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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99화 (99/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99)

응접실 안에는 지벨 백작과 란테르고 백작이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두 귀족은 유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란테르고 백작은 호의적인 눈인사를 보냈고, 지벨 백작은 소파에서 일어나 두 팔 벌려 반갑게 유진을 맞이했다.

“유진 경!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지벨 백작의 음성에서 진한 반가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앉게나.”

지벨 백작은 싱글벙글 웃으며 유진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유진은 원형의 탁자를 앞에 두고 푹신해 보이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연회장을 습격한 이들에 대한 조사와 정보 수집은 국왕으로부터 북부의 영주들과 영지에 대한 조사 권한을 부여받은 란테르고 백작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고, 모든 과정은 지벨 백작에게도 공유되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란테르고 백작과 지벨 백작이 합동하여 조사 중인 맹약 기사단 관련 내용들은 현재 극비로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라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유진은 란테르고 백작이 수장으로 있는 왕실 정보대와 제한적인 정보 협약을 약속받았다.

왕실 정보대가 보유한 모든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맹약 기사단이 관련된 내용이라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조사 내용을 알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진척이 거의 없다고 말해야 될 정도입니다.”

지벨 백작을 대신하여 란테르고 백작이 유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연회장을 습격한 맹약 기사단의 전투원들 중 그나마 쓸모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만한 평기사들의 시체는 모두 암흑 마법에 의해 재가 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습격이 끝나고 새벽에 시체들을 정리하는 등 현장을 뒷수습하면서 란테르고 백작의 휘하에 있는 조사관 몇 명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땅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잿가루를 일부 확보하여 보관했다.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암흑 마법의 흔적과 소량의 잿가루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될 때 증거물로 제출되었지만, 상급 마도사의 경지에 있는 란테르고 백작조차 지금까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왕실에 조사 인력의 추가 파견을 요청해 두었습니다. 지금쯤 왕도에서 출발하였을 테니, 근 시일 내로 도시에 도착하여 합류하게 될 겁니다.”

인원이 충원된다면, 추가 성과와 함께 조사가 일정 부분 진척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낀 것 같은 막연한 상황에서 란테르고 백작은 확신할 수 없는 미약한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맹약 기사단에 대한 정보 수집과 연회장 습격 등의 조사 진행에 진척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은밀하게 움직여서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부분도 있지만, 사건의 규모에 비해 조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 큽니다. 추가 인력이 합류한다면 필히 지금과는 다를 겁니다.”

란테르고 백작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헛된 망상에 빠지는 것을 지양하는 성격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희망찬 미래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임무는 왕명이었다. 루벤 왕국의 국왕은 왕실 정보대장을 맡고 있는 뛰어난 인재인 란테르고 백작에게 오크 전쟁 군주와 오염된 정령기사 그리고 북부의 전 지역에서 다수 관측되고 있는 마나 오염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선행 조사를 명령했다.

왕명을 신속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란테르고 백작은 본대가 출발하기 전에 기초 조사부터 빠르게 진행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과 함께 먼저 지벨 도시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연회장 습격이라는 사건이 터지면서 북부의 귀족들이 피를 흘리게 된 것이었다.

오크 전쟁 군주의 남하와 오염된 정령기사의 진군 등의 여러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맹약 기사단이 연회장 습격에도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과 일부 증거들이 명백하기 때문에 란테르고 백작은 인력이 부족한 실정에서도 서둘러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북부의 이상 현상들과 맹약 기사단의 존재와 목적 등에 대한 조사는 왕명이었기 때문에 루벤 왕국의 국왕과 왕실에 충성하는 란테르고 백작의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임무였다.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면 협력 약속에 따라 그 내용을 유진 경에게도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란테르고 백작의 말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정보 공유를 약속했으니, 당연한 조치입니다.”

란테르고 백작은 약속을 지키는 성격의 캐릭터였다. 함부로 약속을 남발하지 않으며, 한 번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로 유명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정보가 공유되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유진은 란테르고 백작을 따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다면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이유를 먼저 들을 수 있을까요?”

정보 공유 문제가 아니라면 무슨 일로 호출한 것일까? 연회장 습격으로부터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지만 조사의 성과가 없는 상황이라, 최근 지벨 백작과 란테르고 백작은 초조한 심정으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유를 부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탓에 분명 같은 저택에서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얼굴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따라서 고작 안부나 묻고자 호출한 것은 아닐 테지. 유진은 객관적으로 흐름을 읽어 냈다.

