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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44화 (144/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44)

이건 명백한 패주다. 비룡을 타고 타니아의 거점으로 먼저 복귀하는 길, 올슨은 자신의 실패를 곱씹으며 입안 가득 차오르는 욕설을 힘겹게 삼켰다. 오늘 전투로 그는 150여 명의 부하들을 잃었다. 그들은 올슨 휘하에서도 정예도가 떨어지는 이들이었으나, 150여 명의 피해는 결코 적은 손실이 아니었다.

“망할!”

타니아의 전진 기지에 도착했다. 비룡이 착륙하자 올슨은 욕설과 함께 안장에서 내려왔다. 그의 뒤로 다른 비룡들도 하나둘 착륙했다.

처음 출격할 때만 해도 40마리가 넘는 숫자였지만, 치열한 전투로 인해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비룡들도 온전한 녀석이 없었다. 극히 일부지만, 비행을 하기 힘들 정도로 중상을 입은 비룡들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전력으로 활용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짜증과 함께 분노를 토해 내는 올슨의 뒤로 그의 직속 부하 중 한 명인 웨이버가 따라붙었다. 전진 기지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석조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올슨이 별안간 멈춰 섰다.

“어찌 그러십니까?”

뒤따르던 웨이버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올슨의 기분 변화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부장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웨이버가 놀란 눈동자로 되물었다.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패전 직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원군을 기다렸다가 긍정적인 성과를 만든 후, 연락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게 웨이버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올슨의 생각은 달랐다.

지부장은 벌써 이번 패전에 대해 보고받았을 것이다. 숨기는 것보다는 자진해서 알리는 게 낫다고 올슨은 판단했다.

“그래, 지금 당장 연락해야겠어.”

“통신 마법진을 준비할까요?”

“그리고 주변 통제해.”

올슨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웨이버는 짧게 대답하고는 연락 마도사를 호출했다. 최상급 마도사인 올슨이 직접 마법진을 그리고 통신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이 귀찮기 때문에 부하 마도사를 시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 마도사가 도착하여 통신 마법진을 그렸다. 올슨은 마법진 앞에 섰다. 연락 마도사가 이미 연락 좌표를 입력해서 마법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제 지부장이 응답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곧 마법진 위에 지부장의 환영체가 나타났다.

“지부장님.”

올슨은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루벤 북방 지부장에 대한 예를 갖췄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올슨.

“네, 지부장님.”

―패전 소식은 보고받았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지부장은 장황하게 변명을 덧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순순히 실책을 인정하는 게 이롭다.

―적들의 전력에 대해서는 이미 전달받았으니, 책망할 생각은 없다. 이번 패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부장이 말했다. 그는 올슨과 맞선 유진 측의 전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서 올슨의 실책이 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비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올슨 경. 다음 실패에도 내가 자비로울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천 년 맹약의 완수를 위해서 절명의 숲에 잠든 성검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으니,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 타니아 경과 협력하도록.

“타니아 경과의 협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올슨이 되물었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얼굴에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키지 않았다. 올슨은 타니아와 같은 루벤 북방 지부 소속의 간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경쟁자이며 서로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협력이 이뤄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지금으로서는 타니아 경과 협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둘이서 서로의 공적을 주장하기 위해 다툰다면 우리의 적들이 기뻐할 일이고, 끝내는 천 년 맹약을 위한 대계에 지장이 가는 건 당연한 전개다.

지부장이 말했다.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승산을 높이려면 타니아와 협력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타니아가 최근 연이어 실패하고 많은 부하들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본래 세력이 거대했던 만큼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평기사들과 하수인들이 그녀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절명의 숲’을 주 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지리나 지형 등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타니아와 손을 잡는 게 승산을 크게 올릴 수 있을 테지만,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감정 관계가 좋지 않은 그녀와 협력한다는 선택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부장이 직접 언급할 정도면,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결국 올슨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타니아 경을 만나 보겠습니다.”

―나도 타니아 경한테 미리 말해 둘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하지. 필요한 건 다 말한 것 같군.

“다음 연락 때에는 반드시 승전보를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올슨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되뇌며, 마법 통신을 종료했다. 지부장의 환영체가 스르륵, 사라지고 통신 마법진도 빛을 잃었다.

마법진을 그렸던 흔적만이 남아 있는 공터에서 올슨은 한참이나 지부장의 환영체가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 * *

“저희는 가까운 마을에서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메이 영지군의 제 2기사단장, 할리드 벨로인 남작은 재정비를 위해 진영을 이탈해야 할 것 같다고 델로우와 유진 그리고 벤자민에게 전했다. 백색 교단에 소속된 델로우나 암약회의 간부인 벤자민은 벨로인 남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벨로인 남작이 이탈하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루메이 영지군 제 2기사단! 재정비를 위해 잠시 이탈!

