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06화 (106/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06)

“엘란 경!”

유진은 다급하게 엘란을 불렀다.

“유진 경? 무슨 일입니까!”

엘란이 대답했다. 그는 마차의 우측에서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의 자리는 마차의 좌측이었다. 말발굽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소음이 요란했지만, 다행히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멈춰야 합니다! 마차가 있어서 마상 전투는 우리한테 불리해요!”

처음에 도시와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유진은 전개된 결계의 효과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에게 기마 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결계가 도시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의 기마 부대가 나타났다. 마차가 있으니 순수하게 기마병들로 이루어진 추격대를 따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인원으로는 마상 전투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방어 진형을 갖추기 어렵다. 방어 진형이 없는 상태에서 마상 전투가 발생한다면 마차를 지키기 힘들다. 유진은 엘란에게 설명을 덧붙이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전원 정지하세요! 방어 진형을 형성하십시오!”

다행히 엘란은 더 이상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의 요청에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고 수습 성녀의 호위를 맡은 성기사들에게 정지하여 방어 진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마차 행렬이 멈췄다. 성기사들은 일제히 하마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들은 엄폐물 겸 장애물이 되어 방어 진형의 일부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유진과 드레인도 말에서 내렸고 바이올라와 레이나 또한 쉬운 표적이 될 수 있는 마차에서 내려와 전투를 준비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다들 긴박하게 전투를 준비하고 있네요.

―기마병들을 상대로 굳이 멈춰서 싸울 필요가 있나요?

―말 타고 싸우는 게 훨씬 낫지 않나요?

―마차가 있어서 마상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음.

―맞아요. 마차 때문에 마상 전투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방장님은 현명하게 판단하신 거에요.

―ㄹㅇㅋㅋ.

채팅 창이 소란스러웠다. 일부 시청자들이 마상 전투가 아니라 멈춰서 방어 진형을 갖추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몇몇 고인물 시청자들이 친절하게도 유진이 마상 전투를 피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옵니다!”

방어 진형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소속 불명의 기마병들이 마차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일제히 돌격을 감행했다.

“쳐라!”

“모조리 죽여라!”

“돌격!”

그들의 고함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고, 성기사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기마병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눴다.

“바이올라! 큰 거 한 방 부탁해!”

“오케이!”

바이올라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순식간에 완성된 A랭크 화염계 공격 마법이 기마병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불의 피였다.

기마병들은 마차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 중이었고 불의 비를 회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산개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바이올라의 화염계 공격 마법은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대상으로 삼았다.

“크아아아악!”

“뜨, 뜨거워! 으아아악!”

“살려, 살려 줘! 끄아아아악!”

속도를 높이거나, 산개해도 불 세례는 피할 수 없었다. 화염에 휩쓸린 기마병들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갔다. 단 한 번의 A랭크 마법에 50명 이상의 기마병이 무력화되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구먼.

―최고다! 바이올라!

―이것은 방장님이 높게 평가될 만한 활약입니다.

―바이올라한테 추가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바이올라의 활약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유진은 채팅 창을 잠시 확인하고는 다시 정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바로 앞에서 수십 명의 기마병들이 길쭉한 기병창을 겨눈 채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바이올라의 마법에 상당수가 쓰러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는 숫자가 살아 있었고 후방에서도 150여 명의 기마병들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드레인! 후방을 부탁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드레인의 대답에 유진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왼손에 마나를 집중했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왼손에 백색의 빛 무리가 모여 들어 길쭉한 창의 형상이 되었다. 유진은 그것을 기마병 무리의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

“커헉!”

빛의 투창에 목이 관통당한 기마 부대 지휘관이 낙마했지만, 다른 기마병들은 멈추지 않았다.

“엘란 경!”

“네? 네! 유진 경! 듣고 있습니다!”

“후방을 부탁합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엘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휘하 성기사들과 함께 후열로 이동했다. 유진은 짧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달려오는 기마병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고 푸른 궤적이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수십 갈래로 흩어지며 어지럽게 실선을 수놓았다.

“크하악!”

“쳐, 쳐라!”

순식간에 6명이 왈칵! 피를 쏟아 내며 말에서 떨어졌다. 유진의 뛰어난 전투력에 기마병들은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사방에서 기병창이 유진을 노린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섰다.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기마병들의 몸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와우! 이게 바로 고인물 무빙이다!

―이게 방장님의 전투력? 정말 대단합니다!

