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19)
“쿠와아아아아!”
스톤 골렘이 포효를 내질렀다. 분노의 감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스톤 골렘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마법에 의해 인공적으로 창조된 존재였으니까,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스톤 골렘의 포효에는 분노의 감정 대신에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성질을 가진 암흑 마나가 잔뜩 실려 있었다. 즉, 단순한 포효가 아니라 날카로운 음파 공격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마법적인 방어 수단 없이 맨몸으로 맞선다면 전신이 갈가리 찢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유진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A랭크의 실력자였다. 그는 마나를 활용하여 신체에 얇은 ‘막’을 형성했다.
이 방법을 쓰면 마법 등, 마나를 활용하는 공격 수단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전문적인 방어 마법에 비하면 효율이 좋지 않고 단순한 물리 공격에는 저항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 자주 쓰는 수단은 아니었다.
“큭!”
유진의 입 밖으로 고통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스톤 골렘의 포효에 섞인 암흑 마나는 치명적이었다.
날카로운 성질의 암흑 마나가 유진의 철제 흉갑과 가죽 갑옷을 뚫고서 피부에 상처를 남겼다. 순수한 마나를 활용하여 최소한의 방어력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상처가 꽤 깊었을 것이다.
“쿠와아아아아아!”
스톤 골렘은 포효를 멈추지 않았다. 다량의 암흑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지만, 포효를 멈추면 반격당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다. 결국 먼저 물러난 쪽은 유진이었다. 그는 스톤 골렘의 포효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급히 뒷걸음질 쳤다.
―방장님! 이대로 도망치는 겁니까? 이래서는 아니 되옵니다!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전술 후퇴라고 해 주시겠어요?
―님은 저게 도망치는 거로 보임? 그냥 잠깐 뒤로 물러나서 재정비하는 거잖아요.
―인정합니다. 방장님은 도망친 게 아님.
―방장님이 고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돌격만 할 수는 없잖아요. 다들 너무 공격적인 채팅은 자제합시다.
채팅 창은 혼란스러웠다. 유진이 그동안 고인물스러운 행보만 보여 온 것도 있었고, 게임 방송 내에서 이미 고인물이라고 어느 정도 소문이 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이 흔히 말하는 일방적인 학살 콘텐츠를 기대하고 유입된 경우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A+랭크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레이드 보스급의 몬스터인 스톤 골렘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고구마를 한 움큼 집어 먹은 거처럼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방장님! 응원합니다!
―채팅 창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ㄹㅇㅋㅋ.
―재밌게 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음!
―악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맞아요! 계속 방송해 주세요!
고구마를 집어 먹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이탈을 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여전히 유진의 방송 스타일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유진은 채팅 창의 반응을 힐끔 살피고서 눈앞의 스톤 골렘을 향해 검을 겨눴다. 스톤 골렘은 지속적인 암흑 마나 소모를 버티지 못하고 포효를 멈춘 상태였지만, 유진은 섣불리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공격을 시도했다가는 도리어 크게 반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엘란 경! 놈의 시선을 교란해 줄 수 있겠습니까?”
유진이 엘란에게 물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엘란이 시선 교란을 유도할 수 있다면 스톤 골렘과의 거리를 쉽게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어야 3분입니다. 운이 좋다면 5분까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엘란의 대답이었다.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부족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유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엘란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엘란 또한 유진을 향해 눈동자를 움직였다.
둘은 자연스레 시선을 교환했고, 그것은 일종의 신호가 되었다. 고요한 긴장 속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유진이 수신호를 보냈고, 이를 확인한 엘란이 신성력으로 강화한 방패를 앞세워 스톤 골렘을 향해 돌진했다.
―오늘의 엘란은 열일하네요.
―여기서는 1인분은 하는 것 같아서 다행임.
―인정합니다.
―솔직히 엘란은 무능하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무능함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ㄹㅇ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엘란은 스톤 골렘을 향해 용맹하게 돌진했다.
“바이올라!”
“오케이! 내가 엄호할게!”
유진의 외침에 마나를 모으고 있던 바이올라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법이 완성되고, 하늘에서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훨씬 큰 수십 개의 불꽃이 모여서 뭉치더니 곧 하나의 거대한 화염구가 되었다.
―오오! 크다! 오오!
―역시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구먼!
―이 정도면 바이올라한테 파티 넘버 투를 줘도 될 것 같습니다.
―파티원이 3명인데, 파티장 제외하면 굳이 서열을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원래 수가 적을수록 정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상한 소리 같아서 그냥 거를게요.
