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26화 (126/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26)

31장. 비명과 절명

눈앞에 퀘스트 창이 생성되었다. 유진은 눈동자를 움직여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돌발 퀘스트: 조사대 호위.

불과 얼마 전, 루벤 왕국은 맹약 기사단을 적대적인 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루벤 왕국의 란테르고 백작은 맹약 기사단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왕실 정보대를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루메이 후작령에 맹약 기사단의 은거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요원들을 추가로 파견했지만 작전 수행 도중에 목숨을 잃은 요원들이 너무 많아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란테르고 백작은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암약회와 접선하여 그들에게 의뢰를 맡겼고, 안전한 의뢰 완수를 위해 당신에게 그들의 호위 임무를 맡기려고 합니다. 암약회의 요원들이 맹약 기사단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동안 그들을 지키세요!

보상: 5,000골드, 스킬 포인트 5,000.]

퀘스트 내용의 확인을 끝낸 유진의 시선이 다시 통신 마법진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란테르고 백작의 환영체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유진이 이번 의뢰를 맡아 주기를 바랐다.

루벤 왕국에서 활동하는 금패 용병의 숫자는 많지만, 단시간에 ‘절명의 숲’에 도착할 수 있는 이들은 적었고, 그들 중에서도 유진처럼 신뢰할 만한 인물은 더더욱 없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란테르고 백작의 시선이 유진에게 향했다. 대답을 재촉하는 눈동자였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미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란테르고 백작의 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런 흐름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백색 교단의 성검과 관련된 메인 이벤트를 시작하기 전에 ‘절명의 숲’에 들어가서 사전 정찰을 하고 현지의 감각을 깨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띠링! 돌발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퀘스트를 수락한 것이다. 유진이 퀘스트를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란테르고 백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유진 경, 정말 고맙습니다.

란테르고 백작이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크게 안도한 표정이 되었다.

“접선 장소는 어딥니까?”

―내일 정오가 되기 전에 영주성으로 사람을 보내서 접선 장소가 기록된 지도를 전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의뢰 내용은 지도와 동봉될 편지에 적어 두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법 통신이 끝났다. 통신 마법진이 빛을 잃고 란테르고 백작의 환영체가 사라지자 바이올라가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절명의 숲으로 가는 거야?”

“자세한 내용은 내일 알게 되겠지만, 아마 절명의 숲에 가게 될 거야.”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겠네?”

바이올라의 물음에 유진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메이 후작령에 위치한 절명의 숲은 루벤 왕국의 그 어떤 숲이나 산맥보다 위험한 장소다.

오죽하면, 국왕이 루메이 후작령의 군사력 팽창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영지 내에 절명의 숲이 존재한다는 것을 꼽을 정도였다. 물론 주된 이유는 북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헤러웨이 제국 탓이지만 절명의 숲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절명의 숲’에 대한 악명이 허황된 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한테는 내가 말할까?”

바이올라가 말했다. 영주성을 몰래 빠져나갈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루메이 후작에게 행선지를 말해야 한다.

유진이 절명의 숲으로 간다고 하면 기겁하며 말릴 테지만, 바이올라가 직접 말한다면 막아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루메이 후작은 딸 바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바이올라를 끔찍하게 아끼면서도 마도의 길을 걷고 싶다고 꿈을 꾸던 바이올라를 왕립 마탑으로 보낼 정도로 결단력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바이올라를 아끼는 만큼 그녀가 많은 경험을 쌓고, 또 무엇보다 이 험난한 대륙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한 무력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적어도 루메이 후작은 딸 바보라는 이름으로 딸 아이의 출셋길을 막을 정도로 과보호를 시전하는 꽉 막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 괜히 내가 정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네가 말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오케이! 그렇게 할게!”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바이올라였다. 그녀는 자신이 루메이 후작의 반대를 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루메이 후작이 반대한다고는 해도 끝내는 바이올라에게 항복해 왔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바로 가서 말할까?”