“지벨 백작, 제가 유진 경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음!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설명은 란테르고 백작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양해 감사합니다, 지벨 백작.”

두 귀족 간에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란테르고 백작은 용건을 설명하기 위해 유진을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는 짧게 이어지는 침묵을 깨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국왕 폐하께서 유진 경에게 지정 의뢰를 요청하셨습니다.”

지정 의뢰는 금패 이상의 용병을 지목해서 의뢰를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유진은 란테르고 백작의 입에서 나온 ‘지정 의뢰’라는 단어에서 다음 메인 이벤트의 시작을 직감했다.

지금 시기에서 루벤 왕국의 국왕이 금패 용병에게 맡길 만한 지정 의뢰는 ‘메인 이벤트’의 진행과 관련되어 있을 만한 것들밖에 없다.

“지정 의뢰 말입니까? 어떤 내용이죠?”

새로운 메인 이벤트의 시작이 임박했다. 유진의 두 눈에서 호기심 어린 빛이 반짝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란테르고 백작을 보며 지정 의뢰의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가 현재 지벨 도시의 신전에서 견문행 중에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얼마 전에 신전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녀와 만난 적이 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초면은 아니지만, 친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유진은 거짓 하나 섞지 않았다. 신전에서 치료를 받을 때 레이나와 만난 적이 있어서 초면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형식적인 대화를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고 그 이후로 의뢰를 끝내고 간혹 신전에 방문하기는 했다. 그러나 레이나와 마주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친분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이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게 맞다면, 아마도 레이나였던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레이나 홀리워커가 그녀의 이름이죠.”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와 관련된 의뢰입니까?”

당장 짐작이 가는 건 수습 성녀의 호위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루베니아 연대기의 설정과 세계관 그리고 이전 회차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자면 현재 견문행 중인 수습 성녀의 담당 도시가 변경됨에 따라 그녀가 이동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최근 북부가 혼란하고 치안이 악화되어 있으니, 호위를 추가로 붙이려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왕의 지정 의뢰라는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가 언급될 리 없다.

“역시 유진 경은 눈치가 빠르군요.”

란테르고 백작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습니다.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인 레이나 경에 대한 지정 의뢰입니다.”

정식이 아니라, 수습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는 하지만 ‘성녀’는 귀족, 그 이상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란테르고 백작은 ‘경’이라는 호칭과 함께 경어를 사용하며 성녀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레이나 경의 견문행 도시가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백색 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서 레이나 경 입장에서는 따를 수밖에 없지요. 물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만, 하나 문제가 있다면 현재 북부에서 여러 혼란스러운 현상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관측되면서 치안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오크 전쟁 군주의 침공과 오염된 정령기사의 진군 등의 큰 사건 외에도 지벨 백작령을 포함하여 북부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혼란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지벨 백작령을 지키는 영지군의 군세가 일부 약화되었기 때문에 영지를 순찰하고 도적들을 토벌하기 위한 병력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때문에 북부에서도 평화롭다는 평이 많았던 지벨 백작령의 치안은 크게 악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지벨 백작령 뿐만 아니라 북부의 전 지역이 도적들로 들끓고 포악해진 몬스터들이 숲과 산맥에서 뛰쳐나와 마을과 상단을 약탈하고 있지만 수습 성녀는 견문행 중인 탓에 고작해야 10여 명이 되지 않는 숫자의 성기사만이 호위로 붙을 것이다.

정식 성녀라면 최소 수십 명에서 많으면 성기사단 전체가 움직일 테지만, 수습 성녀에게 그런 호위가 붙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10여 명의 성기사들이 과연 도적들과 몬스터들의 습격으로부터 레이나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도시를 떠난 직후부터 그녀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클리셰적인 전개였다.

“추가 호위가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유진 경. 국왕 폐하께서는 수습 성녀의 안전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물론 여기 있는 지벨 백작 역시도 레이나 경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백색 교단의 수습 성녀가 지벨 백작령에서 견문행 중에 목숨을 잃거나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면 지벨 백작은 물론이고, 루벤 왕국의 국왕도 곤란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 호위를 붙이려는 것 같았다.

“본래 영지군의 기사단을 붙이려 했지만, 다수의 인원은 레이나 경 측에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5명 이하의 소수 인원만 가능한데, 가장 먼저 유진 경이 떠오르더군요.”

유진은 금패 용병이고, 바이올라와 드레인도 A랭크의 전투력을 지닌 뛰어난 강자들이다. 그들이 수습 성녀를 호위한다면 모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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