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37)
콰콰쾅!
화염 세례 그리고 불덩이의 연속적인 낙하로 인해 굉음이 터져 나왔다. 흙먼지와 함께 불꽃의 작용에 의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이올라의 화력은 대륙 제이이이이일!
―역시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다니까!
―이 정도면 그래도 꽤 아프겠죠?
―A랭크의 진심이 담긴 마법을 정통으로 얻어맞았습니다. A+랭크라고 해도 전혀 피해가 없진 않을 겁니다.
―제대로 피격당한 듯? 좀 아플 듯!
―ㅋㅋㅋㅋㅋㅋ.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한 유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타니아가 서 있던 방향을 향해 경직된 시선을 던졌다.
흙먼지와 연기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시야가 점차 선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적인 현상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유진은 마나를 운용하여 스킬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섬멸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80포인트 이상입니다. 소환된 칼날 바람의 속도가 20% 향상됩니다.]
검신에 모여 든 날카로운 바람의 군집은 유진이 힘차게 검을 휘두르자 자욱한 흙먼지와 안개를 몰아내고서 타니아의 목과 왼팔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노렸다. 시야가 확보되면서 모습이 다시 드러난 그녀는 바이올라의 화염 마법에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상처 하나 없었다.
A랭크 스킬인 ‘섬멸의 바람’조차 타니아에게 닿지 못했다. 뭐든 잘라 낼 기세로 쇄도하던 10여 개의 칼날 바람은 타니아의 영역에 진입하기 무섭게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이게 전부일까나?”
타니아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제 내 차례네?”
타니아가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마나의 파동이 일었고, 레이나 옆을 지키던 성기사들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이제 백색 교단의 성기사들은 엘란을 제외하면 전멸이다.
“드레인! 합공이다!”
유진의 외침에 드레인은 말없이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바이올라! 엄호를 부탁해!”
“오케이!”
다시 총공격이다. 바이올라가 캐스팅을 시작했고, 유진과 드레인은 거의 동시에 타니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허공에 대고 살짝 손을 휘젓자 모든 공격은 실패했다.
유진과 드레인의 오러 블레이드가 검신에서 소멸함과 동시에 그들의 몸이 보이지 않는 억센 손에 쥐어 잡힌 것처럼 허공에 멈췄고 바이올라가 그리던 마법진은 소멸했으며 후방에서 기습을 시도하던 벤자민은 강한 역풍에 당해 밀려나고 말았다.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 줄까?”
타니아가 입술을 열고 싸늘한 음성을 흘렸다. 절제된 분노의 감정이 함께 묻어 나왔다. 검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아마도 화를 억누르고 있는 표정이 분명할 것이라 유진은 생각했다.
“커허억!”
뭐라 말하려고 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목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강한 압박감에 유진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나는 말이지, 내가 그려 놓은 커다란 그림에 먹물이 튀는 걸 엄청 싫어해. 설령 그게 아주 작은 먹물 방울이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미관을 해치기 마련이거든.”
가면 아래에 숨겨진 창백한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선명하게 번진다.
“그런데 말이야. 어떤 미친놈들이 내 그림에 먹물을 마구 뿌리고 있다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진과 드레인은 목을 압박받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너희를 전부 죽일 거야.”
일방적인 통보였다. 말을 끝맺으며, 타니아가 손끝으로 유진의 이마 정중앙을 조준한 채 암흑 마나를 모았다. 순수한 암흑 마나로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어 유진의 이마에 바람구멍을 만들 생각이었다.
“유, 유진!”
“너는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꺄아아아악!”
바이올라가 서둘러 마법진을 새로 그리려 했지만, 타니아가 조금 더 빨랐다. 그녀는 환술로 바이올라의 정신을 직접 공격했다.
정신 공격으로 마나 홀에 내상을 입은 바이올라가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비틀거렸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거친 기침과 함께 붉은 피를 토해 냈다. 내상이 심각한 것 같았다.
―A랭크 캐릭터가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는 건 처음 봐요.
―상대가 A+랭크라서 그럼. 꽤 벽이 높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이걸로 게임 오버?
―조금 아쉽네요.
―방장님이 고인물이라고 해도 이걸 살아남기는 힘들 듯.
―게임 오버!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당연히 유진이 게임 오버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유진은 저항하려 했지만, 보이지 않은 뭔가에 속박된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력한 상황 속에서 타니아의 손끝에 암흑 마나가 모여 들었고, 그녀가 그것을 칼날의 형상으로 만들려는 찰나였다.
“빛이여! 추악한 어둠을 몰아내라!”
성스러운 외침과 함께 어둠에 물들었던 하늘이 갈라지고 세상이 무너지면서 주위가 변했다. 속박당해 있던 유진과 드레인의 몸이 뒤로 확 잡아 당겨지는 것과 동시에 타니아의 머리 위로 은색의 철갑을 입은 성기사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낙하했다.
쿠웅!
묵직한 충격과 함께 착지한 성기사는 철갑을 입은 육중한 몸체로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며 타니아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이거 뭐지?
―은색 철갑에 하얀 망토면 백색 교단의 성기사인 것 같습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여요.
―얼굴을 보여 주세요! 성기사 님!
―백색 교단에서 저 덩치에 대검 쓰는 성기사 캐릭터가 누가 있더라?
