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17)
마나 상태 창과 정령 친화력을 확인하고 다음 날이 되었다. 간밤에 사용했던 영지군 병사들이 야영 물품들을 챙기고 여정을 재개할 준비를 서둘렀다.
기사들도 무장을 챙기고 태세를 가다듬었고, 레이나도 마차에 올랐다. 바이올라의 자리는 이번에도 마부석이었다. 마차를 끄는 말들을 통제하기 위한 마부석은 제인이라는 이름의 젊은 성기사의 자리였다.
“유진 경, 호위 대형이 완성되었습니다. 점검해 보시겠습니까?”
루센버그 준남작이 다가왔다. 그는 호위 대형이 완성되었다고 보고했고,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위 대형을 점검하기 위해 말에 올랐다. 그는 말을 타고 행렬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분을 점검했다. 이윽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유진은 행렬을 출발시켰다.
행렬이 출발하고 몇 시간이 흘렀다. 선두에서 출발하여 앞서가고 있던 정찰조가 뭔가를 발견하고서 행렬로 돌아왔다.
“루센버그 준남작님!”
정찰조의 병사가 행렬 선두에 위치한 루센버그 준남작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의 앞에 도달한 병사는 루센버그 준남작에게 정찰 결과를 보고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전방에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소규모 상단의 행렬이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상단의 무리면 굳이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현재 북부의 상황이 안 좋고 실제로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를 노리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선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일시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이 내용을 유진 경에게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루센버그 준남작은 행렬 선두의 지휘를 잠시 엘란에게 맡기고서 유진이 있는 진형 중앙으로 말을 몰았다. 이윽고, 그는 유진의 앞에 도달했다. 마차의 바로 옆에서 이동 중이던 유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루센버그 준남작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루센버그 준남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유진 경, 정찰조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전방에서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상단 행렬이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아마 조우하게 될 겁니다.”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죠?”
유진이 물었다. 루센버그 준남작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수상하긴 하네요. 인원은 몇 명입니까?”
“16명이라고 합니다.”
“흐음…… 16명이라면 다행히 대규모 인원은 아니네요.”
유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침음을 흘렸다.
“우회할까요?”
“여기서 우회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품 속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한 유진이 말했다. 현 위치는 지형상 우회하기 적합하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도로 양옆의 지형이 매우 험난하기 때문에 우회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차라리 속도를 올리죠. 상단 행렬을 빠르게 지나가는 겁니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전령을 통해 행렬 전체에 전파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일 없을 겁니다.”
전방의 상단 행렬은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루센버그 준남작은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단 행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최소한의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본분에 충실한 것이다. 이건 상단 행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듣고서 이걸 그냥 넘기지 않고 유진에게 달려와 전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전령이 행렬 전체에 속도를 올리라는 명령을 전파했다. 행렬은 전방의 상단을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선두가 상단을 추월하고, 이내 행렬의 중앙과 후미가 상단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유진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태까지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던 상단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상단이 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드레인이 말했다.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군, 제가 가서 확인해 볼까요?”
저들의 의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드레인은 자신이 확인하겠다고 말했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드레인, 너한테는 마차의 안전을 맡길게.”
“직접 확인할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유진이 대답했다. 드레인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유진은 시스템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하여 상대방의 간단한 정보가 적힌 상태 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드레인에 비해 정보 수집이 용이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직접 나서려는 것이었다.
다만, 이게 유진이나 다른 A랭크 실력자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계략일 수도 있기 때문에 드레인은 마차 옆에 두고 싶었다. 유진은 바이올라와 엘란 그리고 소수의 성기사들을 이끌고 행렬의 후미로 향했다.
―여태까지 천천히 이동하던 상단이 갑자기 속도를 올린다? 이건 충분히 의심스럽죠.
―ㄹㅇㅋㅋ 의심할 수밖에 없음.
―방장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음.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방장님! 조심하세요!
시청자들은 여태껏 천천히 이동하다가 호위 행렬이 추월하자 갑자기 속력을 높이는 상단을 매우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고, 유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엘란을 비롯한 소수의 인원이 호위 행렬의 후미에 도착했고, 그들은 상단의 책임자와 조우하게 되었다.
