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42)
백색 교단의 성기사단은 자비의 여신, 에일린을 모시는 독실한 성직자들인 동시에 훌륭한 중기병이자 중무장 보병이기도 하다. 델로우가 이끄는 성기사들은 두꺼운 철갑을 입고 건장한 체격의 군용 마를 탄 중무장 기병대나 다름없다.
맹약 기사단의 마도사들은 신성 마법의 보호를 받으며 말을 타고 달리는 성기사의 돌진을 막지 못했다.
“성기사들의 돌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맹약 기사단 진영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동요는 없었다. 그들의 지휘관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장창 부대, 앞으로!”
“앞으로!”
지휘관의 명령에 맹약 기사단의 전투원 중 장창으로 무장한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평범한 장창 부대가 아니었다.
경량화 마법이 각인된 강철 장창과 두꺼운 중갑으로 무장한 중보병들로 기마병 저지 훈련을 받은 정예들이었다.
“대 기병 방어 진형을 펼친다! 물러서지 마라!”
지휘관이 고함을 내지르자 하수인 계급의 전투원들로 편성된 장창 중보병대가 일사불란하게 대 기병 방어 진형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분노한 성기사들을 막지 못했다.
선봉에서 델로우가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참격의 파도를 일으키자 장창 중보병대의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와우!
―이게 A+랭크 성기사 캐릭터의 무력?
―이 정도면 방장님이 나서기도 전에 다 정리되는 거 아닙니까? ㅎㅎㅎ.
―방장님! 분발해 주세요!
―방장님의 고인물 플레이도 보고 싶습니다.
―가즈아!
―기대가 됩니다.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시청자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맹약 기사단의 전투원들을 쓸어버리는 델로우의 활약에 즐거워하며, 방송의 방장인 유진에게도 빨리 고인물스러운 플레이를 보여 달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유진은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더 빨리 말을 달릴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목숨이 걸려 있는 전투이기 때문에 방송의 진행보다는 매복이나 함정을 경계하며 신중하게 전진할 생각이었다.
델로우가 대검을 휘두르며 적진 깊숙이 파고들고 있을 때, 벨로인 남작이 지휘하는 기사들과 유진 일행도 격전지에 도달했다. 델로우와 성기사들이 광전사처럼 날뛰고 있었다.
맹약 기사단의 진형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전투는 점차 난전의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적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델로우와 성기사들은 승기를 잡은 것에 도취되어 더욱 매섭게 적들을 압박했다.
“주군.”
마나을 아끼기 위해 정령검을 사용하지 않고 오러 블레이드만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유진의 옆으로 드레인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빠르게 다가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유진은 정면에서 달려오는 검은 철갑의 기사를 베고는 뒤로 물러나며 드레인과 합류했다.
“무슨 일이야?”
“델로우 경이 너무 적진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맹약 기사단 쪽에서도 일부러 진형을 와해시키면서 델로우 경과 성기사들을 유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드레인이 보고했다. 전투 중이었지만, 그는 성기사들과 맹약 기사단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관찰한 결과 드레인은 맹약 기사단 측에서 델로우와 성기사들을 교묘하게 진형 깊숙이 유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즉시 유진에게 이를 보고한 것이었다. 드레인의 말을 들은 유진도 그제야 델로우와 성기사들이 적진에 너무 깊숙이 침투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갔어.”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더군다나, 진형이 와해돼도 지금까지 어설프게 대응하던 맹약 기사단의 전투원들이 갑자기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깃발을 든 기수가 어떤 신호를 보내자 전투원들이 날렵하게 진형을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델로우와 성기사들은 꼼짝없이 적진 중앙에 갇히게 된다.
―오! 맹약 기사단이 반격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델로우가 너무 흥분한 듯.
―포위섬멸진!
―이대로라면 완전히 포위될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
―대책 없이 돌격할 때부터 이런 상황은 예상했습니다.
―사고는 델로우가 치고 수습은 방장님이 하셔야겠네요.
―ㅋㅋㅋㅋㅋ! 저희는 포인트 후원으로 응원할게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다행히 고구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었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전투 장면 덕분에 이어질 유진의 고인물 플레이에 대해 기대감을 품고 포인트 후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바이올라!”
유진은 급히 바이올라를 호출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전황이 악화된다면 바이올라나 다른 마도사가 마법으로 후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바이올라는 격전지에서 100m쯤 후방에 위치한 대열에서 다른 마도사들 그리고 사제들과 함께 공격 마법으로 전방의 아군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전투 소음으로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유진의 외침은 바이올라에게 닿았다. 바이올라가 반응하자 유진은 그녀에게 큰 소리로 후퇴 신호를 쏘아 올리라고 요청했다.
“오케이!”
바이올라가 대답과 함께 마법으로 만든 적색의 불빛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약속한 후퇴 신호였지만, 델로우와 성기사들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광전사처럼 맹약 기사단 전투원들을 공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만, 광전사라고? 뭔가를 깨달은 유진은 적진 깊숙이 진입했다.
[패시브 스킬, ‘무너지지 않는 용맹’이 활성화됩니다.]
