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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15화 (115/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15)

29장. 잠자는 숲속의 성물

“노스로드 숲을 횡단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처음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유진 경께서 먼저 노스로드 숲을 통해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유진이 노스로드 숲의 횡단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자 엘란이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태클을 걸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이다.

“엘란 경,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본적인 상식이 다소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유진은 깊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를 하나 지적하자면 현재 호위대의 규모가 너무 커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6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노스로드 숲을 횡단한다고 해도 은밀하게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중간에 발각당할 가능성도 크고 도리어 이동 속도만 심각하게 저하될 겁니다.”

은밀함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 속도마저 줄어든다면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유진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고 엘란도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여정을 시작했을 당시였다면 쉽게 설득되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는 유진의 의견을 묵살했다가 큰 화를 입은 것 때문에 이제 엘란은 유진이 이견을 제시하면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더라도 유의미하게 고려하고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노스로드 숲을 횡단하는 게 아니라면, 도로를 통해 이동할 계획입니까?”

엘란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했다. 그러자 엘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로를 통해 이동하다가 맹약 기사단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부하들을 모두 잃은 경험 탓에 깊은 트라우마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찬성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당장은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유진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엘란은 우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찬성한다는 느낌이 유난히 강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엘란의 심리적인 불안정이 심각하며 실책으로 부하들을 모두 잃은 충격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도 도로를 통한 이동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얌전히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던 루센버그 준남작이 조심스럽게 침묵을 깨고 끼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한 그는 도로를 통해 이동하자는 유진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루센버그 준남작님,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규모 인원이 도로를 통해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엘란 경, 오히려 대규모 인원이기 때문에 도로로 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경로가 될 겁니다. 그 이유는 유진 경이 이미 자세하게 설명을 했으니 굳이 제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루센버그 준남작의 말에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조용히 동조했다.

이동 경로를 정하기 위해 모인 3명의 지휘관 중 2명이 도로를 통해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 엘란은 더 이상 미약하게라도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더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유진 경과 루센버그 준남작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엘란이 포기하면서 그들은 더욱 자세한 이동 계획의 수립을 위하여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 한 채 지도와 씨름을 이어 갔다.

자정을 넘은 시각에서야 확실한 이동 계획이 수립되었고,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유진과 일행들은 식사를 끝내고 영주성의 안뜰로 향했다.

안뜰에는 이미 엘란과 성기사들 그리고 루센버그 준남작이 지휘하는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도시의 영주인 유젤키아 자작의 모습도 보였다. 유젤키아 자작도 유진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영지군의 병사 20명을 호위대에 추가 편성했다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부디 도움이 된다면 좋을 것 같네.”

“북부의 치안 악화로 유젤키아 영지군에는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없던 게 아니었습니까?”

“물론 여유는 거의 없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끌어모았다네.”

유젤키아 자작이 대답했다.

―북부 지금 난리가 났을 텐데, 고맙네요.

―ㄹㅇㅋㅋ 북부 사정 안 좋은 것 같음.

―상황이 좋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사방에서 병력을 끌어모았나 보네요.

―감동입니다.

―원래 북부인들이 서로 유대가 깊고 의리를 잘 지킵니다.

―인정합니다.

채팅 창도 오랜만에 훈훈한 분위기였다.

“최선을 다해서 레이나 경을 지키겠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시청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유젤키아 자작은 순수한 호의와 북부인들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유진이 지벨 백작이나 벨폰 자작과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부가 혼란 속에 잠긴 상황에서 기사들을 포함해 적지 않은 숫자의 병력을 지원한 이유는 단순히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영지에서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가 습격을 당해 시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진은 레이나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유젤키아 자작이 걱정과 우려를 덜어 낼 수 있도록 도왔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유젤키아 자작의 표정은 조금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유진 경, 자네만 믿겠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습 성녀를 지켜 주게. 그녀가 목숨을 잃는다면 백색 교단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유젤키아 자작은 거듭 당부했다. 그렇게 유진과 호위대 행렬은 걱정으로 가득한 유젤키아 자작의 배웅을 받으며 미처 끝내지 못했던 여정을 재개했다. 그들은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루메이 후작령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이 속도라면 일주일 안에 루메이 후작령의 경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을 줄여 가며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이동했다. 선두에서 말을 모는 루센버그 준남작은 도로에 꽂혀 있는 안내판과 지도를 번갈아 가며 확인한 끝에 루메이 후작령의 경계까지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조금 더 속력을 올렸고,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이동했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구름 밖으로 새하얀 달이 고개를 내밀 때가 되었을 때 멈춘 행렬은 각자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유젤키아 영지군의 병사들은 행렬에 포함된 3대의 짐 마차에서 야영 도구들을 꺼냈다. 그들은 훈련받은 정병들이다.