바이올라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도 절명의 숲이 위험한 장소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유진을 믿기 때문에 그저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위험한 장소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여정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내일 출발할 것 같으니까, 지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오케이!”

유진의 말에 바이올라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하고는 루메이 후작을 찾아갔다. 루메이 후작은 저택의 집무실에서 영지와 관련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유진이 말했다. 바이올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루메이 후작이 있는 저택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바이올라가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루메이 후작가의 저택에는 온갖 마법적 장치들로 가득했고, 그중에서도 루메이 후작이 자주 사용하는 서재나 집무실 같은 공간에는 내부의 대화를 엿듣게 하지 못하는 마법진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계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1시간 이상은 흐른 것 같다. 바이올라가 직접 나섰다고는 하지만, 목적지가 악명 높은 절명의 숲이다 보니 루메이 후작이 크게 반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요한 긴장 속에서 복도의 벽에 기댄 채 30분을 더 기다렸다.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 문이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고 바이올라가 씩씩대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집무실 공간에서 루메이 후작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됐어?”

“잘 해결한 것 같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유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바이올라를 응시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설명을 원치 않는 표정이고, 결국 유진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것을 그만뒀다.

“아빠는 반대하지 않을 거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답을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바이올라가 설명했다. 집무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쟁을 많이 주고받은 것인지 바이올라는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전개였다. 루메이 후작이 바이올라의 장래와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딸아이가 위험한 ‘절명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그 심정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언쟁이 발생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루메이 후작과 바이올라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뱉었을 수도 있다. 괜히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바이올라는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먼저 쉬어야겠다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유진은 드레인에게 다음 행선지가 ‘절명의 숲’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을 전달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로그아웃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깨어난 유진은 샤워와 환복을 끝내고 방송을 시작했다.

“로그인.”

명령어를 말하자 채팅 창이 활성화되었다.

―유진 하이!

―방장님, 안녕하세요.

―이제 휴식은 끝난 건가요? 이제 절명의 숲으로 갑니까?

―절명의 숲은 빡세지 않음? 너무 이른 것 같은데…….

―ㄹㅇ입니다.

방송이 연결되고, 채팅 창이 활성화되자 시청자들이 빠르게 채팅을 입력했다. 언제나 그렇듯 유진은 대답 대신 행동을 보였다. 방을 벗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과 함께 영주성의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나 상태 창.”

유진은 상태 창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명령어를 입에 담았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4,920/4,920.

마나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마나 수치가 많이 상승해 있었다. 이어서 유진은 정령 친화력도 확인했다.

[정령 친화력.]

―화염: 160(+40)

―얼음: 110(+10)

―대지: 85(+10)

―바람: 75(+10)

정령 친화력 수치에도 소폭 변화가 있었다. 보정은 그대로였지만, 얼음 속성과 대지 속성의 친화력이 10포인트씩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랭크의 스킬인 정령군주의 호흡을 활용하여 꾸준히 수련한 성과였다. 수치의 변화를 확인한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태 창을 닫았다.

‘이 정도면 당장은 충분할 것 같네.’

마나 수치도 높고, 정령 친화력도 나쁘지 않다. 절명의 숲이 난이도 높은 장소라고는 하지만, 대비는 부족하지 않았다.

오전이 끝나고 정오가 되기 직전이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은빛 철갑의 기사가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망토에 달려 있는 흑색의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영주성 안으로 들어온 걸 보면 신원은 확인되었을 것이다.

그는 주위를 살핀 끝에 유진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유진의 바로 앞에 다가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예를 갖췄다.

“유진 경이십니까?”

“네, 제가 유진입니다.”

“저는 왕실 정보대 소속의 기사입니다. 정보 보안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점……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그런 거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란테르고 백작님이 보내셔서 온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외부 조력자들과 접선할 수 있는 장소와 자세한 의뢰 내용이 적혀 있는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검은 망토의 기사가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설명이 끝났으면 물건을 전달하라는 무언의 재촉이었다.

“그럼 전달하겠습니다.”

기사가 품속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