[정신 혼란 계열의 스킬에 대한 내성이 강화됩니다.]
적진 깊숙이 들어서기 무섭게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어떤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맹약 기사단 측에서 수작을 부렸고, 이에 성기사들이 이성을 상실한 것이다.
사제들이 정신 혼란 계열의 스킬을 예상하지 못하고 관련 버프를 중첩시키지 못한 것이다. 장기전에 대비해 신성력을 아끼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드레인!”
“네, 주군.”
달려드는 적들을 베고 찌르며 피를 흩뿌리는 혼란 속에서 유진은 드레인을 호출했고, 충직한 뱀파이어는 유진의 호출에 응했다. 적발에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뱀파이어가 은밀한 발걸음으로 바로 옆에 나타났다.
“바이올라한테 당장 혼란 계열 걷어 내는 마법 시전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주군.”
드레인이 모습을 감췄다. 그는 곧바로 바이올라에게 가서 유진의 말을 전했다.
“정신 혼란 계열 마법이라고?”
드레인으로부터 유진의 말을 전달받은 바이올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씹었다. 유진의 요청이 불쾌한 게 아니었다. 정신 혼란 마법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허공에 대고 스태프를 흔들었다.
마나의 파장이 퍼진다.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 혼란 계열 마법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바이올라의 마나 파장이 분석을 시작했지만, 전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신 혼란 마법의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정밀 분석 마법을 실행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마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 그 이상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정말 짜증 나네.”
짜증이 치솟는다. 왕립 마탑에서 훌륭한 마도사가 되기 위해 잠을 쪼개 가면서 수련을 거듭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괜히 무력감이 감돌았다.
땀방울이 맺혔다. 집중에 집중을 더해도 마법의 근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짜증이 밀려 올라왔지만, 바이올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드레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유진한테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해 줘. 내가 꼭 찾아낼게.”
“알겠습니다.”
드레인은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유진에게 가서 바이올라의 말을 전했다.
“아무래도 델로우 경의 폭주는 우리가 막아야 할 것 같네.”
“네, 주군.”
유진은 드레인과 함께 델로우와 성기사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드레인의 팔이 먼저 유진을 붙잡았다.
“왜 그래?”
“다수의 기척이 이곳으로 접근 중에 있습니다.”
“뭐라고? 기마 부대야?”
“아닙니다. 지상이 아니라 하늘에서 다수의 인원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오고 있다고? 문득 ‘드래곤’이라는 최악의 경우가 떠올랐지만 이내 유진은 거칠게 고개를 젓는 것으로 헛된 추측을 떨쳐 냈다. 만약 드래곤이 접근 중이었다면 드레인이 이렇게 침착하게 보고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용의 선상에 올릴 만한 건 몇 없다. 그중에서도 굳이 추측하자면.
“비룡인가?”
유진은 곧 정답을 알게 됐다. 수십 마리의 검은 비룡들이 암흑의 구름을 몰고서 나타난 것이다. 비룡의 등에서는 칠흑의 갑주를 입은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비룡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델로우는 자신이 성기사들을 이끌고 적진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델로우 경! 물러나야 합니다!”
어느새 성기사들의 뒤를 쫓아 적진 깊숙이 침투한 유진이 델로우를 보며 소리쳤다. 델로우는 주위를 살폈다. 맹약 기사단의 전투원들은 성기사들에 대한 포위진을 완성한 상태였다.
“성기사단! 전열을 정비하라! 포위를 뚫어야 한다!”
델로우는 성기사들을 통솔하여 전열을 정비했고, 하늘 위의 비룡 기사들은 투창을 사용하여 지상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오! 비룡 기사다!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비룡 기사 클래스를 보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네요.
―ㄹㅇㅋㅋ 후반부에서도 일부 루트에서만 희귀하게 등장하는 클래스인데 벌써 등장하네.
―방장님이 진행하시는 루트가 많이 특이한 것 같음.
―저도 동의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많이 튀어나오네요.
―그러게요 ㅋㅋㅋㅋ.
비룡 기사들의 출현은 고인물 시청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투창 세례에 성기사들의 몸이 꿰뚫렸다. 비명 소리와 함께 성기사들이 쓰러졌다.
“마도사들은 비룡 기사들을 견제하라!”
루메이 후작가의 기사, 벨로인 남작이 소리쳤다. 마도사는 하늘 위의 비룡들을 제대로 견제할 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이다. 벨로인 남작의 명령에 마도사들의 마법이 창공을 관통했다. 비룡 몇 마리가 추락했지만, 여전히 40여 마리가 남아 있고, 마도사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비룡 기사들을 견제할 화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와라! 사악한 악의 졸개들아!”
델로우가 던진 백색의 창이 허공에서 수십 개로 분열하여 비룡 기사들을 덮쳤다. 일격에 8마리의 비룡이 당했다. 그는 곧바로 신성력을 발휘하여 다음 공격을 준비했으나, 비룡 기사들 사이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웬만한 저택보다 더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비룡 기사들과 함께 올슨이 전장에 등장한 것이었다.
“바, 방어 마법을!”
바이올라가 실드를 펼치고, 레이나는 신성 마법으로 보호막을 생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