 델로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백색 교단에 충성하는 성기사다. 그의 충성은 맹목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앙청과의 관계도 나쁜 편은 아니다. 맹신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중앙청의 결정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유진의 정면 반박에 표정이 다소 굳은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유진 경,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희 측에서는 철 도끼 혈맹의 영역에서 성검을 유실했습니다. 아직 최초 유실 지점 근방에 그대로 있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오크 놈들이 노획했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수집된 정보들을 분석해 보면 오래전에 철 도끼 혈맹의 오크 전쟁 군주 중 하나가 성검으로 추정되는 무엇인가를 최초 발견하여 손에 넣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델로우는 자신이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침착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유진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일부 공개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 최초 발견자는 철 도끼 혈맹의 오크일 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그들이 계속 성검을 보관했을까요?”
대답은 없다. 델로우와 레이나 그리고 디레이즈는 말없이 유진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절명의 숲에서 활동하는 오크들은 대부분 지능이 높습니다. 전쟁 군주나 제사장급의 경지에 오른 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절명의 숲에 대한 여러 연구서에서도 고등 지성을 가진 몬스터들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진은 잠시 설명을 멈추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색 교단에 소속된 세 사람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중앙청에서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죠.”
“그게 무엇입니까?”
질문을 던진 이는 델로우나 레이나가 아니라 디레이즈였다. 그는 백색 교단 중앙청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유진이 중앙청에서 간과한 사실이 있다고 발언하기 무섭게 반박할 기세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백색 교단에는 극단적인 타입의 신자들이 은근 많은 편이다.
여신을 향한 광신과 중앙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자들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신앙심은 깊지만 광신의 영역에 들지 않았고 중앙청과도 일정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델로우는 일종의 특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철 도끼 혈맹이 성검을 손에 넣었다면? 블러드 서클이 이를 좌시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유진의 입에서 ‘블러드 서클’이라는 집단 이름이 튀어나오자 디레이즈와 델로우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반면에 레이나는 최근 유진을 고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눈치였다. 델로우와 디레이즈는 유진과 함께 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무력에 비해 정보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블러드 서클. 제 1차 마왕 전쟁에서 탈영한 마족들이 절명의 숲을 중심 거점으로 삼고서 만든 세력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 설정상 절명의 숲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기도 하며 백색 교단에서는 마족이 남아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륙에 혼란이 야기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주요 활동지가 절명의 숲인 탓에 백색 교단의 입장에서는 정보 통제가 용이했다.
즉, ‘블러드 서클’에 관한 정보는 쉽게 접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유진을 ‘일반인’의 범주에 두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말이다.
“블러드 서클에 대해 알고 있었군요.”
델로우가 말했다. 여전히 그는 놀란 표정이었다.
“블러드 서클에 대한 정보.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했는지 말 해 줄 수 있습니까?”
이번에는 디레이즈였다. 백색 교단에서도 중앙청에 충성하는 그는 유진이 블러드 서클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자 날카로운 기세를 펼쳐 보였다. 마치 압박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디레이즈의 도발적인 행동에 기분이 확 나빠진 유진도 자신의 기세를 해방하는 것으로 불쾌하다는 감정을 표출했다.
“디레이즈 경? 저를 압박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네요. 죄송하지만,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큭!”
기세 싸움에서 패배한 이는 디레이즈였다. 그는 A랭크의 전투사제였지만, A+랭크에 근접한 경지에 오른 유진의 기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꼴 좋다!
―나대지 마라, 꾸짖을 갈!
―이걸 바로 참교육이라고 표현합니다.
―고구마 먹는 기분이었는데 미지근하지만 사이다 한 잔 마시니까 훨씬 낫네요.
―다행입니다.
―디레이즈가 주제를 모르고 설치네요.
―방장님을 만만하게 본 것 같아요.
―디레이즈 골통 부수고 싶다.
유진을 무시하는 것 같은 디레이즈의 행동에 채팅 창이 소란스러웠다. 일부 시청자들은 유진에게 강경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빌런 루트도 아닌데 백색 교단의 전투사제 캐릭터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요청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면 여기서 디레이즈와 델로우의 골통을 부숴야 하는데 그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걸 반납하고 빌런 루트로 진입하는 지름길이었다.
“유진 경.”
“네, 듣고 있습니다.”
델로우가 개입했다. 유진은 짜증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디레이즈 경을 대신해서 내가 사과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블러드 서클 문제는 중앙청에서도 민감한 화제라 디레이즈 경이 날 선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수습을 시도하는 델로우. 하지만 어림없지. 당사자한테 사과를 받을 생각이다.
“괜찮습니다, 델로우 경. 다만 사과는 디레이즈 경이 직접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진의 말에 델로우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레이즈를 향해 몸을 돌렸다.
“디레이즈 경, 유진 경에게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유진 경의 정보 공유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디레이즈는 순순히 대답하고는 유진에게 용서를 청했다. 유진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디레이즈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괜찮다면 설명을 계속 이어 가도 되겠습니까?”
주도권은 잡았다. 이제 확인 작업이다. 유진의 물음에 델로우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