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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11화 (111/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11)

유젤키아 영주성의 저택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유진은 전날 일찍 수면을 취한 덕분인지 이른 아침 시각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동안 강행군을 이어가느라 도시나 마을이 아닌 야영으로 많은 수면 시간을 해결한 탓에 누적된 피로의 대부분이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스트레칭을 하자 남은 피로가 깨끗하게 물러가는 것 같았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사치인가? 아무래도 엘란의 무리한 계획으로 인한 강행군 탓에 그동안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후우!”

스트레칭을 끝낸 유진은 슬슬 ‘로그인’ 준비를 서둘렀다. 평소 입고 다니는 가죽 갑옷과 철제 흉갑을 입고 혁대에는 아공간 주머니를 포함해 각종 잡다한 도구들을 장비하고 마지막으로 장검을 허리에 찼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유진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로그인.”

방송을 시작하는 명령어를 말하자 연결이 시작되면서 채팅 창이 활성화되었다.

―오! 방송 켜졌다!

―방장님, 안녕하세요.

―유진 하이!

―유하! 유하! 대충 ‘유진 하이’라는 뜻!

―오늘은 어떻게 진행하실지 궁금하네요.

―기대가 됩니다.

방송이 시작되기 무섭게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실시간 시청자 수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많은 인원이 유진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 없고, 뭐든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는 법이다. 유진은 실시간 시청자 수를 확인하기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청자 수: 2,129명.]

시청자의 숫자는 2천 명을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방송을 켠 직후라는 걸 감안하면 시청 중인 인원수가 많은 편이었다.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게임 속에 빙의한 첫날의 시청자 수를 생각하면 많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게임 속에 빙의된 현실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거라서 온전히 유진이 소유하고 있는 스트리밍 채널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시청자 수가 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구경이었다.

‘성장 속도가 나쁘지 않네.’

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게임 진행은 안 하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히히’하고 웃고 있자 슬슬 인내심이 얕은 시청자들이 재촉을 시작했다.

―방장님! 빨리 게임 스토리 진행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신규 유입 시청자인데, 원래 이 채널 방장님은 느긋하게 플레이하시는 거 좋아하시는 건가요?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다른 채널의 스트리머들보다는 여유롭게 진행하는 편이세요.

―타 방송 언급 자제 바랍니다.

―ㄹㅇㅋㅋ 괜히 분위기 흐려짐.

―자제요! 자제!

재촉을 하는 시청자들은 대부분 최근에 새로 유입된 이들이다. 오래전부터 유진의 방송을 시청한 이들은 성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고인물 시청자들은 조금 더 기다려 주겠지만, 신규 유입된 이들도 놓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목적 없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그만두고 복도로 나왔다. 스토리를 계속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우선은 유젤키아 자작의 행방을 먼저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영주성으로 오면서 루센버그 준남작으로부터 유젤키아 자작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는 것까지는 전해 들었지만, 정확히 언제 돌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물어볼 생각이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중앙 계단 쪽에 서 있는 2명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루센버그 준남작은 어제 유진 일행의 안전을 위해 저택 3층에 4명의 기사를 배치했다. 그들은 2인 1조로 순찰을 돌거나, 다른 층과 연결된 계단을 지켰다. 유진은 계단을 지키고 있는 기사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다면, 루센버그 준남작님에게 제 말을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어떤 말씀을 전하면 될까요?”

젊은 기사는 혁대의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와 짧은 연필을 하나 꺼냈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 중간에 잊지 않도록 필기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굳이 필기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하게 한마디만 전달하면 되니까요.”

“네, 말씀해 주신다면 기사단장님께 전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시간을 내달라고 전해 주길 바랍니다.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하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전하겠습니다.”

유진의 말에 젊은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2층으로 내려갔다. 현재 근무 중이라는 이유로 루센버그 준남작에게 직접 말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2층에서 다른 하인에게 유진의 말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고 다시 자신의 위치로 복귀했다.

2층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하인은 젊은 기사의 요청을 받고서 루센버그 준남작을 찾아 저택을 나섰다.

