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18)
짐마차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암흑 마나가 분명했다. 마나의 성질에 대한 분석력이 다소 부족한 유진은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했지만, 짐마차에서 흘러 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평범한 마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유진과는 다르게, 마도사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경지가 결코 낮지 않은 바이올라는 짐마차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검은 기운이 대륙에서 금기로 여기는 암흑 마나라는 사실을 단번에 파악했다.
―저 짐마차 안에 뭔가 있는 것 같네요.
―대체 뭘까요?
―방금 전에 바이올라가 암흑 마나라고 말함.
―비장의 카드를 하나 숨겨 두고 있었네.
―ㄹㅇ 그런 듯?
―뭔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채팅 창을 힐끔 확인한 유진은 암흑 마나를 마구 뿜어내고 있는 짐마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바이올라! 큰 거 한 방 부탁해!”
“오케이!”
유진의 외침에 바이올라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한 방이 아니라, 두 방으로 간다!”
더블 캐스팅이었다. 바이올라가 허공에 마나를 뿌리자 2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이윽고, 2개의 마법진이 쩌억, 하고서 입을 벌리더니 짐마차를 향해 거센 화염을 토해 냈다.
연쇄적인 화염의 길이 암흑 마나를 쏟아 내고 있는 짐마차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누가 봐도 짐마차의 종말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었고, 유진도 바이올라의 마법이 짐마차를 파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거 간다!
―A랭크 마법의 더블 캐스팅!
―역시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구먼!
―최고다! 바이올라!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바이올라의 막강한 마법이 짐마차와 함께 적들의 비열한 술수를 모조리 박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확신과 믿음은 원래 배신당하는 법이라고 하던가. 유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공식은 이번에도 작용했다.
“쿠와아아아아아!”
짐마차 위로 화염이 쏟아지려는 순간이었다. 암흑 마나가 짐마차 주위로 모여 들더니, 칠흑의 마법진을 형성했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올라는 짐마차 안에 무엇인가가 암흑 마법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파, 파괴해야 돼……!”
바이올라는 다급하게 마법의 불길에 가속의 속성을 부여했다. 짐마차를 노리는 화염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지만, 이미 늦었다.
암흑 마법은 완성되었고, 검은 빛의 마법진이 열리고 거대한 형체를 가진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칠흑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몸체는 인간형에 가까웠고,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서는 암흑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스톤 골렘이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마 여기서 스톤 골렘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스톤 골렘은 A+랭크의 몬스터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 레이드 보스급의 토벌 난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도 같은 초중반 시점에서는 조우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몬스터다.
유진이 다회차 플레이어라고 불리며, 다양한 루트의 엔딩을 본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예측이 힘든 수준을 넘어서 사실상 예측의 범위에서 아득히 넘어서는 변수와 조우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원래 스톤 골렘이 이렇게 빨리 출현하나요?
―전혀 아님. 토벌 난이도가 워낙 높아서 원래 최소 중반 넘어가는 시점에서 출현 가능성이 생기는 몬스터입니다.
―ㄹㅇㅋㅋ.
―고마워요! 설명 요정!
―업데이트하면서 출현 확률을 수정했나 보죠. 일단 지켜봅시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유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크와아아아아!”
스톤 골렘이 포효했다. 평범한 외침이 아니라, 암흑 마나가 담긴 포효였다. 스톤 골렘을 노리고 날아들던 2개의 거대한 화염구가 포효와 함께 폭발하듯 휘몰아치는 암흑 마나의 물결에 부딪혀 대부분 상쇄됐다. 일부 화염이 남아서 스톤 골렘의 몸체를 타격했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엘란 경! 신호탄을 쏘세요! 모두에게 알려야 합니다!”
스톤 골렘이 등장한 시점에서 전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 유진은 엘란에게 신호탄을 발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갑작스러운 스톤 골렘의 출현에 평정심을 잃기 직전이었던 엘란은 유진의 외침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서 품속에서 꺼낸 신호탄을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전투 상황의 발생과 지원 요청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붉은색의 신호탄이었다. 하늘로 쏘아 올려진 붉은 신호탄을 확인한 루센버그 준남작은 레이나가 탑승한 마차 주위의 방어 진형을 더욱 견고하게 강화하는 한편, 스톤 골렘이 출현한 후미를 지원하기 위해 기사들을 보냈다.
기사들이 합류했을 때 후미에서는 스톤 골렘을 제외한 모든 적이 모두 목숨을 잃거나, 전투를 이어 갈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스톤 골렘이 남아 있다는 게 큰 문제였다. 이미 스톤 골렘의 공격에 성기사 다섯이 당했다.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성기사인 엘란이 신속하게 신성력을 발휘한 덕분에 스톤 골렘한테 당한 다섯 모두 목숨은 붙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누적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적의 증원이 달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 스톤 골렘을 최대한 빨리 토벌해야 한다.
