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27화 (127/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27)

기사가 내민 종이봉투 안에는 접선 장소가 표시되어 있는, 절명의 숲 외곽부의 지도와 란테르고 백작이 유진에게 보내는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가 본 적 있는 장소다.’

지도에 표시된 장소가 눈에 익었다. 유진은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다회차 플레이어다. 하지만, 루베니아 연대기의 세계관과 설정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마스터’했다는 표현이 붙을 정도는 아니지만 루벤 왕국의 영향권에 있는 ‘절명의 숲’과 관련된 이벤트와 퀘스트는 꽤 많이 클리어 한 편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절명의 숲,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왕래한 외곽부 지리에는 익숙했다.

―저거…… 절명의 숲 외곽부 지도 맞죠?

―ㅇㅇ 맞음. 완전 정확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꽤 자세하게 제작한 것 같네요.

―절명의 숲에서 접선하는 것 같음.

―접선 장소부터 ‘절명의 숲’이라, 이번 퀘스트는 난이도가 높을지도 모르겠네요.

―ㄹㅇㅋㅋ.

―다들 같은 생각이구먼!

유진과 함께 지도를 확인한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확인했습니다.”

지도를 살핀 후, 품속에 집어넣으며 유진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편지는 숙소에 돌아가서 개인적인 공간에서 확인할 생각이었다.

지도와 편지의 전달을 맡았던 검은 망토의 기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유진에게 예를 갖춘 후, 조용히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일단 돌아가자.”

“오케이.”

“알겠습니다.”

유진은 바이올라와 드레인에게 우선 숙소가 있는 영주성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말했고, 반대 의견은 없었다.

그들은 영주성 내의 저택으로 돌아갔고, 유진은 가장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지도와 함께 전달받은 란테르고 백작의 편지를 읽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번 의뢰의 자세한 내용과 주의할 점 몇 가지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접선이 예정된 시간이 당장 사흘 후라는 것이다. 지도상의 위치로 봤을 때 오늘 안에 출발하지 않으면 시간적인 여유가 빠듯하다.

“오늘 출발해야겠네.”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는 바이올라와 드레인에게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하니, 여정 준비를 서두르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루메이 후작이 영지 업무를 보고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한창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는 루메이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절명의 숲에 간다는 계획은 들었네.”

“네, 곧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닌가?”

“시간을 지키려면 오늘 안에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진이 침착하게 설명하자 루메이 후작은 읽고 있던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서 눈동자를 옆으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루메이 후작령의 지도가 그려 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일정이 촉박한가?”

“사실 그렇습니다.”

“설마 심장부까지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일단 접선 장소는 외곽부입니다만, 접선 후에 어떻게 될지 솔직하게 말해서 장담하기 힘듭니다.”

“그렇군.”

유진의 말에 루메이 후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이올라와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절명의 숲 여정을 막아설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깊은 고민 끝에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절명의 숲, 외곽부에는 추방자들이 만든 마을이 있다네. 그걸 알고 있는가?”

“소문은 들었습니다.”

사실 추방자 마을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알고 있다. 하지만 다회차 플레이어의 지식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에 유진은 적절하게 숨겼다.

드러낸 지식이 과하면 오히려 의심을 사는 법이다.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다회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를 리 없었다.

“역시 자네도 소문 정도는 들은 모양이군.”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길게 말하지 않겠네. 추방자 마을에서 촌장을 맡고 있는 디오에게 루메이 링을 보여 주면 조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야.”

추방자 마을이라고 하면 루벤 왕국의 국법이나 영지법을 어긴 범죄자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들은 범죄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들로 자신이 소속된 영지나, 국가에서 모종의 이유로 추방당했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세계관이 방대하고 설정이 자세하게 짜여 있지만 이들이 절명의 숲으로 추방당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관련 메인 스토리가 업데이트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들이 추방당한 이유가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고인물 커뮤니티 사이에서 돌고 있을 정도였다.

추방자 마을이라는 설정은 지금까지 루베니아 연대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메인 스토리에서 크게 중요한 역할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맥거핀이라는 가설이 유력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자 추측이고, 유진이 루베니아 연대기에 빙의하기 전의 흐름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된 이후인 지금에 와서는 세간의 평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규모 업데이트에서 추가된 설정이 있을지도 몰라.’

