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34)
타니아는 심기가 불편했다. 유진이라는 이름의 금패 용병이 방해꾼으로 등장하고 난 이후부터 기존에 계획했던 것들이 자꾸만 틀어지고 있는 탓이었다.
환술사 타니아, 맹약 기사단의 루벤 북방 지부를 이끄는 9명의 간부 중 하나로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눈치를 볼 대상은 많지 않다. 맹약 기사단 전체를 두고 보면 적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루벤 북방 지부에서는 그녀가 눈치를 볼 만한 인물은 지부장을 포함해도 기껏해야 3명이 넘지 않는다.
그동안 준비해 온 계획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거나 어그러질 때마다 타니아의 신경은 예민해졌고 이에 따라 그녀를 따르는 부하들의 고생길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아침이 찾아오지 않은 새벽이다. 타니아는 새벽녘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숲속 공기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요즘 많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평소라면 가볍게 넘길 만한 습도에도 괜히 짜증이 밀려왔다.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한숨을 흘리며 타니아는 탁한 물색의 호숫가에서 서서 곧 찾아올 자신의 부관을 기다렸다.
슬슬 때가 되었다. 타니아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두 눈을 감고서 차분하게 10분쯤 기다리자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폴리냐.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타니아가 두 눈을 뜨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바로 뒤에서 직속 부관, 폴리냐가 공간을 찢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늦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긴, 공간 마법이 특기인 네가 약속 시간에 늦을 일은 거의 없지.”
폴리냐는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상급 마도사로 공간 마법이 주특기다. 차원 도약의 영역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공간 마법을 이용하여 일정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준에는 닿아 있었다.
“간밤에 있었던 일, 말해 줄래?”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폴리냐는 타니아가 내뱉은 문장에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피터 경이 직속 전투원 150명을 전부 동원했습니다.”
“그것까지는 알고 있어. 전투원 동원은 내가 승인했거든.”
감정 변화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타니아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고요한 호숫가를 응시하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와는 다르게 타니아의 심상은 어둡고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리피터가 전투원들을 동원한 것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알고 싶은 거지.”
미묘하게 섬뜩한 기운이 감도는 질문이었다. 폴리냐의 가면 아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직됐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어. 아직 안 늦었으니까 결과부터 보고해.”
폴리냐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타니아가 허공에 대고 손을 흔드는 것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며 가볍게 재촉하자 폴리냐는 긴장감을 정돈하고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재 전투가 진행 중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
“네, 알겠습니다.”
타니아의 말에 폴리냐는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고서 설명을 시작했다. 타니아는 쓸데없이 설명이 길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되었다.
요약하자면 맹약 기사단 루벤 북방 지부의 평기사, 리피터가 절명의 숲에 진입한 백색 교단의 잔당들을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 직접 150여 명 규모의 추격대를 이끌고 기습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설명이 끝나자, 타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폴리냐의 긴장한 시선이 타니아에게 닿았다.
“요컨대, 지금까지 내 계획을 방해한 금패 용병이 지금 백색 교단의 생존자들을 돕고 있다는 말이지?”
타니아의 눈동자에서 짙은 살기가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이에 폴리냐는 긴장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타니아를 옆에서 보좌한 기간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곧 긴장과 압박감을 떨쳐 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리피터 경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백색 교단의 생존자들을 조력하고 있는 인물 중에 금패 용병 유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금패 용병 유진이라…….”
타니아가 작은 음성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에 잠겨 들었다.
유진이라는 이름의 금패 용병에 의해 지금까지 여러 번 방해를 받으면서 계획이 많이 어그러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절명의 숲에 배치된 모든 전투원을 동원하여 습격하고 싶었지만,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임무를 수행하는 단원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동원하여 유진과 백색 교단의 생존자들을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고르지 않는 게 좋았다.
지금 타니아는 거듭된 실패로 맹약 기사단 내부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잘못된 선택은 섣부른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이미 타니아는 물러날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전황은?”
“현재 교전 중이라는 것까지는 전달받았지만, 절명의 숲이라는 지형적인 요인 때문에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게 힘듭니다.”
폴리냐가 침착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절명의 숲에는 몬스터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방해 전파나 마력 굴절 현상 같은 것들 때문에 간혹 마법 통신에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타니아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금패 용병, 유진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가뜩이나 조급한 마음에 큰 파문이 일었을 뿐이었다.