―오오! 지원군! 오오!
모두가 게임 오버를 예상하고 있던 시점에서 지원군이 등장하자 채팅 창에서는 난리가 났다. 유진은 컥컥거리면서도 성기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시스템의 권능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주시자의 눈’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정보를 표출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바로 앞에 캐릭터 상태 창이 생성되었다.
[백색 교단의 충직한 검, 델로우 빌크론(A+)]
―자비로운 백색 교단이 자랑하는 최강의 전투 집단인 광휘의 원탁회에 속한 일원입니다. 본래는 루벤 왕국의 왕립 기사단 2번대 소속이었지만,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고 성기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백색 교단의 신자였던 아내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지요. 검술에 재능이 뛰어나고 단련된 마나 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성 마법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는 짧은 기간 만에 어렵지 않게 성기사로서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주로 루벤 왕국의 북부에서 활동하며, 중앙청의 뜻보다는 신을 착실하게 섬기는 훌륭한 성기사입니다.
백색 교단에서도 뛰어난 성기사들 중 한 명인 델로우 빌크론이었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자 채팅 창에서도 환호가 이어졌다.
―델로우 경이다!
―완전 멋집니다!
―중앙청이 미리 루메이 후작령에 배치해 뒀나 보네요.
―A+랭크의 등장! 이거 정말 든든합니다!
―캬! 오랜만에 백색 교단이 일 처리 제대로 하는 거 보네요.
―ㄹㅇㅋㅋ.
―이 정도면 인정이지!
열렬한 환호 속에서 등장한 A+랭크의 성기사, 델로우 빌크론. 지원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술의 결계가 박살 나고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일단의 기사 무리가 루메이 후작가의 깃발을 들고서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루메이 영지군의 제 2기사단장, 할리드 벨로인 남작이 이끄는 30인의 정예 기사들이었다.
“돌격하라! 악의 무리를 소탕하라!”
힘찬 외침과 함께 기사들이 돌격한다. 그들의 후방에는 루메이 후작가의 자랑 중 하나인 자수정 마도 병단 소속의 마도사들도 소수 섞여 있었다. 그들은 타니아를 향해 공격 마법을 난사했다.
“칫!”
환술 결계가 무너진 탓에 타니아의 전투력은 약해졌다. 그녀는 환술 결계 안과 밖에서의 전투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속한 후퇴를 결정했다.
“유진이라고 했던가? 다음에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경고를 남긴 채, 그녀는 조용히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 *
델로우 경과 벨로인 남작 등 지원군에 의해 구출된 유진 일행은 절명의 숲을 빠져나와서 인근 마을까지 물러났다. 영주의 기사단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수십 명의 무장한 인원이 마을로 들이닥치면 놀랄 법도 한데 절명의 숲 인근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인지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부상을 입은 이들은 새롭게 합류한 백색 교단의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았고, 델로우와 벨로인 남작이 향후 행보에 대해 의논하는 동안 유진도 신관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아직 약하다. 더 강해져야 한다. 유진은 상점 창을 열고 새로운 스킬을 구입했다. 그것은 바로 B+랭크의 스킬인 ‘결계 내성’이었다.
이 스킬이 있다면 전투력 하락을 유도하는 결계 안에서도 일정 수준의 무력을 보전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A랭크의 결계 파괴자를 구입하고 싶지만, 포인트가 부족했다. 그뿐만 아니라 추가로 모아 둔 포인트를 소모하여 몇몇 스킬을 강화했다.
“상태 창.”
오랜만에 상태 창을 열었다.
〈보유 스킬〉
―섬멸의 바람(A) 만독불침(A) 정령검(A) 정령군주의 호흡(A) 강철이 깃들인 육신(A) 결계 내성(B) 원소 부여(B) 원소 참격(B) 살기 방출(B) 투신의 각오(B) 투신의 검무(B) 빛의 투창(B) 선천적 마나 친화(B) 오러(B) 일검필살(B) 루벤 왕립 기사 검술(C+) 무너지지 않은 용맹(B) 레인저의 직감(C) 중급 궁술(D) 사냥꾼의 시야(B) 상급 기척 죽이기(C) 상급 화염 저항(C) 중급 방패술(D) 선봉장의 돌격 각오(B+) 최상급 기척 감지(B) 주시자의 눈(B)
업데이트를 한 것인지 스킬 창의 구조가 약간 변했다.
변화를 말하자면 C랭크의 ‘불굴의 전사’ 스킬을 B랭크인 ‘무너지지 않는 용맹’으로 강화했고, B랭크인 ‘선봉 기사의 임전 태세’를 B+랭크의 ‘선봉장의 돌격 각오’로 강화했다. 이 정도면 A+랭크에 근접한 전투력을 보유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정비를 끝내고 여관 밖으로 나오던 그는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고 볼 수 있는 델로우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 유진 경! 마침 찾고 있었습니다!”
델로우는 빙긋 웃으며 호탕하게 말을 걸어왔다. 유진은 그에게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조금 전에는 부상을 치료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전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진은 게임에 빙의한 상태라 죽으면 진짜 다시는 눈을 못 뜰 수도 있기에 감사한 마음이 강했다.
“성물에 대해 긴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델로우의 말에 유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