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28)
접선 장소인 비명의 강의 하류 지역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앞에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이 가운데 모닥불을 피운 채 앉아 있었다. 남들보다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드레인이 가장 먼저 누군가의 접근을 감지하고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군, 10명 정도 되는 소수의 인원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적의나 살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저희를 경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접근 속도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접근 중입니다. 현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1시간 안에 조우하게 될 겁니다.”
“1시간이라…….”
드레인의 보고에 유진은 턱을 긁적이며 침음을 삼켰다. 다가오는 이들이 가까워지자, 유진 또한 그들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드레인의 말대로 적의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과도하게 경계하고 조심하는 듯한 모양새로 접근 중이기 때문에 유진의 입장에서도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다.
“방심하지는 마. 접선 장소를 철저하게 숨겼다고는 해도 여길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아군이라는 보장은 없어.”
“오케이.”
드레인을 대신하여 대답하는 바이올라, 그녀는 옆에 놓여 있는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마나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접근하는 이들이 가까워진다. 유진은 말없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고, 드레인 또한 전투가 발생하면 이점을 챙길 수 있는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조용한 경계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오후 6시가 되었다. 루벤 왕국 뿐만 아니라, 루베니아 대륙에서도 북부에 위치한 절명의 숲에는 저녁의 어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어둠이 내린 숲속의 깊은 곳에서 검은 가죽 옷을 입은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숫자는 처음에 드레인이 파악했던 대로 10명이었다. 오두막으로 가까이 다가오던 그들은 유진 일행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유진 일행을 경계하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10명의 인원 중 리더로 보이는 남성이 부하들한테 경계를 풀라고 수신호로 지시하고는 유진 일행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유진과 드레인, 바이올라 등이 다소 경계를 풀자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내렸다. 그러자 복면 아래에 가려져 있던 맨 얼굴이 드러났는데, 그는 다름 아닌 암약회의 지벨 지부장, 벤자민이었다.
―오! 벤자민이네요.
―호감 캐릭터 등장!
―ㄹㅇㅋㅋ.
―란테르고 백작이 말한 외주 인력이 벤자민이었나 보네요.
―벤자민이라면 믿을 수 있죠.
―인정합니다.
반가운 등장에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유진 경,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네요.”
벤자민은 환하게 웃으며 유진에게 선뜻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루베니아 대륙의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을 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먼저 악수를 청하고는 한다.
이런 행동에는 자신을 경계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가 담겨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벤자민이 악수를 청하자 유진 또한 선명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악수 요청에 응했다.
그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유진은 이미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여 벤자민과 동행한 정보원들의 상태 창을 간략하게나마 확인한 후였다.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맹약 기사단 여부는 판별할 수 있었다.
“란테르고 백작님이 말씀하신 외주 인력 중에 벤자민 씨가 포함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지원조가 도착할 거라고는 전달받았지만, 유진 경일 줄은 몰랐습니다.”
벤자민의 말에 유진은 피식 웃었다.
―벤자민도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요.
―ㄹㅇㅋㅋ.
―그런데 호칭이 바뀐 것 같지 않아요? 이제 경이라고 꼬박꼬박 붙이네요.
―예전에 비해 방장님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다는 반증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함.
시청자들의 채팅을 슬쩍 확인한 유진은 이어서 벤자민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점은 확보했습니까?”
“근처에 저희 은신처가 있습니다. 현재 그곳을 거점으로 정보 수집 활동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해당 장소는 유진 경도 함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본래는 암약회의 거점이지만, 제가 필요한 조치를 해 두겠습니다.”
벤자민이 쾌활하게 말했다. 세계의 이면에서 활약하는 암살자들이나 정보원들은 저마다 혹은 세력마다 다수의 은신처를 확보하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웬만해서는 이걸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은신처는 매우 중요한 개인 자산이며, 동시에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벤자민과 암약회의 정보원들은 란테르고 백작이 고용한 인원들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공정한 계약으로 묶인 관계였기 때문에 무리한 명령을 할 수는 없다.
즉, 암약회 고유의 은신처에 대한 이용 허가는 어디까지나 벤자민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행히 벤자민은 암약회의 은신처를 공유해 준다고 했다.
“조, 조장님…… 외부 인원한테 저희의 은신처를 공유하는 것은 내규에 어긋납니다.”
암약회의 정보원 중 한 명이 거부감을 드러냈다. 외부인한테 길드의 고유 자산인 은신처를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약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정당한 항의였지만, 유진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지닌 벤자민은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부분은 내 권한으로 조율이 가능해.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
벤자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유진 일행을 접선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은신처로 안내하기 위해 먼저 걷기 시작했다.