“바이올라, 저 녀석 말이야. 어디가 약점일 것 같아?”
스톤 골렘을 빠르게 토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스톤 골렘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 커다란 몸체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이 ‘핵’이 약점이다.
다회차 플레이어이자 고인물이라고도 불리는 유진은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스톤 골렘의 약점 위치는 개체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마도에 식견이 깊은 바이올라에게 조언을 구했다.
“높은 확률로 머리 쪽이 약점이야.”
바이올라가 말했다. 스톤 골렘의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암흑의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육안으로 관찰할 때에는 ‘핵’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마나가 모여 있는 곳은 머리 부분이 유일했기 때문에 유진은 바이올라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엄호해 줘.”
“오케이!”
스톤 골렘은 성기사 다섯을 해치우고서는 그 어떤 추가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증원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는 걸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한 대치를 계속 이어 갈 수는 없다. 유진은 돌격을 결심했고, 바이올라에게 엄호를 부탁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커다란 철로 된 방패를 든 엘란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눈동자로 스톤 골렘을 노려보고 있었다. 엘란도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성기사다. 결코 약한 전력은 아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합류를 허락했다.
“고맙습니다.”
엘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유진의 시선은 스톤 골렘한테 향했다. 뒤에서는 바이올라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캐스팅으로 인해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만히 있던 스톤 골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톤 골렘의 흉부가 열리고 칠흑을 머금은 사악한 빛깔의 마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검은 마정석으로 암흑 마나가 모여 들었다.
“마나 광선입니다! 다들 피하세요!”
“제가 막겠습니다!”
마나 광선을 경고하는 유진의 외침에 엘란이 앞으로 나섰다.
“빛이여!”
엘란이 고함을 내지르자 순백의 빛이 모여 들어 방패의 형상이 되었다.
―신성 마법이다!
―엘란이 비호감 캐릭터이긴 하지만 성기사들 중에서는 재능 있고 전투력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아요.
―ㄹㅇ입니다. 엘란도 나름 쓸 만한 캐릭터예요. 무능하다고 소문 난 이미지는 다소 과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능하다는 평이 많긴 함. 실제로 전투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무능하다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한 수준이긴 해요.
시청자들이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엘란에 대한 평가를 이어 가는 동안, 빛의 방패는 스톤 골렘이 발사한 마나 광선을 막아 냈다.
콰아아앙!
마나 광선에 명중 당한 빛의 방패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파괴당하기는 했지만, ‘관통’당하지는 않았다.
“유진! 지금이야!”
바이올라가 외쳤다. 일반적으로 마나 광선은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방금 전에 한 방 쐈으니, 이제 재장전의 시간이다. 이 틈을 노려야 한다. 바이올라는 준비하고 있던 마법으로 스톤 골렘을 공격했다.
수십 개의 불줄기가 사방으로 갈라져 전후좌우에서 스톤 골렘을 타격했다. 일점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보다는 위력이 강하지 않았지만, 사방에서 연쇄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으로 스톤 골렘의 인식 체계에 혼란을 유도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기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스톤 골렘은 전 방위에서 쏟아지는 연쇄 공격에 크게 혼란스러워 했다. 유의미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혼란은 가중되었다.
짧은 계산 끝에 스톤 골렘은 마나의 근원을 역추적하여 발견한 바이올라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톤 골렘은 오른손에 짧은 전투 도끼를 들고 있었다.
마나 광선이 재장전 중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수단으로 바이올라를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그걸 유진과 엘란이 가만히 지켜만 볼 리 없었다. 유진은 이미 스톤 골렘의 시선이 분산된 틈에 깊숙이 침투했고, 엘란 또한 빛의 방패를 생성하기 위해 신성력을 모으고 있었다.
“쿠와아아아!”
스톤 골렘이 전투 도끼를 휘두르려는 순간, 유진 또한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높습니다.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30%입니다.]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일검필살’의 스킬이 스톤 골렘의 왼쪽 다리를 깔끔하게 절단했다. 그러자 스톤 골렘은 중심을 잃고서 옆으로 쓰러졌다.
유진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스톤 골렘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나, 이는 방해에 부딪히고 말았다.
스톤 골렘의 양쪽 어깨에서 소형 마정석 2개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유진을 향해 마나 광선을 발사한 것이었다.
흉부에서 발사한 마나 광선과는 다르게 소형 마정석이 발사한 것이라 화력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대응이 늦었다. ‘보호의 약속’조차 사용하지 못했고 암흑의 빛을 머금은 마나 광선 하나가 유진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크, 크흑!”
유진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주춤하자 그 틈에 스톤 골렘이 반쯤 몸을 일으켰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