잠시 도시를 비운 유젤키아 자작을 대신하여 영지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루센버그 준남작은 하인을 통해 유진의 말을 전해 듣고는 곧장 그를 만나기 위해 저택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하인이 걸어 들어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루센버그 준남작님께서 응접실에서 유진 경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년의 하인은 루센버그 준남작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진에게 전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와 관련된 일이라고 말해서 급하게 뛰어온 것 같습니다.

―엄청난 속도! ㅋㅋㅋㅋ.

―수습 성녀가 습격을 당한 상황이라서 백색 교단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죠.

―ㄹㅇㅋㅋ 자기가 기사단장으로 있는 영지 안에서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가 죽을 뻔했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에요.

―ㅇㄱㄹㅇ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백색 교단에서 예민하게 나올 수도 있음.

시청자 중에서도 ‘고인물’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루센버그 준남작이 서두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제가 응접실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진은 먼저 걸음을 옮기는 중년의 하인을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영주 저택의 응접실은 유진 일행이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3층에 위치해 있었다.

앞서가는 중년의 하인과 함께 복도를 따라 걸었다. 길게 이어진 복도의 끝에 응접실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중갑을 입은 기사가 서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유진을 향해 호의적인 눈인사를 건넸다. 유진 또한 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는 것으로 답했다.

“루센버그 준남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갑을 입은 기사가 말했다. 여기까지 안내를 맡았던 중년의 하인은 말없이 유진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유진이 다가가자 중갑의 기사가 말없이 응접실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들어와도 된다는 루센버그 준남작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기사는 유진을 대신해서 응접실 문을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고 넓은 내부가 두 눈에 들어왔다. 루센버그 준남작은 응접실의 창가에 서 있었다. 창가에서 오전의 따스한 햇살을 쐬고 있던 그는 유진의 기척을 느끼고서 출입문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유진 경,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센버그 준남작은 유진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 루센버그 준남작은 철제 갑옷이 아니라 기사들이 평시에 즐겨 입는 제복 차림이었다.

“일단 앉으시죠.”

루센버그 준남작은 유진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이에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서 응접실 중앙에 위치한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목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루센버그 준남작도 유진의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백색 교단과 관련된 문제로 의논할 내용이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제게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이건 유젤키아 자작님께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직접 영지군을 이끌고 도시 인근을 순찰 중이십니다. 본래 순찰 일정은 아직 남아 있지만, 백색 교단의 레이나 경이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했으니 늦어도 내일 정오가 되기 전에는 도시로 귀환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유젤키아 자작의 행방과 대략적인 도착 일정을 확인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진은 더는 루센버그 준남작을 방해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점심 식사가 끝나고 늦은 오후가 되었다. 루센버그 준남작으로부터 영주성 안에 있는 연무장의 사용을 허락받은 유진은 해질녘이 될 때까지 검을 휘두르는 등 수련에 집중했다.

해질녘이 되자 수련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유진의 앞에 레이나가 나타났다. 도시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영주성 안이라고는 하지만 호위 하나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안일한 모습에 유진은 결국 그녀에게 짧게 한마디 하는 것으로 주의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레이나 경, 혼자 다니는 건 좋지 않습니다. 최소한 엘란 경과 동행하세요.”

문득 엘란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엘란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레이나를 결코 혼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녀가 지금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부하들 모두 잃은 것으로 인한 엘란의 심적 충격이 정상적인 판단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란 경은 괜찮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엘란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유진의 의견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상식적으로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경로를 잡은 탓에 결국 맹약 기사단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습격을 당해 호위 성기사들이 죄다 시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유진은 힘들게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파티원들을 잃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엘란에게 악감정은 가지지 않았다. 물론 엘란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중한 파티원을 하나라도 잃었다면 피의 복수를 감행했을 것이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칼날은 엘란에게로 향했을 테고, 그렇게 되면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루트가 어그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지금에 와서는 ‘IF’의 영역이다. 성기사들이 모두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주요 캐릭터들은 큰 피해 없이 생존해서 다행이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더군요.”

유진의 말에 레이나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녀는 한숨을 내뱉고서 슬픈 시선을 흘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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