“곧 은신처에 도착합니다.”
벤자민의 설명에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약 3시간을 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암약회에서 사용하는 은신처에 도착했다.
은신처는 비명의 강 하류 지역에 위치해 있는 네 채의 오두막이었다. 대책 없이 강가에 오두막을 지어 놓고 은신처라고 우기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대적인 세력의 정찰을 피할 방책은 철저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A랭크 은폐 결계네요.”
“바이올라 경, 정답입니다. 더 정확히 분류하자면 인지 혼란 결계의 일종입니다. 만약 저희와 동행하지 않으셨다면 오두막의 존재조차 몰랐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인지 혼란 결계를 이 정도의 범위에 전개하려면 상급에서도 상당히 수준 높은 마도사가 필요한 걸로 알고 있는데 대단하네요.”
바이올라가 두 눈을 반짝였다. 마법의 길을 걷는 마도사답게 전문 분야가 언급되자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저희 암약회 길드와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 중에서는 우수한 실력이 있는 마도사 또한 존재하지요.”
씨익 웃으며 설명하는 벤자민이었다. 그의 대사에서 암약회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암약회는 루베니아 대륙의 상위권에 랭크된 정보 길드 중에서도 악평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교적 정직한 정보 길드다.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은 아니다.
“유진 경과 일행분들께서는 4번 오두막을 쓰시죠. 미리 정리해 두었고, 3명이서 사용하기에는 공간이 넉넉할 겁니다.”
벤자민은 유진 일행이 사용할 숙소로 4번 오두막을 내주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편히 쉬세요. 정보 수집 임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내일부터입니다. 오전 9시까지는 모든 준비를 끝내 주시길 바랍니다.”
안내가 끝나고 벤자민은 마지막으로 다음 날의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는 4번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4번 오두막 안에는 낡은 침대 3개와 3명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원형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동안 영주들로부터 제공받은 숙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곳에 악명 높은 절명의 숲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나름 사치스러운 휴식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일찍 쉬자.”
“오케이.”
“알겠습니다.”
유진의 말에 바이올라와 드레인이 대답했다. 침대에 가장 먼저 몸을 던진 이는 바이올라였다. 여정이 피로했던 것인지 그녀는 침대에 몸을 눕히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저는 출입문 쪽에서 자겠습니다.”
드레인은 문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침대에서 자는 것을 자처했다. 아마도 ‘경계’ 때문일 것이다. 드레인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라서 숙면을 거의 취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수면 시간을 극도로 줄인 상태에서 장기간 활동하면 다소 피로감을 느끼거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단기간 활동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닿지 않는다. 때문에 드레인은 여정 중에 불침번을 자처하거나 자신의 수면 시간을 줄여서 야밤의 경계 시간을 늘렸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오전이 되었다.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는 오두막을 나섰다. 밖으로 빠져나오자 벤자민과 암약회의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역시 절명의 숲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벤자민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네,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유진이 일행을 대표하여 대답했다. 벤자민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럼 출발하죠.”
그들은 지체 없이 출발했다.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말을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했다.
“경계를 넘어서 중심부로 진입할 예정입니다. 이곳은 평범한 숲이 아니라, 절명의 숲이니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겁니다.”
벤자민이 말했다. 분주히 움직인 끝에 그들은 절명의 숲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경계를 넘기 무섭게 다수의 몬스터들이 앞을 막아섰다.
기척을 지우며 이동하고 있었지만, 일부 몬스터들의 예민한 감각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던 것이다.
크르르릉.
으르렁거리는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블러드 울프였다. 무리 지어 다니는 몬스터답게 한두 마리가 아니라 100여 마리에 가까운 숫자가 포위하듯, 사방에서 나타났다. 드레인이 그들의 기척을 감지했을 때에는 이미 광범위한 포위가 시작되었을 때였으니, 벤자민은 부하 길드원들에게 전투 대형을 갖출 것을 지시했다.
“전투 대형으로.”
“알겠습니다.”
암약회의 길드원들이 신속하게 전투 대형을 갖췄다.
―드디어 시작하는가!
―절명의 숲에서 전투!
―오랜만에 방장님이 활약하시겠네요.
―기대가 됩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절명의 숲이라고는 해도 블러드 울프가 이렇게 많다고? 뭔가 있다.’
유진의 두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보통 블러드 울프는 수십 마리 단위로 무리 지어 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100여 마리는 너무 많은 숫자다. 유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조용히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