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97)
‘불굴의 심장’을 보상으로 받고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 열흘 동안 유진은 다음 메인 이벤트를 진행하기 전에 수련과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많이 소모한 금화를 보충하고 장기간 전투 장면 없이 수련만 반복하면 지루해하는 시청자들을 달래기 위해 재정비의 기간만큼 용병 길드에서 잡다한 의뢰를 받아서 수행하기도 했다.
앞서 고민했던 대로 루메이 후작가 쪽의 루트로 메인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늪지의 리자드맨들과 조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진은 용병 길드로부터 지벨 도시 인근 숲에 위치한 꽤 규모가 큰 늪지대의 리자드맨 토벌 의뢰를 우선적으로 받아서 수행했다.
앞으로 벌어질 리자드맨들과의 대규모 싸움에 대비하여 그들을 상대할 때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칭호를 미리 얻기 위해서였다.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인 끝에 유진은 꽤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몬스터 사냥과 토벌 등의 의뢰 수행으로 지루함이 사라지자 시청자들의 이탈이 줄어든 덕분에 골드 등급의 스트리머로 방송 채널이 승격되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포인트를 소모하여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던 여러 스킬들을 업그레이드했다.
“유진! 저녁 같이 먹자!”
“미안, 오늘 좀 피곤해서 일찍 쉬려고.”
“그럼 내일 아침은?”
“내일 아침은 같이 먹자.”
“오케이!”
파티원들과 함께 의뢰를 완수하고 영주성으로 돌아온 유진은 저녁을 같이 먹자는 바이올라에게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서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상태 창.”
명령어를 말하자 눈앞에 상태 창이 생성되었다.
[유진.]
―직업: 정령기사(히든 클래스)
<보유 칭호>
―자유 기사(C): 당신은 정식 기사 작위를 가진 자유 기사입니다. 루벤 왕국의 국민들을 상대로 신뢰도가 50% 상승하고, 귀족을 대할 때 추가 우호도 보정을 얻습니다.
―전쟁 살해자(A): 당신은 오크 전쟁 군주를 토벌하였습니다. 그에게 온전한 죽음을 선사한 것은 큰 업적으로, 오크들을 상대로 전투력이 30% 상승하며 전쟁터에서 아군의 사기 저하가 10%의 확률로 예방됩니다.
―금패 용병(A): 용병 길드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뢰를 달성하면 용병 길드에서의 평판이 상승합니다. 용병들을 최우선 순위로 동원할 수 있습니다. 용병 길드의 소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B): 무수히 많은 고블린들을 도륙하였습니다. 이 업적으로 인해 고블린들은 당신을 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고블린들의 전투력이 30% 감소합니다.
―늪지의 학살자(C): 수많은 리자드맨들을 토벌하였습니다. 이 업적으로 인해 리자드맨들은 당신을 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당신의 영역 안에 있는 리자드맨들의 전투력이 10% 감소합니다.
―늪지 순찰자(D): 늪지에서 많은 전투를 치른 덕분에 해당 지형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이 업적으로 인해 당신은 늪지에서의 전투력이 5% 증가하고, 길을 잃을 확률이 소폭 저하됩니다.
―지벨 백작가의 영원한 동맹(A): 지벨 백작가의 영애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몇 차례의 위협에서 지벨 백작령을 수호하였습니다. 이에 안토니오 지벨 백작은 당신에게 영원한 동맹을 맹세하였습니다. 언제든지 지벨 백작가의 영원한 동맹으로 대우받을 수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라면 호감도와 평판 보정을 받습니다.
<보유 스킬>
―만독불침(A)
―정령검(A)
―정령군주의 호흡(A)
―강철이 깃들인 육신(A)
―원소 부여(B)
―원소 참격(B)
―살기 방출(B)
―투신의 각오(B)
―빛의 투창(B)
―선천적 마나 친화(B)
―오러(B)
―일검필살(B)
―루벤 왕립 기사 검술(C+)
―불굴의 전사(C)
―레인저의 직감(C)
―중급 궁술(D)
―사냥꾼의 시야(B)
―상급 기척 죽이기(C)
―상급 화염 저항(C)
―중급 방패술(D)
―선봉 기사의 임전 태세(B)
―최상급 기척 감지(B)
―주시자의 눈(B)
달라진 게 많았기 때문에 유진은 상태 창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대규모 업데이트의 영향 때문인지 칭호의 바로 옆에 해당 칭호의 랭크가 표시되어 있는 게 보였다. 칭호 쪽에서 달라진 점은 랭크의 표시 외에도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늪지의 학살자(C)’와 ‘늪지 순찰자(D)’라는 칭호가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칭호는 지벨 백작령의 늪지대에서 무수히 많은 리자드맨을 질릴 정도로 반복하여 사냥을 한 끝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였다. 그리고 스킬 쪽의 변화를 살펴보자면 크게 3개였다.
