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98)
26장. 수습 성녀 레이나
지벨 도시 인근의 숲속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이름 없는 늪지대를 3인의 용병들이 조심스럽게 횡단하고 있었다.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이었다. 그들은 리자드맨 부락의 토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 깊은 숲속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B랭크의 토벌 의뢰였다. 유진의 파티를 구성하고 있는 인원은 전부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깊은 숲에다가 늪지대라는 특수한 지형적 특성이 더해져서 길을 찾는 게 상당히 어려운 구간이었지만 바이올라의 마법 덕분에 유진 파티는 어렵지 않게 리자드맨 부락의 위치를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기척을 지우면서 천천히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야.”
바이올라의 말에 유진은 리자드맨 부락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자 말했고, 파티원들은 목표 지점을 향해 기척을 지우면서 천천히 이동했다.
쉬지 않고 50분을 이동한 끝에 유진 파티는 부락 주위를 순찰하는 리자드맨 정찰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놈들의 숫자는 총 23마리다. 리자드맨의 일반적인 전투력과 유진 파티의 전체 전투력을 고려하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에 유진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서 전투 여부를 결정했다.
“싸우자.”
23마리 규모의 리자드맨 정찰대를 우회하여 부락으로 향하는 게 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은 방식이었다. 바이올라와 드레인은 파티장인 유진의 결정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조용한 긴장 속에서 바이올라가 스태프를 들고서 공격 마법을 완성하는 것으로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파이어 레인!”
카랑카랑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리자드맨들의 머리 위로 뜨거운 불꽃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캬아아아악!”
붉은 화염에 휩싸인 리자드맨들은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발버둥 쳤다. 단 한 번의 마법에 정찰대를 이루고 있는 리자드맨 절반이 불에 타 죽었다.
―역시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구먼!
―정말 대단한 화력입니다!
―역시 메인 히로인 후보다운 전투 능력입니다!
―바이올라만 지지합니다!
―바이올라 펀치! 바이올라 펀치! 바이올라 펀치!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바이올라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이올라는 주요 히로인 캐릭터 중 한 명이었고, 외모도 예쁘고 성격도 개성 있으며 전투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루베니아 연대기의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고인물들이나 일반 유저들이 자주 이용하는 여러 커뮤니티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편이었다.
“크룩! 캬륵! 카로룩!”
정찰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리자드맨이 거대한 대검을 빼 들고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가죽 갑옷을 입은 다른 리자드맨들과는 다르게 조악한 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리자드맨 지휘관의 지시에 남은 리자드맨들이 대열을 갖췄다. 지능이 있는 몬스터답게 아주 기본적인 전술은 사용할 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돌격 대형을 갖췄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진 파티를 발견했다.
“캬륵! 카록! 크라록!”
리자드맨 지휘관이 가래가 끼어 있는 것 같은 탁한 음성으로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유진과 드레인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돌격을 감행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리자드맨들, 그들은 도끼와 창 그리고 장검과 원형의 철 방패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제가 선공하겠습니다!”
드레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왼손을 들어 올리자 혈마법이 완성되었다. 붉은 피로 만들어진 3개의 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리자드맨 지휘관의 복부와 심장 그리고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크루룩!”
3개의 블러드 스피어에 관통당한 리자드맨 지휘관은 힘없이 쓰러졌다. 숨이 끊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휘관이 전투 불능이 되었지만 리자드맨들은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식하게 돌격을 감행하는 리자드맨들의 앞에 유진이 나타났다. 그는 말없이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장검에 스킬 발동을 위하여 마나를 불어 넣었다.
검에서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마나의 응집 현상을 확인한 유진은 이어서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정령검’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할 정령의 속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오러 블레이드에 화염 속성의 정령을 부여합니다.]
푸른색이었던 오러 블레이드가 온통 화염으로 물들었다. 다음 순간, 유진은 자신의 공격 범위 안에 진입한 리자드맨들을 향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검의 궤적에 따라 화염이 쏟아졌다. 팔이 잘리고 상체를 깊숙이 베인 리자드맨들이 고통스러운 괴성을 지르며 힘 없이 쓰러져 갔다.
리자드맨 정찰대는 전멸했다. 정찰대에서 루팅할 만한 아이템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에 유진은 루팅 과정을 생략하고서 리자드맨 부락까지 빠르게 이동할 것을 바이올라와 드레인에게 제안했다.
“오케이! 나는 찬성!”
“저도 찬성입니다.”
둘은 이번에도 반대하지 않았고, 그들은 마법으로 파악한 부락의 위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는 없었고, 불과 몇 분 만에 리자드맨 부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부락의 입구에 진입하자 중무장한 리자드맨 전사들이 몰려나왔는데, 그 숫자가 100여 마리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B랭크 의뢰 중에서도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유진 파티의 전투력은 리자드맨 100여 마리를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바이올라! 엄호 부탁해!”