“고민이야,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타니아, 그녀의 음성에 예리한 날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를 분출하는 타니아의 앞에서 폴리냐는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다 죽여 버릴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된다. 금패 용병 유진에게 지속적인 방해를 받으면서 증오가 쌓였을 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그런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좋아, 결정했다.”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타니아는 결단을 내렸고 폴리냐는 긴장한 채로 타니아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다 죽여 버려야겠어.”
“직접 나설 생각이십니까?”
폴리냐의 물음에 타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폴리냐. 무리해서 모든 전투원을 동원할 생각은 없으니까.”
가면 아래에서 타니아는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액티브 스킬, ‘섬멸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에 의해 추가 강화 효과가 부여됩니다.]
[현재 바람 속성 정령 친화력 수치가 80포인트 이상입니다. 소환된 칼날 바람의 속도가 20% 향상됩니다.]
예리한 칼날을 머금은 수십 갈래의 바람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붉은 피가 튀었다. 유진은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하며 방어 자세를 정비했다. 섬멸의 바람은 다수의 적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위력적인 광역 스킬이었지만, 마나 소모가 꽤 심한 편이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역시 A랭크 스킬은 위력이 강하네요.
―이 정도는 해 줘야 A랭크 스킬이죠!
―섬멸의 바람, 이거 아는 사람만 아는 고효율 스킬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방장님은 고인물 플레이어셨군요.
―저분 신규 유입이신가? 방장님은 고인물 맞아요.
―ㄹㅇㅋㅋ.
오늘도 채팅 창은 활발했다. 유진은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하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전장을 살폈다.
전황이 좋지 않았다. 수적으로 열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습격을 가해 온 적들을 구성하는 전투원의 대부분이 B급이 아니라 C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만약 B급의 실력자들이 주력이었다면 유진 일행은 끝까지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백색 교단의 생존자들과 암약회 길드원들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우두머리를 요격하는 수밖에 없나?”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적의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장을 훑었다.
―우두머리 요격 ㄱㄱㄱㄱ.
―지휘부를 먼저 타격하는 게 전술의 기본이죠.
―방장님, 고인물 무빙 보여 주세요.
―압도적인 무력으로!
―포인트 후원 일발 장전함. 양학 시작하면 바로 쏩니다.
시청자들은 유진의 고인물 무빙과 양학 수준의 일방적인 활약을 관전할 생각에 들뜬 것 같았다.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으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게 바로 스트리머의 사명이다. 유진은 심호흡을 한 번 하는 것으로 호흡을 가다듬고서 적의 지휘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드레인! 바이올라를 부탁할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드레인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유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앞을 막아서는 적들은 모조리 베었다. 오러를 머금은 검을 휘두르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달린 끝에 유진은 적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칠흑의 강철 갑주를 입은 채 두 개의 짧은 단창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타니아 경께서 말한 금패 용병이 네 녀석이었구나.”
칠흑의 강철 갑주를 입은 거한이 무거운 저음의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유진은 방어 자세를 유지한 상태로 눈앞의 놈을 노려보며 시스템의 권능을 사용했다.
[???(?)]
―???.
물음표가 보인다. 예상은 했지만 맹약 기사단의 일원, 그것도 평기사 정도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맹약 기사단이다! 그런데 방장님의 이름을 알고 있네요?
―그동안 방장님이 맹약 기사단 쪽 계획에 훼방 놓은 것만 해도 꽤 많아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현상이죠.
―맹약 기사단 입장에서는 화가 많이 났을 거임.
―ㄹㅇㅋㅋ 현상금 걸었다고 해도 이해 가능.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유진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칠흑 갑주의 거한과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나는 리피터라고 한다.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네 목숨줄을 쥐고 있는 자의 이름이니까.”
스스로를 리피터라고 소개한 평기사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유진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농도가 짙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정작 눈앞의 정령기사에게 돈바스 같은 타니아 세력의 주력 평기사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목숨줄이라…….”
리피터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보며 유진은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그전에 네 목숨줄이 끊어질 것 같은데?”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지고 유진이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높이 도약했다. 마나가 모여 들고 정령의 기운이 응집한다.
지금 이 순간, 일격의 기회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