필요한 숫자의 천막을 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야영지 중앙에는 5개의 모닥불을 피워 올렸고 가장자리에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개의 횃대를 세우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이올라와 영지군 소속의 중급 마도사가 각자 야영지 주변에 경계 마법진과 경보 마법진 등을 설치했다.

“경계조를 편성하겠습니다.”

경계와 경보 마법진을 설치했다고는 하지만 맹신할 수는 없다.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루센버그 준남작은 앞장서서 경계조를 편성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1명, 성기사 1명 그리고 영지군 병사 2명을 1개 조로 해서 총 4개 조를 편성했습니다. 3개 조는 야영지 가장자리를 따라 순찰할 거고 1개 조는 중앙 쪽에서 순찰을 돌게 할 예정입니다.”

루센버그 준남작의 말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와 드레인, 바이올라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유진 경과 드레인 경 그리고 바이올라 경은 현재 호위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입니다. 그래서 세 분이 사용하실 천막은 레이나 경의 천막 바로 옆에 설치했습니다. 그곳에서 경계를 유지해 주시면 됩니다.”

천막이나 그 주변에서 경계를 유지해 달라고 말했지만 이건 명백한 배려였다. 가장 강력한 전력인 유진과 파티원들의 컨디션을 상시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한 배려였다.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려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루센버그 준남작님.”

“아닙니다, 유진 경. 저는 이 배치가 레이나 경의 안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정한 겁니다. 너무 부담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하.”

루센버그 준남작은 시원스레 웃었다. 제법 호탕해 보이는 모습에 유진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유진은 짧게 대답하고는 병사들이 피운 모닥불 앞으로 가서 앉았다. 식사 당번을 맡은 영지군 병사가 늦은 저녁 식사를 위해 커다란 냄비에 여러 재료를 넣고서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

“유진 님, 스튜 좀 드시죠.”

“고마워요.”

유진은 병사가 주는 머그잔을 받았다. 안에는 건더기가 가득한 미트 스튜가 담겨 있었다. 아직 뜨거웠다. 유진이 스튜를 먹고 있을 때 그의 옆에 레이나가 앉았다. 그녀 또한 왼손에 스튜가 담긴 컵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스튜 안에 담긴 고깃덩이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넘기고는 옆자리에 앉은 유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의미심장한 눈빛?

―오우!

―고백 타이밍 보는 거 아닐까요?

―벌써요? 아직 플래그 안 꽂은 것 같던데요?

―고백은 아님!

―ㄹㅇㅋㅋ.

자꾸만 힐끔거리는 레이나를 보며 유진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고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속도를 조금 더 올려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한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굳이 무리를 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다소 날카롭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레이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실은 출발 직전에 중앙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내용이 뭡니까? 일부분이라도 공유를 부탁합니다.”

“사정이 생겨서 기한을 앞당겨야 한다는 내용의 연락이었어요.”

레이나의 말에 유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녀를 응시했다.

“중앙청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네요.”

“사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급합니까? 루메이 후작령에 잠들어 있는 ‘성물’을 당장 회수해야 할 정도예요?”

“그, 그게 무슨…….”

‘성물’이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무섭게 수습 성녀 레이나의 평정이 깨졌다. 반면에 유진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 그는 고인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루트를 클리어 한 다회차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루메이 후작령에 백색 교단이 잃어버린 성물 중 하나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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