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108)
서걱.
‘일검필살’의 발동과 함께 고속으로 휘둘러진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투창 가방을 메고 있는 칠흑의 기사의 왼팔을 잘라 냈다.
“크, 크하악!”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칠흑의 기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투창을 들고 근접전을 펼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는 허리의 가죽 혁대에 걸려 있는 검집에서 장검을 빼 들었다. 예리한 칼날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난다.
“쉽게 당할 것 같으냐!”
맹약 기사단의 평기사는 고통을 억누르고 고함을 내지르며, 장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강철로 만든 칼날에 사악한 암흑의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었다.
―오러 블레이드다!
―출력이 상당히 높은 것 같은데요. 방장님도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장님이 이길 것 같음.
―오러 블레이드 출력을 보니까, 전투력이 높게 설정된 캐릭터 같기는 하지만 왼팔이 없어서 방장님이 이길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ㄹㅇㅋㅋ.
유진은 채팅 창을 짧게 확인하고는 눈앞의 평기사를 향해 다시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은 유진의 편이 아니다. 시간을 길게 끌수록 방어 진형을 유지하고 있는 성기사들의 피해가 가중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빨리 처리하고 다음 목표로 넘어가야 해.’
유진의 눈동자가 평기사에게 향했다. 검은 철갑주를 입은 평기사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검에서는 고출력의 오러 블레이드가 다량의 마나를 태우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는 왼팔을 잃었지만, 기세는 여전히 사나웠다.
“와라! 기꺼이 상대해 주마!”
우렁찬 외침과 함께 평기사는 위협적으로 장검을 휘둘렀다. 왼팔을 잘라 낸 유진에 대한 분노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검술은 오히려 빈틈을 만들었고, 유진은 우연히 발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앗!”
힘찬 기합과 함께 유진은 땅을 박차고서 검은 철갑주의 평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현란한 검격의 연쇄와 함께 수십 개의 찬란한 푸른 빛 궤적이 왼팔이 없는 평기사에게 집중되었다.
“커, 커헉!”
그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유진의 검이 철갑을 뚫고 심장을 관통하자 평기사는 단말마와 함께 힘 없이 쓰러졌다.
―역시 방장님이야. 성능 확실하구먼.
―ㄹㅇㅋㅋ.
―저는 방장님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A랭크 캐릭터를 이렇게 쉽게 처치한다고? 역시 고인물이셨네요.
―그걸 이제 알았음?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일부 시청자들은 유진이 같은 등급인 A랭크 캐릭터를 손쉽게 처치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해.’
유진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어서 그는 가까운 곳에서 하수인 계급의 전투원들을 지휘하고 있는 다른 평기사를 습격했다. 그 또한 A랭크의 실력자였고, 장창을 내찌르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유진의 검에 목이 베이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유진에 의해 평기사 셋이 목숨을 잃자 전장을 주시하고 있던 돈바스는 타니아가 지원해 준 A랭크의 환술사와 함께 전장으로 나섰다.
‘뭔가 온다.’
강대한 마나를 지닌 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감지한 유진은 이를 꽉 악물었다. A랭크의 평기사 셋을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전력을 다한 탓에 슬슬 ‘마나 홀’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은 마나가 얼마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벨 백작에게서 받은 마도구인 ‘약속된 활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약속된 활력’은 평소 마나 회복 속도를 증가시켜 줄 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충전된 상태에서 사용하면 마나 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마나를 회복하고 신체 부위가 절단된 부상조차 수복할 수 있다.
‘무턱대고 아끼는 것보다는 적절할 때 사용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지금이 ‘약속된 활력’을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다. 유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는 ‘약속된 활력’을 사용하여 마나를 회복하기로 결정했다.
[아티팩트, ‘약속된 활력’을 사용합니다.]
[활력의 축복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푸른색의 보석이 박힌 반지가 빛을 발하자 바닥을 드러낸 마나 홀이 가득 채워졌다. 소모된 체력 또한 최상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이제 적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한 순간, 유진의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며 등장했다.
한 명은 칠흑의 갑주와 대검으로 무장했고, 다른 한 명은 근접 계열이 아니라 마도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늙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스태프를 쥐고 있었다.
칠흑의 갑주를 입은 자는 돈바스였고, 스태프를 쥐고 있는 이는 타니아의 명령을 받고 돈바스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A랭크의 환술사였다.
“네가 유진이군.”
돈바스가 말했다.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장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네요.
―평범한 도적놈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맹약 기사단 쪽 캐릭터들인 것 같네요.
―질문 있습니다! 맹약 기사단이 뭔가요? 루베니아 연대기 방송 가끔 봐서 그런지 처음 듣는 것 같아서요.
―요즘 신입들이 많네요. 도와줘요! 설명 요정!
