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36화 (136/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36)

―10분을 버텨야 하는 거임?

―이거 난이도 너무 높은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

―10분 버티면 확실하게 결계 부술 수 있는 건가?

―확정은 아닌 듯?

―도박이다! 도박이야!

―방장님이 고인물이라고 해도 이번에는 무리일 것 같네요.

―게임 오버각입니다. 아쉽네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시청자가 유진의 실패와 최악의 경우에는 게임 오버를 예상했다. 유진은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하고는 짧게 한숨을 흘렸다.

“쉽지는 않을 것 같네.”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눈동자를 움직일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계가 심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로 옆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하지만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은 즉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앞에서 백색 교단의 성기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검은 형체의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성기사의 옆을 빠르게 이탈하려 했다. 유진은 검은 형체가 습격자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고 그것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오러 블레이드를 깃들인 장검을 힘차게 내찔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푸른색의 빛을 내뿜으며 허공을 꿰뚫었다. 하지만 검은 형체에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검은 형체가 유진에게 반격을 가했다. 검은 형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한 두 팔을 휘둘렀다.

“크윽!”

매서운 속도였다.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조차 완벽하게 회피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3번의 연속 공격이 펼쳐졌다. 2번째 공격까지는 피했지만, 3번째는 무리였다. 칠흑의 칼날이 유진의 왼쪽 어깨를 깊게 베었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뺨에 붉은 피가 튀었다. 상처가 꽤 깊다. 다량의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과다 출혈로 인한 현상이었지만, 다행히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힐!”

뒤편에서 엘란의 외침이 들려왔다. 신성력의 파동과 함께 순백의 빛이 유진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수습 성녀 레이나 만큼은 아니었지만, 엘란 역시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성기사다. 그의 신성력도 높은 편이었다. 물론 전투에 특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 치유를 위한 신성 마법을 소홀히 수련한 것은 아니었다.

유진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자 검은 형체도 추가 공격을 포기하고서 짙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유진 경!”

벤자민의 목소리였다.

“이건 은신술의 영역이 아니라, 결계 마법입니다!”

은신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암살자인 벤자민도 기습의 기척을 잡아내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은신과 암습의 대가였지만, 이런 종류의 결계 마법에 대한 지식과 식견이 다소 부족했다.

―은신술이 아니라, 결계라는 걸 알아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알아채도 늦었다! 하하!

―우리는 레이나만 믿으면 됩니다.

―꽉 잡아욧! 버텨야 해욧!

―이제 얼마 안 남았음. 조금만 더 버티면 됨.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유진은 채팅 창을 슬쩍 확인했다. 채팅 창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고인물 스트리머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으아아아악!”또 한 명의 성기사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이제 백색 교단의 성기사들은 엘란을 포함하여 다섯도 남지 않았다. 사제들은 전멸했고 수습 성녀, 레이나는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신성력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주위로 대량의 신성력이 모여 들어서 순백의 빛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레이나가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어느새 목표 시간에 도달했고, 충분한 양의 신성력을 모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암흑으로 검게 물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순수한 백색의 빛을 머금은 신성력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수습 성녀의 손끝에서 분사된 신성력이 검게 물든 하늘의 어둠과 함께 결계를 유지하는 암흑의 마나를 몰아냈다.

“결계가 무너지고 있다!”

“사, 살았다!”

결계가 무너졌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환호했다. 그들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있을 때 유진과 드레인 그리고 바이올라와 벤자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직감한 것이다.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존재가 저 앞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을!

―A랭크들이 긴장하고 있다!

―진짜 큰 거 옵니다.

―지금 이 분위기를 볼 때 최소 중간 보스 등장 느낌이네요.―최악의 경우에는 더 높은 등급의 보스 몬스터일 수도 있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엘란 경 표정 보셈. 잔뜩 쫄아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귀엽네요.

―ㄷㄷㄷㄷㄷ.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활발하게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유진은 채팅 창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전방에서 강렬한 마나를 품은 기척이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마나의 주인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감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인지 기척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레인.”

차오르는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진은 애써 평정을 유지한 채 예민한 감각을 지닌 드레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주군.”

“어느 정도인 것 같아?”

구체적인 질문은 아니었지만,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인지 분명했다. 유진이 묻는 것은 지금 전방에서 이쪽을 향해 차가운 살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 채로 공포심을 조성하듯 아주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는 ‘존재’의 마나과 강함에 대한 질문이었다.