“오케이!”
유진은 바이올라에게 엄호를 부탁하고서, 달려오는 리자드맨 무리를 향해 가까이 접근하여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캬루룩!”
리자드맨들이 쓰러졌다.
“파이어 레인!”
바이올라의 화염 마법이 리자드맨 무리를 휩쓸었다. 높은 화염 저항 수치를 가지고 있는 유진은 화염으로 가득한 중앙을 돌파하여 부락의 보스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리자드맨 주술사를 향해 달렸다.
리자드맨 주술사는 최후방에서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캐스팅을 외우고 있었다. 주술사의 경지가 결코 낮은 것은 아닌지 꽤 수준 높은 주술을 캐스팅하고 있는 듯했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들고 있는 기이한 형상의 나무 스태프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짙은 농도의 마나가 모여 들고 있었다.
캐스팅이 끝나고 주술이 완성되면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전에 리자드맨 주술사의 목을 칠 수 있을까? 유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지만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바이올라와 드레인은 다른 리자드맨 전사들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주술사에게 신경을 분산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원거리 공격이다!”
유진은 왼손에 마나를 운용하여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백색의 기운이 모여 들더니, 창의 형상이 되었다. 다음 순간, 유진은 리자드맨 주술사를 향해 ‘빛의 투창’을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창은 캐스팅 중이던 리자드맨 주술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명중이오!
―한 방에 심장을 ㄷㄷㄷㄷ.
―방장님 조준 실력이 엄청 좋으시네요.
―ㄹㅇㅋㅋ.
―방장님은 고인물이라서 못하는 게 없으십니다.
―와우! 감탄했습니다!
시청자들의 환호가 채팅 창을 가득 채웠다. 슬쩍 채팅 창을 확인하고서 다시 리자드맨 주술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리자드맨 주술사는 일격에 심장을 꿰뚫린 탓에 쓰러져 시체가 되어 있었다.
―방장님의 투창은 대륙 제이이이이이이일!
―이제 ‘잡몹’들만 남았네요.
―빨리 정리하고 도시로 돌아가죠!
―일반 리자드맨 때려잡는 건 이제 슬슬 질리네요.
―ㄹㅇㅋㅋ.
―이제 지벨 도시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다음 스토리로 가즈아!
시청자들의 전체적인 여론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칭호를 얻기 위해 단순 반복 작업에 가까울 정도로 리자드맨만 사냥하고 부락을 토벌해서 그런지 시청자들도 많이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시청자들의 후원으로 축적되는 포인트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기 때문에 그들의 여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휘둘려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너무 비슷한 의뢰만 반복한 것 같기는 하네.’
채팅 창을 확인하는 것으로 빠르게 여론을 살핀 유진은 자신의 실수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리자드맨 전사의 목을 베고는 주술사의 목에 걸려 있는 뼈 목걸이를 뜯어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리자드맨 주술사의 뼈 목걸이는 이번 의뢰의 성공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이걸 용병 길드에 가져가면 의뢰는 완수 판정이 될 것이며,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부락의 전멸을 확인한 유진은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과 함께 도시로 돌아갔다. 용병 길드에 의뢰 완료를 보고하고 보상을 챙겼다. 그리고 그들은 영주성의 저택으로 향했다.
각자 방으로 흩어져서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휴식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유진을 비교적 편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슬슬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복도로 나온 순간, 중년의 집사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어!
―집사 양반! 천천히 오게나!
―또 어떤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요?
―제 생각이지만 이건 다음 스토리 진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채팅 창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유진의 앞으로 달려온 중년의 집사는 심하게 엉망이 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하여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꽤 멀리서부터 뛰어온 것 같았기 때문에 유진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후우!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 경.”
“무슨 일입니까?”
“영주님께서 급히 유진 경을 찾으십니다. 지금 저택의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새로운 메인 이벤트의 시작인 것 같았다. 란테르고 백작이 조사관으로 파견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흔히 말하는 ‘분기’가 갈렸다.
현재 상황에서 진행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루트는 루메이 후작령과 관련된 메인 이벤트를 클리어 하는 것이다. 지벨 백작과의 친분이 깊고 그의 가문과의 우호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이상한 메인 이벤트로 진행될 만한 제안을 한다면 과감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네.”
중년의 집사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은 저택의 응접실 앞에 도착했다. 중년의 집사가 물러나고 유진은 말없이 고급스러운 장식이 가득한 출입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오게.”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진은 출입문을 열고서 응접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