‘상급 추적(C)’이 ‘사냥꾼의 시야(B)’로 승격되었고 ‘날렵한 반응(D)’이 ‘레인저의 직감(C)’으로 그리고 ‘백병전 전문가(D+)’도 더 좋은 스킬인 ‘선봉 기사의 임전 태세(B)’로 교체되었다.
“마나 상태 창.”
계속해서 유진은 마나 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명령어를 말했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4100/4100.
마나 수치도 많이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3750이었던 수치는 이제 4천의 숫자를 돌파했다.
상태 창 점검을 끝낸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로그아웃’의 명령어를 말했다. 채팅 창이 비활성화된 것을 확인한 유진은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넓은 침대 위로 피곤함에 찌든 몸을 던졌다.
* * *
도시의 사람들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을 늦은 밤, 내성에서도 영주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임시 조사 본부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이번에 북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는 왕명을 받들고서 파견된 국왕의 칙임 조사관, 필립 란테르고 백작과 그의 호위이자 왕실의 기사인 다리크 벨키아 자작이었다.
“벨키아 자작,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란테르고 백작님.”
란테르고 백작은 벨키아 자작을 재촉하며 걷는 속도를 올렸다. 호위 대상과의 거리는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벨키아 자작 또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임시 조사 본부로 사용되는 4층 석조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임시 조사 본부에서는 연회장을 습격한 맹약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중요도 높은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석조 건물 주위에는 지벨 백작이 보낸 기사들과 병사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늦은 밤 중이라 그런지 수습 기사로 보이는 남성 셋이 임시 조사 본부로 다가오는 두 사람을 경계하며 앞을 막아섰다.
“정지하십시오!”
수습 기사의 외침에 란테르고 백작과 벨키아 자작이 멈춰 섰다. 수습 기사 셋 중 하나가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며 다가왔다.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거리가 좁혀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벨키아 자작이 란테르고 백작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섰다. 그는 품속에서 귀족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분패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벨키아 자작님이셨군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수고가 많군. 확인이 끝났다면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벨키아 자작님. 안으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대답과 함께 수습 기사는 란테르고 백작과 벨키아 자작이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고는 여전히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료 수습 기사들에게 신원을 확인했으니, 옆으로 물러서라는 내용의 수신호를 보냈다.
그의 동료들은 수신호를 확인하고는 병사들과 함께 옆으로 비켜났다. 란테르고 백작과 벨키아 자작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이었다.
“들어가지.”
“네, 백작님.”
두 귀족은 철저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곧장 계단을 이용하여 지하로 내려갔다.
임시 조사 본부는 4층 석조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상은 일반 사무용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증인의 심문 조사와 정보 수집과 정리 그리고 수집된 정보의 보고와 회의 같은 중요한 업무는 지하의 비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둡고 긴 복도의 끝에는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중무장한 기사 둘이 출입문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란테르고 백작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말없이 흑색의 강화 철문을 열어 주었다.
내부는 넓었고, 10명을 조금 넘는 숫자의 조사관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저마다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란테르고 백작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자 일에 집중하고 있던 조사관 중 하나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보고서를 정리하여 제출했다.
책상 위에 잘 정리된 서류철이 올라갔다. 란테르고 백작은 말없이 보고서를 눈앞에 펼쳤다. 5쪽 분량으로 중요 내용을 요약 정리한 보고서였기 때문에 검토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이게 전부인가?”
보고서 검토를 끝낸 란테르고 백작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싸늘한 냉기에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보고서를 제출한 중년의 조사관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연회장 습격이 발생하고 벌써 꽤 시일이 흘렀다. 그런데 정리된 정보가 고작 이 정도라고? 자네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란테르고 백작이 쏘아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정리된 정보는 소량이고 억지로 분량 늘리기를 해서 공간만 채운거나 다름없는 꼴이야. 덧붙이자면 이 중에서도 쓸 만한 정보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입이 붙어 있다면 변명이라도 해 봐.”
“백작님,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습격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가 너무 없습니다. 정보를 끌어모으려고 해도 단서가 거의 없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효율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광범위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년의 조사관이 조심스럽게 현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지 단서조차 없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정보를 끌어모아서 분석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오염된 마나에 중독된 정령들의 지벨 도시 공격과 북부에서 주로 관측되는 마나 오염 현상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인원이었다.
연회장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오염된 정령들의 도시 공격과 연관점이 있다고 판단된 순간부터 기존의 임무에 새로운 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보니 조사를 진행할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더 많은 조사관이 필요합니다. 현재 조사대에 편성된 인원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부디 중앙에 조사관의 추가 파견을 요청해 주세요.”
중년의 조사관이 진언하자 란테르고 백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 파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국왕 폐하께 조사관의 추가 파견을 요청하겠다.”