채팅 창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바이올라를 찬양하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극히 일부 시청자들이 괴상한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볍게 넘기거나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바이올라가 외침과 함께 스태프를 힘차게 흔들었다. 그녀의 외침을 신호로 엘란은 스톤 골렘을 향해 더욱 매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스톤 골렘의 시선이 엘란에게 향한 틈에 바이올라가 시전한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화염구가 스톤 골렘의 왼쪽 어깨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스톤 골렘의 몸체가 크게 흔들렸다. 스톤 골렘의 공세가 약화되자 엘란이 깊숙이 파고들며 오러 블레이드를 마구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깃든 장검을 활용한 단순한 베기 공격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스톤 골렘의 시선을 분산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유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냉정하게 현 상황을 분석했다.
‘기회다.’
바이올라의 화염구가 스톤 골렘의 왼쪽 어깨에 장착된 마정석 하나를 파괴했다. 이것은 마나 광선의 화력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한 유진은 스톤 골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스톤 골렘의 시선은 바이올라와 엘란에 의해 분산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유진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쿠와아아아!”
스톤 골렘은 서둘러 마나 광선을 재충전했다. 흉부의 마정석을 충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어깨 위에 붙은 소형 마정석이 유진을 향해 칠흑의 마나 광선을 발사했다.
처음 마나 광선의 기습에 어깨가 관통당했던 유진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스톤 골렘의 오른쪽 어깨로부터 시작된 마나 광선의 발사를 확인한 순간, 침착하게 마도구를 발동했다.
[아티팩트, ‘보호의 약속’을 사용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발현된 실드가 마나 광선을 막아 냈다. 유진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스톤 골렘과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자 그는 또 하나의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얼음.”
[오러 블레이드에 얼음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얼음 속성의 친화력 점수를 높인 덕분에 이제는 해당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화염 속성에 비해서는 친화력이 낮기 때문에 위력이 약할 테지만, 스톤 골렘을 상대로는 어중간한 화력의 화염보다는 ‘얼음’ 속성의 참격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쿠와아아아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톤 골렘은 유진의 검에서 휘몰아치는 얼음 폭풍의 존재에 극한의 경계를 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진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높습니다.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10%입니다.]
지금은 ‘절단’을 노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10%면 충분하다. 유진은 ‘일검필살’의 출력을 조정하였고, 최대 전력의 10%를 머금은 참격이 스톤 골렘을 덮쳤다.
노린 것은 흉부의 마정석이다. 단숨에 흉부의 마정석을 파괴한 유진은 이어서 스톤 골렘의 관절에 얼음 정령의 힘이 담긴 참격을 날려 보냈다.
쿵! 쿠웅!
관절을 절단하지는 못했지만 얼음 정령의 힘이 작용하면서 스톤 골렘의 허리와 양팔의 관절이 얼어붙었다.
“쿠와아아……!”
스톤 골렘이 포효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유진의 칼날은 이제 머리 부위에 설치된 ‘핵’을 노리고 있었다. 스톤 골렘이 미처 저항하기도 전에 유진의 검이 ‘핵’을 파괴했고, 그로 인해 스톤 골렘은 ‘최후’를 맞이했다.
[업적, ‘골렘을 부수는 검객’을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골렘 파괴자’의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톤 골렘이 최후를 맞이했고, 유진은 새로운 칭호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상태 창을 열었다.
―골렘 파괴자(A): 당신은 스톤 골렘을 토벌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골렘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와 구조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골렘 분류에 속하는 몬스터와 전투할 때 50%의 확률로 특별한 스킬의 사용 없이 ‘핵’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새롭게 얻은 칭호는 ‘골렘 파괴자’였다. 골렘을 상대할 때 50%의 확률로 ‘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이점이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업적의 달성으로 10,000점의 스킬 포인트를 얻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ㄷㄷㄷㄷㄷ 방금 접속했는데, 설마 스톤 골렘을 잡은 거예요?
―아직 초중반인 거 아니었음?
―벌써 스톤 골렘도 사냥하신 거?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게 바로 실, 력, 차, 이.
―고인물 무빙 멋졌습니다.
―이번에도 잘 감상하고 갑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포인트 후원도 몇 차례나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스톤 골렘의 등장에 고생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윽고, 유진은 채팅 창에서 눈을 떼고서 스톤 골렘의 잔해로 다가갔다.
짐마차 방향으로 도망쳤던 상단주, 켈란이 쓰러져 있었다. 유진은 그에게 몇 가지 물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물었다. 켈란이 혀를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맹약 기사단 소속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답은 간단하다.
켈란의 숨이 끊어지기 무섭게 암흑의 불길이 그의 몸을 집어삼켰으니, 이는 그가 맹약 기사단 소속이라는 보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