―ㄹㅇㅋㅋ.

―적들도 C랭크에서 B랭크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확실히 A랭크의 경지가 무섭긴 하네요. 상대가 안 됨.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유진의 활약에 시청자들도 감탄했다.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서, 석궁을 쏴라! 크, 크아아악!”

전방을 노렸던 기마병들은 전멸했다. 그들 모두를 처리한 유진은 막 전투가 시작된 후열에 합류하기 위해 달렸다.

예상은 했지만 전방에서 나타난 이들은 일종의 시간 벌기용 희생양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후방에서 습격을 감행한 이들의 전투력이 훨씬 높은 것인지 후열의 성기사들은 꽤 고전하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수습 성녀 레이나가 신성력을 아끼지 않고 신성 마법을 쏟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전사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분명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서둘러 그들에게 합류했다.

―후방 공격 부대가 ‘진짜’였네.

―전방 쪽보다 훨씬 정예인 듯?

―B랭크가 많이 보이네요.

―그래도 A랭크는 안 보임.

시청자들의 분석이었다. 후열에 합류한 유진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기마병들을 처리했다. 그가 합세하면서 성기사들은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기마병들의 수는 빠르게 줄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멸했다.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기마병들이 전멸하자 성기사들은 환호했다.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적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기마병들이 전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후좌우에서 검은 갑주를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숫자는 8백여 명에 근접했다.

새로운 적들의 출현에 성기사들은 물론이고 A랭크의 실력자인 엘란조차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엘란은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대부분 B랭크로 이루어진 최정예 병력이라는 것을. C랭크의 전투원들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소수 인원이었다.

―큰 거 온다.

―고인물이라고 해도 긴장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기마 부대를 격파했지만, 더 큰 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음? 쟤들 대체 소속이 어디임?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도와줘요! 설명 요정!

하지만 설명 요정은 등장하지 않았다.

“주군.”

적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 상황에서 드레인이 옆으로 다가왔다. 유진은 정면에서 다가오는 적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8백여 명의 최정예들이 우릴 노리고 있다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소식이야?”

“유감스럽게도, 그 질문은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아.”

유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말해 봐.”

“저들 중에 A랭크가 몇 명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A랭크의 실력자들이 섞여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기척을 숨기고 있어서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5명 이상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산 넘어 산이다. 유진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바이올라! 마나는 얼마나 남았어?”

“아직 넉넉해! 걱정하지 마!”

다행히 바이올라는 마나 저장량이 충분한 것 같았다.

―온다!

―가깝다! 가까워!

―전투 시작까지 대략 10분? 남은 것 같습니다.

―ㄹㅇㅋㅋ.

―수가 너무 많음. 이길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기는 하네요. 히든 루트라서 재밌게 보고 있는데 게임 오버 뜨면 아쉬울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우려를 표했다.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일반적으로 스트리머들이 많이 플레이하는 ‘철인’ 난이도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으로 ‘게임 오버’ 판정을 받게 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유진 또한 고인물스러운 모습들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트리머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가 ‘철인’ 난이도에서 플레이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엘란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것은 두려움을 잊기 위한 발악에 가까웠다. 성기사들도 함성을 내질렀고 바이올라는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거센 화염을 쏟아 냈지만 기마병들을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적의 마법이다!”

“방어 마법을 전개하라!”

“실드!”

이번에는 적 진영에 다수의 마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힘을 합쳐서 거대한 실드를 형성하는 것으로 바이올라의 화염계 공격 마법을 막아 냈다.

“이런 망할 놈들이!”

바이올라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마법이 막혔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연쇄적으로 화염계 공격 마법을 쏟아 냈다. 결국 적 마도사들이 만든 실드는 파괴되었고 검은 갑주를 입은 이들 머리 위로 화염의 비가 쏟아졌다.

“크아아아악!”

“적 마도사를 먼저 처치해!”

“반격하라!”

적들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반격을 개시했고, 수십 개의 공격 마법이 바이올라를 노렸다.

“제가 막을게요!”

레이나의 외침. 그녀는 신성 마법으로 거대한 실드를 만들어 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순백의 방패는 바이올라를 노리는 모든 마법을 막아 냈다.

신성력을 바탕으로 사용되는 신성 마법은 언데드를 제외한 것들에 대해서는 공격 능력은 거의 없지만 방어와 지원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 신성력이 충분한 수습 성녀가 일행에 포함되어 있으니 한편으로는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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