드레인은 기척 감지 등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능력이 유진에 비해 뛰어나다. 그래서 유진은 자신의 직감을 믿는 편이지만, 종종 드레인에게도 의견을 묻는 편이었다.

유진의 질문에 드레인은 돌처럼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로 전방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 앞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싸늘한 마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의 장막 너머로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강함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만난 적들 중 가장 강할 것 같습니다.”

드레인의 말에 유진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씹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역시 드레인과 같은 생각이었다.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기척의 주인은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드레인이 긴장하는 건 흔치 않은데 말이죠.

―드레인도 A랭크에서 나름 전투력이 낮지는 않은 편이고 뱀파이어 종족 특성답게 쉽게 긴장하는 성격도 아님.

―진짜 큰 거 온다! 다들 긴장해!

―소리 질러! ㅋㅋㅋㅋㅋ.

잔뜩 긴장한 유진과는 다르게 시청자들은 새로운 재미를 찾은 듯했다. 채팅 창이 빠르게 갱신되었고, 일부 시청자들은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유진에게 포인트를 후원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제대로 경고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목숨을 버리러 왔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냉기를 머금은 듯한 음성과 함께 암흑의 공간을 뚫고서 검은 로브를 입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칠흑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맹약 기사단에서도 간부의 위치에 있는 단원이자 A+랭크의 실력자인 환영술사 타니아였다.

―와우! 위압감 쩐다.

―A+랭크의 네임드는 다르네요.

―처음 보는 캐릭터인 것 같음. 도와줘요! 설명 요정!

―맹약 기사단 관련 업데이트 하면서 추가된 캐릭터인 듯?

―원래 이 게임이 잠수함 패치 자주 하는 편입니다.

―고마워요! 설명 요정!

채팅 창은 활발했으나, 유진의 눈동자는 타니아가 걸어오는 방향에 고정되어 있다. 유진의 전투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급의 캐릭터 중에서 뛰어나다는 뜻이다. A+랭크의 캐릭터를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현재 유진의 편에서 타니아를 상대할 A랭크 캐릭터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선공 필승이다.”

유진은 아주 작은 음성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드레인에게 간단한 수신호를 보냈다. 선제공격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고 다행히 드레인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도 유진의 수신호를 확인하고 조용히 마나를 끌어 모았다.

눈치 빠른 바이올라도 드레인과 유진이 은밀하게 선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말없이 스태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엘란은 수습 성녀 레이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벤자민 또한 두 눈을 부릅뜨고서 유진과 드레인 등을 보조할 준비를 했다.

“과연 성공할까? 현명하게 판단하렴, 젊은 금패 용병아.”

도발과 함께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타니아를 향해 유진은 대답 대신 힘차게 땅을 박차고서 달려들었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오러 블레이드에 화염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처음에는 정령검 그리고 이어서 다음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마나를 운용한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높습니다.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15%입니다.]

일검필살과 정령검을 사용했다. 출력은 과감하게 15%로 올렸다.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마나 홀이 커졌기 때문에 15%의 출력만 해도 초창기 수준으로 비교하자면 30%에서 40%에 달하는 수치였다.

출력을 더 높일지 잠깐 고민했었지만, 조금 전까지 전투를 치르느라 이미 적지 않은 마나를 소모한 상태였기 때문에 신중하게 조절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화염 속성의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검격이 타니아를 노린다. 하지만 유진의 검격은 그녀의 목을 베지 못했다.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가 살갗에 닿기 직전에 그녀의 육신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드레인!”

유진의 부름에 드레인은 유난히 창백한 얼굴로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타니아의 기척을 추적할 수 없었다. 기척을 지운 채 완전히 사라진 그녀가 다시 나타난 곳은 수습 성녀, 레이나의 바로 뒤였다.

“나약한 것들아, 너희의 수준은 고작 이게 한계란다.”

타니아가 손을 뻗자 암흑의 마나로 만들어진 그림자 칼날들이 레이나를 노린다. 하지만 다행히 엘란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목숨을 바칠 각오로 레이나를 밀치고 그 자리를 대신했다.

“크아아악!”

“에, 엘란 경!”

그림자 칼날들이 엘란의 갑주를 뚫고 그의 육체를 난도질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레이나는 서둘러 신성력으로 엘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도했고 가까운 곳에 있던 바이올라가 타니아를 향해 화염 세례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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