―벨로인 남작은 루메이 후작가에 충성하는 인물이라서요.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재정비 끝나면 다시 합류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유진과 함께 행동하면서 착실하게 호감도를 쌓아 온 벨로인 남작의 이탈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야기했다.

벨로인 남작이 휘하의 기사들을 이끌고 이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색 교단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광휘의 원탁회 소속 전투사제인 디레이즈가 지휘하는 500여 명의 군대였다. 본래 백색 교단의 중앙청이 지시한 지원군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중간에 예정에 없던 디레이즈가 합류하면서 지원군이 500여 명으로 확충되었다.

디레이즈가 처음 합류한 날, 유진은 시스템의 권능으로 ‘주시자의 눈’을 사용하여 그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맹약 기사단의 암흑 권능을 받아들인 몸이었다면, 물음표가 많았겠지만 디레이즈의 상태 창은 멀쩡했다. 최소한 그가 맹약 기사단 소속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걸로 인원은 충분합니다. 다시 절명의 숲으로 진군합시다.”

델로우가 결정을 내렸다.

“저는 상부로부터 대기 명령을 받았습니다. 당분간은 직접적인 전투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집된 정보 지원에 집중할 것 같습니다.”

백색 교단의 군대가 절명의 숲에 진입하기 전에 벤자민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진영을 이탈했다. 벤자민도 벨로인 남작처럼 백색 교단의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델로우가 그의 이탈을 막을 명분도, 권한도 없다.

―벤자민도 이탈하네.

―이거 안 좋은 징조인 것 같은데요?

―사실 방장님이 크게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절명의 숲이 워낙 난이도가 높은 장소이긴 함.

―절명의 숲을 방송하는 스트리머들이 많지 않음. 왜냐고요? 그야, 어려우니까.

―그 정도로 절명의 숲이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뜻!

―방장님 힘내세요!

―그래도 백색 교단은 성검 찾아야 하니까, 절대 포기 안 하네요.

―ㄹㅇㅋㅋ 성검은 못 참지!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벤자민의 이탈을 아쉬워했고, 난이도 높은 걸로 유명한 ‘절명의 숲’에 진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유진에 대한 걱정을 채팅 창에 늘어놓았다.

벨로인 남작과 벤자민이 부하들과 함께 이탈했지만 델로우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현재 절명의 숲 인근에 집결한 백색 교단의 군대에는 유진 일행을 제외하더라도 수습 성녀 레이나와 성기사 엘란 그리고 전투사제 디레이즈 등 A랭크의 실력자가 셋이나 포함되어 있었고 델로우 본인만 봐도 A+랭크의 경지에 있는 강력한 성기사이니 헛된 자신감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내일이군요.”

늦은 밤 야영지 중앙에서 델로우와 작전 회의를 끝내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는 유진의 앞에 드레인이 나타났다.

“드레인, 긴장돼?”

“절명의 숲, 그것도 최소 중심부에서 최대 심장부까지 진입해야 하는 여정입니다.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드레인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의외의 모습이다. 그는 평소에 무감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감정의 변화나 동요가 없었다.

실제로 루베니아 연대기의 공략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감정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려 있을 정도로 정적인 캐릭터다. 두려움이나 공포와도 같은 감정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드레인이 긴장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데 ㄷㄷㄷㄷㄷ.

―이게 방장님의 방송을 보는 재미죠.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 많거든요.

―동감입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네요.

―방장님! 응원합니다!

―포인트 후원으로 혼내 줍시다!

시청자들이 포인트를 후원해 주었다. 유진은 후원으로 들어온 포인트를 슬쩍 확인하고는 이어서 드레인을 향해 다시 시선을 옮겼다.

“두려운가?”

“두려운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평시보다 긴장도가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어쩌면 절명의 숲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진의 대답에 드레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전히 차갑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기운이 감도는 옅은 미소였다.

“별일 없을 거다, 드레인.”

“저도 큰 걱정은 없습니다. 그 어떤 위협도 주군께서는 돌파하셨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다만, 이번에 합류한 전투사제 말입니다.”

뭔가 있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에게서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드레인의 말에 유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생각을 정리했다. ‘주시자의 눈’에 의하면 그는 맹약 기사단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드레인의 의심은 심증뿐이지만 유진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평시에 디레이즈를 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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