유진은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고서 추측을 세웠다. 궁금한 게 많았다. 루메이 후작으로부터 추방자 마을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캐내려고 하다가 오히려 쓸데없는 의심을 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루메이 링을 보여 주면 촌장과 마을의 추방자들이 조력할 테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네.”

의미심장한 울림이었다. 루메이 후작의 말에 유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추방자들을 너무 믿지 말게나.”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추방자들을 믿지 마라, 루메이 후작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루메이 링을 보여 줬을 때, 그들이 협력과 조력을 해 온다는 것은 적어도 루메이 후작가와 추방자 마을 간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뜻이다. 즉, 루메이 후작가는 추방자 마을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절명의 숲에 존재하는 추방자 마을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한 키포인트가 루메이 후작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냐는 질문에 루메이 후작은 옅은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은 채 유진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알고 싶은가?”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궁금하긴 하네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의 솔직함은 괜찮을 것 같았다. 오히려 과도하게 호기심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게 유진의 생각이었다.

궁금하다고 밝혔으니, 이제 루메이 후작이 어떤 대답을 꺼내 놓을 것인가? 물론 이렇게 쉽게 추방자 마을과 관련된 떡밥들을 밝히지는 않을 테지만, 유진은 미약한 기대감을 품고서 루메이 후작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많이 궁금한가 보군.”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말해 줄 수 없다네.”

루메이 후작은 단호했다. 유진은 잠시 그의 말 상대가 되어 주면서 기회를 엿봤지만, 추방자 마을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는 입수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진은 루메이 후작의 집무실을 빠져나와 일행들과 합류했다.

“준비는?”

“나는 완료!”

“저도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유진의 질문에 바이올라와 드레인이 대답했다. 그들은 유진이 루메이 후작과 함께 있는 동안, 절명의 숲을 향해 나아갈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바로 출발한다.”

접선일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유진은 파티원들에게 선언하듯 말하고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절명의 숲은 위험하다. 고인물이라고 해도 손쉽게 게임 오버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진은 출발하기 전에 바이올라에게 루메이 후작과의 감정의 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바이올라가 직접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루메이 후작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유진은 더는 바이올라를 재촉하지 않았다.

“저녁은 밖에서 먹자.”

유진이 말했다. 그가 말한, 밖에서 먹자는 의미는 야영을 준비하면서 먹자는 뜻이었다. 그날 저녁, 유진과 파티원들은 루메이 도시를 빠져나와 절명의 숲으로 향했다.

절명의 숲으로 향하는 길. 늦은 밤까지 운영하는 마차 행렬이 있어서 말을 타고 그들과 합류했다. 마차 행렬의 목적지는 절명의 숲은 아니었지만, 그 근방이었다.

행렬과 합류한 이유는 그들과 함께 이동하다가 이탈하면 미행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고, 귀찮은 일에 연루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단의 호위에 참여한 대가로 이동 수단을 제공받은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절명의 숲 초입에 1시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지도를 보니까 쉬지 않고 분주히 움직인다면 정오가 되기 전에 접선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절명의 숲 초입에서 지도를 확인한 드레인이 말했다. 절명의 숲에서도 다소 위험도가 낮은 초입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동을 재개하느냐, 아니면 피로도가 쌓이는 것을 감수하고 이대로 계속 이동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짧은 고민 끝에 유진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수통을 입에다 대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드레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계속 가자.”

“네, 주군.”

바이올라도 불평하지 않았고, 그들은 접선 장소를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갔다. 초입을 넘어서자 몬스터들의 기척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기척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드레인의 말에 유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하지 마. 여긴 절명의 숲이다.”

유진이 경고했다. 파티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나아갔고, 처음 예상했던 대로 정오가 되기 전에 접선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접선 장소는 절명의 숲에서도 외곽부에 위치한 비명의 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사용한 것인지 주기적으로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돼?”

오두막의 지붕 아래에서 강렬한 햇빛을 피하며 바이올라가 질문을 던졌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 오후 6시까지 기다리면 돼.”

“오케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이 되었고, 접선 장소에 나타난 이들 중에서는 유진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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