―안녕하세요. 설명 요정입니다. 맹약 기사단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로 추가된 세력 혹은 집단으로 보입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놈들입니다. 비밀 결사의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고마워요! 설명 요정!
시청자들은 맹약 기사단이 얼마 전에 있었던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된 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에서도 비밀스러운 설정을 유지하고 있는 맹약 기사단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와라, 유진. 천 년 맹약의 이름으로 너를 징벌하겠다.”
돈바스가 유진을 향해 대검을 겨눴다. 도발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탐색전을 벌이는 대신에 곧바로 돈바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환술사!”
“알고 있습니다! 돈바스 경!”
함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돈바스가 고함을 내지르는 것으로 신호를 보내자 말없이 은밀하게 마나를 준비하고 있던 환술사가 순식간에 캐스팅을 끝내고 마법진을 완성하자 암흑의 기운이 유진을 덮쳤다. 돈바스에게 달려들던 유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게 뭐야!
―저건 또 무슨 스킬임?
―잘 모르겠어요.
―도와줘요! 설명 요정!
―이건 설명 요정도 모를 것 같음.
―ㄹㅇㅋㅋ.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돈바스는 움직임을 멈춘 유진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환술사의 마법에 의해 유진이 무력화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유진은 무력화되어 있던 게 아니었다.
[상태 이상 ‘공포’가 작용합니다.]
[아티팩트, ‘불굴의 심장’이 상태 이상 ‘공포’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 중에서도 ‘공포’를 일으키는 환술 마법이었지만, ‘불굴의 심장’을 착용하고 있는 유진은 상태 이상을 저항한 상태였고, 오히려 그는 돈바스가 거리를 좁혀 올 때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이었다.
휙.
휘둘러진 검이 돈바스의 대검을 막아 냈다.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냐!”
“꽤 수준 높은 환술 마법인 것 같았는데 미안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어.”
‘불굴의 심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유진은 싸늘한 음성으로 무심하게 툭 내뱉는 것처럼 대답하고는 왼손에 마나를 모았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왼손에 백색의 기운이 모여 들어 창의 형상이 되었다. 돈바스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유진은 왼손에 쥐고 있는 ‘빛의 투창’로 돈바스의 복부를 찔렀다. 본래 용도는 투창이었지만, 근접 공격도 가능했다.
“큭!”
복부를 공격당한 돈바스는 황급히 땅을 박차고서 뒤로 물러났다.
―투창 스킬로 근접 공격! 이건 진귀한 광경이로군요.
―역시 방장님은 고인물!
―빛의 투창 스킬을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네요?
―투창하는 것보단 공격력이 약한 것 같기는 함. 그래도 약한 건 아닌 듯?
―예상치 못한 일격을 인정합니다.
고통받는 돈바스를 보며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제법이군!”
돈바스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이윽고 그는 뒤편에 서 있는 환술사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봐! 환술사! 다른 환술 마법을 사용해!”
“미리 준비했던 걸 사용한 데다가 결계를 유지 중인 상태라서 새로 캐스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상관없다! 서둘러!”
“아, 알겠습니다!”
환술사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자 유진은 이를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돈바스를 한 번 찌른 탓에 상당한 양의 기운을 잃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빛의 투창’을 환술사를 향해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빛의 투창’은 환술사의 목을 꿰뚫었다. 결계를 유지하며 또 다른 환술 마법의 캐스팅에 집중하고 있는 탓에 미처 실드를 시전하지 못한 것이다.
“끄르르르륵!”
환술사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힘 없이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돈바스를 보며 유진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는 돈바스를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오러 블레이드에 화염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정령검 스킬을 사용했다. ‘약속된 활력’을 사용한 덕분에 마나는 충분하다.
“제기랄!”
위협적인 화염의 검을 보며 돈바스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높습니다.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50%입니다.]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50%의 출력으로 ‘일검필살’ 스킬을 사용하자 화염의 칼날이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크아아악!”
돈바스는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도저히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의 검격이었다.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는 돈바스의 상체를 깊숙하게 베었다. 뜨거운 불이 돈바스의 갑옷을 일부 녹였다.
―역시 정령검이야! 성능 확실하구먼!
―해치웠나?
―유진 펀치! 유진 펀치! 유진 펀치!
―가성비 최고!
―일검필살이 이렇게 좋은 스킬이었나?
―ㄹㅇㅋㅋ 내가 쓰면 늘 한 번 쓰고 뻗어 버려서 가성비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고인물이 사용하면 제일 무서운 스킬 중 하나가 일검필살입니다.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돈바스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화염이 그의 상체를 집어삼켰지만 그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흐아아아!”
그는 혁대에 걸려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내서 안에 담겨 있는 액체를 불타는 상체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