상단의 책임자는 젊은 남성이었고, 그는 자신을 켈란이라고 소개했다. 유진이 갑자기 속도를 낸 이유를 묻자, 켈란은 루벤 왕국 북부의 치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라서 동행할 행렬을 찾고 있었다고 변명했다.
“유진 경……이라고 하셨던가요? 괜찮다면 동행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상단의 젊은 책임자, 켈란의 요청에 유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를 응시했다. 의심스러운 면이 하나가 아니다. 유진은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이 켈란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미한이라는 작은 상단을 이끌고 있는 켈란이라고 합니다.”
켈란이 유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유진은 그를 응시하며 조용히 시스템의 권능으로 ‘주시자의 눈’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주시자의 눈’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정보를 표출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켈란의 상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상태 창을 확인한 유진은 오히려 돌처럼 경직되었다. 지금까지 확인했던 캐릭터 상태 창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두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눈앞의 상태 창은 여전했다.
[???(?) 이명: ???]
―???.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 안에서 비중이 적은 캐릭터라고 해도 기본적인 설정은 존재하고 그것을 엿보는 게 ‘시스템의 권능’을 활용한 스킬 중 하나인 ‘주시자의 눈’이다. 일단 발동하면 사소한 정보라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캐릭터에 대한 정보 대신에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다. 심지어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전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으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왜 정보가 안 나오는 거임?
―시스템 오류인가?
―아이템 같은 거로 방어한 거 아닐까요?
―아무튼 수상함! 무조건 수상함!
―ㄹㅇ 이건 너무 수상한 것 같아요.
―바로 죽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무슨 짐을 가지고 있는지 검문은 해야 할 것 같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솔직히 이거 검문 안 하고 넘어가면 그것 만으로도 고구마 10만 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몰려올 것 같음 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채팅 창을 힐끔 살핀 유진은 시청자들의 의견을 일부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켈란 씨, 저희와 동행을 원하신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요청 사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잡겠습니다.”
“검문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검문을 진행하겠다는 유진의 말에 켈란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검문이요? 꼭 해야 합니까? 저희는 선량한 상인들입니다.”
켈란은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유진은 켈란의 상태 창이 물음표로 도배되어 있는 걸 본 순간부터 검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부한다고 해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마법으로 간단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짐을 풀거나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꼭 해야 합니까?”
켈란이 드러내는 거부감의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용병들의 기세가 미묘하게 변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계를 하되, 여유가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적의와 살기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네, 꼭 해야 합니다.”
유진의 대답은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켈란의 좌우에 서 있는 용병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을 숨기고 있는 모양인지 격렬한 반응이다.
―수상하긴 했는데, 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ㄹㅇㅋㅋ.
―검문한다고 말하니까, 바로 칼부터 뽑아 들고 저항? 이거 과민 반응 아님? ㅋㅋㅋㅋㅋ.
―바로 들켜 버렸죠?
―이건 100프로입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거임.
시청자들은 이런 전개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진에게는 채팅 창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말에 탄 상태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쇠 마찰음과 함께 뽑혀 나온 예리한 칼날에서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쏴, 쏴라!”
켈란이 명령을 내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5명의 용병들은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엘란을 노리고서 달려들었다. 그들 중 2명은 품 속에서 소형 석궁을 꺼내 엘란의 우측에 있는 성기사들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크악!”
“바이올라! 뒤로 물러나!”
소형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성기사의 왼쪽 어깨에 꽂혔다. 유진은 말에서 뛰어 내리는 것과 동시에 바이올라를 노리는 용병 둘의 앞을 막아섰다.
“못 지나간다!”
푸른색의 궤적이 그려졌다. 바이올라를 노리던 용병 둘의 몸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다른 용병들도 엘란과 성기사 둘이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켈란을 잡지 못했으니, 끝난 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상단의 구성원들이 죄다 무기를 뽑아 들고서 달려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짐마차 안에 숨어 있던 것인지 무장한 이들이 10여 명은 더 나타났다.
“유진! 뭔가 심상치 않아! 저쪽 짐마차에 암흑의 마나가 모여 들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바이올라가 경고했다.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서는 용병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들 모두 은패 용병에 해당하는 B랭크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기랄!”
유진은 욕설을 내뱉었고, 후방에서 마법을 준비하던 바이올라는 어떤 이변을 눈치채고서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의 시선은 방금 언급된 짐마차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